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니파이후서 17~24장,” 몰몬경 학생 교재 (2009), 80~90쪽.
“제11장,” 몰몬경 학생 교재, 80~90쪽.
제11장
니파이후서 17~24장
소개
니파이가 인용한 이사야의 기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스스로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 있는 해설과 여러분이 이해한 점을 바탕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대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과 시현을 공부한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과 삶과 사명,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사악한 이들에게 내려질 심판과 멸망으로 어떻게 그분의 재림을 위해 세상이 준비되는지 살펴 본다. 회복이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한 부분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이사야가 예언한 사악한 세상의 행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마지막 시대에 있을 죄악에 대해 예언한 부분을 찾아보고 그 내용을 파악한다면, 의로운 선택을 하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내려질 큰 심판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설
니파이후서 17~24장. 개관 및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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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예언은 중의적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한편으로 이 예언들은 선지자로서 이사야가 받은 부름과 당시 시대 상황과 배경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사야는 똑같은 사건들을 절정의 시기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했다. 이사야가 어떤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맥락에서 예언했는지를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파이후서 25:5~6 참조)
이사야가 예언했을 당시 이스라엘에는 두 왕국, 즉 남쪽에 있는 유다 왕국과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왕국(또는 에브라임)이 있었다. 그리고 수리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모두와, 또는 둘 중 한 왕국과 때로는 적국이었고 때로는 동맹국이었다.(경전 안내서, “연대표: 이스라엘의 사건”과 “유다의 사건”, 196~197쪽 참조) 다음은 이들 세 나라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국가
수도
영토 또는 지파
지도자
유다
예루살렘
유다
아하스, 다윗의 혈통
수리아
다메섹
아람
르신
이스라엘
사마리아
에브라임
베가, 르말리야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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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력과 번영이 쇠퇴해 가던 시기에 성역을 베풀도록 부름받았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브라임)은 수리아와 서로 힘을 합쳐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유다 왕국이 동맹을 거절하자 이스라엘과 수리아는 유다를 공격했다.(니파이후서 17:1 참조)
이사야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다 왕국이 정치적 동맹을 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아하스는 주님의 경고를 거절했다.(열왕기하 16:7~20 참조) 아하스는 앗수르 왕인 디글랏 빌레셀 2세(불)와 언약을 맺었으며, 유다는 수리아와 이스라엘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앗수르에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그러나 앗수르는 작은 왕국들을 서서히 멸망시켰다. 주전 732년에 먼저 다메섹(수리아)이 무너졌으며, 주전 722년에는 사마리아(이스라엘)가, 주전 701년에는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모든 성이 차례로 앗수르에게 정복당했다.
이사야의 많은 예언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대에 성취된 예언이 한 가지 있었다.(열왕기하 16~18장 참조) 이는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서 드러난다. 니파이후서 17~24장(또한 이사야 7~14장 참조)을 각 장 소개와 함께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가 기다리는 위대한 사건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앞서 일어날 심판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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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계속 이어지는 세대와 이 중요한 기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성신의 역할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이 “복합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지적했다. “이사야서에는 수많은 예언이 담겨 있는데, 예언이 성취된 것은 상당히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한 예언이 이사야 시대 사람들에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다음 세대에 일어날 상황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종종 상징적으로 절정의 시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그리고 그 동일한 예언이 또 다른 의미에서 구주의 재림에 해당하는 사건들이나 그 성취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 예언이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들을 해석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신으로부터 계시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Scripture Reading and Revelation,” Ensign, Jan. 1995, 8)
니파이후서 17:2. 다윗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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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17:2절에서 “다윗의 집”은 다윗 왕의 후손이자 유다 왕국의 왕위 계승자인 아하스 왕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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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이라는 말은 연합한다는 뜻이다. 수리아는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왕국인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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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 흔들렸느니라”라는 표현을 통해 아하스와 그의 백성은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동맹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니파이후서 17:3. 윗 못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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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은 “남은 자들이 … 돌아오리라”(니파이후서 20:21~22; 영어 성경 이사야 7:3 각주 a 참조)라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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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17장 3절에 나오는 수로라는 말은 송수로를 의미한다. 아하스는 전쟁 중 적에게 포위될 때를 대비해 성의 물 공급을 점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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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자의 밭은 빨래하는 장소를 말한다.
