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장: 앨마서 32~35장,” 몰몬경 학생 교재 (2009), 221~230쪽.
“제30장,” 몰몬경 학생 교재, 221~230쪽.
제30장
앨마서 32~35장
소개
앨마와 그의 형제들은 배도에 빠진 조램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다. 시련을 겪은 일부 조램인들은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인 및 집단 예배에 관한 앨마와 앰율레크의 가르침은 속죄 권능, 회개, 신앙, 하나님의 말씀, 기도의 중요성 등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일부를 다룬다. 앨마와 앰율레크는 자신의 간증 외에도 고대 선지자 세 명의 간증과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에 실린 교리와 원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해설
앨마서 32장.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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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서 32장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다. 앨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옥한 마음 밭에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말씀을 시험할 때, 또는 순종하여 씨앗을 잘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귀한 열매, 모든 것 중에 가장 감미롭고, 가장 희고, 가장 순수한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그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어떻게 말씀을 믿는 신앙을 키워서 이 열매를 먹을 수 있을까?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만일 우리가 생생하고 영속하는 신앙을 갖고자 한다면 교회 회원으로서 맡는 모든 의무를 활동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2권, 276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주었다. “신앙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행동과 하나가 될 때 존재합니다. 첫째, 절대적인 신뢰, 둘째, 행동, 셋째, 절대적인 순종.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약하고 힘 없는 모조 신앙뿐입니다.”(리아호나, 2002년 11월호, 83쪽)
앨마서 32~34장. 생명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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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앨마서 32~34장을 서로 연관지어 공부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앨마서 32장에 나오는] 앨마의 훌륭한 설교를 통해, 독자들은 씨앗과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에 대해 간략하게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열매 맺는 나무로 자란 신앙, 일찍이 리하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표현한 바로 그 열매를 맺는 나무에 관한 설교에 집중하게 된다. ……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 생명수, 참 포도나무다. 그리스도는 씨앗, 나무, 영생의 열매다.
그러나 독자들이 몰몬경에서 다음 두 장을 계속해서 읽지 않으면, 이 연설에 나오는 심오하고 핵심적인 생명 나무 비유를 놓치거나 그 의미를 이해하는 폭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Christ and the New Covenant [1997], 169)
앨마서 32:8~16.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은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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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는 가난한 조램인들이 복음을 배울 준비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부유한 조램인들에게 거부 당했기 때문에 그들은 겸손한 상태에 이르렀다.
감리 감독단의 리차드 시 에즐리 감독은 사람이 복음의 축복을 받는 데 필요한 덕성은 겸손과 유순함이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대부분 겸손이 나약함으로 오인받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거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업이나 회사에서는 겸손을 소중한 덕목이나 경영상 바람직한 특성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배우면서 겸손과 순종적인 마음 자세에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겸손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미덕은 하나님의 축복과 신권 권능을 누리게 하는 중요한 첫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학력이 얼마나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겸손하고 순종하며 감사드리는 마음을 품을 때 힘과 희망이 생겨납니다.”(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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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때때로 일부러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만큼 겸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앨마서 32장 8~16절에는 겸손해지는 두 가지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13절에는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 14절과 16절에는 “말씀으로 인하여” 스스로 겸손해지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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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인인 카를로스 이 에이시(1926~1999) 장로 또한 이 두 부류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 성품에 ‘니파이인 주기’가 일정 부분 포함된 것 같다. 즉, 우리는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때가 있으며, 겸손할 때 성장하고 영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족하고 교만해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 하나님과 우리 종교를 늘 기억하고 계속 예배와 의로운 생활을 통해 그 주기를 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주님 말씀으로 겸손해지고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을 항상 기억할 만큼 우리 영이 강하다면 얼마나 좋을까?”(Family Pecan Trees: Planting a Legacy of Faith at Home [1992], 193~194) 교만 주기를 설명하는 도해와 그 내용을 더 알고 싶으면 부록(413쪽)에 나오는 “의로움과 간악함의 주기”를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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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우리 스스로 겸손해지는 방법과 시련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지는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우리는 형제 자매에게 품은 적의를 극복하고 그들을 우리 자신과 같이 존중하며, 우리와 같이, 또는 더 높이 올려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교성 38:24; 81:5; 84:106 참조)
우리는 권고와 징계를 받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야곱서 4:10; 힐라맨서 15:3; 교성 63:55; 101:4~5; 108:1; 124:61, 84; 136:31; 잠언 9:8 참조)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 줌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제3니파이 13:11, 14; 교성 64:10 참조)
우리는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모사이야서 2:16~17 참조)
우리는 선교사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앨마서 4:19; 31:5; 48:20 참조)
더 자주 성전에 들어감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버려 하나님께 거듭남으로써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교성 58:43; 모사이야서 27:25~26; 앨마서 5:7~14, 49 참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며, 우리 생활에서 그분을 앞세움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제3니파이 11:11; 13:33; 모로나이서 10:32 참조)”(Ensign, May 1989, 6~7)
앨마서 32:17~18. 신앙은 표적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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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신앙을 위해 표적을 구하는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표적이 나타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지식을 얻은 사람에게 저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앙을 발전시킬 기회를 놓치고, 신앙을 발전시키는 정상적인 길에서 영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쳐서 더 엄한 벌을 자초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행 조건으로 요구하신 신앙을 먼저 발전시키지 않고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저주’는 더 있다.
