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열방을 향해 기를 들어 올리고
2019년 10월호


“열방을 향해 기를 들어 올리고”,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2권,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1846~1893년』(2019) 제4장

제4장: “열방을 향해 기를 들어 올리고”

제4장

열방을 향해 기를 들어 올리고

산 정상에서 깃발을 흔드는 형제들

1847년 4월, 새뮤얼 브래넌은 세 명의 형제들과 함께 브리검 영과 성도들의 본대를 찾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베이를 나섰다. 그들은 어디로 가서 성도들을 찾아야 할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당시에 서부로 가는 이주자들은 대부분 같은 경로를 이용했다. 따라서 새뮤얼 일행도 그 경로를 따라 동쪽으로 간다면 마침내는 성도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새뮤얼 일행은 물품을 챙기기 위해 잠시 뉴호프에 들렀다가 시에라네바다산맥 기슭의 구릉 지대를 향해 북동쪽으로 이동했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새뮤얼에게 연중 이렇게 이른 시기에는 그곳을 넘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아직도 산길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족히 두 달은 호되게 고생해야 산을 넘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뮤얼은 그 산맥을 빨리 넘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새뮤얼 일행은 등에 짐을 진 동물들을 앞세워 몰며 몇 시간 동안 산을 올랐다. 눈길은 깊었지만 눈이 단단하게 쌓여 있어서 길을 따라 발을 디디기는 한층 수월했다. 하지만 계곡은 물이 불어나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새뮤얼 일행은 위험을 무릅쓰고 헤엄을 치거나 아니면 위험한 다른 경로를 택해야만 했다.

산맥을 넘어 거대하게 솟아오른 화강암 봉우리들을 따라간 끝에 그들은 소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골짜기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하늘처럼 파란빛의 호수도 있었다. 골짜기로 내려가 보니 야영지에 버려진 오두막 몇 채가 있었고, 그 주변에 사람의 유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몇 달 전, 캘리포니아로 가던 한 우마차 행렬이 눈 속에 발이 묶인 일이 있었다. 그 이주민들은 사나운 겨울 폭풍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오두막을 지었었다. 하지만 식량도 부족하고 추위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기에 결국 대부분이 굶주림과 혹한으로 서서히 죽어 갔으며, 일부는 생존하기 위해 인육까지도 먹었다.1

이는 육로 이동의 위험성을 일깨워 주는 섬뜩한 이야기였으나 새뮤얼은 그들의 비극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에 깊이 매료되어 이렇게 경탄했다. “사람은 이 야생의 산지를 여행해 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지.”2


5월 중순경까지 브리검 영과 선발대는 48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진영에는 매일 새벽 5시 정각이면 성도들의 잠을 깨우는 나팔 소리가 울렸고, 7시면 여정이 시작되었다. 일정이 지체되어 진행이 더딜 때도 있었지만, 성도들은 거의 매일 24~32킬로미터씩 앞으로 나아갔다. 저녁이 되면 성도들은 우마차들을 원형으로 세우고, 한데 모여 저녁 기도를 드린 후 모닥불을 껐다.3

이 단조로운 일상은 가끔 들소 떼가 나타날 때 흔들리기도 했다. 육중한 몸집에 털이 수북이 난 이 동물은 거대한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들소 떼가 파도처럼 우르르 달리면서 구릉지와 저지대를 가로지르면 마치 평원 자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형제들은 들소들을 잡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브리검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냥을 하지 않도록 권고했다.4

부대는 몇 년 전에 서쪽으로 간 정착민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이동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푸른 초원은 점차 사라지고 메마른 초원과 경사가 완만한 낮은 언덕들이 나타났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면 그 풍경은 거센 풍랑이 이는 거친 바다처럼 보였다. 플랫강을 따라 난 길은 몇 개의 개울을 가로지르고 있어, 먹고 씻을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땅 자체는 모래땅이었다. 간혹 가는 길에 나무 한 그루나 한 뙈기 정도 되는 푸른 풀밭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 땅의 많은 부분은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황량하고 마음을 끄는 구석도 없었다.5