니파이후서 17:4. “연기 나는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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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17장 4절에 르신과 베가를 “연기 나는 부지깽이”로 표현한 것은 불꽃이 다 타버린 모습을 나타내며, 그들의 힘이 소진해버렸음을 상징한다. 르신과 베가는 사실상 무력했으며 앗수르의 공격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니파이후서 17:6. “유다를 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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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파하고”라는 말은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공격해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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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브엘의 아들은 수리아 사람으로, 수리아와 에브라임이 꼭두각시처럼 세운 예루살렘의 통치자였다.
니파이후서 17:8. “에브라임이 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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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속박되고,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이(이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로 알려졌다.) 사로잡혀 갔다. 다른 땅에서 온 포로들은 그 지역에 다시 정착하여 나중에는 남아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결혼하였고, 이들은 사마리아인으로 알려진다. 예언된 대로 “에브라임이 깨어져” 65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에브라임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니파이후서 17:9~14.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한 가지 표적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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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처녀(almah)는 문자 그대로 “젊은 여성”을 의미하며, 처녀라는 뜻도 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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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이름 중 하나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온 말이다. 임마누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표시로 주어졌다.(이사야 7:14 참조) 이사야가 임마누엘을 언급한 것은 역사적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고 예언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 명칭은 이사야 시대에 태어날 한 아이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 아이가 성년에 달하면 표적이 될 것이다.(니파이후서 17:16~19 참조) 좀 더 중요한 예언적 의미로 임마누엘은 예수께서 필멸의 몸으로 태어나실 사건에 대한 예언이라고 마태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마태복음 1:18~25 참조) 후기에 출현한 경전 속에도 이 이름이 나타난다.(니파이후서 17:14; 18:8; 교성 128:22 참조) (더 알고 싶다면 경전 안내서, “임마누엘”, 244쪽을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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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은 아하스 왕에게 그가 주님께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 말이 어떻게 구주에 대한 또 하나의 예표와 그림자가 되는지 설명했다. “많은 이사야의 기록이 그렇듯 이 예언에도 중의적인 혹은 아주 유사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이 시기 즈음에 아들 하나를 낳은 순결하고 선량한 여성인 이사야의 아내에 초점을 둔다. 이 아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심으로써 이루어질 이 예언의 더욱 위대한 성취를 암시하는 예표이자 그림자이다. 이사야의 아내가 왕족 혈통이었으며 그 아들도 다윗 가계에 속한 왕족 혈통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이 중의적 예언에 담긴 상징적 의미는 한층 더 중요해진다. 다윗의 가장 위대한 후손으로, 문자 그대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위대한 임마누엘이시라는 사실을 예시하는 예표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분의 명칭 임마누엘은 후기에 그대로 전해져 교리와 성약 128편 22절에 구주를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된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1997], 79)
니파이후서 17:16~22. 에브라임과 수리아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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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유다에게는 완전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반면, 아하스를 대적한 “네가 미워하는 땅”인 북왕국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니파이후서 17:16) 당시 북쪽의 두 왕은 앗수르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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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과 수리아 두 나라는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것이었다. 수리아는 주전 732년에, 에브라임은 주전 722년에 차례로 멸망했다. 홀런드 장로가 지적한 대로(83쪽에 나오는 니파이후서 17:14 해설 참조) 실제로 이사야 시대에 태어난 그 아이는 유대인의 율법에 도덕적 책임을 질 나이로 정해진 12살이나 13살쯤 되었을 것이다.
니파이후서 17:20. 머리와 수염을 미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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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수염을 미는 일은 가족이 상을 당했을 때 애도를 표하는 관습이었다. 그러나 포로의 머리와 수염을 강제로 미는 것은 당사자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이자 포로임을 구별하는 수단이었다.
니파이후서 17:22. “버터와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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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와 꿀이 고급스러운 물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땅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황폐해진 상태였다.(니파이후서 17:23 참조) 따라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땅에서 먹을 곡식이 없어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처럼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버터와 꿀은 염소나 양에게서 나오는 요구르트를 굳힌 것과 근방에서 찾을 수 있는 천연 벌꿀 같은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니파이후서 18. 주님의 도구로 쓰인 앗수르
니파이후서 18:1. 마헬살랄하스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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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아들 이름인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멸망이 임박했다”라는 뜻이다.(니파이후서 20:6 참조) 이 이름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러 오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영어 성경 이사야 8:1 각주 d 참조)
니파이후서 18:3. 여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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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지자라는 말은 이사야의 아내를 지칭한다. 그녀에게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며, 니파이후서 17장 14절에 기록된 예언은 그녀의 아들로 맨 처음 성취되었을 것이다.