한 가지 저주는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이한 일을 보여준 다음에 이방 신을 예배하도록 이끄는 선지자들을 따르지 말라며 고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다.(신명기 13:1~3) 구주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마지막 날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성약에 따라 택함 받은 자인 바로 그 택함 받은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임이니라.’ (조셉 스미스-마태 1:22; 또한 마태 24:24; 마가 13:22 참조) ……
…… 우리 시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확신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적 또는 표적을 사용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목적으로 표적을 구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영적 증거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큰 의혹을 품어야 한다.”(The Lord’s Way [1991], 85~86)
앨마서 32:21. 신앙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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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신앙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앙은 알려지지 않은 것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은 확인된 증거를 초월해야 합니다. 신앙은 미지의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빛의 가장자리를 걷고, 어둠 속으로 몇 발자국 더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알려져야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설명되어야 한다면, 모든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면 신앙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신앙이 있을 여지가 없게 됩니다. ……
…… 신앙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영혼의 삶에 일상적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은 경험으로 생긴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으로 우리는 새날이 밝아 오고, 봄이 올 것이며,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정된 일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또한 다른 종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이것은 드문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합당하고 준비되어 있으며 굽히지 않는 신앙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나게 만듭니다. 이런 신앙이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며, 때때로 사물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 이 신앙은 점진적으로 성장합니다. 이것은 기이하고 초월적인 동력, 전기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동력이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되면,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
회의론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표현은 ‘보여 주면 믿을게.’라는 태도를 조장합니다. 우리는 모든 증명과 증거를 먼저 원합니다. 신앙을 얻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작용하는 것, 믿는 것이 곧 보는 것인 영적인 것들을 우리는 언제 배울 것입니까? 영적 믿음이 영적 지식에 선행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참된 것들을 믿을 때 우리에게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What Is Faith?” in Faith [1983],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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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소망과 신앙과 지식의 관계를 말씀하며 이 세 가지가 어떻게 깊고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설명했다. “신앙과 소망은 계속해서 상호 작용하며 언제나 정확하게 구별되거나 순서를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온전한 지식이 없을지라도 소망이 선사하는 활기찬 기대감은 ‘확실[히]’ 참됩니다.(이더서 12:4; 또한 로마서 8:24; 히브리서 11:1; 앨마서 32:21 참조)”(Ensign, Nov. 1994, 35)
앨마서 32:23. 어린이들이 영감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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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의 신앙은 종종 신성한 통찰로 이어진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어린아이들의 모범이 어떻게 어른들에게 가르침이 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어린아이들은 자주 ‘[그들] 마음의 생각과 뜻’을 주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나이가 차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들은 신앙으로 가득합니다. 교회 공식 부름을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지만 그들은 모범을 보이는 사람으로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특히 ‘훌륭하신 부모’(니파이전서 1:1)를 축복받았을 때 그 역할을 잘 해냅니다.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린아이들이 …… 말씀을 받는 때가 많[습니다.]’(앨마서 32:23) 예를 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니파이인 어린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보여 주셨고, 그런 후 그 아이들은 어른들과 부모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보다 ‘더욱 큰’ 일들을 가르쳤습니다.(제3니파이 26:14)
지금 애리조나에 사는 낸 바커와 댄 바커가 입양한 여러 자녀를 인봉하는 일은 저에게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제 갓 세 살이 된 네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 올 또 다른 여자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는 검은 머리에 눈동자도 검은 색이고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요.’
