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타이밍,”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2004), 133–37
“주님의 타이밍,” 세미나리를 가르침, 133–37
주님의 타이밍
2001~2002년 브리검영 대학교 연설 (2002), 187~193쪽에서
제가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 봉직하는 동안에 들었던 가장 중요한 학문적 말씀들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들은 대다수 강연이 그렇듯이 새로운 사실을 전하거나 특정한 입장을 옹호하는 대신 청중이 어떤 중요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학문적 주제에 관한 강연보다는 영적 말씀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 그와 같은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중요한 주제인 타이밍의 문제에 관하여 일부 청중들이 하는 생각의 방식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여러 해 전에 어느 대학교의 총장 취임식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대학교 경영에서 타이밍의 중요성을 예증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대학교 총장은 임기를 마치는 시점에 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막 임기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임기를 마치는 현명한 총장은 친절한 태도로 젊은 후임자에게 봉인된 세 개의 봉투를 건네주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것들을 갖고 계시다가 임기 중 첫 번째 어려운 문제에 당면하거든 이 첫 번째 봉투를 열어 보십시오. 유익한 충고의 말이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총장은 1년도 안 되어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첫 번째 봉투를 개봉했을 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는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전임 경영진을 탓하시오.”그는 그 충고에 따랐으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2년 후에 그는 지도력에 대한 다른 심각한 문제에 당면했습니다. 그는 두 번째 봉투를 개봉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경영진을 재조직하시오.”그는 그렇게 했으며, 재조직은 위기를 진정시키고 지도력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습니다.
이제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총장은 시간이 제법 흐른 후에 세 번째 중요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알려 줄 충고의 말을 기대하면서 마지막 봉투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도 종이 쪽지가 나왔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제 봉투 세 개를 준비하십시오.”새로운 지도력이 필요한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타이밍이 전부다”라는 말은 물론 타이밍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과장한 것이 사실이지만, 타이밍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도서 3:1~2, 4~5, 7]
우리 삶에서 내리는 모든 중요한 결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 옳은 일을 제때에 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은 때에 하는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끼고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잘못된 것이 그들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 타이밍이 그렇게 되어서 발생한 것인 때에도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I. 주님의 타이밍
타이밍이라는 주제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싶은 것은 주님은 그분의 시간표를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현 경륜의 시대의 초기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나의 말은 확실하며 실패하지 아니하리니, …… 그러나 만사는 제때에 이루어져야만 하느니라.”(교리와 성약 64:31~32)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신앙은 신뢰, 즉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방법을 신뢰하고, 그분의 시간표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시간표 대신 우리의 것을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할 수 있을 만큼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복지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진실로 믿을 수 있다면 그분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재림과, 또한 단순히 그분의 전반적인 계획과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주님의 타이밍과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우리의 신앙이 필요한 모든 문제에서도 그렇습니다.”[Even As I Am (Salt Lake City: Deseret Book, 1982), 93]
좀 더 최근인 지난 4월 연차 대회에서 맥스웰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시간 안에서 신앙의 시험을 받게 되므로, 우리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의 때가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 또한 배우도록 합시다.”( CR, April 2001, 76; 또는 “희망의 쟁기질”,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73쪽)
참으로 우리는 주님의 뜻과 주님의 타이밍을 믿는 완전한 신뢰 없이는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어기는 사람들 중에는 안락사를 옹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알기에 하나님만이 결정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취하여 자신들의 뜻이나 선호에 따라 그 일을 가속화하려 합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봉사할 때 우리는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 못지 않게 언제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이밍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지상 성역과 뒤이어 그분의 사도들에게 주신 가르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상에 계실 때 사도들에게 이방인들을 가르치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마태복음 10:5~6; 또한 마태복음 15:22~26 참조)을 가르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 지시 사항은 적절한 시기에 사도 베드로에게 위대한 계시가 주어짐으로써 바뀌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 정하신 특정한 시기에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졌습니다.(사도행전 10~11장 참조)
이 예에서 보듯이 계속되는 계시는 주님께서 그분의 타이밍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계시적인 지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가운데 혹은 우리의 후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의심할 여지 없이 새 예루살렘 성의 건설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참여할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84:2~4 참조) 그러나 이 일에서 타이밍은 주님의 몫이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까지는 성전 부지를 깨끗하게 하고 그 대역사를 위한 기초를 놓도록 승인을 받거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일에서도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준비합니다. 주님의 타이밍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킵니다. 주님은 다음 단계를 밟을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와 현재 우리에게 하도록 요구된 일에만 열중할 따름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나는 때가 되면 나의 일을 서둘리라.”(교리와 성약 88:73)
계속되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때로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혹은 너무 오래 일을 함으로써 문제에 빠지기도 합니다. 복수 결혼이 그 한 예입니다.