이따금 어떤 대원이 브리검에게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으면, 브리검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곳에 가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곳을 보았습니다, 시현에서 그곳을 보았습니다. 제 육신의 눈에 그곳이 들어온다면, 제가 알 것입니다.”6

윌리엄 클레이튼은 하루도 빠짐없이 선발대가 이동한 거리를 추정하여 계산하고, 안내서 삼아 보고 있는 지도들에서 이따금씩 발견되는 부정확한 부분들을 수정했다. 여정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윌리엄 클레이튼과 올슨 프랫은 숙련된 기술자인 애플턴 하먼과 함께 “거리 측정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우마차 바퀴에 부착된 톱니바퀴 장치를 이용해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는, 나무로 된 기구였다.7

부대가 전진하고는 있었지만, 일부 부대원들의 행동을 볼 때면 브리검은 자주 좌절감을 느꼈다. 그들 대부분은 여러 해 동안 교회에서 생활했고, 선교사로 봉사했으며, 성전 의식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밤늦게까지 도박, 춤, 힘겨루기 등으로, 여가를 허비하는 것을 삼가고 사냥을 지양하라는 브리검의 권고를 묵살하기 일쑤였다. 브리검은 밤새 일어난 일로 설전을 벌이는 사람들 소리에 아침잠을 깰 때도 종종 있었다. 그는 그런 논쟁이 곧 주먹 다툼이나 그보다 더 한 일로 번지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5월 29일 아침, 브리검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속하고, 야비하며, 불결하고, 옹졸하며, 탐욕스럽고, 사악한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과연 성도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이 왕국을 세우고 온 나라를 맞이할 안식과 평화의 장소를 그렇게 해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8 그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주 기도하고 명상하는 가운데 충실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것은 기회입니다. 모든 사람이 누가 이르지 않아도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입증할 기회인 것입니다.” 브리검은 형제들에게 주님께 봉사하고 각자 성전에서 맺은 성약을 기억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

나중에 형제들은 신권 정원회별로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을 하고 겸손히 생활하기로 손을 들어 성약을 맺었다.9 이튿날, 형제들이 성찬을 취하는데 그들 가운데서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히버 킴볼은 자신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여정을 시작한 후로 형제들이 일요일에 그렇게 조용하고 진지한 것은 처음이었다.”10


선발대가 서쪽으로 가는 동안, 윈터쿼터스에서는 그곳에 있던 성도들 중 절반가량이 길을 떠나기 위해 우마차를 준비하고 물자를 꾸리고 있었다. 채비를 마친 후, 밤에는 자주 함께 모여 바이올린 선율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모여서 설교를 듣고 이제 곧 시작될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11

그러나 성도들 모두가 서부로 가는 데 열의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제임스 스트랭을 비롯한 반대 세력은 식량과 주거지, 평화를 약속하며 끊임없이 성도들을 유인해 냈다. 스트랭과 그의 추종자들은 위스콘신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했다. 나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480킬로미터 거리인 위스콘신 준주에는 드문드문 정착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불만을 품은 일부 성도들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윈터쿼터스에서도 몇 가족이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우마차를 꾸려 떠났다.12

윈터쿼터스를 감리하는 사도인 팔리 프랫은 성도들에게 배도한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휩쓸리지 말고 주님의 권세를 지닌 사도들을 따르도록 간청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성도들을 일깨웠다. “주님께서는 흩어지지 말고 함께 모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팔리와 존 테일러는 늦은 봄에는 부대들을 서쪽으로 보내고자 했고, 팔리는 그런 그들의 바람을 성도들에게 전했다.13

그러나 결국 팔리는 출발을 미뤄야만 했다. 십이사도 정원회는 선발대가 떠나기 전에 계시에 따라 몇 개의 부대를 이미 편성해 두었다. 그 부대들은 대부분 입양을 통해 브리검 영과 히버 킴볼에게 인봉된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내년까지 쓸 물자를 충분히 챙기고 가난한 성도들과 몰몬 대대에 속한 형제들의 가족도 함께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만일 이 궁핍한 가족들을 돌보겠다는 성약을 지키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우마차는 곧바로 압수되어 그 성약을 지킬 다른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었다.14