현명한 어머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니?’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이층에서요.’
그 어머니는 ‘우리에게는 이층이 없단다.’ 하고 말했지만 곧 그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습니다. 많은 고민과 기도 끝에 바커 가족은 1995년 가을에 솔트레이크 성전 인봉실에서 카자흐스탄에서 온 소녀를,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은 색인 어린 소녀를 현세와 영원을 위해 자신들에게 인봉했습니다. 영감 받은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들에게 ‘크고 기이한 일들을’(제3니파이 26:14) 말하고 있습니다.”(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69~70쪽)
앨마서 32:27~37.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할 때 개종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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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앨마가 말한 대로 시험해 보겠다는 의지는 개종으로 연결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회원과 비회원 모두 기꺼이 말씀을 시험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전히 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앨마서 32:27 참조) 즉, 우리 정신과 마음이 진리를 알고자 하는 소망과 그 소망에 따라 기꺼이 행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교회를 알고자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험은 몰몬경을 읽고, 그에 대해 기도하고, 조셉 스미스가 주님의 선지자였는지를 진지하게 알아보기로 약속하는 것처럼 단순한 일일 것입니다.
참된 개종은 영의 권능을 통해 옵니다. 영이 마음을 감동시킬 때 마음에 변화가 생깁니다. 회원이든 구도자든 자신에게 작용하는 영을 느낄 때, 혹은 생활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증거를 볼 때 영적으로 교화되고 강화되며 주님을 믿는 신앙이 커집니다. 개인이 말씀을 시험하고자 할 때 영과 더불어 하는 이러한 경험들은 자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이 참되다고 느끼는 방법입니다.”(리아호나, 2001년 1월호,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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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앨마서 32장 28절에 나오는 이 부푸는 움직임, 영혼이 커짐, 이해력이 밝아짐, 영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나 표현하기 힘들다고 해서 그 감정의 진실성이 퇴색하지는 않는다.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설명하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무신론자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간증을 전했으나 그 사람은 그런 것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패커 회장은 자신의 간증과 지식을 소금이 어떤 맛인지 아는 것에 비유했다.(213쪽에 나오는 앨마서 30:15~16 해설 참조; 또한 “The Candle of the Lord,” Ensign, Jan. 1983, 51~52 참조)
앨마서 32:28~30. “자리를 내주어 씨앗 하나가 너희 마음에 심어[져]” 자라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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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이 커지는 것은 부드러운 마음이라는 비옥한 땅에 심은 신앙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 중 하나이다.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신앙과 지식이 자라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을 설명했다. “우리는 …… 신앙의 모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매일 겸손한 기도를 드리며 힘과 용서를 구하여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을 극복함으로써 흙을 써레질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계명을 지킴으로써 모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십일조와 다른 헌금을 낼 때 주님께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가 책임을 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위대한 신권 권능을 불러올 수 있도록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영적인 씨앗을 키우기에 성전의 성소 안과 우리 가정만큼 더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리아호나, 2000년 1월호,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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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씨앗을 심었다고 해서 순식간에 자라나지는 않는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씨앗이 자라는 동안 기다리는 인내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간증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경험을 통해 압니다. 오히려 간증은 앨마가 말한 것처럼 신앙의 씨앗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
몰몬경을 반복해서 읽고도 아직 강력한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은 큰 영광 중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득 찼으나 “이를 알지 못[한]”(제3니파이 9:20) 몰몬경에 나오는 제자들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십시오. 다음 성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지혜와 질서 안에서 행해지도록 할지니, 이는 사람이 그가 가진 힘보다 더 빨리 달음질함이 요구되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또 그는 부지런할 필요가 있나니, 그로써 그가 상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일은 반드시 질서 안에서 행해져야 하느니라.’(모사이야서 4:27)”(리아호나, 2005년 5월호, 8쪽)
