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호나
만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2024년 5월호


14:14

만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필멸과 불멸의 삶에서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본질은 우리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4월 6일인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후기에 그분의 교회를 회복하신 기념일이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과 속죄 희생,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쁜 마음으로 증거하는 부활 절기 중 하루입니다.

중국의 한 이야기는 한 남자의 아들이 아름다운 말 한 필을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웃들은 “정말 운이 좋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두고 봐야 알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그 아들은 낙마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게 됐습니다.

이웃들은 “참 안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두고 봐야 알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징병을 하러 온 군대는 다친 아들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이웃들은 “정말 운이 좋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두고 봐야 알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급변하는 세상은 종종 풍파로 가득하고, 불확실하며, 운이 좋을 때도 있지만 운이 나쁜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이 환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행하고 성약을 기억할 때, 참으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합니다].”

만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직접 위안을 주는 확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본질은 시작부터 끝을 아는 것이자, 우리 유익을 위한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속죄를 통해 성결하고 거룩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 내고 구속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온갖 고통과 고난, 질병, 슬픔 및 이별 역시 속속들이 이해하십니다. 죽음과 지옥에 대한 그분의 승리는 이 생과 다가올 생에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마음이 상한 자와 비난받은 자를 치유하시고, 분노하고 분열된 자들을 화합시키시며, 외롭고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시고, 의심이 많고 불완전한 자들을 격려하고,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 가능한 기적을 이루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할렐루야를 노래하고 호산나를 외칩니다. 하나님의 행복의 계획 안에서, 영원한 권능과 무한한 선하심을 통해 모든 것이 우리 유익을 위하여 함께 역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삶의 역경에 맞설 수 있습니다.

타인의 도움 없이 홀로 남겨진다면, 스스로의 유익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의지할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약점, 부족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가장 큰 선을 행하려면 우리가 선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와 같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는 가장 참되고 훌륭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시련과 고난은 우리 유익을 위해 성별될 수 있습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은 후에 그의 가족과 백성들을 구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리버티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이 모든 일이 [그에게] 경험이 되고 [그의] 유익이 될” 것임을 배웠습니다. 신앙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시련과 희생이 있더라도 이는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관점을 가질 때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주님 안에서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련이 “잠시 뿐”임을 이해하며, 고난이 우리 유익을 위해 성별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고와 예기치 못한 죽음, 우리를 약화시키는 질병이 필멸의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입니다. 또한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벌하거나 심판하기 위해 시련을 주지 않으심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분은 떡을 달라 하는 자에게 돌을 주지 않으시며, 생선을 달라 하는 자에게 뱀을 주지 않으십니다.

시련이 왔을 때,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보통 그저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함께 있어 줄 누군가입니다. 그런 순간엔 진부한 대답은 비록 위로하려는 의도였더라도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며 울어 주고, 고통과 좌절, 심지어 분노도 맘껏 표현하게 해 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있음을 함께 인정해 주는 이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신뢰할 때, 가장 가슴 아픈 시련도 결국 우리 유익을 위해 함께 역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던 날이 떠오릅니다. 그때 당시 저희는 고뇌와 신앙으로 가득 차 욥이 했던 다음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전 세계 교회 전역에서 3,500여 개의 스테이크 및 지방부와 3만여 개의 와드 및 지부가 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테이크와 와드 내에 있는 많은 충실한 가족과 개인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아직 그 구체적인 방식은 알지 못한 채로 힘든 고난에 처하곤 합니다.

영국 허더즈필드에 사는 사무엘 브리지스톡 형제님은 신임 스테이크 회장으로 부름받기 직전에 암 4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상황이 심각했기에 형제님께서는 아내이신 안나 자매님께 자신이 왜 접견을 받으러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안나 자매님께서는 “당신은 스테이크 회장으로 부름받을 것이기 때문이죠.”라고 하셨습니다.

브리지스톡 가족.

