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엘라 비 와콜로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타니엘라 비 와콜로 장로는 1994년 3월 침례를 받은 이후 매일매일의 삶을 주님을 섬기는 데 헌신해 왔다.
와콜로 장로는 1967년 피지 라우 로마로마 섬에서 타니엘라 보사 와콜로와 테말레시 부아드로모 와콜로 슬하 여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저는 지극히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은 아주 풍족했습니다.”
와콜로 장로는 12세에 부모님 슬하를 떠나 12~19세 연령대의 소년 500여 명이 재학하고 있던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은 제게 엄청난 배움과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자제력을 배웠습니다.”
그는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니타 허버타 모이모이와 1년여간 교제한 뒤 1987년 8월 22일, 피지 수바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와콜로 장로는 바로 개종하지 않았다. 결혼 후 8년 동안 그는 많은 선교사들을 만났다. “8년 동안 [선교사] 토론을 네 차례나 마쳤습니다. 거쳐 간 선교사들만 24명이었죠.”
한 선교사가 했던 교회 이름에 관한 단순한 질문이 침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교회 이름은 그 교회의 주인의 이름을 따라야 합니다. 제게는 바로 그게 답이었습니다.”
와콜로 장로와 아내는 1995년 통가 누쿠알로파 성전에서 인봉되었다. 그들은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침례는 바로 봉사의 기회로 이어졌다. 침례받고 2주 뒤 그는 와드 청남 회장단으로 부름받고, 아내와 함께 세미나리를 가르치도록 부름받았다. 그 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부 회장으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으며, 이어 스테이크 회장단 보좌, 스테이크 회장,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했다. 칠십인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받을 당시 그는 아칸소 리틀록 선교부를 감리하고 있었다.
와콜로 장로는 경영학과 행정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피지 교회 서비스 센터 책임자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