2016년
난 하나님의 자녀
May 2016


난 하나님의 자녀

승영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받은 유산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에는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식이 포함됩니다. 그분의 가장 성스러운 이름 중 하나가 아버지, 곧 하나님 아버지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 모세는 사탄의 유혹을 받자 단호하게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보라, 나는 하나님의 한 아들이요”1

  • 시편의 저자는 이스라엘을 일러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너희는 …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2

  • 바울은 아레오바고에 있던 아덴 사람들에게 그들은 “하나님의 소생”3이라고 가르쳤습니다.

  •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시현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보았으며, 세상의 주민은 “하나님께로 태어난 아들과 딸들이라”4라고 증거하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1995년에 열다섯 분의 살아 있는 사도와 선지자들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사람은 모두 하늘 부모의 사랑하는 영의 아들과 딸이[다.]5라고 공표했습니다.

  •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 그 힘과 능력을 새롭고 깊이 있게 인지하는 경험을 해 보지 않고서는 그 사실을 진정으로 확신할 수 없습니다.”6

이 교리는 너무 기본적이고, 자주 언급되며, 직관적으로 단순해 보여서 평범하게 보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교리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지식 중 하나입니다. 승영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받은 유산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자비로운 속죄에 대한 신앙을 키우는 데 근간이 됩니다.7 나아가, 이 교리는 우리가 더없이 중요한 영원한 성약을 맺고 지키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 모임에 참석하고 계신 분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사나 악보 없이도 바로 “난 하나님의 자녀”8를 부를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 사랑스러운 찬송가는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자주 부르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정말 그 사실을 아는가?”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 영혼으로 그 사실을 정말 압니까? 하늘에서 받은 혈통은 우리가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시하는 정체성입니까?

지상에서는 출생지, 국적, 언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업이나 취미로 자신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의 정체성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우리의 영원한 정체성을 대신하거나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희 막내 아이가 일 학년이던 여섯 살 무렵, 선생님이 수업 중에 쓰기 과제를 내신 일이 있었습니다. 때는 10월로,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 명절로 삼는 핼러윈이 있는 달이었습니다. 핼러윈은 제가 썩 좋아하는 명절은 아니지만 순수하고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종이 맨 위에는 이야기 속 마녀가 끓는 솥을 지켜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핼러윈은 제가 썩 좋아하는 명절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북돋고 기초 글쓰기 능력을 시험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방금 마녀의 약을 한 컵 마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제가 선생님들께 이런 활동을 추천하려고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방금 마녀의 약을 한 컵 마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저희 꼬마는 초보로서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죽어서 하늘로 갈 거예요.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그곳은 제일 좋은 곳이니까요.” 선생님은 이 답을 보고 놀라셨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딸이 완성해서 들고 온 과제에는 최고 점수인 별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상상이 아닌 진짜 고난을 맞습니다. 신체적, 정서적, 영적인 고통을 느끼는 한편,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 상심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처지가 마땅해 보이지 않을 때는 부당함을 느끼며 믿었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면 실의에 빠집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 건강상의 어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는가 하면, 교리나 교회 역사 문제가 우리의 현 이해력으로 이해되지 않아 의심이 찾아오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여러분은 가장 먼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혼란스럽거나, 의심스럽거나, 영적으로 위축되십니까? 신앙이 흔들리십니까? 자신의 처지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합니까? 아니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정체성, 곧 자신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떠올리십니까? 동시에, 그분은 우리가 그분처럼 되고 영원한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지상의 고통이 연단하는 자의 불처럼 축복이 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십니까?9

저는 최근에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과 어떤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장로님은 필멸의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역경에는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영원한 목적이 있다는 원리를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나은 것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5개월 전, 저와 제 아내 다이앤은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 부부와 함께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습니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방문국은 라이베리아였습니다. 라이베리아는 기품 있는 국민과 다채로운 역사를 자랑하는 훌륭한 나라이지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정치적 불안과 내전은 가난이라는 재앙을 악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끔찍한 에볼라로 5천 명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희는 세계 보건 기구가 에볼라 위기 이후 여행을 해도 안전하다고 선언한 후 수도인 몬로비아를 외부에서 방문한 첫 번째 교회 지도자 그룹이었습니다.

무덥고 습하던 일요일 아침, 저희는 도심에 있는 임대 집회 시설로 향했습니다. 사용 가능한 의자를 모두 놓고 보니 총 3,500석이었고, 최종 집계한 참석 인원은 4,100명이었습니다. 모임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도보로, 혹은 몇몇 불편한 대중교통으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려왔습니다. 대부분이 예정된 시간보다 몇 시간을 일찍 도착했습니다.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영적인 기운이 대단했습니다! 성도들은 가르침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연사가 경전을 인용하면 회원들은 그 구절을 큰 소리로 말하곤 했습니다. 구절의 길이와 상관없이 온 회중은 한 소리로 응답했습니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명 깊었습니다. 합창단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열정적인 합창단 지휘자와 피아노 치는 열네 살 청남과 더불어 회원들은 활기 있고 힘차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 후 베드나 장로님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당연히 사도의 가르침과 간증을 듣는 이 순서는 모임에서 고대하던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분명 영의 인도를 받으신 베드나 장로님은 말씀을 하시다가 멈추고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굳도다 그 기초’를 아십니까?”

4,100명의 목소리가 포효하듯 응답했습니다. “예!”

그러자 장로님이 물으셨습니다. “7절을 아십니까?”

다시 한 번 온 무리가 대답했습니다. “예!”

지난 십 년 동안 몰몬 태버내클 합창단이 부른 이 웅장한 찬송가 “굳도다 그 기초”의 편곡 본에는 그전에는 많이 불리지 않았던 7절이 들어가 있습니다. 베드나 장로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 2, 3절과 7절을 함께 불러 봅시다.”

합창단 지휘자가 바로 일어섰고 아론 신권 소유자인 반주자가 곧 힘차게 전주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회중 찬송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강한 확신으로 우리는 1, 2, 3절을 불렀습니다. 그런 다음 4,100명의 목소리가 더욱 고조된 음성과 영적인 힘으로 7절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구원 얻으려고 품에 안긴 영혼

저희 원수에게 내주지 않으리

온 지옥 떨며 떨어뜨리려 하나

결단코 하나님 결단코 하나님

저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10

저는 그날 제 삶에서 가장 놀라운 영적인 사건 중 하나를 경험하며 심오한 교훈을 하나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잊게 만드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주변의 방해가 거세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무심히 대하며, 그러다 잊고 말기가 쉽습니다. 라이베리아의 성도들은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으나 영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날 저희가 몬로비아에서 본 무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가 어디에 살고 어떤 환경에 놓였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신앙을 꽃피우고, 계속하여 회개할 동기를 얻으며, 필멸의 여정에서 “굳건하고 흔들리지 아니[할]”1 1 힘을 얻을 것입니다.1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