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신앙으로 가르침


“신앙으로 가르침,”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2004), 90–92

“신앙으로 가르침,” 세미나리를 가르침, 90–92

신앙으로 가르침

로버트디 헤일즈 장로와 함께하는 저녁 모임, 2002년 2월 1일, 2~5, 7쪽에서 발췌

어린아이처럼 됨

몇 개월 전에 저는 캘리포니아 팜 스프링스의 한 와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사 한 사람이 오지 않은 탓에 그곳 초등회 회장님이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건물을 나설 때 보니 교사 한 명이 없어서 두 반이 합반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원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들어갔습니다. 젊은 귀환 선교사 자매님이 반을 가르치도록 부탁을 받아 와 있었습니다만 제가 감명 받았던 것은 초등회 어린이들이 제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는 “함께 계셔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들을 가르쳐 주세요.” 하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어린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마음이 녹아 내렸습니다.

저는 부모들이 구주께서 “만져 주”시고 기도해 주시도록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지만 제자들이 그들을 데려온 자들을 꾸짖었을 때 구주께서 어떻게 느끼셨을지를 조금은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가복음 10:13~14; 또한 마태복음 19:13~14 참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부탁하고 바라니까 함께 있으면서 선생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 젊은 교사도 반원들과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나이는 8세부터 11세 사이였지만 통찰력이 필요한 몇 개의 어려운 질문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아름다운 소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훌륭한 사도가 되려고 어떤 노력을 하세요?” 그 아이의 질문을 듣고 제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린아이인 여러분처럼 되려고 애쓰죠. 절대 변하지 마십시오.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아이 같이’ 되려고 평생을 바쳐서 노력하고 있답니다.” 저는 어린이들에게 제3니파이의 내용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세상에 구속을 가져다주려 함이요,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고자 함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 내게로 오는 그는 내가 영접하리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러한 자의 것임이라.”(제3니파이 9:21~22; 또한 제3니파이 11:37; 교리와 성약 99:3 참조)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믿고 친절하고 편견이나 결점이 없고 순수하며 다정하고 겸손하고 기꺼이 권고를 따릅니다.

영이 어린이들과 제 마음에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아이처럼 되어가는 기쁨과 여러분처럼 믿는 것을 때로는 잊게 되지요. 이 시간을 언제나 기억합시다. 영이 우리와 함께한 이 일도 기억하도록 합시다. 이 일을 자주 생각하고, 꼭 붙잡고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해요.”

어린이들은 송곳처럼 예리한 말과 아주 흥미로운 질문들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결심을 볼 수 있었고 특히 한 소녀와 두 소년의 얼굴에서 간증과 진심 어린 마음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미대륙에 방문하신 내용을 가르쳤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수님께서 영의 세계에서 어떤 분이셨고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이실지 물었습니다. 저는 다음 성구를 읽어 주었습니다.

“또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하나씩 안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시더라.

그리고 이렇게 하시고 나서 다시 우시더라.

그리고는 무리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어린 자들을 보라 하시더라.

이에 그들이 주목하여 보려 할 새 그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더니, 하늘들이 열린 것을 보고, 또 천사들이 마치 불 가운데 있는 것처럼 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매, 저희가 내려와 그 어린 자들을 둘러싸니, 그들이 불에 둘러싸였으며, 천사들이 그들에게 성역을 베풀더라.”(제3니파이 17:21~24)

우리에게 배우는 젊은이들은 소중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데이비드비 헤이트 장로님이 우연히 같은 시간에 팜 스프링스에 오시게 되었는데, 제가 떠나온 그 모임 다음에 이어진 시간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분이 주차장에 들어서서 부모와 한 초등회 어린이가 있는 어느 가족을 만나셨습니다. 그 부모가 “헤일즈 장로님께서 지금 막 제 아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헤이트 장로님은 제게 “그 소년은 환히 빛났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으로 가르칠 때, 열린 마음은 영을 받아들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듣는 자보다 나을 것이 없고,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보다 더 낫지 아니함이라. 이같이 그들이 모두 동등하였고”(앨마서 1:26)

그 어린이들과 저는 영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우리의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 수업도 다를 바 없습니다.

신앙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으로 가르치는 것은 진정으로 신앙을 행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모든 개념과 간증하는 모든 것은 성신께 의존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가르치고, 영으로 가르치며, 담대하게 간증해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향한 큰 염려 가운데 하나는 많은 젊은이가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 참석하지만,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해 엔다우먼트를 받으러 성전에 가거나 성전 결혼을 해서 인봉 받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학생들이 일상생활에 복음 원리를 적용하도록 돕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서 배운 것을 일상 활동에 적용하도록 격려하면 그들의 간증과 영적인 발전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

복음 원리를 적용하십시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이 복음에 대해 아는 것과 복음 원리를 생활에 적용하여 행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의 삶에서 교사인 우리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학생들이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학습을 증진하고 지식을 얻어 그들이 알아야 하는 사실을 배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교사로서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생각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제가 열 살 정도일 때 한 주일학교 교사에게서 배운 주일학교 공과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커다란 카드를 받았는데 그 안에는 각각 다윗과 골리앗, 창조, 다니엘과 사자굴 등 성경 속 이야기가 실려 있는 조그마한 책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된 긴 연재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읽고서 토론할 준비를 하고서 주일학교로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각 이야기에 관한 토론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성구, 혹은 이야기나 원리는 여러분의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 가르침을 가정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이러한 질문을 하기만 해도 자녀들은 가르침 받은 대로 생활하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단지 이야기만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는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사람의 내면에 신앙의 씨앗을 심고, 또 그것이 자라나도록 도와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경전 내용을 이야기 형태로 가르치고, 그것을 젊은이들의 생활에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이러한 이야기와 복음 원리의 진리들을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존 그린리프 휘티어는 다음과 같이 감동적인 글을 썼습니다.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슬픈 표현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바로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이다.”(“Maud Muller”, The Complete Poetical Works of Whittier [1894], 48)

