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2018년 5월호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우리는 걸림돌과 결점투성이의 삶 가운데서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낍니다.

살다 보면 실수하게 마련입니다.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려면 수천 번, 아니 백만 번 정도의 실수는 각오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수천 번, 아니 백만 번 정도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도 실수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성공이란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겪어 나가는 것이다.”1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천 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천 번의 단계를 거쳐 전구를 발명한 것이다.”2 찰스 에프 케터링은 실패를 “성취를 향하는 길에 있는 방향 표지판”이라고 했습니다.3 우리의 실수가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지혜로운 교훈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니파이는 불굴의 신앙이 있었기에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국 놋쇠판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열 번의 시도 끝에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애굽을 빠져나왔습니다.

니파이와 모세가 주님의 심부름을 한 것이라면, 왜 주님이 처음부터 나서서 그들이 한번에 성공하도록 도와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 주님은 성공하려고 애쓰는 그들이나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며 실패를 겪도록 내버려 두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 중요한 답변이 많이 있겠지만, 몇 가지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 첫째, 주님은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경험이 되고 [우리의] 유익이 될” 것임을 아십니다.4

  • 둘째, 우리가 “쓴 것을 맛보”고 “선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5

  • 셋째,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6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만 그분의 일을 성취하고 그분처럼 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7

  • 넷째, 우리가 “반대되는 것”과8 “고난의 풀무 불”을9 통해서만 단련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들을 많이 발전시키고 연마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걸림돌과 결점투성이의 삶 가운데서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낍니다.

1970년에 브리검 영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저는 저명한 제이 발리프 교수님이 가르치는 물리학 개론을 수강했습니다. 교수님은 각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실시했는데, 만약 시험 점수로 C를 받은 어떤 학생이 성적을 올리고 싶어 한다면, 발리프 교수님은 동일한 시험 범위에 대해 새로운 문제로 그 학생에게 재시험을 치게 해 주셨습니다. 재시험에서 B를 받았는데 성적을 더 올리고 싶어 한다면, 교수님은 세 번이든 네 번이든 계속해서 시험을 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기회가 계속 있었기 때문에 저는 성적이 점점 좋아졌고 결국 A 학점을 받았습니다.

제이 발리프 교수

교수님은 학생들이 실패를 비극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배움의 기회로 삼고 계속 노력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정말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물리학 개론을 듣고 47년이 지난 얼마 전에 저는 이 훌륭한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성적을 올릴 기회를 무제한으로 주셨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분은 “학생들 편이 되고 싶었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지식이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면 감사해합니다. 하물며 부족한 마음 상태나 죄까지 이겨 내도록 우리에게 거듭 기회를 주시는 구주의 은혜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성공을 바라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시험을 치를 기회를 계속 주십니다. 그분처럼 되려면, 육으로 난 인간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기회가 수없이 필요합니다. 욕구를 조절하고, 인내와 용서를 배우고, 게으름을 이겨 내고, 의무를 다하는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실수가 인간적 본성이라면, 그런 인간적 본성을 신성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쳐야 할까요? 수천 번일까요? 아마 백만 번이 맞을 것입니다.

협착하고 좁은 길에는 여기저기 시련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실패를 겪는다는 사실을 아시는 구주께서는 우리가 지상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많은 기회를 주시려고 무한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분이 허용하시는 그런 반대는 종종 우리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희망 없이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인생의 난관에 직면할 때 계속 희망을 잃지 않도록, 우리 곁에는 늘 구주의 은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구주의 은혜란 “남자와 여자가 … 그들의 최선의 노력을 행한 이후에 영생 및 승영을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 신성한 도움 또는 힘”입니다.10 그분의 은혜와 사랑 가득한 눈은 우리의 여정 내내 함께하며 영감을 주고, 짐을 가볍게 하고, 힘을 주고, 구해 주고, 보호하고, 치유하며, 협착하고 좁은 길에서 비틀거리는 “자기 백성을” 돕습니다.11

회개는 늘 이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사이며,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겪어 나가게 해 줍니다. 그분은 우리가 만약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회개라는 대체 계획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우리가 실수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분의 계획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복음이며, 이에 관해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평생 배워야 하는 교과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12

회개라는 평생의 교과 과정에서, 성찬은 주님의 용서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이 정하신 방법입니다.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성찬을 취한다면, 우리가 성약의 길에서 실패를 겪으면서도 계속 전진할 때 주님께서 매주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는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심정은 [우리를]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13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몇 번이나 용서하실까요? 그분의 오래 참으심은 얼마나 갈까요? 한 번은 베드로가 구주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4

베드로와 예수님

아마도 베드로는 너무 많이 용서하는 어리석음을 강조하기에는 일곱 번이 충분한 숫자였고, 자비심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사실상 베드로에게 세지도 말라고, 즉 용서에는 한계를 두지 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15

분명히, 구주께서는 한계를 490번으로 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찬을 취할 수 있는 한계가 490번이어서, 491번째부터는 하늘에서 감시자가 나타나 “미안하지만, 당신의 회개 카드는 방금 만료되었으니, 이제는 당신 혼자서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무한한 속죄, 한없는 사랑, 끝없는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입니다. “참으로 또한 나의 백성이 회개할 때마다 내게 대한 그들의 범법을 내가 사하리라.”16

그렇다고 해서 성찬이 죄에 대한 허가증이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그 때문에 모로나이서에 이런 구절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마다, 그들은 용서를 얻었느니라.”17

“진정으로”라는 말에는 실제적인 노력과 실제적인 변화가 포함됩니다. 경전 안내서는 회개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기 자신, 그리고 삶의 전반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가져오는 생각과 마음의 변화.”18 여기서 핵심 낱말은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 후에는 영적인 성장이 뒤따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공은 단순히 실패를 겪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겪어 나가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이런 통찰력 있는 말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변하지 않으면 그대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 명백한 진리는 너무 당연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이 주신 심오한 지혜입니다. 그분은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을 때, 우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덧붙이셨습니다.19

우리가 구주와 같이 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를 바라기에20,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우리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약점에 관해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를 안심시키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21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촬영한 사진이나 성장 도표를 보면 우리의 신체적 성장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서는 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식으로 정기적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발전을 인식하고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을] …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22

하늘 부모님과 구주의 사랑 충만한 친절과 인내, 오래 참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은 하늘 면전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여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