그러나 팔리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몇몇 부장들을 포함하여 이들 부대에 속한 많은 성도가 아직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여정을 감당할 만한 물자가 없었다. 충분한 물자 없이는, 겨우 자기네 가족이 쓸 만큼의 물자만 확보한 다른 부대원들에게 그들은 큰 짐이 될 터였다. 그런가 하면, 아직 부대에 배치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치고 어서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윈터쿼터스에서 일 년을 더 머물면 또 병마와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했다.15

팔리와 존은 서쪽으로 갈 준비가 된 천오백 명가량의 성도들의 형편에 맞춰서 계획을 수정하고 부대들을 재편성하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성도들은 팔리가 십이사도 정원회의 계획을 수정할 권한이 있는지 의심하며 계획 변경을 반대하고 나섰다. 두 사도는 그들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존은 브리검 영이 없을 때는 선임 사도가 교회의 회원들을 이끌 권세가 있음을 설명했다. 현재는 브리검이 윈터쿼터스에 없으므로 이 정착지를 위한 결정을 내릴 책임과 권리는 팔리에게 있다는 것이 존의 생각이었다.

팔리도 동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16


윌포드 우드럽은 선발대와 함께 서부로 가는 동안 이 성스러운 사명을 생각하며 자주 사색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의 집이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여행할 길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17

어느 날 밤, 그는 부대가 새로운 집합 장소에 다다르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가 그 땅을 응시하고 있는데 영광스러운 성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성전은 희고 푸른 돌로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는 꿈속에서 가까이 서 있던 몇몇 남자들에게 몸을 돌려 그들의 눈에도 성전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윌포드가 성전을 바라보고 느낀 기쁨이 줄어들지는 않았다.18

6월이 되자 날이 더워졌다. 소의 먹이가 되어 주던 키 작은 풀들은 건조한 공기 속에서 갈색으로 변해 버렸고, 목재를 찾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불을 지필 땔감이라고는 들소의 마른 분변뿐일 때가 많았다.19 그러나 부대는 브리검의 가르침대로 언제나 부지런히 계명을 지켰다. 윌포드는 식량과 동물, 우마차를 관리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지냈다. 우리가 충실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이 사명을 통해 훌륭한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다.”20

경로를 따라 이동하던 선발대는 6월 27일에 유명한 탐험가인 모지즈 해리스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해리스는 성도들에게 베어리버밸리도 솔트레이크밸리도 모두 정착지로서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레이트솔트레이크 북동쪽에 있는 캐시밸리라는 곳에 정착하라고 추천했다.

다음날, 선발대는 또 다른 탐험가인 짐 브리저를 만났다. 브리저는 해리스와 달리 베어리버밸리와 솔트레이크밸리가 아주 훌륭한 땅이라고 하면서, 다만 베어리버밸리는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므로 옥수수를 재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솔트레이크밸리가 토질이 좋고, 신선한 물이 흐르는 시내도 몇 곳 있으며, 일 년 내내 비가 내리는 곳이라고 말했다. 브리저는 또한 그레이트솔트레이크 남쪽에 있는 유타밸리도 좋은 땅으로 꼽았지만, 그 지역에 사는 우트족 인디언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21

솔트레이크밸리에 대한 브리저의 말은 선발대에게 용기과 희망을 주었다. 브리검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멈출 곳을 확정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와 선발대의 다른 일원들은 솔트레이크밸리를 가장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만일 솔트레이크밸리가 주님께서 정하신 성도들의 정착지가 아니라 해도 분지 내에서 영구적인 거처를 찾을 때까지는 그곳에 잠시 머물며 작물을 심고 임시 정착지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었다.22

이틀 뒤 선발대의 형제들이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널 뗏목들을 만들고 있는데, 해가 지기 직전에 새뮤얼 브래넌 일행이 야영지로 들어섰다.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뮤얼이 브루클린호에 관한 이야기, 뉴호프를 세운 이야기, 자신들 일행이 선발대를 찾아 산맥을 넘고 평원을 가로지른 위험천만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는 동안 선발대는 넋을 잃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는 선발대가 도착할 때를 대비해서 캘리포니아의 성도들이 수천 평의 땅에 밀과 감자를 심어 두었다고도 했다.

