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가엾은 사람들
2021년 5월


9:33

가엾은 사람들

각 와드와 지부에는 강한 사람도 있고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 모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모두가 꼭 필요합니다.

소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노라면 곤란한 처지에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길가에 보이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은 늘 포브레시토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엾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따금씩, 저는 아버지께서 특히 할아버지를 뵈러 멕시코로 갈 때면 이런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찾아 은밀하게 가서 그 사람이 필요한 도움을 주시곤 했습니다. 학교 입학을 돕고, 음식을 사주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길을 가다 마주친 “가엾은 사람”에게 성역을 베풀고 계셨습니다. 제 성장기를 돌이켜보면 우리 곁에는 자립할 때까지 거처가 필요해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 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제게는 주변 사람과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습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지나쳐 가고,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그들이 있는 곳곳을 두루 다니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자 여러분의 형제 자매이다. …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인생의 목적을 찾고 있으며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염려한다.”(『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 사업 지도서』(2018), 1쪽)

교회에서 여러 해 봉사하며 저는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으려 애써 왔습니다. “포브레시토”, 가엾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제게 자주 들립니다.

성경에는 가엾은 사람을 돌보는 이런 훌륭한 예가 있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더라].”(사도행전 3:1~7; 강조체 추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는 주목(fasten)이라는 낱말에 끌렸습니다. 주목(fasten)이라는 말은 어떤 것에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거나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fasten”, Dictionary.com 참조) 베드로는 이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보행 장애와 약함 너머의 것을 보았으며, 그가 치유받고 성전에 가서 원하는 축복을 받기에 신앙이 충분하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그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그 남자를 도왔을 때, 주님께서 그를 기적적으로 고쳐 주셨고,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사도행전 3:7) 이 사람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과 도와주려는 소망이 연약한 그 사람의 힘과 능력을 배가시켰습니다.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할 때, 화요일 저녁마다 제 담당 지역에서 스테이크 회장님들과 함께 성역 방문 일정을 잡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의식이 필요하거나 자신이 맺은 성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우리의 꾸준하고도 계획적인 성역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노력을 영화롭게 하셨으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개인과 가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엾은” 분들이 우리가 봉사했던 여러 스테이크에 살고 계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샌디 캐니언 뷰 스테이크의 빌 휘트워스 회장님과 함께 이런 성역 방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방문 대상에 관해 기도하시며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지 못한 채 영에 의해 이끌”려 나갔던 니파이와 같은 경험을 하려고 애쓰셨습니다.(니파이전서 4:6) 그분은 성역을 할 때는 목록 순이나 틀에 박힌 방법으로 방문하기보다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계시로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감의 힘으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젊은 부부인 제프와 헤더, 어린 아들 카이가 사는 집에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프는 활동 회원으로 자랐습니다. 그는 스포츠에 재능이 많은 유망주였습니다. 그는 십 대 때 교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그는 차 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인생 진로가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서 낯을 익히자, 제프가 자기 집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우리는 스테이크 경계 내에는 약 3,000명의 회원이 산다고 말해 주었고, 뒤이어 제가 물었습니다. “제프, 오늘 밤 다른 많은 집을 놔두고 주님께서 왜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을까요?”

그러자, 제프는 감정이 복받쳐 자기의 걱정거리와 가족이 당면하고 있던 문제를 털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복음 원리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큰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몇 가지 구체적인 것들을 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런 뒤, 휘트워스 회장은 제프가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신권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제프와 헤더는 권유받은 것들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약 일 년 후, 저는 제프가 아내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으로 침례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현재, 두 사람은 성전에 가서 현세와 영원을 위해 가족 인봉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문으로 그들의 인생 진로가 현세적으로 또 영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충실하라. 내가 너를 임명한 그 직분을 수행하라. 약한 자를 도우라.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 하라.’(교리와 성약 81:5 참조)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너는 네 이웃에게 가장 큰 선을 베풀게 될 것이요, 네 주되는 이의 영광을 증진시키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81:4)

형제 자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는 성역의 핵심 요소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며(고린도전서 12:27), 온몸이 덕을 세우려면 몸의 각 지체가 다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제 마음에 크게 와닿는 한 힘찬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느니라].”(고린도전서 12:22~23 강조체 추가)라고 했습니다.

각 와드와 지부에는 강한 사람도 있고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 모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교화를 이루기 위해선 모두가 꼭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의 다양한 회중 가운데서 우리를 강화하고 온전하게 해 줄 사람인데 우리 곁에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종종 생각해 봅니다.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신성한 교리를 배우고, 또한 그뿐 아니라 교리를 적용하는 경험을 합니다. 교회 회원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일상의 삶에서 서로 봉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사랑 안에서 함께 생활’하기를 배우며[교리와 성약 42:45], 개념 있는 품행과 고상한 언어를 익히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것들을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교회가 필요한 이유”, 『리아호나』, 2015년 11월호, 108~109쪽)

브리검 영 묘소

1849년에 브리검 영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큰 양 떼와 염소 떼를 몰고 있었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동물도 있었고, 작고 더러운 동물도 있었습니다. 브리검 영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조셉, 제가 난생처음 보는 정말 형편없는 가축을 키우는군요.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선지자 조셉은 제멋대로 구는 가축 떼가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 “다들 자기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영 회장은, 교회에 다양한 “양과 염소”가 모이겠지만 그들 모두를 받아들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으며 온전한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Adapted from Ronald W. Walker, “Brigham Young: Student of the Prophet,” Ensign, Feb. 1998, 56–57)

형제 자매 여러분,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 한 사람에 관해 제가 깊이 생각했을 때, 이 말씀의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교회에 접근은 하지만 완전히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려고는 하지 않으나 현관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를 필요로 하고 또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며,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모사이야서 27:31]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왜 지금 할 수 없습니까?”, 『리아호나』, 1974년 11월호, 12쪽)

사랑하는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이 새로운 선지자로서 교회 회원들에게 처음 말씀하시며 주신 권유를 반복하고 싶습니다. “이제 교회의 회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약의 길을 계속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이 구주와 성약을 맺고 지킴으로써 그분을 따르겠다고 결심한다면, 어느 곳에서든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과 특권의 문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입니다.”

넬슨 회장님은 그런 다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혹시나 그 길에서 벗어나 계시다면, 제 마음속의 모든 소망을 담아 부디 돌아오시라는 권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걱정거리와 시련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든지, 주님의 교회 안에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지금 성약의 길로 돌아오신다면, 여러분의 행동은 여러분 자신은 물론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까지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함께 나아갈 때”, 『리아호나』, 2018년 4월호, 6~7쪽)

위대한 성역자이자 우리 모두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주변에 있는 “포브레시토,” 즉, 가엾은 작은 자들을 찾도록 권유합니다. 이 기도와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