그렇게 될 수도 있었을 일을 돌이켜 보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구원의 계획을 모르고, 자신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모른 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이 위대한 계획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인생의 모든 시험을 견뎌 내고, 원수의 불화살을 물리치며, 끝까지 견뎌 내어 행복을 위한 계획의 최종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색의 힘과 중요성을 가르치십시오. 사색하고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여 실질적으로 적용하게 하십시오.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학생들이 생각과 인상, 느낌을 적게 하십시오.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간증할 때, 신앙이 커집니다. 기도와 경전 공부의 중요성에 관한 공개 토론을 하여 청소년들이 서로 돕고 지지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발전하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들이 형이나 언니, 또는 친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능력을 키우게 하고, 경전에서 예를 찾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해야 합니다. 경전은 우리가 순종하지 않을 때 생기는 모든 일에 관해 알려 줍니다. 우리 학생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고통을 겪을 필요는 없습니다.

배우는 것을 다른 이들보다 더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습니다. 학습과 관련된 그런 특성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과 그들의 학습 능력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교사는 가르치는 주제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필요 사항도 잘 이해합니다. 훌륭한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배우고, 기꺼이 잘못을 고치며, 교사의 염려와 권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영원한 구원을 위해 잠재력을 성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십시오. 우리는 그들의 걱정과 당면 문제들을 알아야 하며, 그들이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각 학생이 언제 자신의 선택의지를 사용할 준비가 되고 결정을 내릴 힘을 갖게 되는지 인식하십시오. 가르치는 과정 중 한 부분은 학생들이 장차 겪게 될 어려움에 대비하도록 도울 방법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필멸의 준비 기간에 시험과 시련을 피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리스 신화의 위대한 영웅 아킬레스는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입니다.

아킬레스에 관한 호머의 기록 외에도 아킬레스와 그의 모친 테티스에 관한 다른 우화나 민간 설화가 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테티스는 아킬레스를 스틱스 강물에 담가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아킬레스가 다치지 않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손으로 잡고 있던 그의 발뒤꿈치만은 예외였습니다.

아킬레스는 힘이 엄청난 무적의 용사로 성장하여 완전 무장을 하고 트로이 군을 공격하는 그리스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아킬레스의 죽음은 호머의 오딧세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대의 작가들은 그가 죽은 이유를 파리스가 쏜 화살을 아폴로가 아킬레스의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로 유도하여 맞혔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모든 부모나 교회 교육 기구 교사는 원수의 불화살을 견뎌 낼 수 있도록 자녀들을 보호할 비결을 찾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녀들이 이 필멸의 세상에서 어려움과 시련들을 겪지 않도록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배움을 경험하며,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우리를 패하게 하거나 파멸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생의 폭풍에 대비하도록 신앙을 키우십시오

시험을 받는 어려운 시기에 성신의 부드러운 권유와 위안, 평안, 인도를 잃게 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런 평안은 우리가 인생의 폭풍을 이겨 내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확신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준비시켜, 어려움이 닥칠 때 현명하게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들에게 선택의지가 있고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이”(니파이후서 2:11)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베소서 6:11, 13; 교리와 성약 27:15 참조)를 입고 “대적의 불화살”(니파이전서 15:24; 교리와 성약 3:8; 에베소서 6:16 참조)을 이겨 내도록 “성령의 검”(에베소서 6:17; 교리와 성약 27:18)과 “믿음의 방패”(에베소서 6:16; 교리와 성약 27:17)를 들고 끝까지 견뎌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경전에는 이러한 교훈을 잘 배우고, 고요하고 작은 음성의 경고에 귀를 기울인 많은 사람의 예가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도망쳤습니다. 구주와 그분의 가족은 피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리하이와 그 가족도 떠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악한 상황의 주변에서 서성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바빌론에 부분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너무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종교 교육원 교사로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의 성공을 바랍니다. 때로는 그러한 바람이 지나친 나머지 우리의 의지로 그렇게 하려 애씁니다. 친숙한 찬송가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인간이 선택의지로

무슨 일하나 자유니

영원하신 진리 있어

인간을 강압하잖네

지혜와 사랑 빛으로

바르게 훈계하시고

친절과 선하심으로

주 결코 억압하잖네

(“인간이 선택의지로”, 찬송가, 175장)

우리는 자녀에게 억지로 신앙을 갖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그것을 받고자 하고 삶에서 행사하려는 소망에 근거를 두고 내부에서 생기는 것으로, 우리는 영을 통해 지속적으로 신앙을 지니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소망만으로 누군가를 복음으로 이끌려 합니다. 그것은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사는 일단 사실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게 한 후에 더 발전된 단계로써 그들이 마음에 영적인 증거와 이해를 얻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도록 인도합니다.

이것이 질문과 토론을 통해 매일 교실에서 파악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각 학생이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

신앙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신앙을 구하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얻고 그 신앙을 항상 유지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은 율법과 의식에 따라 생활하려는 순종을 통해 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을] …… 알리라”(요한복음 7:17).

여러분이 이 위대한 사업에 관해 가르치고 간증하며, 다음 세대의 성도들과 부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주님의 가장 큰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을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준비시킬 때, 그들의 영적인 필요 사항을 분별할 수 있도록 주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인도를 구하는 그들의 간구를 듣고 여러분의 삶에서 행실로 본보기를 보여 그들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강조하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의로움으로 인도하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에게 축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전념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가정과 일상 생활에서 복음대로 생활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