새뮤얼이 캘리포니아의 기후와 토양에 열광하자, 듣고 있던 이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른 정착민들이 도착하기 전에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곳은 정착지로서 이상적인 땅이며 캘리포니아의 유력 인사들도 성도들의 명분을 우호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잠자코 새뮤얼의 말을 듣고 있던 브리검은 그의 제안에 회의적이었다. 캘리포니아 해안이 매력적인 것은 분명했지만,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성도들이 로키산맥 가까운 곳에 새로운 집합 장소를 마련하는 것임을 브리검은 알고 있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종착지는 그레이트베이슨입니다.”23

일주일 남짓 지난 후, 지금까지 많은 통행으로 잘 다져진 길을 따라왔던 선발대는 그 길에서 벗어나 솔트레이크밸리를 향해 남쪽으로 어렴풋하게 난 길로 접어들었다.24


그해 여름, 루이자 프랫은 5달러에 오두막 하나를 사서 딸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오두막은 그녀가 윈터쿼터스에서 마련한 세 번째 집이었다. 뗏장집 지붕 위에 있는 굴뚝이 망가진 이후 루이자는 가족을 데리고 눅눅한 토굴로 들어갔었지만 지하로 1.5미터가 조금 넘는 깊이의 그 토굴도 지붕이 샜다.[뗏장집: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 조각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든 집—옮긴이]

루이자는 몇 사람에게 돈을 치르고, 길게 쪼갠 통나무로 새집 안에 마룻바닥을 만들게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집 앞에 스물다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그늘막 구조물을 만들어 자신의 딸 엘런과 함께 어린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열었다. 그러는 동안 루이자의 다른 딸인 프랜시스는 텃밭에 푸성귀를 심고 길렀으며, 나무를 잘라서 집 안을 덥히고 음식을 만들 땔감을 마련했다.

루이자의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녀는 열과 오한이 사라진 뒤에도 눈 덮인 얼음 위에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고, 토굴에서 사는 동안 괴혈병이 생겨 앞니가 몇 개 빠졌다. 그러나 루이자와 그녀의 딸들은 다른 많은 성도들에 비하면 그나마 고생이 덜한 편이었다. 진영을 덮친 여러 질병으로 이웃과 친구들을 잃은 성도들이 파다했다.25

집을 사고 수리를 하고 나자, 이제 루이자는 남은 돈도 거의 없었다. 먹을 것이 거의 바닥나자 그녀는 이웃들을 찾아갔다. 루이자는 깃털로 만든 자신의 침상을 살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이웃들도 돈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루이자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이웃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자매님은 전혀 걱정이 없는 얼굴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루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 맞아요, 전 걱정되지 않아요. 예상치 못한 어떤 방법으로 구원이 올 거라는 걸 알거든요.”

루이자는 집으로 가는 길에 다른 이웃집에 들렀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 이웃은 벽난로 안에 냄비를 걸 때 쓰는 루이자의 구식 철제 걸개를 언급했다. “그걸 파시겠다면, 옥수숫가루를 서 말 석 되까지 드릴 수 있어요.” 거래에 동의한 루이자는 주님께서 다시 한번 자신을 축복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봄이 되자 더 건강해졌다고 느낀 루이자는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나왔다. 정착지의 여성들은 각자의 영적 은사를 사용하여 서로를 북돋우기 위해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모임에서 여성들이 방언을 했는데, 그때 여러 해 동안 성도들 사이에서 영적인 지도자 역할을 해 오던 엘리자베스 앤 휘트니가 그 방언을 통역해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루이자가 건강한 몸으로 로키산맥을 넘어서 그곳에서 남편과 기쁘게 재회하리라고 말했다.

루이자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사실 윈터쿼터스에서 애디슨을 다시 만나 함께 서부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루이자는 그저 눈앞이 깜깜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좋지도 않은 몸으로 이 여정을 마칠 수 있을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26


로키산맥의 중심부로 나아갈수록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선발대 대원들은 더 쉽게 지쳐 갔다. 눈앞에는 완만한 평원 위로 눈 덮인 봉우리들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봉우리들은 미국 동부에서 본 그 어느 산보다도 훨씬 더 높이 솟아 있었다.