니파이후서 18:4.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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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라는 말은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두 살 정도 되었다는 뜻이다. 주전 732년 경에 수리아와 사마리아(이스라엘) 북부 지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했다.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까지는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았다.
니파이후서 18:6~7.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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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니파이후서 18:6)과 “세차고 많은”(7절) 강물에 담긴 대조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설이 있다. “이사야는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물 즉,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산 근처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실로아 물과 종종 통제력을 잃고 세차게 흐르는 큰 강인 유브라데 물을 묘사한 후 서로 대조했다. 실로아 물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반면 유브라데는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실로아 물을 마시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만, 유브라데 물에 휩쓸려 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 두 가지 물에 대한 이사야의 표현은 상징적이다. 전자는 생명의 물에 비유되는 예수, 곧 하늘의 왕이시며 후자는 규모가 큰 파괴적인 군대를 이끌고 ‘[홍수처럼] 땅을 덮어 … 그 주민을 멸할’(예레미야 46:8) 앗수르 왕이다. 유다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실로아 물로 비유되는 예수를 거절하자 주님께서는 제방을 범람하여 온 땅을 파괴로 뒤덮을, 거센 강물로 비유되는 앗수르 왕을 그들에게 보내셨다.”(Donald W. Parry, Jay A. Parry, Tina M. Peterson, Understanding Isaiah [1998], 83)
니파이후서 18:8. “목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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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까지”라는 상징적 표현은 앗수르 왕이 유다 땅을 예루살렘까지 정복할 것임을 나타낸다. 주전 701년 경에 앗수르는 이미 수도[예루살렘 성]를 제외한 유다 전역을 멸망시켰다.
니파이후서 18:8, 10.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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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가 유다를 정복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진 듯했지만 임마누엘 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멸망에서 보호되었다.(니파이후서 18:10) 성벽 너머로 화살 하나도 넘어가지 못한 이 기적 같은 사건은 이사야 37장 33~36절에 묘사되어 있다.
니파이후서 18:14. 성소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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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임마누엘”에는 구원과 정죄 둘 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오실 때, 그분은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성소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복음을 안식처 삼아 화평과 안전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반역과 불순종을 일삼은 무리에게 그분은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바위(또한 덫과 올무)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에게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분의 가르침 때문에 분개하고, 그분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정죄받고 속박되고 끌려갈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71~1973], 3:292~293)
니파이후서 18:17. “주를 의지하고,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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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얻을 수 있는 영적인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매일, 때로는 매시간, 심지어 매 순간 고통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리버티 감옥에 갇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고통에 시달릴 때 받은 놀라운 권고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네 영혼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역경과 네 고난은 잠시 뿐이리니,
그러고 나서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내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요, 너는 너의 모든 원수를 이기리라.’(교성:121:7~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고통과 시험과 시련이 닥쳐올 때 구주께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여호와를 …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십시오.]’(이사야 8:17; 니파이후서18:17)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치유는 주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주님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내하십시오.”(리아호나, 1999년 1월호, 17쪽)