1~2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브리지스톡 회장님은 4년 째 봉사하고 계시며 이곳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회장님은 희로애락을 겪으셨습니다. 회장님의 스테이크 회원들은 자라난 신앙과 봉사 정신, 친절로 단합되고 있습니다. 쉽진 않지만 회장님의 가족은 신앙과 감사로 살아가며, 당연히 뒤따르는 슬픔이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시키는 속죄를 통해 영원한 기쁨이 될 것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차분하고 경건하게 마음을 열 때, 주님께서 주시는 성약에 속함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목적성, 고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순간에, 그분께서는 우리가 광활한 영원의 실재함을 엿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일상은 주는 자와 받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 작고 단순한 것들이 함께 역사하는 영원한 삶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저의 첫 선교부 회장님의 따님이신 레베카 자매님께서는 예기치 못하게 다른 이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면서, 위로를 간구했던 자신의 기도도 응답이 되었던 경험을 말해 주었습니다.

레베카 자매님은 어머니의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어르신께 드렸습니다.

어느 날 저녁,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슬퍼하던 레베카 자매님은 자동차 연료를 사러 가야 한다는 분명한 느낌을 받으셨습니다. 자매님께서 주유소에 도착하셨을 때, 큰 산소 탱크로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이후 레베카 자매님은 어머니의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어르신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고마워하며 “덕분에 자유를 되찾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라면 하셨을 성역을 베풀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교사 직분을 받을 나이의 아들과 함께 성역 동반자로 지명된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쿠키를 주는 이웃을 넘어, 신뢰받는 친구이자 영적인 응급 구조사가 될 때가 성역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약에 속하는 것은 우리를 위로하고 연결해 주며 성결하게 합니다.

비극을 겪더라도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가장 연약하고 외롭다고 느꼈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를 알고 계셨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으로 실려 간 아이의 가족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었던 성신의 속삭임을 기억함으로써 이후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때때로 주님께서 우리가 느끼게 하시는 더 크고 영원한 현실에는 휘장 건너편의 가족도 있습니다. 한 자매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으로 개종하여 기쁨을 찾았습니다. 선박 사고를 목격한 일과, 어머니께서 극단적 선택을 하신 일로 생긴 두 번의 트라우마는 이 자매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매님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자매님은 침수로써 침례를 받을 만큼 물 공포증을 극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가 성전에서 대리 침례를 받는 것을 봤을 때 큰 행복을 느끼셨습니다. 자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침례 의식은 제 어머니를 치유했고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평안을 느꼈습니다.”

성스러운 찬송가는 우리 유익을 위하여 모든 것이 함께 역사한다는 그분의 확신의 말씀을 노래합니다.

잠잠하라 내 영아

하나님 과거 미래 다 인도하시니

네 희망과 믿음 간직하여라

모든 신비 다 밝혀지리니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어서들 나가자

이 여행이 혹 힘들지라도

하나님 계시니

이 여행 중 내 생명 다해도

기쁜 날 오리니 모든 것 잘 되리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예언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늘 우리 손에 지닐 수 있는 증거가 바로 몰몬경입니다. 오늘날을 미리 보았던 영감 받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몰몬경은 심각한 의견 차이로 애쓰던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니파이전서 1장부터 모로나이 10장까지 공부하고 숙고하면, 그때 그곳에서 일어난 일 덕분에 지금 이곳의 우리가 축복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간증을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집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살아 계신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좀 더 가까운 더 많은 곳에 주님의 집을 짓고 계시기에, 성전 축복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함께 역사합니다. 우리는 성약과 의식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며, 필멸의 삶에 대한 영원한 관점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방식에 따라 시온 산의 구원자가 되어,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인 조상들 한 분 한 분을 위해 성스러운 의식과 성약의 축복을 베풉니다.

성전이 곳곳에서 더 가까이 세워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성전 희생은 좀 더 자주 주님의 집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수년 동안 우리는 성전에 가기 위해 저축하고, 계획하고, 희생했습니다. 이제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주님의 거룩한 집에 좀 더 자주 가시길 바랍니다. 정기적으로 성전에서 예배하고 봉사함으로써 여러분과 지금의 가족, 그리고 언젠가 갖게 될 가족이 축복받고 보호받으며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성전 밖에 있는 할머니

또한, 상황이 된다면 개인 성전복을 갖는 것의 축복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겸손한 가족의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개인 성전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손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속삭이셨어요. ‘난 내 성전복을 입고 봉사할 거란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땐 그것을 입고 매장될 거야.’”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약의 백성에게 하신 모든 약속은 성전에서 하나가 됩니다.”

현세와 영원에서 창조의 목적과 하나님의 본질은 우리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영원한 목적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영원한 관점이자, 영원한 약속입니다.