7월 초의 어느 날 밤, 브리검의 아내인 클라라는 고열과 두통,그리고 둔부와 등에 심한 통증을 느껴 잠을 깼다. 이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다. 그들은 부대의 나머지 대원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딱딱한 돌길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들은 허약한 팔다리에 고통을 느꼈다.27

시간이 지나면서 클라라는 나아졌다. 그 영문 모를 병은 그렇게 불쑥 찾아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7월 12일, 브리검이 고열로 몸져눕고 말았다. 그는 밤새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튿날은 몸이 조금 낫는 듯했으나, 결국 브리검과 십이사도는 대부분의 선발대 일원을 쉬게 하고 올슨 프랫 외 42명만 여정을 계속하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28

일주일 뒤, 브리검은 윌라드 리차즈와 조지 에이 스미스, 에라스터스 스노우 등에게 다시 길을 나서서 앞서간 올슨 일행과 합류하도록 지시했다. “일단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적합한 곳에서 멈추십시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어느 곳에 자리를 잡든지 우선 그곳에 씨감자와 메밀, 순무를 심으십시오.”29 그는 그 지역에 대해 짐 브리저가 했던 말을 염두에 두고, 남쪽의 유타밸리에 거주하는 우트족 사람들과 친분을 다지기 전까지는 그곳에 가지 않도록 부대에 주의를 주었다.30

클라라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어린 이복 남동생 둘은 브리검과 몸이 좋지 않은 다른 개척자들과 함께 뒤에 남았다. 일단 부대가 다시 길을 갈 만큼 충분히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느끼자, 그들은 거의 자연 그대로의 거친 길을 따라 덤불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지대를 건넜다. 군데군데 까마득히 높은 협곡으로 둘러싸인 곳이 나올 때면, 대기 중에 정체된 짙은 먼지 때문에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7월 23일, 클라라와 몸이 성치 않은 성도들로 구성된 이 부대는 긴 비탈길을 타고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또 거기서부터 그들은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울창한 숲을 통과해서 산을 내려갔다. 가는 길마다 앞서간 이들이 길을 만들며 남긴 나무 그루터기가 가득했다. 산 아래로 1.5킬로미터 남짓 내려갔을 때, 클라라의 동생들이 탄 우마차가 골짜기에서 뒤집히며 바위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남자들은 황급히 우마차 덮개를 뚫고 소년들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냈다.

이들이 산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올슨과 함께 떠났던 대원 중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두 대원은 이들에게 올슨의 부대가 솔트레이크밸리 가까이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클라라와 그녀의 어머니는 부대원들과 함께 초저녁 무렵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 위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풍이 몰아칠 것처럼 보였다.31


이튿날 아침인 1847년 7월 24일, 윌포드는 마차를 몰고 깊은 협곡을 수 킬로미터 내려갔다. 브리검은 우드럽이 모는 마차 뒤 칸에 누워 있었다. 그는 허약한 몸으로 고열과 싸우느라 걸을 수조차 없었다. 곧 그들은 또 다른 협곡 사이로 흐르는 시내를 따라가다 평평한 언덕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는 솔트레이크밸리의 전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윌포드는 아래에 펼쳐진 광활한 지역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짙푸른 들풀이 자라고 맑은 계곡물이 땅을 적셔 주는 비옥한 들판이 눈앞에 수 킬로미터나 펼쳐져 있었다. 계곡물은 분지의 평야를 따라 흐르는 좁고 긴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톱날같은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치솟아 있는 높은 산들이 요새처럼 분지를 에워쌌다. 서쪽으로는 햇볕을 받아 거울처럼 반짝이는 그레이트솔트레이크가 있었다.

