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의 진로,”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2004), 1–7
“교회 교육의 진로,” 세미나리를 가르침, 1–7
교회 교육의 진로
개정판(1994) 종교 교육자들에게 전한 말씀, 1938년 8월 8일, 브리검 영 대학교
사랑하는 동료 여러분, ……
교사가 교회와 그 사명, 그리고 학생들의 영적인 필요 사항에 대해 갖고 있는 책임을 요약한 클라크 회장님의 말씀은 적절하고 포괄적이며 영감을 줍니다.
“그 말씀의 중요성은 교회 전체에 해당됩니다. 모든 가르침과 보조 조직 및 그밖의 모든 모임들에서, 즉 언제 어디서든 교회 회원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상반된 영향력에 노출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 말씀은 신뢰할 만한 지침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introduction to “The Charted Course of the Church in Education”, Improvement Era, Sept. 1938, p. 520) ……
학생 시절에 저는 웹스터와 헤인 두 거물 간에 벌어졌던 논쟁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멋진 웅변, 웹스터의 숭고한 애국심, 노예 상태를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있으리라는 예견,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 논쟁은 공유지에 관한 푸트(Foot) 결의안에서 발단되었습니다. 그것은 헌법상의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숙고하는 단계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저는 웹스터가 대답한 첫마디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로 웹스터는 논점을 벗어나 버린 논쟁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웹스터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장님, 선원이 여러 날 동안 자욱한 안개 속에서 표류하다가 알 수 없는 바다로 떠내려 갔을 때, 당연히 그는 폭풍이 처음 멈추는 때를 이용하여 해를 먼저 잠깐 보고 자신의 위도를 파악함으로써 폭풍 때문에 항로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확인합니다. 우리도 이 선원의 신중한 분별력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즉, 이 토론의 쟁점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빗나간 지점으로 돌아가 적어도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만이라도 알아내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 결의안을 읽어 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것을 웹스터-헤인 간의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저 자신을 다니엘 웹스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둘 중에 하나라도 맞는다고 여기신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늙었지만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폭풍우에서나 광야에서 방황한 후에 원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이 웹스터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그 방향을 분별 있게 유도한 것으로 보이므로, 저도 교회 교육에 놓여 있는 더 중요하고 필요한 근본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 때 그와 같은 과정을 따르더라도 여러분이 저를 용서해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신권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신권은 교회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교회는 신권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첫째,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는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교회 회원 개개인을 가르치고 격려하며 돕고 보호하는 일이며, 둘째, 복음대로 생활하는 회원 전체를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옹호하고 가르치며 격려하고 보호하는 일이고, 셋째,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도록 외치며 과감하게 진리를 선포하고 복음에 따라 생활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는 “모든 무릎이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그의 앞에 고백할”(모사이야서 27:31 참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교회를 위해서 또 교회 회원 각자와 전체를 위해서 간과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변경하거나 내버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그 한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세상의 죄를 위해 희생되시고 아담의 범법을 위해 속죄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그의 영이 육체를 떠나 돌아가시어 무덤에 묻히셨다가 사흘 만에 영이 육체와 다시 결합하여 다시 사셨고, 무덤에서 부활하시어, 완전한 자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후에 주님은 아버지께로 들리어 올라가셨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인해, 또한 그의 부활로 인해, 태초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은 그와 같이 문자 그대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욥기 19:26~27).