니파이후서 18:19. “신접한 자들[과] 주절거리[는] …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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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암흑 시기에 사람들은 주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죽은 사람의 영에 의지하고자 했다. 주절거리며 중얼거리는 마술사라는 말은 스스로 죽은 사람과 접신했다고 믿는 무당들이 시끄러운 소리로 중얼거리며 말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니파이후서 19.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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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인들은 이스라엘(에브라임)과 수리아 연합군을 급습하여 다메섹을 무너뜨리고, 후에 갈릴리라고 불린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차지했다.(열왕기하 15:27~31 참조) 니파이후서 19장 1절에는 이 사건을 “어둠”을 몰고 온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나머지 이스라엘과 남쪽에 있는 유다에 닥친 이러한 침략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큰 빛”(니파이후서 19:2)이 비췰 것이라는 말로 이곳에 오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가 배정받은 땅은 북 이스라엘, 즉 갈릴리였으며 이곳은 예수님께서 성장하시고 성역을 베푸신 주요 장소였다. 마태와 요한은 메시야께서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신 사실을 목격했으며, 이사야의 예언은 그렇게 성취되었다.(마태복음 4:12~16; 요한복음 1:5 참조)
니파이후서 19:6~7. “정사가 그 어깨 위에 있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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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니파이후서 19장 6~7절에 나오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가 속죄와 복천년 시기 둘 다와 관련이 있다고 기록했다. “정사가 궁극적으로 그분 어깨에 있을 것이라는 말은 온 세상이 언젠가는 그분이 만주의 주이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거룩한 주권자 및 대제사로서 지니신 위엄과 신성한 예복을 갖추시고 이 땅과 그분의 교회를 친히 통치하시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임을 확증하는 말이다. 정사와 그것에 관한 짐이 그분 어깨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짊어질 짐은 크게 가벼워지리라는 사실에서 모든 사람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죄(또는 적어도 여기에서는 우리의 현세적 짐)를 그분 어깨로 가져가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이사야가 남긴 또다른 예언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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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다양한 명칭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그분은 ‘경이로운 모사’로서 하늘 심판대에서 우리 마음속 동기를 변호하시는 우리의 중보자요 중재자가 되실 것이다. 일찍이 이사야는 (그리고 니파이는) ‘주께서 변호하러 일어서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라고 상기시켰다.[니파이후서 13:13] 후기 경전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사요 대변자이신 그분께서 지니신 크나큰 연민을 생각해 보라.
‘아버지께 대한 변호자가 되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는 아버지 앞에 너희 문제를 변호하고 있나니—
아뢰기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자요 아무 죄도 범하지 아니한 자가 겪은 고난과 죽음을 보시옵소서. 당신 아들의 흘린 피를 보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영광을 얻으시려고 주신 자의 피로소이다.
그러하온즉 아버지여, 나의 이름을 믿는 이 나의 형제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내게 나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옵소서 하느니라.’[교성 45:3~5]
물론 이사야가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중재자이실 뿐만 아니라 심판자이시기도 하다.[모사이야서 3:10; 모로나이서 10:34; 모세서 6:57 참조] 심판하는 그분의 역할을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그분의 백성을 구속하러 내려오실 것이라고 되풀이한 아빈아다이의 말에서 훨씬 더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모사이야서 13:28; 또한 모사이야서 13:34; 15:1; 앨마서 42:15 참조] 이것은 마치 하늘의 그 거대한 법정에 앉은 재판관께서 재판대에 선 죄 지은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대신 짊어지라고 하고 싶지 않았기에 직접 판사복을 벗고 지상에 친히 내려와서 그들이 받을 매질을 몸소 받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자비로운 재판관이시라는 사실은 그분께서 모사요, 중보자요, 변호자이시라는 사실만큼이나 아름답고 경이롭다.
‘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권능과 힘, 전능하심, 대적할 수 없는 영향력을 나타낸다. 이사야는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이 저지른 죄와 범법의 결과를 항상 극복하실 수 있으며, 이스라엘 자녀들을 억압하고자 하는 자에게 영원토록 승리하실 것을 보았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그리스도께서 무수한 세상을 창조하신 아버지, 부활을 통해 육신의 생명을 회복하시는 아버지, 영적으로 그분에게서 난 아들과 딸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아버지이시며 신성한 권세를 위임받아 아버지(엘로힘)를 대신하여 행하시는 분이라는 기본 교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서 나서 그분의 아들과 딸이 되기를 구해야 한다.[모사이야서 5:7 참조]
마지막으로 ‘평강의 왕’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장차 왕께서 오실 때는 인간의 마음이나 세상 여러 민족 사이에 더는 전쟁이 없으리라는 사실에 기뻐한다. 이 왕은 평화로운 왕이자 예루살렘이 될 도시인 살렘의 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대를 불문하고 필멸의 상태에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며, 그분의 복천년과 복천년 이후에 있을 영광의 왕국에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80~82)
니파이후서 19:11~12. “그의 손은 여전히 뻗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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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신의 대적”은 앗수르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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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은 여전히 뻗어 있느니라” 이는 대부분 의로운 진노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자비의 손길을 뜻하기도 한다.(니파이후서 28:32; 야곱서 6:4~5 참조)
니파이후서 19:18~19. “불을 지필 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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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19장 5절에 나오는 피묻은 전쟁 갑옷은 “큰 빛”(2절)이 가져다 주는 기쁨과 평안을 준비하기 위한 불의 연료이다. 이와는 반대로 18~19절에 나오는 불을 지필 땔감은 그들의 형제조차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어둠 속에 거하는 사람들과 그 사악함을 의미한다.
