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스미스 시대의 기독교회”, 교회 역사 주제
“조셉 스미스 시대의 기독교회”
조셉 스미스 시대의 기독교회
어린 조셉 스미스는 “모든 교파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를 알기 위해 기도했을 때, 마을 근처에서 보았던 몇몇 개신교 종파를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1 그는 어떤 기록에서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를 고려 대상으로 삼았었다고 기술하기도 했고 그 외의 다른 종파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이전 세기를 기점으로 종교 선택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으며,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러 “교파”를 구별할 수 있었다.
조셉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미국 교회의 대부분이 개신교였다. 1800년대 초 미국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었지만, 가톨릭 신자 중 소수만이 후기 성도가 되었다. 각양각색의 복잡다단한 미국 개신교는 초기 후기 성도들의 종교적 배경이 되었다.
유럽의 종교 개혁 및 개신교 교회
후기 중세 가톨릭 교회에 대한 불만은 서유럽 기독교의 분파를 불러왔는데, 이것이 오늘날 알려진 종교 개혁이다. 마틴 루터는 1500년대 중반에 자신의 이름을 딴 초기 개혁 운동을 이끌었는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루터와 동시대 인물로 더 젊은 피였던 장 칼뱅은 상세하고 빈틈없는 신학을 발전시켰고 스위스 제네바 종교 공동체에 자신의 사상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루터와 필리프 멜란히톤, 울리히 츠빙글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고백서”라고 알려진 신앙 진술서를 집필했는데 개혁 추종자들은 이를 신조로 받아들였다. 한편, 재세례파 주의자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이런 류의 고백서를 신봉하는 것에 반대했다.
영국 기독교는 수백 년 동안 고유한 전통을 발전시켜왔지만 1953년에 영국 의회가 헨리 6세를 영국 국교회 수장으로 선언했을 때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그 후 수백 년 동안 잇따른 내부 개혁 운동을 겪었고 그 결과로 청교도, 장로교, 퀘이커교가 분파되어 나왔다. 이러한 분열의 소용돌이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북미의 신대륙에 정착하면서 대서양을 건너 빠르게 퍼져나갔다.
초기 미국 내 교회의 확산
영국령 아메리카의 총독부는 유럽의 전례를 따라 공식적으로 인가를 받은 일부 교회를 후원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했다. 청교도 회중 교회는 이러한 인가에 힘입어 교세를 확장하였고 1700년대 중반까지 북부 식민지에서 주요 교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국 성공회는 중부 식민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미국 독립 혁명으로 애국파와 영국 충성파로 나뉘자 미국 성공회 교도들은 자신들의 모체인 영국 성공회로부터 거리를 두며 감독교회라는 새로운 이름을 채택했다.
식민지들이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가운데 유럽에서 답보 상태였던 일부 종교 운동이 북미에서 활기차게 일어났다. 일례로, 감리교 운동은 본토인 영국보다 북미에서 더 많은 호응을 이끌었다. 또한 침수로써의 침례를 믿는다고 천명한 기독교인들은 영국에서는 정부에 의해 투옥된 반면 미국에서는 침례교를 창시하기에 이른다.
1700년대 후반에 미합중국이 탄생하면서 종교적 선택권이 더 확대되었다. 미연방 헌법과 주의회가 국가에서 후원했던 교회들의 인가를 철회하면서 여러 종파가 성행하게 되었다. 그중 특히 감리교와 침례교의 수적 팽창이 두드러졌으며 1800년대 중반까지 북미 교회에서 가장 몸집이 컸던 회중 교회는 그 자리를 내어주게 시작했다.
교회들은 조직 구조와 예배 형태로 분류되기도 했다. 감독교회 신도들은 영국 국교회가 가톨릭으로부터 계승한 의식 및 권위를 중시했기에 “고교회파”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 감리교와 침례교는 사제의 권위나 의식보다 개인의 영적 경험과 개심을 더 강조하면서 “저교회파”와 뜻을 같이 했다. 후에 복음주의로 불린 “저교회파” 신도들은 종교 및 사회 개혁 운동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조셉 스미스가 그의 역사에서 언급한 부흥회의 성행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부흥회는 특정 종파의 개종자를 늘린다기보다는 모든 기독교인의 신앙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복음주의 운동은 종교적 선택의 다양화와 더불어 미국 내 교회 신도와 종파의 대대적인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
초기 교회 회원들의 종교적 배경
초기 후기 성도들 중 상당수가 감리교와 장로교, 침례교 출신이었고 회중 교회, 루터교, 감독교회, 퀘이커 교도, 셰이커 교도, 무소속 개신교도들도 있었다. 오하이오주에 있던 한 개혁 침례교 단체는 신약전서에 나오는 가장 원초적 형태의 기독교의 회복을 추구했다. 이들은 1830년 후기 성도 선교사들을 만났으며 대다수가 몰몬경을 받아들였다. 이 회복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다른 단체는 그리스도 교회(사도 교회)라는 교파를 따로 만들었다.
비록 후기 성도들은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탈퇴했지만 그곳에서 따르던 전통이나 신앙을 상당 부분 초기 교회에 도입했다. 이렇게 짙게 배어있었던 기독교적 배경은 초기 교회의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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