부활한 몸은 살고 뼈와 영을 지닌 몸이니, 욥은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를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명확한 사실들과 그것에 반드시 함축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을 교회의 모든 회원들은 완전한 신앙으로 솔직하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으로 믿어야 할 중요한 두 가지 일 중 두 번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숲 속의 시현 가운데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실제로, 진실로, 그리고 정말로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하늘의 시현이 조셉 스미스와 그 밖의 사람들에게 잇따라 보여졌으며, 초대 교회의 배도 때문에 거두어졌던 복음과 하나님 아들의 반차를 따른 성신권이 진실로 이 지상에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조셉 스미스를 통해서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몰몬경은 그 내용에서도 주장하는 바와 같이 주님의 경전입니다. 선지자에게 교회와 회원을 인도하고 설립하며 조직하고 권고하도록 수많은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선지자의 후계자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교회가 필요로 할 때 계시를 받았으며, 그들은 이미 받은 진리에 따라 살고 있는 교회와 회원들이 더 필요로 할 때 계속 계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인 것입니다. 기본적인 믿음은 신앙개조에 나와 있는 율법들과 원리들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들, 즉 그 사실들에 함축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실들과 함께 이 개별적 사실들을 약화시키거나 변명하거나 피하지 말고, 또 수정이나 변경을 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들을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하거나 감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큰 믿음이 없다면 교회는 더이상 진실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 또는 복음과 성신권의 회복에 관한 이 충만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후기 성도가 아닙니다. 신앙심이 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백만의 성도들이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이러한 일들을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신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회와 그 제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교회의 실질적인 위치와 상태를 알려 주는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저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위치를 알기 때문에 우리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우리는 참된 진로를 새로이 설정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한 말씀을 상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라디아서 1:8)”
웹스터-헤인의 선례에 따라 저는 이제 이 성구를 상기시킴으로써 원래의 논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교회 청소년들의 종교 교육에 대해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학생과 교사라는 두 가지 일반적인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모호한 단어와 애매한 구절을 이용해 말씀할 계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뜻하는 바를 명백히 말해야 합니다. 그 까닭은, 교회 전체의 복지도 그렇겠지만, 이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 있어서도 청소년들의 장래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청소년들과 여러분의 학생들은 대부분 생각과 정신이 건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개종시키지 못하고 단지 그들을 건전하게만 지키고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의 청소년들은 영적인 일들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몹시 복음을 배우고 싶어하며 정확하고 순수한 복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방금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언급한 근본적인 것에 관해 알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진리에 대한 간증을 얻고 싶어합니다. 이제는 그들도 회의에 빠져 있지 않고 진리를 찾고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의혹을 심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믿는 영혼에 의혹의 씨앗을 뿌리는 교사가 지고 가야 할 짐과 저주는 매우 클 것입니다.
이러한 학생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갖고 있는 신앙을 몹시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순수한 상태의 신앙을 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성한 권능이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한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신앙이 주는 혜택을 받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이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의식을 믿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복음의 의식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복음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바울(모든 종교를 비난하는 현대의 비평가들이 따를 수 없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대가)이 다음과 같이 설명했던 진리를 그들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11~12)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로마서 8:5)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18)
우리의 청소년들은 또한 현대의 계시에서 선포된 원리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후에 임하게 될 일들에 관한 너희 하나님의 계획과, 많은 환난 후에 뒤따르게 될 영광을 지금 너희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느니라.”(교리와 성약 58:3)
“영의 권능으로써 우리의 눈이 열리고 우리의 이해력이 깨우침을 받아 하나님의 일들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나니- ……
그리고 우리가 이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주께서 우리의 이해의 눈을 만지시니, 우리의 이해의 눈이 열리고 주의 영광이 주위에 두루 비치더라.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의 우편에 계시는 아들의 영광을 보았고 그의 충만함을 받았더라.
또 그의 보좌 앞에 거룩한 천사들과 성결하게 된 자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경배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그를 경배하더라.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하여 드린 많은 간증 다음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드리는 간증은 이러하니, 곧 그는 살아 계시다는 것이니라.