앨마서 32:28~35. “이것은 내게 기쁨을 주기 시작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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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는 미각이라는 개념을 간증이 자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 또한 참된 교리를 분별하는 것에 관해 가르칠 때 미각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이것은 좋은 교리입니다. 맛이 좋습니다. 저는 영생의 원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맛볼 수 있습니다. …… 이 영생에 관한 말씀을 제가 받은 대로 여러분께 전할 때 여러분도 그것을 맛볼 수 있음을 압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믿는다는 것도 압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꿀이 달다고 말합니다. 저는 영생의 영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 맛이 좋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제가 성신의 영감으로 받은 이 말씀을 여러분께 전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감미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더 많은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History of the Church, 6:312; 기울임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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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본부 청녀 회장인 자네트 헤일즈 베컴 자매는 경전을 읽는 것에 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영의 가르침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신앙을 실현하는 데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 딸 케런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아주 어렸을 때 처음으로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에는 니파이전서 3장 7절에 이르렀어요. …… 이것이 그렇게 유명한 구절인지는 몰랐지만 그 구절을 읽으면서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것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러나 그 깊은 감동은 실로 어떤 느낌 이상이었어요. 저는 부모님께서 빨간 연필로 경전에 표시하시는 걸 본 적이 있었고, 그래서 얼른 일어나 집안을 샅샅이 뒤져 빨간 연필을 찾아내고는 엄숙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제 몰몬경에 그 구절을 표시했어요.’ 케런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경전을 읽을 때면 한 구절을 읽고 진한 감동을 받는 그런 경험은 반복되어 일어났어요. 얼마 안 가서 저는 그 느낌이 성신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75쪽)
앨마서 32:35.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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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는 가난한 조램인들에게 말하면서,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참된지를 직접 분별해 보도록 요청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복음 원리를 대신 배워 줄 수는 없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우리 각자가 신성한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앨마는 신앙이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믿는 사람의 지적 경험과 정서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신앙이 실제로 지식이 되는지를 설명했다. 믿는 사람들의 이해력이 커지고 생각이 넓어지자 앨마는 이렇게 물었다. ‘오 그러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냐?’ 앨마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분별할 수 있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그것이 선한 것인 줄 너희가 반드시 알’것이기 때문이다.(앨마서 32:35)
각각의 신성한 교리의 진실성은 사실상 ‘나는 안다!’는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는 확인과 확증 체계 안에서 우리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Things As They Really Are [1978], 10)
앨마서 32:33~43. 말씀을 가꾸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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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인인 브루스 시 하펜 장로는 재배에 대한 앨마의 은유를 사용하여, 우리 생활에 복음의 축복을 가져오는 가꿈에 대해 두 가지 측면을 설명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 즉 부정적인 잡초를 제거하고 긍정적인 꽃을 재배함으로써 성장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다한다면 구주의 은혜는 두 가지 부분을 다 축복합니다. 먼저 그리고 반복해서 우리는 죄와 나쁜 선택이라는 잡초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잡초를 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고 자비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회개하십시오. 그러나 용서받는 것은 우리 성장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단지 빚을 갚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해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마음속을 깨끗이 하고 나면, 신성한 자질이라는 씨를 계속해서 심고, 잡초를 뽑고, 영양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땀과 단련으로 그분의 은사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발전할 때, ‘은혜의 꽃’[‘내 영혼이 햇빛을 받아”, 찬송가 153장]이 희망과 온유함처럼 피어납니다. 생명 나무가 이 마음 동산에 뿌리를 내려 너무나 감미로운 열매를 맺고 ‘그 아들의 기쁨을 통하여’[앨마서 33:23] 우리의 모든 짐은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랑의 꽃이 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사랑의 힘[모로나이서 7:48 참조]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리아호나, 2004년 5월호, 97쪽)
앨마서 32:37~38, 42~43.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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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교회 회원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이것이 ……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가 걷는 평화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룻밤 만에 효과가 나타나는 즉효약이 아닙니다.
최근에 제 친구 한 명이 간증을 굳게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는 편지를 제게 보냈습니다. 그는 조언을 청했습니다.