니파이후서 20. 앗수르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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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인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대적해 승리하도록 허락되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불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니파이후서 20장에는 앗수르의 운명에 관한 예언이 담겨 있으며,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앗수르가 펼친 몇 가지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언급했고(9절 참조) 결국 유다를 침략해 승리하리라고 예언했으며 앗수르에게 무너질 유다의 여러 성들의 이름까지도 거론했다.(28~32절 참조) 그렇지만 앗수르인들은 결국 실패했고, 이스라엘과 앗수르 양쪽이 모두 완전히 멸망한다고 묘사되어 있다.(15~19절 참조) 또한 이스라엘과 앗수르의 멸망은 후기를 포함해 어느 시대나 악한 사람은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이다.
니파이후서 20:5~6. “나의 분노의 막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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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주님께서는 거듭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분의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게 하신다. 백성들이 선지자를 거절했을 때 주님께서는 앗수르를 그분의 백성을 벌하는 막대기로 사용하셨다. 그 목적을 이루시고 나서 주님께서는 또 다른 나라, 즉 바벨론의 손으로 앗수르의 사악함을 벌하셨다.(니파이후서 20:12 참조)
니파이후서 20:12~15. “도끼가 … 자기를 자랑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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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앗수르가 자루를 쥔 주인에게 자기를 자랑하는 도끼와 같다고 비유하셨다. 도끼(앗수르)는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그의 통치는 끝날 때가 되었다.
니파이후서 20:16~19. 악한 사람들은 하루 사이에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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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앗수르의 멸망을 재림 때 있을 사악한 이들의 멸망을 나타내는 예표와 투영으로 사용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구절을 읽는 이들에게 재림의 맥락과 어떻게 연관시켜 이해해야 할지를 가르쳤다. “이사야는 재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니라.]’ 또한 포도원을 정화하는 불타는 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불로]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그리고 이렇게 기록은 계속된다.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그날에 인간의 사악함이 만연하고 그 악이 너무 커서, 비교적 극소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 날’, 곧 불타는 날, 모든 썩어질 것들이 소멸되는 날, 남는 자가 적을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이사야 10:17~21) 그들은 주님의 재림 이후에 집합할 것이다.”(The Millennial Messiah [1982], 315~316)
니파이후서 21. 이새의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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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이사야의 시야를 열어 후기에 관한 중대한 진리를 가르치셨다. 모로나이처럼(몰몬서 8:34~35 참조) 이사야도 우리 시대 상황과 주님께서 어떤 사건들로 위대한 복천년의 날을 다가오게 하실지를 보았다. 이사야가 남긴 많은 예언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복음이 회복되는 사건과 직접 연관이 있다.
니파이후서 21:1~5, 10. 줄기, 가지, 어린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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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9월 21일, 모로나이가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이사야 십일 장을 인용하며 이르기를, 이것은 바야흐로 성취되려 하고 있다고 하였다.”(조셉 스미스—역사 1:40) 이새의 줄기는 누구이며, 그 줄기에서 자라날 어린 가지는 누구를 말하는가? 주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교리와 성약 113편 1~4절에서 답하셨다. 그렇지만 각 상징 용어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 깊이 생각하며 기록을 읽어야 한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복천년 때에 그 가지는 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예레미야 23:3~6) 이 말씀은 복천년 동안 세상을 친히 다스리실 왕은 다윗의 집에서 자라난 가지일 것이라는 뜻이다. … 그분는 주 여호와이시며, 우리가 그리스도라 부르는 분이시다.”(The Promised Messiah: The First Coming of Christ [1978], 193)
니파이후서 21장 1절에는 후기에 세워질 주님의 왕국에 관한 추가 견해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한 데 엮여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어린 가지가 나올 것이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날 것이라.” 후기에 받은 계시는 이 어린 가지가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한 종”(교성 113:4)을 의미한다고 밝힌다. 후기의 종이라는 개념은 니파이후서 21장 10절에서 시적으로 반복되는데, 이번에는 “이새의 뿌리”라고 나온다. 이 뿌리는 “마지막 날에 기호가 되고 나의 백성들의 집합을 위하여 신권과 왕국의 열쇠”(교성 113:6)를 쥐게 될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한 사람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다. 마찬가지로 그의 뒤를 이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모든 선지자도 이새의 뿌리이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같은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기 언급된, 신권이 회복되고 왕국 열쇠를 받았으며 이 경륜의 시대에 주님 백성들의 집합을 위하여 기를 들어올린 선지자를 조셉 스미스라 말한다고 해서 잘못을 범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한 종이요, 부분적으로 에브라임의 후손 또는 요셉 집의 후손인 동시에 이새의 후손이니, 그에게 많은 권능이 놓여 있[다]’(교성 113:4~6)고 한 그 종은 조셉 스미스가 아닌가? 무한하신 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의 의미를 알 것이다.”(Millennial Messiah, 339~340)
니파이후서 21:9.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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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지식을 얻는 것에는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고, 성신과 함께하는 가운데 그 지식을 키우며, 신권 교리를 이해하는 일이 포함된다고 가르쳤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 급증하는 시대를 삽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 자녀를 위한 그분의 계획에 대해서는 그에 필적할만한 지식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위나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의로움과 계시입니다.
