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시우 엠 지우프라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파트리시우 엠 지우프라 장로는 네 살 때 암으로 부친을 잃었다. 어린 시절, 그는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하고 삶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의구심을 품은 채 성장했다.
“아버지는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버지고, 우리 가족을 훌륭히 부양하셨잖아.” 지우프라 장로는 과거에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그에 대한 답과 이해는 약 10년 후 지우프라와 그의 어머니가 전임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찾아왔다.
그는 구원의 계획을 통해 희망을 얻었고, 그 덕분에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갈 길을 아버지가 마련해 주신 거죠.”
침례를 받은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우프라 장로의 삶에 닻이 되었다. “교회가 제 삶이었습니다. 언제나 제가 교회에 소속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1989년에 유타 옥든 성전에서 자신의 부모, 그리고 사망한 형제자매와 인봉을 받았을 때 지우프라 장로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의식이 끝난 후, 그의 어머니가 “네 아버지가 여기 계신 걸 느꼈어”라고 속삭였던 것이다.
파트리시우 마우리시우 지우프라 바르가스는 1962년 4월 6일에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라사로 단테 지우프라 리포와 올가 로사 바르가스 카날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성장했고, 1992년에 칠레 산티아고 성전에서 마리아 유지니아 곤잘레스 올모스와 결혼했다. 그들은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지우프라 장로는 1990년에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마케팅 및 통 번역 학사, 1994년에 BYU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Woodgrain Millwork(1994~1996)에서 구매 관리자, Alvenius Chilena(1996~1998)에서 영업 관리자 및 운영 관리자, Carbotech Chile(1998~1999) 및 Arcotex SA(2000~현재)에서 본부장으로 일했다.
지우프라 장로는 칠레 오소르노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했으며, 스테이크 집행 서기, 스테이크 청남 회장, 감독,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했다. 칠십인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을 받기 전에 그는 남미에서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