저는 그의 삶을 회복된 복음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일치시킬 수 있게 해 줄, 그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일들을 제언하는 성실한 답장을 썼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일주일 뒤에 그로부터 회신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네가 제언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나?”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전력 질주로 영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내심이 필요한 경주입니다. 우리는 이 신성한 복음 원리들을 적용하고 또 적용해야 합니다. 매일 그 원리를 우리 일상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아침에 씨앗을 뿌리고 낮에 옥수수 거두기를 바라는 농부처럼 복음에 접근합니다. 앨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면서 씨앗이 자라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부지런함과 인내와 오래 참음’[앨마서 32:43]의 결과로서 점차적으로 열매가 달린 나무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떤 축복들은 우리 마음에 씨앗을 심자마자 오는 것도 있지만, 씨앗이 부풀고 싹이 나고 자라기 시작하면 이로써 우리는 씨앗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제자의 길로 들어서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축복들이 우리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무를 소홀히 하여, 그 가꿀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면’[38절] 그러한 충만한 축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씨앗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보살핌으로 나무를 가꾸[어], 그것이 뿌리를 얻[도록]’[37절]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라야 우리는 ‘감미로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감미로우며 …… 순결한 모든 것 위에 뛰어나게 순결한’ 열매를 취할 수 있으며, ‘이 열매를 배부르도록 흡족히 먹게되[어], [우리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할]‘[42절] 것입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성품을 연마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순화하는 이 여정의 가르침들이 필요합니다. 끈기 있게 제자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우리 신앙의 척도를 나타내 보이고 우리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임을 스스로에게 입증합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거나 우리가 그분의 제자임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종교의 상징들로 자신을 둘러싸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자가 되는 일은 앉아서 관람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우리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스포츠 경기를 보며 운동 선수에게 충고한다고 해서 건강의 유익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방관자로 서 있으면서 신앙의 축복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 제자”가 예배의 주된 방법이 아님에도 오히려 그것을 선호합니다.
우리 종교는 간접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행하는 좋은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복음의 축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변인을 벗어나 우리가 가르치는 것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 지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이 걸으신 길을 걸을 때입니다.”(“제자의 길”,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76~77쪽)
앨마서 33:2~19. 조램인의 잘못된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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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는 반복해서 경전을 사용하며 조램인들이 가르친 잘못된 교리를 지적했다. 앨마는 먼저 래미움프톰에서만 기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았다. 경전을 사용하여 그는 어느 곳에서나, “광야”나 “밭”, “집”이나 “골방”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앨마서 33:2~11 참조) 그런 다음 앨마는 모든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앨마서 33:14~22 참조; 또한 야곱서 7:11 참조)
앨마서 33:3~11; 34:17~27, 39. 쉬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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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라고 명하시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라’, ‘간절한 기도’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계명은 많은 말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상 구주께서는 기도를 드릴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부지런한 기도는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고독하게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선함에 대해 신뢰하는 마음이 가득 찰 때, 우리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리아호나, 2002년 1월호, 17~18쪽)
앨마서 33:19~23. 그리스도의 예표가 광야에서 들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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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독사를 보내셔서 영적으로 독이 든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드셨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회개한 사람들은 선지자에게 주님께 간구하여 뱀들을 없애 달라고 간청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푯대에 올려놓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들리어진 뱀을 보는 사람마다 낫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민수기 21:4~9 참조)
놋뱀은 예표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예표가 “어떤 것을 상기하게 하는 것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37쪽)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광야에서 들리어진 예표가 자신을 증거한다고 가르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4~15)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한 마음과 불신앙 때문에 병고침을 받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거절했다.(니파이전서 17:41 참조) 앨마는 모두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되, 곧 그가 자기 백성을 구속하러 오실 것과 또 그가 그들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실] …… 것을 믿기 시작”(앨마서 33:22; 또한 힐라맨서 8:14~15 참조)하라고 권유했다. 앨마는 이 간증을 가꾸면 짐이 가벼워지고 영생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약속했다.(앨마서 33:23 참조)
앨마서 34:9~12.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한하며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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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장로는 주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희생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선지자들이 무한한 속죄라고 말할 때, 그 뜻은 말 그대로이다. 속죄의 영향은 모든 인간과 지구와 그 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망라하며, 끝없이 광활한 영원에 이른다.”(Mormon Doctrine, 2nd ed. [1966], 64; 또한 모세서 7: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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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어떤 면에서 무한한지를 열거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한하며 끝이 없습니다.[니파이후서 9:7; 25:16; 앨마서 34:10, 12, 14 참조] 그것은 온 인류가 끝없는 죽음으로부터 구원받게 된다는 점에서 무한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 정도가 무한했기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속죄는 시간 면에서도 무한하여 그 전까지 상징으로 행해졌던 동물 희생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범위 면에서도 무한하여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해져야 했습니다.[히브리서 10:10 참조] 그리고 속죄의 자비를 누리는 사람 숫자도 무한하며,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무한한 세계에까지 영향이 미칩니다. [교성 76:24; 모세서 1:33 참조] 속죄는 인간이 가늠하는 그 어떤 측량이나 육신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무한한 것입니다.