이는 우리가 실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를 보았고 또 그는 아버지의 독생자라 증거하는 음성을 들었음이니 -
곧 그로 말미암아, 그를 통하여, 그에게서 여러 세상이 현재와 과거에 창조되었고, 그 곳의 주민은 하나님께로 태어난 아들과 딸들이라 하더라. ……
그리고 우리가 아직 영에 감동 되어 있을 동안,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시현을 기록하라 하셨나니”(교리와 성약 76:12, 19~24, 28)
또한, 이 학생들은 모세가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뵈었도다. 그러나 이는 나의 육에 속한 눈으로가 아니요, 나의 영적인 눈으로 보았음이니, 이는 나의 육에 속한 눈으로는 볼 수 없었음이라. 이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서 나는 말라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임이로다. 그러나 그의 영광이 내 위에 있었고 나는 그의 얼굴을 뵈었나니, 이는 내가 그의 앞에서 변형되었음이라.”(모세서 1:11)
이 학생들은 이 모든 것들이 신앙과 관련된 문제이며, 그들은 인간의 추리 과정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과학의 실현을 통해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요컨대) 일반적인 세계와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즉, 자연계의 일로 영적인 것을 설명할 수 없고 영적인 것을 자연계의 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데, 그 까닭은, 첫째로 영적인 것은 충분히 인지하여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로, 유한한 마음과 이성으로는 무한한 지혜와 무궁한 진리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학생들은 이미 “정직, 진실, 순결, 인자, 유덕, 그리고 만인에게의 선행”을 행해야 한다는 것과 또 “무엇이든지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고 듣기 좋으며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구하여 마지 않는다.”(신앙개조 제13조)고 한 것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태어날 때부터 배워 왔습니다. 그들이 진리로 알고 있는 이러한 것들을 행하도록 적절한 방법으로 권고해야 하지만 그것들을 믿고 알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1년 과정의 교육을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 학생들은 복음의 계획을 단지 윤리학으로 취급해 버리는 가르침은 공허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윤리적인 면에서 가장 고차원적이지만 그 가르침이 그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윤리학은 이 생에서의 행위와 주로 관계가 있고, 복음을 단지 윤리학의 체계로 만드는 것은 신앙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만일 불신앙이 아니라면 내세에 대한 신앙의 결여를 의미하는 것임을 그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가르침이 현세뿐 아니라, 궁극의 목표인 구원과 승영에 관계되며 내세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영적인 것과 내세에 관한 것에 대한 간증을 갖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신앙을 추구하고, 그러고 나서 신앙에 따르는 지식을 찾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영을 통해 자신이 찾고 있는 간증은 다른 사람의 간증에 의하여 생기고 커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조셉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간증,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자의 생생하고 열렬하고 정직한 간증을 얻는 것은 복음을 윤리학의 체계로 격하시키고 무한한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수많은 책이나 연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태복음 7:9~10).
성약의 자녀로 태어난 이 학생들은 주님, 그리고 그분의 영과 교통하는 데 연령, 성숙도, 그리고 지적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어린 사무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박사들과 논쟁을 벌인 열두 살 된 예수님의 일에 관해 알고 있고 인간에게 보여진 가장 영광스러운 시현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을 본 조셉 스미스의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 다음의 고린도인과는 같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린도전서 3:2).
오히려 그들은 고린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할 때의 바울의 수준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린도전서 13:11).
이 학생들이 여러분에게 찾아올 때, 여러분이 올바른 영적 음식으로 그들을 양육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영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학생들에 관하여 할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이 현재 어떠한 처지에 있고 그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게 일부 교사 여러분이 이야기해 준 것과, 많은 청소년들이 말해 준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사 여러분께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조셉 스미스는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두 가지 커다란 원리를 포함하여 복음의 원리대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교회의 종교 교육과 훈련을 맡고 있는 교사나 교육 제도는 아무런 소용과 존재 이유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윤리학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종교 교육원과 세미나리를 운영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위대한 공립 학교에서도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 교육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선과 의로운 생활의 규범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이러한 것들이 복음의 일부이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한 생활의 규범을 초월하는 영생, 신권, 부활, 그 밖에 많은 것들이 포함된 위대한 원리들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기본 원리들도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들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알고 싶어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원리들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필요한 첫 번째 요건은 진리에 대한 그들의 간증입니다. 아무리 학식이 많더라도, 연구한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학위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들이 교회 학교 교사의 필수 조건인 이 간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후기 성도들에게 계시되었고 후기 성도들이 믿고 있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참다운 간증이 없는 교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분의 메시야적 사명, 그리고 첫번째 시현의 실재성을 포함하여 조셉 스미스의 신성한 사명에 대한 간증이 없는 교사는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 학교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교사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지만 만일 그러한 교사가 있다면 그는 즉시 그만두어야 합니다. 만일 책임자가 그러한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가 사임하지 않는 경우 사직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제일회장단은 그러한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기를 기대하십니다.
