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호나
디 마르탱 구리 장로
2024년 5월호


“디 마르탱 구리 장로”, 『리아호나』, 2024년 5월호.

디 마르탱 구리 장로

칠십인 총관리 역원

코트디부아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디 마르탱 구리 장로의 꿈은 성직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1992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영어를 배우며 교육을 받던 중에 후기 성도 선교사들을 만났다. 선교사들이 구리 장로에게 프랑스어 몰몬경을 주었는데, 그 선교사 중 한 명은 런던에서 유일한 프랑스어 원어민 선교사였다.

그는 몰몬경을 읽기 시작했고 곧 그 책이 참되다는 간증을 얻었다. 몇 달 후 새로운 선교사들이 그의 아파트에 찾아왔을 때, 그는 교회에 가입했다.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선교사들이 그에게 신권에 관해 가르치자, 그의 기쁨은 더욱 커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신권의 의미와 그 신권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게 그것은 꿈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달레베 마르탱 구리는 1964년 1월 30일 요로 구리 모리스와 밤 개비 오데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러위파라는 마을에서 그리고 움과 가뇨아라는 도시에서 자랐다. 그는 1995년 4월 8일 영국 런던 성전에서 루스 시몬 케닝턴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 살고 있으며,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구리 장로는 1988년 CAFOP(애니메이션 및 교육 훈련 센터) de Man에서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고, 1997년에는 런던 사우스뱅크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 설계 엔지니어, Cameron의 선임 프로젝트 관리자 및 프로젝트 책임자 대리, OneSubsea Services의 나이지리아 운영 총괄 관리자, Schlumberger의 국가 운영 관리자로 일했다. 구리 장로는 최근 교회에서 지도자 및 회원 지원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받을 당시 그는 아프리카 서 지역에서 지역 칠십인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는 베냉 코토누 선교부 회장, 감독, 감독단 보좌, 지부 회장, 장로 정원회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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