주님의 타이밍의 중요성은 음식에 관한 율법에서도 증명됩니다. 주님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음식에 관한 한 가지 지시 사항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마지막 날”에 있을 “악과 의도”(교리와 성약 89:4) 때문에 우리 시대에 맞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축복이 수반된 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타이밍은 또한 개인적인 생활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행사에도 적용됩니다. 교리와 성약에 있는 위대한 말씀은 특정한 영적인 경험이 “그가 정한 때에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또 그 자신의 뜻에 따라”(교리와 성약 88:68) 올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는 계시(Oaks, “Teaching and Learning by the Spirit”, Ensign, March 1997, 11 참조)와 우리 생애의 모든 중요한 사건, 즉 출생, 결혼, 죽음 및 심지어는 우리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에까지 적용됩니다.
청중석에 있는 많은 이들의 조상인 한 저명한 개척자의 삶에서 그런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앤슨 콜은 나부를 탈출한 첫 무리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1846년 봄에 가족과 함께 아이오와를 가로질러 그 해 여름에 아이오와 주 카운슬블러프스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브리검 영은 마차 부대를 조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앤슨 콜을 첫 열 대의 마차를 이끄는 통솔자로 지명했습니다. 십이사도는 마차 행렬에게 서부로 이동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행렬은 1846년 7월 22일에 서부를 향해 미주리 강을 출발했습니다. 신권 권세로 조직된 그들은 로키산맥을 향하도록 지시받았으며, 그들은 매우 활기차게 서부로 향했습니다.
현재의 네브래스카에 해당하는 곳을 지나며 약 209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한 후에 이 첫 마차 행렬은 그 계절이 지나기까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새로운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겨울과 1847년 봄을 보낼 장소를 찾은 다음, 아이오와 쪽에 있는 미주리 교회의 본대로 돌아와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앤슨 콜과 그의 가족은 그곳에서 일 년을 보내며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서부 여행을 할 준비를 하도록 도왔습니다. 앤슨 콜과 그의 가족이 1846년에 처음 서부로 출발한 날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은 마침내 로키산맥의 계곡들로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브리검 영은 서부 산맥 가운데에서 새로 정착하기 위해 순종적이고 기략이 풍부한 앤슨 콜의 재능을 종종 활용했습니다.”(The Journal of Anson Call [United States: Ethan L. Call and Christine Shaffer Call; Afton, Wyoming: Shann L. Call, 1986], 36 참조)
이 개척자의 경험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부름을 수행하고 있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타이밍이 맞아야 하며 그것이 맞지 않을 경우, 주님의 종들에 의해 계시된 바와 같이 우리의 행동을 그분의 시간표에 맞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주님의 타이밍은 종종 그런 식으로 계시됩니다. 몇 년 전에 힝클리 회장님은 새로운 성전의 수를 크게 늘리는 계획, 즉 특별히 운영 중인 50개의 성전을 불과 수년 내에 100개로 늘리는 건축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추가로 성전을 짓는 것에 대한 지시는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만 주님의 선지자가 이것을 주요 안건으로 제의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교회와 그 회원들을 위해 그토록 급작스럽고 극적인 증가를 권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선지자만이 불과 수년 내에 운영하는 성전의 수를 두 배로 늘리도록 교회에 제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10월에 열린 연차 대회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듣는 데 관심을 갖도록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타이밍을 따르는 것의 중요성에 관한 또 다른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우리의 사업이 아니라 그분의 사업이므로 그 일은 우리의 타이밍이 아니라 그분의 타이밍에 맞추어 행해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복음을 들어야 할 나라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지만 강행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타이밍을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이며, 문을 열어 주시거나 벽을 허물어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나라와 사람들, 오늘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도움을 주기를 바라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서 그분의 손에 든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과 지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시며 모든 사람이 충만한 진리와 풍성한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그룹이나 개인이 준비되어 있는 때를 아시며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도록 그분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시간표에 유의하기를 원하십니다.
