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그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2021년 5월


13:4

그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우리가 신권을 받는 목적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신권을 소유한 동역자 된 종이자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께 제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러분의 큰 신앙에 대해 들을 때면, 점점 더 강해지는 정원회와 점점 더 충실한 신권 소유자들이 있기에 세상에서 신권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오늘 저녁 저는 개인적인 신권 봉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잠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봉사하라는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 알고 계실 것입니다.1 하지만 부름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실 수도 있습니다.

새로 부름을 받고 신권 봉사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호하게 느낄 가능성이 가장 큰 집사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는 장로 직분에 새로 성임받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며,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으신 감독님들도 관심을 가지실 만한 부분입니다.

저의 집사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제게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을 그때 누군가가 제게 말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집사였던 그때부터 현재 제가 받는 임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권 임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주 작은 지부에서 집사로 성임되었는데, 제가 유일한 집사였고, 제 형 테드는 유일한 교사였습니다. 제 가족이 그 지부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며 지부 전체 회원이 저희 집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제 형과 저를 담당했던 신권 지도자는 신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개종자였습니다. 당시 저는 저희 집 식탁에서 성찬을 전달하는 것만이 제가 맡은 유일한 신권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유타로 이사갔을 때, 저희는 집사가 많고 규모가 큰 와드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참석한 첫 성찬식에서 저는 성찬을 전달하는 집사들이 마치 한 팀으로 훈련받은 것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마치 군대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다음 주 일요일에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일찍 와드 건물로 갔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의 예일크레스트 와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곳 정원에는 동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동상 뒤로 가서 어떻게 하면 성찬을 전달하는 동안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지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신권 봉사를 하면서 성장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더 나은 방식으로 기도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들에게 신권이 주어진 이유를 제가 이해하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권을 받는 목적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2

저는 그것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를 집사 시절로부터 수년이 지나고 나서 배웠습니다. 대제사였던 저는 어느 요양원의 성찬 모임을 방문하라는 지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성찬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성찬을 전달하는 절차나 정확한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나이 드신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한 자매님은 제 소매를 잡고 저를 올려다보시며, “고마워요, 고맙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그분의 이름으로 한 그 봉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제 역할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기도하는 대신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사람들이 제 사랑이 담긴 봉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분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일의 열쇠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최근에 들은 경험담 중 그런 사랑을 되새기게 한 것이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모든 교회 모임이 유예되었을 때, 한 형제 성역자는 자신이 성역을 베푸는 자매에게 성찬을 축복하고 집행하라는 장로 정원회 회장의 지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형제 성역자가 자매님에게 전화를 걸어 성찬을 전달해 드리러 가겠다고 하자, 그 자매님은 주저하며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시기에 그 형제님을 집에서 나오게 만드는 것이 싫었고, 또한 이 상황이 곧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아침, 그 형제님이 자매님의 댁에 도착했을 때, 그 자매님은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이웃집으로 가서 87세인 이웃과 함께 성찬을 취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감독님의 승인을 받아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그 작은 무리의 성도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다른 안전 조치를 주의 깊게 따르며, 매주 일요일 간소한 성찬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저 작게 뜯은 빵 몇 조각과 물 몇 잔일 뿐이었지만, 그들은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윽고, 형제 성역자와 그의 가족, 그 형제가 성역을 베푸는 자매는 교회로 돌아가 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부였던 87세 이웃은 예방 차원에서 집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 형제 성역자가 맡은 성역 대상자는 이 나이 지긋한 자매가 아닌 그 이웃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묵묵히 일요일마다 주의 만찬인 성찬을 집행하기 위해 경전과 작은 빵 조각을 들고 그분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형제님의 신권 봉사는 제가 요양원에서 봉사했던 날 그랬던 것처럼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형제 성역자는 최근 감독님에게 와드에 그가 보살필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자신의 신권 봉사를 영화롭게 하려는 그의 소망은 그가 주의 이름으로, 또 대부분은 그분에게만 알려지는 방식으로 봉사하면서 자라났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 형제도 자신의 봉사를 받는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봉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졌기에 그 결과는 같았습니다.

병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신권 축복을 주기 전에 제가 먼저 그분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를 기도했을 때도 똑같이 놀라운 결과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병원에서 조급해진 의사가 제게 어서 자리를 비키라고 재촉하다시피 거의 명령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신권 축복을 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그저 제가 그들을 방해하지 말고 얼른 비켜 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신권 축복을 주었고, 의사들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어린 소녀는 결국 살았습니다. 지금 돌아보건대, 제가 그날 저의 개인적인 느낌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고 주님께서 그 어린 소녀가 축복을 받길 바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그 축복이 어떤 것인지 알았기에 그 소녀가 치유받도록 축복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침대 곁에 치유의 축복을 바라는 가족들이 둘러서 있지만, 죽음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한 누군가에게 축복을 줄 때도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항상 아주 잠깐이라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어떤 축복을 제가 그분의 이름으로 줄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저 자신이나 곁에 선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축복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어떤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간구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나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바라는 축복을 받지 못할 때라도 영으로부터 마음의 감동을 받아 실망보다는 수용과 위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축복사가 주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축복을 주기 위해 금식하고 영감을 구할 때에도 그것과 똑같은 영감이 옵니다. 그러면, 또 저는 제게, 그리고 그 축복을 받는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축복은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거기에는 그분의 이름으로 전해진 약속뿐만 아니라 경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축복사가 드린 기도와 금식이 주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감독으로 봉사하면서 합당성 접견을 하는 동안,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원하시는 바를 제가 감지할 수 있도록, 또한 저 자신의 판단 때문에 그분이 주시는 영감이 흐려지지 않도록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으로 어떤 사람에게 잘못을 바로잡는 축복을 주고자 하실 경우에는 그런 분별이 특히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여러분이나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구분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생에서, 그리고 이생을 넘어서까지도 우리의 신권 봉사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부지런히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근면함과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는 우리의 노력에 달렸으며, 그렇게 하여 그분이 우리가 그분을 대신하여 봉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영화로움은 작은 단계들을 거쳐 옵니다. 천천히 올 수도 있지만, 꼭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충실하여 내가 말한 이 두 신권을 얻고 자기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영으로 성결하게 되어 몸이 새로워짐이라.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아들들이 되고, 아브라함의 씨와 교회와 왕국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가 되리라.

그리고 또한 이 신권을 받아들이는 자는 모두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주가 이르노라.”3

신권의 열쇠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회복되었음을 간증드립니다. 주님의 종들이 하늘로부터 나타나 이미 일어났던 위대한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위대한 일들에 필요한 신권을 회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집합할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회복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선지자와 종들에게 더 많이 계시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실 방대한 일과 비교한다면 여러분이 작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계시며 여러분에게 신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분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신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이 사랑하시는 그 사람들을 축복해 줄 것이라고 믿으십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신뢰를 느낄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