이 말은 절대로 그러한 교사를 교회 밖으로 축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인내와 오래 참음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성과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참다운 지식을 그들이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종하지도 않았고 간증도 없는 교사가 교회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교사 여러분이 단지 간증만을 갖는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 외에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드물고 가장 값진 인간의 성품 중 하나인 도덕적 용기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간증을 담대하게 전할 도덕적 용기가 없다면, 또한 남들이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러한 간증이 희미한 것이라면, 그것은 학생들에게 전달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약하고 우유 부단한 간증이 끼치는 영적, 심리적인 영향은 사실상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해를 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성공적인 종교 교육원 교사는 또한 훌륭하고 값진 성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성품은 도덕적 용기와 거의 비슷하며 때로는 그것으로 잘못 인식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지적 용기입니다. 이 지적 용기는 교사나 교육에 종사하는 자들이 갖고 있다고 믿는 그러한 과학적인 혹은 그 밖의 지식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원리, 믿음, 신앙을 확언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으며 신앙을 갖고 있으리라고 추정되는 자가, 그들의 신앙을 완전히 공언하면 믿지 않는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신앙을 각색하거나 변명을 늘어놓거나 파괴적으로 희석시키거나 심지어 팽개쳐 버리는 태도를 취하는 사례까지도 종종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은 동료들과 그들의 동료 신자들에게 위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갖고 있고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조롱이나 배척을 당하지 않고 불신자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진리를 거부하거나 악과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정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몇몇 사람이 하는 것처럼 경멸의 대상은 아닙니다.) 정말로 비극적인 것은 그의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그러한 배척이나 위장이 결국 의지가 박약한 자들이 피하고자 하는 바로 그러한 처벌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확신을 갖고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그것을 지니는 자만큼 세상이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의로운 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피하려 하고 내버리려 하며 거부하려고 하는 자들을 오히려 세상은 가장 경멸합니다. 후기 성도인 심리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지질학자, 고고학자, 또는 기타 과학자들이 자신이 믿는다고 고백한 교회의 근본 교리를 변명하거나 잘못 해석하거나, 피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무엇보다도, 배척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의 지성에 대해 거짓말 하는 것이며, 자존심을 잃는 것이고, 동료들에게 슬픔을 초래하는 것이며, 양친의 마음을 비통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며, 교회와 회원을 모독하는 것이고, 인생 행로에서 그를 친구 또는 조력자로 삼고자 했던 이들의 존경과 명예를 잃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학교 교사 중에 그러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 않습니다만 혹시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간증이 없는 교사와 똑같은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사기꾼과 핑계를 일삼는 자와 회피하는 자 및 위선자는 교회 학교에서나 또는 우리 청소년의 성격 형성이나 영적 성장에 관여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종교 교육원에서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할 또 한 가지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개종하지 않았고 믿음이 없기에 교육, 믿음, 그리고 활동을 변절시킴으로써 청소년, 심지어 성인들로 하여금 따라야 할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게 하는 자들을 영적인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변질된 교육, 믿음, 그리고 활동을 통해 그들은 복음이 인도해 주는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이끄는 양심이 마비된 자에게는 이 일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이것은 신뢰에 대한 너무나도 엄청난 배반입니다. 또한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된 까닭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교육 기구에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뜻으로 다른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번 이상씩은 교회 회원들이 특별한 분야의 특수한 훈련을 받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최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훈련을 받고 난 후 돌아와서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 필요로 하지 않는지조차 생각해 보지도 않고 우리에게 그것을 투여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으므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상, 교육, 활동, 또는 그 밖의 어떤 분야에서 가장 최선의 이론을 시험해 보기 전에 전문가들은 잠시 멈추어 우리가 얼마나 뒤쳐져 있는가, 어떤 일에서 실제로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다른 일에 있어서는 우리가 훨씬 앞서 있어서 이 새로운 방법이 진부하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낡은 것이 아닌지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공동 생활이나 일반적인 활동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오락과 여흥에 있어서나, 종교적인 예배와 활동을 긴밀히 