II.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지
우리가 생애에서 몇 가지 중요한 목표를 성취하는 일은 주님의 타이밍 이상의 것에 달려 있습니다. 일부 개인적인 목표의 성취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대학 연령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두 가지 특별히 중요한 문제, 즉 선교사 침례와 결혼에서 나타납니다.
지난 여름에 저는 아내와 함께 브라질 마나우스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마존에 있는 그 거대한 도시에서 약 100여 명의 선교사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말씀을 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저는 대개 그러한 경우에 사용할 메모를 준비해 둡니다만, 그것 대신에 오늘 제가 말씀하고 있는 경전의 말씀과 원리들, 즉 타이밍의 중요성에 관해 말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선교사들에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계획의 일부는 다른 사람의 선택의지와 행동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선교사는 다른 다섯 사람의 선택의지와 행동 없이는 이번 달에 다섯 사람에게 침례를 줄 수 없습니다. 선교사는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계획을 세우고 일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소망하는 결과는 추가로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지와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사의 목표는 선교사 개인의 선택의지와 행동에 기초를 두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지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선교사들에게 목표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했던 것을 이야기할 시간은 아닙니다. 그 대신 저는 타이밍의 원리에 대한 몇 가지 다른 적용 사례를 우리 개인의 생활에서 예를 들어가며 말씀드리겠습니다.
III. 우리 생활에의 적용
우리가 다른 계획들을 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에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계획하지 않은 많은 중요한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 것이며, 그것들 중에는 반드시 환영할 만한 것들이 아닌 것도 있을 것입니다. 9월 11일에 있었던 그 비극적인 사건과 그에 따른 개혁적인 결과들이 분명한 예가 됩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의로운 것들이 우리를 곤란하게 하거나, 계획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오거나, 아니면 우리가 원했던 때가 아닌 다른 때에 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즉시 결혼을 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적절해 보이는 때에 하는 결혼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 아내 크리스틴의 경우가 그 예입니다. 그녀는 선교 사업과 졸업 후에도 여러 해가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 든 독신들은 몇몇 흥미로운 경험들을 합니다. 크리스틴이 여동생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생의 집에 있을 때 그녀의 제부가 신문에서 막 읽은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처형은 50이 넘도록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런 여성이 결혼할 가능성은 테러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보다 못하다고 하네요.”
결혼의 타이밍은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극히 중요한 일의 가장 적절한 예가 되겠습니다만 계획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른 중요한 사건들, 즉 다른 사람의 선택의지나 주님의 뜻과 타이밍에 의존해야 하는 일들처럼, 결혼은 확신을 갖고 기대하거나 계획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소망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결혼 시기를 훨씬 넘겨 독신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어떤 일을 해야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일을 위해 준비하도록 해 줍니다. 이러한 신앙은 우리가 인생의 기회들을 잘 대처하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즉 우리가 받은 것들을 이용하고, 잃은 것들로 인해 오는 낙담을 극복해 나가도록 준비시켜 줍니다. 그러한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택의지나 주님의 타이밍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든,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에 있어 우선순위와 표준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며 그러한 결심을 충실하게 지속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삶의 방향을 알려주고 평안을 주는 일관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결심과 표준은 일관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결심은 예기치 않은 때에 떠올라서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적용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원리들이 우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에 되살아나 우리 행동에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한 개인적인 경험이 그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대부분 후기 성도 부모들은 자녀들이 데이트를 하러 갈 때 어떤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중요함을 잘 압니다. 저도 자녀들에게 그렇게 했는데, 자녀들이 제 조언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크리스틴과 교제하던 시기에 그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데 제 자녀 중 한 명이 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가 누구인지를 잊지 마세요!”
