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피 호머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복음에 관하여 데이비드 피 호머 장로의 가장 초기 추억 중 하나는 열네 살 때 한 와드 회원의 가정 복음 교육 동반자로 지명된 것이었다. 그 회원은 “독특한 방법으로 가정 복음 교육을 했어요.”라고 호머 장로는 말했다. “가정을 방문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 사항을 돌보는 방법이 특이했죠.”
그들은 동반자로서 함께 담당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성인 대 청소년이 아닌 신권 봉사를 하는 동료로서 그렇게 했다. “영이 임하여 봉사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호머 장로는 말했다.
그 교훈은 평생 남아 이후에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하든 유아반 지도자로 봉사하든 그의 교회 봉사에 영향을 주었다. 이른바 게시판 담당자라고 할 수 있는 유아반 지도자는 그와 그의 아내가 호주 멜버른에서 생활할 때 수행한 부름이다.
데이비드 폴 호머는 1961년 4월 25일에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프레드릭 호머와 필리스 레닐라 호머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홍콩에서 선교 사업을 한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종교 교육원 노변의 모임에서 브리검 영 대학교 졸업생인 낸시 드랜스필드를 만났다. 당시에 그녀는 그 도시에서 일하며 유타 대학교를 다녔다. 두 사람은 1984년 7월 31일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결혼했다. 그들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키웠다.
호머 장로는 유타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너럴밀스(General Mills)의 임원으로 일하는 30년 동안 그와 그의 아내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캐나다 온타리오주 벌링턴, 스위스 보 생쉴피스에서 생활했다.
호머 장로는 스테이크 회장, 감독, 장로 정원회 회장, 와드 집행 서기 등의 부름에서 봉사했다. 그는 지역 칠십인으로서 캐나다에서 봉사를 시작하여 유럽에서도 그 부름을 이어 갔으며, 2018년 3월 31일에 칠십인 총관리 역원으로 지지받기 전까지 그곳에서 4년간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