필멸의 어머니와 불멸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만이 그러한 무한한 속죄를 이루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 유일무이한 장자의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셨기에 예수께서는 무한한 존재이셨습니다.”(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35쪽)
앨마서 34:14. “모든 것이 저 크고도 마지막이 되는 희생을 가리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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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율레크는 모세 율법의 전반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겟세마네와 골고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크고도 마지막이 되는 희생”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 희생, 잔치, 기타 일상적인 의례들은 수많은 예표와 상징으로 가득하며, 이것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성찬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명을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고대 유월절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육체적 속박에서 구해 내신 것을 해마다 기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부활절은 주님의 속죄와 부활을 통해 우리가 영적 속박에서 구원받을 수 있음을 해마다 상기시킨다.
앨마서 34:14~17. “회개에 이르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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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이 웰스 장로는 칠십인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참여하기에 충분히 변화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신앙에 대해 말씀했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저에게 효력이 발휘되려면 어느 정도 신앙이 필요할까요?’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을 받으려면 얼마나 큰 신앙이 필요할까요? 앨마서에서 ……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앰율레크는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이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 사람들에게 회개에 이르는 신앙을 갖도록 방편을 마련해 주[시느니라.]’(앨마서 34:14~15; 강조 추가)
이 세 단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회개에 이르는 신앙. 이것이 실마리입니다. 앰율레크는 세 구절에서 네 번이나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앨마서 34:15~17 참조] ……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회개에 이르는 신앙의 조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개념은 단순하고 분명한 신앙, 곧 회개하기에 충분한 신앙의 중요성에 대한 가장 큰 통찰 중 하나입니다. 분명히 산을 옮길 만큼 큰 신앙이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방언을 하거나 병자를 고치는 신앙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그저 우리가 죄를 지었음을 인식하고 우리 죄를 회개하며, 죄에 대해 후회하고 더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기에 충분한 신앙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 중 가장 위대한 기적인 속죄,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을 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속죄가 우리를 위해 효력을 발휘합니다.”(“The Liahona Triad,” Bruce A. Van Orden and Brent L. Top, eds., Doctrines of the Book of Mormon: The 1991 Sperry Symposium [1992], 6~7)
앨마서 34:15~16. “자비가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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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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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순종할 때 그 축복으로 기쁨을 얻는다.(교성 130:20~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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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불순종할 때 그 벌로 슬픔을 겪는다.(앨마서 42: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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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를 충족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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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결코 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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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어기면, 대가를 치른다.
문제: 어느 육체도 율법으로 [의롭다는] 판결을 받지 못한다.(니파이후서 2:5 참조) 모든 사람은 죄를 짓는다.(로마서 3:23 참조) 그러므로 벌이 부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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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따르는 결과는 두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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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적 율법에 따라 우리는 단절된다. 즉 공의가 적용된다.(앨마서 42: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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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율법에 따라 우리는 멸망한다.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니파이전서 15:34)
예수님께서는 “죄를 위한 희생으로 자신을 바치사, …… 율법의 목적에 부응하[신다.]”(니파이후서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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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자비의 법을 제안하셨다.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셨는가?