독신 성인들의 결심과 봉사는 올바른 때와 올바른 사람을 기다리는 어려운 시기를 통해 그들을 강하고 단단하게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하는 결심과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강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시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는 그런 내용을 “눈에 갇혀”라는 훌륭한 시로 썼습니다. 이 시에서 결혼하지 못한 사랑하는 이모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가장 어여쁜 여인이
짝을 이루지 못해
가정 없이 외롭게 지내지만
사랑의 봉사에서 평안을 얻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맞이해 주는
고요하고 자비로운 평안
[John Greenleaf Whittier, “Snow-Bound: A Winter Idyl,” in Snow-Bound: Among the Hills: Songs of Labor: and Other Poems (Boston; New York: Houghton, Mifflin and Company, 1898), lines 352–57]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는 분들은 현명한 분들입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주님을 우선에 두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그러한 결심을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통제 영역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상관없이 우리가 결심한 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결심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자신의 계획이 주님의 타이밍과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를 강하고 단단하게 지켜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라고 결심하는 것과, 졸업을 할 때 결혼할 것이라든가 아니면 첫 직장에서 최소한 얼마 정도의 돈을 벌 것이라고 계획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는 기본적인 결심을 하며 그분을 우리 인생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둔다면, 우리는 사사건건, 심지어는 중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계획을 세워야 할 필요가 없으며, 매우 중요한 어떤 일들이 우리가 계획했거나 소망했거나 기도한 시기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거부당한다고 느끼거나 낙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주님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의 종들이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한 것들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에 서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감독으로 부름을 받든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부름을 받든, 결혼을 하든, 독신이든, 혹은 여러분이 내일 세상을 떠나게 되든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모릅니다. 기본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런 다음 주님과 그분의 타이밍을 신뢰하십시오.
인생에는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 행로를 바꾸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젊었을 때 저는 선교사로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950년 6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북한군이 38선을 넘었으며 미국은 전쟁에 가담했습니다. 저는 열일곱 살이었지만 유타 주 방위군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원되어 실전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저와 저의 세대의 다른 많은 젊은이들은 우리가 계획하고 바라던 선교 사업을 그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른 예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9년 동안 브리검 영 대학교의 총장직을 수행한 뒤 해임되었습니다. 몇 달 후에 유타 주지사는 저를 10년 임기로 주 대법원에서 일하도록 임명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흔여덟 살이었습니다. 제 아내 준과 저는 남은 인생을 계획하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로 봉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제가 주 대법원에서 20년간 근무할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10년 임기를 두 번 마치고 나면 예순아홉 살이 되는데, 그때 대법원에서 은퇴를 한 뒤 선교사 서류를 제출하고 부부 선교사로 봉사하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69회 생일을 맞이하며 그 중요한 계획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일이 계획된 대로 진행되었다면, 저는 아내 준과 함께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계획을 세우고 나서 4년이 지난 후에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계획과 타이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대법원 판사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제 삶에서 중요한 차이가 생긴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순여섯이 되었을 때 아내 준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년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저는 현재 제 곁에 있는 영원한 동반자인 크리스틴 맥메인과 결혼했습니다.
제 인생은 계획했던 것과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직업인으로서의 인생도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인 인생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서 주님을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고 그분께서 제게 어떤 일을 원하시든 행하겠다고 한 결심은 영원한 중요성을 띠는 이러한 변화 가운데서도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과 신뢰는 우리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이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저는 수년간 아내의 회복을 위해 드린 기도에 대해 “안 된다”는 응답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만 주님은 이것이 그분의 뜻이라는 증거를 주셨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녀가 죽고 2년이 지난 후에 저는 지금의 제 영원한 아내인 훌륭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 또한 주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한 주제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모든 일, 심지어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계획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불가피하게 영향을 주는 문제에 있어서 주님의 계획과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십시오. 물론 계획을 세우십시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개인적인 결심에 의거하여 여러분이 세운 계획을 수정하십시오. 영원한 원리 안에서 강하고 충실하며, 상황이 어떻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든 그러한 원리에 입각해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의 타이밍을 기다릴 수 있게 되고 영원한 결과에 대해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타이밍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긴 안목을 갖는 것입니다. 필멸의 생은 영원 가운데 단지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 하는 것, 즉 우리의 행동과 소망에 의해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합당한 권세에 의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성약과 의식을 통해 확인되는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형성합니다. 선지자 앰율레크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생은 사람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시간이라.”(앨마서 34:32) 그 사실은 우리가 긴 안목을 갖는 데, 즉 영원에 대한 타이밍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찰스 더블유 펜로즈 회장님은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의 죽음을 기리는 연차 대회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영원히 지속될 것에 바칠 수도 있는데 왜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과 재산과 영향력을 썩어 없어질 것들을 추구하는 데 낭비하십니까? 여러분이 속해 있는 이 교회와 왕국은 무한한 세월이 흘러가더라도 현세에서 그리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여러분도 그와 더불어 더욱 위대하고 강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의 것들은 사라져 없어질 것이며, 부활 때나 그 이후에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CR, June 1919, 37]
저는 우리 각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의를 기울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타이밍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하고 결심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이 교회가 그분의 교회임을 간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