평원과 사막, 협곡을 지나 1,600여 킬로미터를 이동해 온 성도들은 그 풍광에 숨이 멎는 듯했다. 윌포드는 성도들이 그곳에 정착하여 또 하나의 시온의 스테이크를 건설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그들은 집을 짓고, 과수원과 밭을 일구고, 전 세계에서 나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곳에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했듯이 머지않아 여호와의 전이 모든 산들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날 것이었다.32

솔트레이크밸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브리검을 위해 윌포드는 그가 더 잘 볼 수 있도록 마차를 돌려 주었다. 브리검은 분지를 내려다보며 몇 분 동안 그곳을 찬찬히 살폈다.33

그리고 윌포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충분합니다. 이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계속 갑시다.”34


브리검은 한눈에 그곳을 알아보았다. 그가 본 시현에서는 분지의 북쪽 끝에 산봉우리가 있었다. 브리검은 그곳으로 바로 인도되기를 기도했고, 주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브리검은 다른 곳은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35

저 아래 분지의 평야는 벌써 일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브리검, 윌포드, 히버 킴볼은 아직 산을 내려오기 전이었지만, 올슨 프랫과 에라스터스 스노우 일행은 그곳에 기지를 세운 후 들판을 갈고 작물을 심고 땅에 물을 대기 시작했다. 윌포드도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들과 함께 반 광주리 분량의 감자를 심었다. 그는 그런 다음에야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안식일인 다음 날, 성도들은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부대는 함께 모여 설교를 듣고 성찬을 취했다. 브리검은 몸이 허약한 상태였지만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짧은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땅을 일구며, 서로의 재산을 존중하라고 말했다.

7월 26일 월요일 아침, 아직도 윌포드의 마차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중이던 브리검이 윌포드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드럽 형제님, 좀 걷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윌포드가 말했다.36

그날 아침에 그들은 다른 여덟 명과 함께 북쪽에 있는 산 쪽으로 이동했다. 브리검은 어깨에 두른 초록색 망토를 움켜쥔 채 얼마간 윌포드의 마차를 타고 갔다. 산기슭의 작은 언덕에 접어들 무렵, 넓고 평평한 땅이 나오자 브리검은 마차에서 나와서 보슬보슬하고 기름진 흙 위를 천천히 걸어 보았다.

일행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땅을 바라보던 브리검은 갑자기 어느 한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를 바닥에 꽂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우리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것입니다.”37 그는 벌써 눈앞에 여섯 개의 첨탑이 분지의 평야에 우뚝 솟아 있는 성전의 시현을 볼 수 있었다.38

윌포드는 브리검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섬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윌포드는 길을 계속 가려 하는 일행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근처에 있던 세이지브러시 가지를 하나 꺾어서 땅에 꽂아 그 지점을 표시했다.(세이지브러시: 우리말로 산쑥. 북미 서부의 건조한 초지와 산지에서 자라는 높이 1∼3m의 나무—옮긴이)

그런 뒤 그들은 성도들이 분지에 세울 도시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계속해서 발길을 옮겼다.39


그날 오후, 브리검은 분지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봉우리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저곳이 제가 시현에서 보았던 그곳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바위로 된 그 둥근 봉우리는 분지의 어느 곳에서든 쉽게 오를 수 있고 뚜렷하게 보였다. 그곳은 열방을 향해 기를 들어 올리고 하나님의 왕국이 다시 지상에 세워졌음을 세상에 알리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였다.

브리검은 윌포드, 히버 킴볼, 윌라드 리차즈 등과 함께 곧장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제일 먼저 정상에 도달한 사람은 윌포드였다. 그곳에 올라서니 분지가 훤히 보였다.40 성도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고 이스라엘을 모으며 또 하나의 성전을 세우고 시온을 건설하고자 힘쓸 때, 높은 산맥과 광활한 평원이 있는 이 분지는 성도들을 적들로부터 안전히 보호해 줄 것이었다. 조셉 스미스는 십이사도 및 오십인 평의회와 했던 여러 모임에서 성도들을 위해 그런 장소를 찾고 싶은 소망을 자주 피력했었다.41

나머지 일행들도 곧 봉우리로 올라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과 유다의 흩어진 자들이 땅 사방에서 나아와 하나의 기치 아래 모이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되새기며 그곳을 ‘엔사인피크’로 이름했다.42

그들은 언젠가 이 봉우리 위에 커다란 깃발이 휘날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이 순간을 기념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히버 킴볼이 노란 천 한 장을 꺼내어 윌라드 리차즈의 지팡이 끝에 매달고 산 위의 따뜻한 공기 중에 그것을 앞뒤로 흔들었다고 일행 중 한 사람은 회고했다.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