앨마서 34:32~34. “너희의 회개의 날을 …… 미루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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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는 버릇과 우유부단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에 영향을 미친다.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복음 원리에 적용해 보면, 미루는 버릇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면전에서 생활하는 영생을 훔치는 도둑입니다.”(The Way to Perfection [1970], 202)
앨마서 34:34~35. 동일한 영이 우리 몸을 소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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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율레크는 우리가 매일 선택을 통해서 결국 주님의 영 혹은 악마의 영이 미치는 영향이나 통제를 받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해롤드 비 리(1899~1973) 회장은 앨마서 34장 35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개하지 않고 사악한 상태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해 경전에서는 악마가 그들을 자신의 것으로 봉인할 것이라고 나옵니다.(앨마서 34:35 참조) 이 말은 그들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최대한 죗값을 치를 때까지 악마의 손아귀에서 구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공의를 충족할 만큼 충분히 사탄의 난타에 종속되고 난 후에야 사탄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것이며 이 지상에서 생활한 것에 따라 아버지의 해의 왕국, 달의 왕국, 또는 별의 왕국에서 처소를 배정받을 것입니다.”(The Teachings of Harold B. Lee, ed. Clyde J. Williams [1996],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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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사도 정원회의 멜빈 제이 밸라드(1873~1939) 장로는 이생을 사는 동안 회개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생은 인간이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육체가 저지른 부패 행위를 극복하지 않고 무덤으로 들어가서 무덤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와 악한 성향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육신과 영이 분리될 때 우리 영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 [필멸의 삶]은 인간이 좀 더 유순하고 수용적으로 되어야 하는 시간입니다.”(The Three Degrees of Glory: A Discourse [Sept. 22, 1922], 11~12)
앨마서 35장. 앨마서 43~62장에 기록된 니파이인과 래이맨인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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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적으로, 앨마서 43장은 앨마서 35장 다음에 온다. “앨마는 그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참으로 전쟁과 유혈[로] …… 인하여 비통하게 되[자]” 그의 아들들을 “각각 따로” 불러 “의에 관한 것”(앨마서 35:15~16)을 말해 주었다. 몰몬은 “니파이인과 레이맨인 사이에 있었던 전쟁의 기사로”(앨마서 43:3; 앨마서 35장과 앨마서 43장 하단에 적힌 날짜들을 비교한다.) 돌아가기 전에 앨마가 아들 힐라맨, 시블론, 코리앤톤에게 전한 말에 특히 주목했다.
앨마서 35장에는 43~62장에 나오는 레이맨인과 니파이인의 전쟁이 야기된 사건들이 설명되어 있다. 분쟁과 그 결과로서 일어나는 전쟁은 앨마서 35장에서 요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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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램인들 가운데 보다 영향력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 말씀으로 인하여 노하니, 이는 그 말씀이 저들의 간계[사제술]를 무너뜨림이라.”(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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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한 조램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니, 그들의 수효가 많았고,”(6절) 여어숀 백성(암몬 백성)들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지냈다. 여기서 그들은 먹고, 입고, 땅을 상속받았으며, 부족한 것을 모두 받았다.(9절 참조) 이전에 살던 땅에서 그들은 가난하고, 더럽고, 천한 사람들로 여겨졌었다.(앨마서 32: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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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숀 백성이 친절하게 새로운 개종자들을 받아들이자 조램인들은 격노했다.(앨마서 35:8 참조) 조램인의 우두머리는 “그들에게 대하여 많은 위협을 토하였[다.]”(9절) “암몬 백성들은 저들의 말을 겁내지 아니하였으므로”(9절) 조램인들과 그들의 통치자는 더욱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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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하지 않은 조램인들은 “레이맨인들과 섞이며 그들도 [레이맨인 개종자인] 암몬 백성에게 대하여 노하게 하기 시작[했다.]”(10절; 또한 앨마서 43:6~7 참조)
앨마서 35장에 기록된 사건들을 보면 앨마서 43~46장에 기록된 니파이인과 레이맨인의 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탄은 조램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노하게 만들었다.(니파이후서 28:20 참조) 그리하여 그들은 레이맨인들과 다른 니파이인 이반자들에게 분을 내도록 선동했고, 선한 사람들에 대항하여 전쟁 무기를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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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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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는 데 ……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까?(앨마서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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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속죄를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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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때때로 회개를 미루는가? 회개를 미룰 때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제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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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서 32장에서 신앙의 발전에 대해 다룬 앨마의 가르침을 상세하게 요약한다. 신앙이 어떻게 소망에서 자라 지식을 온전하게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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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마서 33~34장에 나오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사용하여, 여러분이 좀 더 의미 있는 기도를 할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