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바이아니나 시카히마 장로
2021년 5월


바이아니나 시카히마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바이아니나(바이) 시카히마는 미국 애리조나주 고등학교 풋볼 스타로 대학팀 모집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살았다.

그는 브리검 영 대학교의 풋볼팀인 쿠거스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으며, 1984년에는 전국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는 몇몇 내셔널 풋볼 리그에서 프로 선수로 뛰었으며, 뉴스 방송인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전에 프로 볼[내셔널 풋볼 리그의 올스타전—옮긴이]에도 두 차례 지명되었다.

그러나 58세의 이 온화한 사람은 예전의 “풋볼 선수”나 “TV 앵커맨”이 아니었다.

2021년 4월 3일에 칠십인 총관리 역원으로 지지받은 시카히마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 정체성을 밝힐 때 프로 운동선수나 방송인이라는 점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정체성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며, 후기 성도입니다.”

그는 또한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신권 소유자라는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1962년 8월 29일에 통가의 누쿠알로파에서 시오네와 루비 시카히마 사이에서 태어난 시카히마 장로는 가족과 신앙으로 정의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조상들은 통가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가입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애리조나주 메사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풋볼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다. 당시 그는 프로 권투 선수 지망생이었다. BYU에서 뛰기 위해 장학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저는 제 주변에서 복음대로 생활하는 데 깊이 헌신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을 더 닮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라고 시카히마 장로는 말했다.

1982년에 그는 사우스다코타 래피드시티 선교부에서 봉사하기 위해 대학 풋볼을 그만두었다. 선교 사업을 마치고 BYU로 돌아온 그는 하와이 원주민인 케알라 헤더를 만나 1984년에 애리조나 메사 성전에서 결혼했다. 시카히마 부부는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총관리 역원이 되기 전까지 시카히마 장로는 와드 청남 회장, 감독, 지역 공보 책임자, 선교부 회장단 보좌, 스테이크 회장,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