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알 래스번드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제임스 알 래스번드 장로는 몇 년 전 스테이크 회장단으로 부름을 받으면서, 자신이 준비가 안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름은 아무래도 실수로 온 것 같아.”라고 그는 생각했다.
열아홉 살에 전임 선교사로 한국 서울에 갈 준비를 하러 프로보 선교사 훈련원에 들어가면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부족함을 느꼈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내지?”하고 고민했다.
두 경우 모두 대답은 한결같았다. “계속 행하라. 기쁨이 찾아올 것이다.” 그의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주님께도 완벽한 사람이 막 다 동나셨나 보다. 그러니 너라도 가서 하렴.”
래스번드 장로는 칠십인 총관리 역원이라는 새로운 부름을 받아들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망설임이 들지만 그래도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나아가 행하며 그분의 아들과 그분의 아들의 속죄 희생에 대한 치유와 기쁨의 메시지를 나누기만을 바라십니다.”
제임스 리처드 래스번드는 1963년 3월 20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제임스 이 래스번드와 이스터 래스번드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 비치에서 성장했는데, 집이 바닷가에서 18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래스번드 장로는 브리검 영 대학교 1학년 때 매리 다이앤 윌리엄스를 만났다.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에서 5개월간 공부하는 동안 그리고 그가 한국 서울 선교부에서 봉사하는 동안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1984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성전에서 결혼했으며,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그는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 1986년에 BYU에서 영어와 근동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89년 하버드 법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애틀에서 5년간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1995년에 BYU로 돌아와 제이 르우벤 클라크 법학 대학원의 교수직을 맡았다. 그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법학 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며 BYU의 학술 부회장을 역임했다.
래스번드 장로는 지역 칠십인, 스테이크 회장, 스테이크 회장단 보좌, 고등평의원, 감독, 와드 청남 회장 등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