결합시키고 주의 깊게 이끄는 일에서,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영적인 신앙을 증진시키는 일에서, 실제적으로 매일 종교를 실천하는 일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일에서, 우리는 선두에 서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사상을 주입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전문가들은 퇴폐적이고 이러한 것들에 무감각해진 그룹들 사이에서 공동체적 영을 불러일으키거나 종교적 활동을 설립하려는 데 쓰는 방법들이 우리에게 정말 적합한지 혹은 우리에게 부과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너무 지나친 편이 아닌지, 심지어 너무 시대 착오적인 것이 아닌지 세심히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영적인 문제에 관심과 흥미가 전혀 없는 청소년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한 계획을 영적이고 종교적으로 민감한 우리 청소년들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종교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지금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자질까지도 파괴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미 지적해 드린 바와 같이 청소년들은 영적으로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 성숙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들을 영적으로 어린 아이처럼 다루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영적인 축복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세미나리나 종교 교육원을 찾아오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기도의 효험을 보지 못하고 또는 병고침에 대한 신앙의 권능에 관한 간증을 갖지 않고 혹은 오늘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경험을 갖지 않고 세미나리나 종교 교육원을 찾아오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경험을 한 이 청소년 뒤로 다가가서 그의 귀에 대고 종교에 대해 가만히 속삭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당당히 나서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적인 일을 은폐물로 삼아 종교적인 진리를 위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그에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청소년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여러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접근하거나 “옛날 이야기”식으로 말해 주거나, 응석을 받아 주거나, 선심 쓰는 체하거나, 영적인 경험이 없고 영적으로 거의 죽은 그러한 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사용하는 기타 유치한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사 여러분에게는 큰 사명이 있습니다. 교사로서 여러분은 교육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 까닭은 과거에 영원한 상태에 있었고, 현재 필멸의 상태에 있으며, 미래에 영원한 상태에 있게 될 인간을 다루는 것은 무한한 가치나 파급될 효과로 볼 때 어떠한 교육도 이와 견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룰 분야는 유한한 시간뿐 아니라 영원성까지도 포함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뿐 아니라 여러분 주위의 인간의 구원까지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축복이며, 여러분은 의무를 다할 때 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각 영혼을 구원할 때 여러분이 받을 여러분의 영광스러운 왕관은 얼마나 찬란히 빛나겠습니까!
그러나 이 축복을 받고 그러한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거니와 여러분은 반드시 복음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목적이나 다른 이유로 교회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순전히 문화적인 것과 세속적인 지식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조하는 뜻에서 다시 되풀이해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필수적이며 유일무이한 여러분의 의무는 이 후기에 계시된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표준 경전과 후기에 그의 백성을 인도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권위로써 이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여러분의 일에 억지로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든 또 아무리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것에 여러분의 가르치는 일을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미나리 수만큼 많은 다른 교회들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혼란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교회의 교리를 변경시키려 하거나 수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표준 경전에서 선언된 대로 또 주님의 마음과 뜻을 교회에 선포하도록 권한을 받은 자가 말한 대로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을 두고 동일하[다]”(니파이후서 27:23)고 선언하셨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힘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영적인 진리도 따라서 변화되었거나 변형되었다고 믿는 그러한 유치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권고드리는 바입니다. 인간이 영적인 일을 정복하는 것이 물질적인 일의 정복과 병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때로는 반대되는 것이 진리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추리력은 계산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중재의 기도를 항상 마음속에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이것은 궁극적인 진리입니다. 또한 모든 영적인 진리도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새로운 원소나 새로운 에테르성 파장의 발견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며 속도를 몇 초, 몇 분, 몇 시간 단축함으로써 변경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고대나 현대의 세상적인 철학, 이교도나 기독교의 철학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쳐야 할 유일한 분야는 복음이며 그것은 영역이 무한한 것입니다.