삶이 혼란스럽고, 목적이 불분명하며, 더 잘 살아 보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를 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그분들은 살아 계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모든 것이 여러분의 유익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 그분들은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그리하신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럽고 거룩한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아멘.

참고

  1. 요한복음 16:33 참조.

  2. 로마서 8:28.

  3. 교리와 성약 90:24.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유명한 말은 만사가 실제로 우리 유익을 위한 것임을 의미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괜찮고 질서정연하다는 뜻인 경우도 많다.

  4. 모세서 1:3 참조.

  5. 앨마서 7:11 참조.

  6. 니파이후서 9:10~12 참조.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선택의지를 존중하시기에 때로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이들의 불의한 행동도 허락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기꺼이 하고자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의 가능하게 하는 속죄 권능을 통해 우리는 깨끗하게 되고, 치유되며, 고침을 받고, 우리 자신과 휘장 양편에 있는 이들과 서로 화해할 수 있다.

  7. 모로나이서 7:6, 10~12 참조. 테리 워너 교수는 이 주제에 관해 통찰력 있는 글을 쓴 바 있다.

  8. 로마서 3:10; 모로나이서 10:25 참조.

  9. 모로나이서 10:32 참조.

  10. 교리와 성약 122:4, 7 참조.

  11. 우리는 결코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을 경험으로 배움을 얻는다. 때때로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짐을 지는 것은 그것을 해내는 우리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모사이야서 24장 10~15절에는 “내 백성을 그들의 고난 중에 돌아보”며 “그들을 강하게 하사 그들로 쉽게 그들의 짐을 지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설명되어 있다. 앨마서 33장 23절은 “그 아들의 기쁨을 통하여, … 짐[이] 가볍게”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모사이야서 18장 8절은 우리가 “기꺼이 서로의 짐을” 지고자 할 때, 짐이 “가볍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12.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이사야 61:1~3) 마찬가지로, 시편의 저자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관점을 제공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 30:5) 여기에는 첫 번째 부활의 아침에 의인들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약속도 포함된다.

  13. 교리와 성약 122:4. 영원의 관점에서 시련이 “잠시” 뿐이라고 믿는 것은 이생에서 매일 겪는 극심한 통증이나 고난, 견디기 힘든 잠 못 이루는 밤, 또는 하루하루의 고통스러운 불확실성을 경시하거나, 덜 힘들다고 여기거나,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하나님의 동정심과 영원한 관점을 가지고 필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다는 약속을 통해, 필멸의 삶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 그분을 믿고 신뢰하며 끝까지 견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보는 눈을 가지면 현재 있는 좋은 점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좋은 점을 보기 위해 꼭 먼 미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14. 니파이후서 2:2 참조.

  15. 마태복음 7:9~10 참조.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게 하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신다고 능동적으로 믿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비극이 일어날 때,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가 아닌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보상의 축복과 기회가 올 것임을 안 채로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지니고 슬퍼할 수 있다.

  16. 우리는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로하겠다는 성약을 맺었다.(모사이야서 18:9 참조)

  17. 욥기 1:21.

  18. 교리와 성약 115:6 참조.

  19. 시련 중에서도 신앙을 갖는 것은 몰몬경에서 묘사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기를 바[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들의 목숨을 위하여 칼로 싸우려”했던(몰몬서 2:14) 이들이 가졌던 살고자 함에서 오는 고통과 절망과는 정반대이다.

  20. “잠잠하라, 내 영아”, 『찬송가』, 92장.

  21.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찬송가』, 16장. 다음 찬송가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 지혜와 사랑 크고 넓으셔서 …

    완전하시어서

    공의 사랑 자비 모두

    조화 이루셨네

    (“하나님 지혜와 사랑”, 『찬송가』, 107장.)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엄한 구속의 계획으로 공의와 사랑, 자비가 이루어질 것임을 안다.

  22. 오바댜 1:21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후기 성도]들은 어떻게 시온 산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성전을 짓고, 침례반을 세우고, 나아가서 그들의 돌아가신 모든 선조들을 대신하여 … 모든 의식을 받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469쪽)

  23. 성전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회원들은 높은 할인율로 성전복을 구매할 수 있다.

  24. 러셀 엠 넬슨, “성전과 여러분의 영적인 기초”, 『리아호나』, 2021년 11월호, 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