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호나
말은 중요합니다
2024년 5월호


13:58

말은 중요합니다

말은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말에는 우리의 생각, 감정, 경험이 실리는데 이것은 좋고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전 세계의 형제, 자매, 친구 여러분, 이렇게 많은 청중 앞에서 말씀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교회 회원들도 계시고, 또 이 대회 방송을 처음으로 보시는 분들을 비롯한 저희 친구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이 연단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말로 전달됩니다. 영어로 된 말씀이 백 개에 가까운 언어로 번역됩니다. 메시지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항상 같습니다. 바로 말입니다.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은 중요합니다!

말은 우리가 연결되는 기반입니다. 말은 우리의 믿음, 도덕성, 관점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도 있고 들을 때도 있습니다. 말은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말에는 우리의 생각, 감정, 경험이 실리는데 이것은 좋고 나쁜 결과를 낳습니다.

불행히도, 생각 없고 경솔하고 상처를 주는 말도 있습니다. 한번 입 밖에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말은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주고 깎아내릴 수 있으며, 심지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말은 우리를 짓누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은 성공을 축하하고 희망을 주고 힘을 북돋아 줄 수도 있습니다. 말은 우리가 재고해 보고 다시 시작하고 방향을 바꾸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진리를 향해 우리 마음을 열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몰몬경에서 고대 미 대륙에 살았던 선지자 앨마와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더럽힌 이들과 끝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충실한 이들은 맞서 싸울 수도 있었지만 앨마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또 이제 말씀의 전파가 백성을 인도하여 의로운 일을 하게 하는 큰 경향이 있으므로—참으로 그것은 칼이나 그들에게 일어났던 다른 어떠한 것보다, 백성들의 생각에 더 강력한 효과가 있었더라—그리하여 앨마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모든 말을 능가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던 지구 창조 때부터 그랬습니다.

구주께서는 신약전서에서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간증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경청하면 우리는 그분께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공부한다면, 좀 더 그분과 같이 될 수 있는 힘이 커[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찬송가 가사대로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주님 지닌 축복 더 주옵소서”

저는 어린 조셉 스미스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의 다음 말씀을 듣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조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경전 말씀을 통해 “그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저 읽는 데만 그칩니까? 아니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제대로 인식합니까? 우리는 변화합니까?

우리는 개인적인 계시와 성신의 속삭임,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속죄 권능을 통해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고, 용서와 평안을 가져다주며, “그의 사랑의 팔”로 우리를 감싸안아 주시는 순간에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둘째, 선지자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합니다. 선지자는 구주의 복음을 가르치고 우리 모두를 향한 구주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저는 우리의 살아 있는 선지자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넬슨 회장님은 말씀을 잘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약의 길을 계속 따라가십시오.” “이스라엘을 모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십시오.” “이해의 가교를 놓으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키우십시오.” “여러분의 간증을 돌보[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가장 최근에 그분은 이렇게 간청하셨습니다.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딜레마에 부딪힐 때는,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유혹으로 시험받을 때,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삶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실망시킬 때,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누군가가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면,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 삶의 중압감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할 것입니다. … 시련과 반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이 자랄 것입니다.”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 장차 있을 그대로” 보게 됩니다. 혼란과 다툼으로 짓눌린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그러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조지 앨버트 스미스 장로님은 교회 회장이 되기 한참 전에 선지자를 지지하고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손을 들어 맺는 의무는 가장 신성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지지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 주님께서 그를 통해 우리에게 주도록 지시하신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선지자의 말씀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어제 전 세계 교회 회원들로부터 15명의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 중 한 명으로 지지받은 저는 선지자를 지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것에 관한 제 경험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는 … 다름 아닌 말씀으로 내게 고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었었나니”라고 말한 선지자 야곱의 경험과 흡사했습니다.

래스번드 장로 부부, 태국에서.

지난 10월에 저는 교회의 185번째 성전이 될 건물을 헌납하기 위해 아내 멜라니와 태국 방콕에 있었습니다. 그 임무는 꿈만 같으면서도 저를 겸허하게 해 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곳은 동남아시아 반도의 첫 번째 성전이었습니다. 6층 구조에 9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주님의 집이 되기에 안성맞춤으로 훌륭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저는 수개월 동안 헌납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이 나라와 성전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 왔다는 깨달음이 제 영혼과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이 이 성전 건축을 발표하셨고, 넬슨 회장님이 헌납을 발표하셨습니다.

태국 방콕 성전.

저는 여러 달 전에 헌납 기도문을 준비했고 이 성스러운 기도는 12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는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헌납식 전날, 저는 헌납 기도에 대해 불안하면서도 다급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습니다. 기도문이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사라지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몇 가지 말이 빠졌음을 깨달았고 신성한 계획에 따라 그 말이 계시로 주어졌습니다. 저는 기도문 거의 끝부분에 다음 말을 넣었습니다. “우리가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여 당신의 영이 우리 삶에서 승리하게 하시옵고, 늘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제가 살아 있는 선지자의 다음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해의 왕국의 방식으로 생각하십시오.” “영이 우리 삶에서 승리하게 하십시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선지자의 말씀은 주님과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세 번째이자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이모티콘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말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은 힘이 되거나 화를 품을 수도, 기쁨을 주거나 무례할 수도, 온정 어리거나 무심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하는 말은 가시처럼 찌르고 영혼 깊이 박혀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문자 메시지, 소셜 미디어, 트윗 등에 남기는 우리의 말은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가정에서, 특히 남편, 아내, 자녀에게 하는 우리의 말은 화목을 도모할 수도, 사이를 틀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과 다름에서 비롯되는 가시를 뽑아내고, 서로를 격려하며 안심을 가져다줄 간단한 말 세 가지를 제언하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특별한 경우나 참사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이 단순한 말들을 아껴 두지 마십시오. 자주, 진심을 담아 사용하십시오. 이 말에는 다른 사람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말의 무게가 없어지는 세태를 따르지 마십시오.

우리는 엘리베이터나 주차장, 가게, 사무실에서, 줄을 서 있을 때, 혹은 이웃이나 친구에게 “고맙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거나 모임에 못 가거나 생일을 잊었거나 고통받는 사람을 볼 때 “미안합니다”, “유감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당신 곁에는 제가 있어요”, “당신은 제게 최고로 소중해요”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 개인적인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남편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자매님들, 여러분께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전임으로 봉사하기 전에, 저는 회사 일로 원거리 출장이 잦았습니다. 먼 나라를 다니며 꽤 많이 집을 비웠지만,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어디에 있든 저는 늘 집에 전화했습니다. 아내 멜라니가 전화를 받으면 저는 그날 하루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늘 “사랑해요”라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매일 이 말은 제 영혼과 행동에 닻이 되어 주었고 저를 악마의 계략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라는 말은 저희 부부 사이의 소중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할 발과 꼭 잡아 주어야 할 손, 격려해야 할 정신과 영감을 주어야 할 마음, 그리고 구해야 할 영혼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말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우리를 인도하고 격려하는 선지자의 말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 주는 우리 자신의 말을 “흡족히 취하[면]” 하늘의 권능이 부어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여러분이] 무엇을 행하여야 할지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일러” 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천사의 방언”으로 성신의 권능을 통해 말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구약전서의 선지자 이사야의 말대로, 그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십니다. 또한 사도 요한이 분명하게 말했듯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말씀”이십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그분의 신성한 사업에 부름받고 그분의 특별한 증인으로 서도록 부름받은 사도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