모든 교과 과정을 통해 예술, 과학, 문학, 역사, 언어, 그 밖에 세속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는 사회의 교육 기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기관들이 그러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은 성스러운 위임입니다. 교회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서는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이 목적을 말씀드리고 계속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의 “휴식반”도 포함하여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과 과정은 명료합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 교회의 교리, 교회의 표준 경전, 이러한 모든 것들을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의 “휴식반”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휴식반”을 포기해야 하고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서 복음 사업을 수행할 다른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을 포기하고, 교회 대학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일들을 포기할 수 있겠는지는 지금 분명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방법대로 복음을 가르치는 데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을 운영하기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해 드릴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희생과 극기와 신앙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것을 청소년들에게 기초적인 윤리학을 가르치는 특색 없는 일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예산 편성 때 이러한 결의와 입장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일회장단을 대신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가르침의 특성에 관해 말씀드린 모든 것과 또 복음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결과에 대해 말씀드린 것들은, 전부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 그리고 교회 교육 기구에 속해 있는 기타 교육 기구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제일회장단은 교회 전체의 미래 복지뿐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의 영적인 건강과 구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여러분에게서 진심 어린 도움과 협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교회도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있고, 주님도 여러분을 필요로 하십니다. 스스로 소극적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끝내면서 저는 교사 여러분에게 겸손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 자신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및 직업 학교 등에서 일하면서 이 일에는 어려움과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했을 때 얻게 되는 성장과 만족도 역시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일급 교사는 되지 못하고 하급에 머물러 있는 교사 여러분의 심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분이 받는 실질적인 보수와 그것이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더 많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수입 중 교육비에 이미 너무나 많은 돈을 써버렸기 때문에 당장 개선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년도 학교 예산은 860,000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본부 행정 기구를 포함하여 스테이크, 와드, 지부 및 선교 비용과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한 비용, 복지 및 자선에 드는 비용을 포함한 전 교회를 운영하는 총 비용의 17퍼센트에 달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의 사업이 번창하여 지금과 같이 저희들이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성도들이 충분한 십일조를 낼 수 있게 되리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근면, 성실, 희생, 진리를 위한 의욕에 넘친 봉사, 하나님과 그의 사업에 대한 신앙, 성임된 지도자들과 선지자가 여러분에게 하도록 맡긴 일을 하려는 열의에 대해 찬사를 보냅니다. 지도자의 권고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또 지도자의 뜻을 실천하지 않거나 지시에 따르기를 거부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옛날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고는 마음이 아파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사무엘상 24:6).
하나님께서 항상 의로운 수고를 하시는 여러분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고 여러분의 이해를 북돋아 주시며 지혜를 더해 주시고 경험을 통해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인내, 자비를 주시고 또 가장 값진 은사인 분별의 영을 주셔서 의로운 영과 불의한 영을 알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가르치는 자의 심중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곳이 성스러운 장소임을 알게 해 주시며 죄악에 가득 찬 나쁜 행위나 거짓이나 타락한 교리로 오염되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식에 의로움을 가르치는 기술과 능력을 더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간증이 커져 가기를 바라며 시온의 청소년들을 권고하고 양육하는 여러분의 능력이 매일 커져 그들이 모두 가르침을 받고 양육되고 권고 받으며 격려를 받아 옆길로 나가지 않고 영생을 향해 나아가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고 여러분도 그들을 통해 축복을 받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