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복음은 시련과 문제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신앙을 키워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해결책입니다.
언젠가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살면서 우리에게 큰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왜 그런지 알아요?”
그러자 아내는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큰 문제가 없었는지 말해줄까요? 그건 바로 당신이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내의 재빠르고 현명한 대답을 들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사는 것이 성장에 필요한 고통과 시련을 없애는 것은 아님을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복음은 시련과 문제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신앙을 키워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해결책입니다.
몇 개월 전에 저는 이 진리를 깨닫는 경험을 했는데, 하루는 걷다가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어두워지고,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몇 주 안에 시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 겁에 질렸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남은 평생 4주에 한 번씩 눈을 뜬 채 안구에 직접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내 육체적 시력이 좋지 않구나. 그런데 영적인 시력은 어떻지? 영적인 눈에도 치료가 필요한 건 없을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갖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바디매오라는 맹인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엄밀히 말하자면,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저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디매오는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리라고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임을 알아봤기 때문입니다.
시력을 잃은 이 맹인이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못 보는 것을 영적으로 봤던 반면에, 다른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맹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영적인 시야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또 이렇게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바디매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는 예수님이 진정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에 더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하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는 행함을 받기보다 행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가 가진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으로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참되다고 아는 것에 충실할 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눈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주변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의 성약,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것에 반드시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맹인이 했듯이 우리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간증을 세상에 더욱 크게 외쳐야 합니다. 이 맹인은 예수님을 알았고, 자신이 믿는 것에 충실했으며, 주변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세상의 목소리는 우리를 잠잠케 하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구주에 대한 간증을 더 크고 분명하게 선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세상의 목소리 가운데서 간증을 선포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그분의 목소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간증하겠습니까? 누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신성한 사명을 선포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에서 비롯된 영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이후에 바디매오는 무엇을 했습니까?
일어나라는 주님의 명에 그는 다시 한번 신앙으로 행했습니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이 겸손하고 충실한 맹인은 주님의 명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음을 안 그가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듣고 나서 처음 한 일은 허름한 외투를 벗어 던진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그는 행함을 받기보다는 행했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내 삶에 임하셨으니 이건 이제 필요 없어.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야. 비참한 삶은 끝났어. 예수님과 함께라면 나는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으로 말미암아 행복하고 기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 그리고 세상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어.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시어 나를 도와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실 거야.”
이 얼마나 훌륭한 변화입니까!
이 맹인은 주님께 가는 데 방해되는 모든 핑계를 누더기 외투와 함께 버렸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원리는 육에 속한 사람을 뒤로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성약을 맺고 지켜야 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고, 처한 상황과 문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 심지어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나쁜 사람들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드는 한, 우리는 누더기 외투를 계속 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의든 아니든 사람들이 때때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명거리나 죄를 감추기 위해 계속 입고 있는 정신적, 감정적 외투를 벗어 던짐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행사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불행하고 힘든 상황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됐어. 나는 변할 수 없고 그럴 수밖에 없어.” 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행함을 받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누더기 외투를 계속 입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을 행사한다는 것은 구주께 의지함을 의미하며, 그분의 속죄를 통해 그분의 명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다음 세 단어에 있습니다. “[그가] 예수께 나아[오니]”
맹인인 그가 어떻게 예수님께 갔을까요? 그는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기 위해 그분의 목소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원리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게 할 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 이 맹인처럼 말입니다. 그는 다른 모든 목소리 중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주님께 영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주변에 부는 바람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았을 때는 계속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가 가졌던 바로 그 신앙입니다.
맹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됩니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 맹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을 행사하였고 진정한 의도, 즉 구주를 따르겠다는 진정한 의도를 가지고 구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받는 축복의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구주를 따르는 것은 그분을 인식하고, 그분으로 인해 하나님과 성약을 맺고 지키며, 그분을 통해 우리 본성을 변화시키고, 그분을 따르며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눈에 주사를 맞으면 제 영적인 눈도 맑아질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보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저는 이 성스러운 사업과 제 삶에서 주님의 손을 확실히 보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제 신앙을 강하게 해 주는 많은 분들의 신앙을 봅니다.
저는 천사가 제 주변을 둘러싼 것을 봅니다.
저는 주님을 육체적으로는 보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으로 그분을 알기에 영적으로 그분을 인식하는 분들의 신앙을 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의 해답이시므로, 이 복음이 모든 것의 해답임을 간증 드립니다. 제가 우리 구주를 따를 때 볼 수 있는 것들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구주의 성약의 길에서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게 할 때, 인생을 살면서 분명한 시야와 영적인 이해력, 그리고 마음과 생각에 평안을 축복으로 받게 됨을 약속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들어야 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주변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분에 대한 간증을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아직 입고 있을지도 모를 누더기 외투를 벗고,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려는 모든 핑곗거리를 버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분을 따라야 하는 합당한 모든 이유를 찾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