저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9; 니파이후서 21:9)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날을 열망합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주님께서 ‘후기 성도들의 머리 위에 지식을 부어내려 주[실]‘(교성 121:33) 것이라는 영감에 찬 말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마음이 이 세상 일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사람의 명예를 갈망’(121:35)하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의 원칙’(121:36)을 배우고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권세있는 사람을 걷어차며 ‘성도를 박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121:38) 사람으로 남을 것입니다. 반면에 주님께서는 충실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신권의 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네 영혼을 적시리라.
성신은 변하지 않는 네 동반자가 될 것이요, 네 홀은 의와 진리의 불변하는 홀이 되며, 네 다스림은 영원한 다스림이 되어 강제당하지 아니하고 영원무궁토록 네게로 흘러 오리라.’(교성 121:45~46)”(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38쪽)
니파이후서 21:10~16. 후기에 일어날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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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9월 21~22일, 모로나이 천사는 다섯 차례에 걸쳐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방문했다. 그 중 네 차례에 걸친 방문에서 다른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이사야 11장을 인용하며 그 예언이 바야흐로 성취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셉 스미스—역사 1:40 참조)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 예언이 성취되는 데 필요한 신권 열쇠를 받았다.(교성 110:11 참조)
니파이후서 21:11. 두 번째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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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스라엘 집이 두 번째로 집합하는 시기는 마지막 시대를 위해 특별히 예비되었다고 가르쳤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그분의 손을 다시 펴사, 그분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앗수르에서, 그리고 애굽에서, 그리고 바드로스에서, 그리고 구스에서, 그리고 엘람에서, 그리고 시날에서, 그리고 하맛에서, 그리고 바다의 섬들에서 도로 찾으시며, 그들 가운데 이방인의 충만함을 나아오게 하시고, 그들의 죄가 거두어질 때 확립하리라 약속하신 성약을 그들과 세우실 것입니다. … 이스라엘 집에서도 유다 집에서도 이러한 성약이 확립된 적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지상에 계실 때 성약을 맺자고 그들에게 제의하셨지만 그들은 그분과 그 제의를 거절했으며, 그 결과 그들은 꺽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때 그들과 어떠한 성약도 맺지 않으셨습니다. …
그리하여 이 택함 받은 백성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의를 거절한 후에 구원의 전령들은 그들에게 ‘보라,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돌이키리니’라고 말했으며, 이방인들이 이 성약을 받았고, 그들은 택함 받은 백성이 꺾인 그 자리에 접목되었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1:313)
니파이후서 22. 찬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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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22장에는 복천년에 있을 감사와 찬양을 담은 두 찬가가 실려 있다. 이 노래에는 사람들이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는 위대한 약속이 담겨 있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위해 간증과 감사와 사랑을 나눌 것이다. 후기 성도 찬송가 48장에 나오는 “주는 나의 빛”이라는 노래는 이사야 12장 2절에 나오는 표현에 바탕을 둔다.
니파이후서 22:3.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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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생수의 근원이 누구를 일컫는지 밝혔다. “주님께서는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불타는 갈증을 해소해 줄 생수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들에게 경전과 선지자의 말씀을 전하여 충만한 복음을 제공하고 회복된 복음 진리에 관한 간증을 전하여 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들이 복음 지식이 든 잔을 마시면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행복의 계획을 이해하게 되어 갈증이 해소될 것입니다.”(성도의 벗, 1995년 7월호, 19쪽)
니파이후서 23. 바벨론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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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과 그 고귀함이 무너지는 모습, 그리고 백성들에게 보편화된 사악함을 생생한 시현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세력을 모아 바벨론을 멸망시키라고 명하셨다.(니파이후서 13:2~6 참조) 주전 538년, 고레스 대왕이 이끄는 메대와 바사 연합군이 유브라데 강을 둑으로 막고 강바닥으로 진군해 와서 바벨론 성벽 아래에 이르러 성을 탈환하고 그 제국을 무너뜨린 일이 그 명령에 대한 응답이었다. 영적인 의미에서 바벨론이라는 용어로 비유된 표현을 생각해 볼 때 이 사건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사야 역시 자신의 예언에서 바벨론이라는 용어를 마지막 시대에 세상 전반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은 “거룩하게 된 자들”(니파이후서 23:3)인 후기의 성도들이 함께 모이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세상의 악(바벨론)을 물리치라는 명령이다.
니파이후서 23:6. “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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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악한 사람을 벌하고 의로운 사람을 보존하실 주님의 심판을 일컫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주님께서는 그날을 준비하라 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준비 되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교성 38:30)
니파이후서 24:4~20. 루시퍼의 멸망과 바벨론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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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24장에서 주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집에 속한 사악한 이들을 정죄하셨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집에 존재하는 악 때문에 커다란 심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심판은 다른 나라의 손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시현과 예언을 통해 열국 가운에 고통을 가져오는 주요 세력으로서 대적이 담당하는 역할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언자의 귄세를 통해 우리는 루시퍼가 결국 실패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니파이후서 24:12. 루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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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몰몬경에서 루시퍼라는 이름이 사용된 곳은 이사야 14장 12절과 니파이후서 24장 12절 밖에 없다. 교리와 성약 76편 25~28절에서 우리는 루시퍼(“빛을 품은 자”라는 의미)가 전세에서 사탄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모반하였으므로 사탄은 “하나님 앞에 권세를 지닌”(25절) 자였던 위치에서 떨어져 “멸망이라 불리”(26절)게 되었다.
이사야는 루시퍼의 교만과 그가 하늘에서 떨어진 일(니파이후서 24:12~19 참조)을 바벨론의 야망과 궁극적인 멸망(4절 참조)을 나타내는 예표로 삼았다.
바벨론과 그 통치자들에 대한 이사야의 설명은 또한 복천년 동안 사탄이 결박되어 열국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할 그날을 암시하는 예표와 투영이다. 사탄은 복천년 이후 잠시 풀려나겠지만 결국은 필멸의 땅의 역사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권능을 잃을 것이다. 사탄과 멸망의 아들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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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사탄의 성격에서 하늘에서 추락한 원인이 된 치명적인 결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세의 천국 회의에서 ‘아침의 아들’(니파이후서 24:12~15; 또한 교성 76:25~27; 모세서 4:3 참조) 루시퍼가 추락한 원인은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
천국 회의에서 루시퍼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지하는 아버지의 계획과 경쟁하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모세서 4:1~3 참조) 그는 다른 모든 이를 뛰어넘는 영광을 원했습니다.(니파이후서 24:13 참조) 간단히 말해서 루시퍼의 교만한 욕망은 하나님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교성 29:36; 76:28 참조)”(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4~5쪽)
생각해 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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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파이후서 17~19장을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어떤 면에서 마지막 날에 이룰 핵심 목적이 되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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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의 심판에 관한 이사야의 경고 중 여러분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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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은 어떤 면에서 “크고”도 “두려운”가?
제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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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이사야를 인용한 이 장들과 그 해설을 주의 깊게 읽고 공부했다면, 이제 후기 성도로서 여러분에게 의미가 있고, 오늘날 우리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예언적 통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따로 종이를 준비해서 적어 본다. 다음에 나오는 각 성구에서 주요 주제를 찾아본다.
니파이후서 17~1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1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20:12~19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21:10~1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22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2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니파이후서 2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