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수확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미나리를 가르침: 예비 독서 자료 (2004), 93–98
“주님께서 수확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미나리를 가르침, 93–98
주님께서 수확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헨리비 아이어링 장로와 함께하는 저녁 모임, 1998년 2월 6일
오늘 밤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모임은 “총관리 역원과 함께하는 저녁 모임”으로 불립니다. 저는 이 모임을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이 유서 깊은 솔트레이크의 태버내클에 모였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보다 더 많은 분들이 계속 가속화되고 있는 놀라운 전자 기술의 혁신적인 기기들을 사용하여 전 지역의 여러 장소에서 이 웅장한 모임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런 흐름은 주님이 지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서두르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분은 사랑과 친절로 우리가 부름 받은 일에서 사용할 힘을 배가시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영생을 선택할 기회를 주시려 하십니다.
2월의 어느 저녁에 여러분은 영생을 선택하도록 젊은이들을 인도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게 보여서 약간은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또는 어제 여러분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얼굴과 몸짓을 유심히 살펴보며, 복음이 마음과 생활에 자리 잡는지를 나타내는 약간의 표징을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학기 중인 지금은 이곳 서반구에 국한해서 보자면 아침이 밝아오는 여명의 시기라 할 수 있고, 어떤 학생이 보낸 옛 감사 편지를 꺼내어 보거나 수업 후에 대화를 나누며 누군가의 삶이 더 나은 쪽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때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을 수확하시려는 주님의 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는 우리 노고와 희생의 증거를 보고자 바라거나 때로는 못 견딜 정도로 열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희망을 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감사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께서 허락해 주신 현대 기술의 기적에 더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우리 노력의 결과를 풍성하게 하시려 그분께서 태초부터 마련하신 강력한 도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밤, 그 중 몇 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말씀을 들으며 여러분은 다른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언급하려는 것들은 단순하며 아주 흔해서 무시되거나 그 힘이 간과되기 쉽습니다.
제 목적은 작은 일들을 행함으로써 엄청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리고자 함이며 이는 주님께서 우리 노력의 결과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예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비해 주신 것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주께서 그분의 종 몇몇에게 교리와 성약 104편에서 “그리고 그들이 충실한 만큼, 그들과 그들 뒤를 이을 후손에게 복에 복을, 참으로 많은 복에 복을 더하여 주리라.”(33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수확을 더하여 주시도록 우리가 작은 일들을 더 잘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여러분의 노력에서 얻게 되는 엄청난 수확을 위해 주께서 예비하신 한 가지 방법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창세 이전에 제정된 원리이며 영원을 두고 지속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가족을 통해 일하십니다. 축복이 선포될 때는 그 개인뿐만 아니라 이어질 세대에게도 계속해서 축복이 이어지며, 끝없이 증가하는 축복이 함께 합니다. 그 단순한 생각은 제가 학생들과 오늘 밤 여러분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바꿔 주었습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의 교사가 될 것이며, 교사가 되도록 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여러 시간 동안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모들은 그들이 하기만 한다면, 자녀들의 어린 시절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가르칠 수 있으며, 그러면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축복을 향유하기 훨씬 전부터 그 아이들은 마음과 영혼이 더 쉽게 감명받고 영생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들이 장차 부모가 되어 미래에 그들의 가정이란 성스러운 영역 안에서 가르칠 때 그들이 우리가 가르치는 방식을 아무 문제 없이 따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교사인 우리는 부모로서 그들이 지니게 될 것과는 다른 책임감과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우리의 가르치는 방식을 모범으로 삼을 뿐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때 적용해야 하는 원리들은 가정에서도 똑같은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러한 원리들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적용하면 많은 세대의 가족이 삶에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정해진 진로를 따르십시오
저는 언제나 그 원리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자 할 때, 지금 읽으려 하는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 회장님의 말씀 “교회 교육의 진로”를 읽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분은 60년 전에 브리검 영 대학교의 일부인 아스펜 그로브에서 몇몇 교사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선지자적인 통찰력으로 우리 시대와 그 이후를 보셨습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원리들은 우리가 학생들을 바라보는 방법,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우리 교실과 가정, 우리 학생들의 가족들과 우리 학생들의 자녀들에게까지도 언제나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이 르우벤 클라크 회장님이 말씀하신 원리들을 전하겠습니다.
“교회의 청소년들과 여러분의 학생들은 대부분 생각과 정신이 건전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개종시키지 못하고 단지 그들을 건전하게만 지키고 있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의 청소년들은 영적인 일들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몹시 복음을 배우고 싶어하며 정확하고 순수한 복음을 원하고 있습니다.”(교회 교육의 진로, 개정판 [1994년], 3쪽)
이어서 그분은 우리 학생들을 잘 묘사한 다음 말에서 가르침의 원리를 도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지적해 드린 바와 같이 청소년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 성숙을 향해 순탄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영적으로 어린아이처럼 다루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시대착오적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거니와 영적인 축복의 혜택을 알지 못한 채 기도의 효험을 보지 못하고 또는 병고침에 대한 신앙의 권능에 관한 간증을 갖지 않고 혹은 오늘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경험을 갖지 않고 세미나리나 종교 교육원을 찾아오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경험을 한 이 청소년들 뒤로 다가가서 그의 귀에 대고 종교에 대해 가만히 속삭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당당히 나서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적인 일을 은폐물로 삼아 종교적인 진리를 위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그에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이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접근하거나 “옛날 이야기”식으로 말해 주거나, 응석을 받아 주거나, 선심 쓰는 체하거나, 영적인 경험이 없고 영적으로 거의 죽은 그러한 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사용하는 기타 유치한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교회 교육의 진로, 9쪽)
젊은이에 관한 이러한 낙관적인 묘사를 들을 때면, 교회가 1938년 이후로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기에 젊은이들이 영적인 것을 갈망하므로 직접적으로 영적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원리도 바뀌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볼 만도 합니다. 클라크 회장님 당시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에 참석하는 젊은이들은 기본적으로 성약 안에서 태어난 후기 성도 2세대 또는 3세대였습니다. 현재는 교회 회원의 67퍼센트가 개종자입니다. 개종자 가운데 60퍼센트가 우리가 수업에 초대하고 있는 적정 연령인 14세~25세 사이입니다. 우리 학생들 가운데에서 개종자가 늘고 있습니다.
왕국이 모든 나라와 민족, 언어, 사람들에게 뻗어 나가면서 우리 교실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변화는 클라크 회장님의 선지자적 비전을 확인해 줍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심지어 수주 내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침례의 물가에서 성스러운 성약을 맺겠다고 선택하고 우리의 학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안수를 받아 성신을 동반할 권리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들에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영이 진리를 확증해 주는 순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의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우리의 불같은 간증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간증이 깊어지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우리의 학생들이 클라크 회장님께서 묘사하신 젊은이들처럼 될 것이며, 또한 우리 학생들의 가족이 될 그 자녀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의 밤 공과를 가르치거나 자녀와 함께 앉아 경전을 읽으면서 클라크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느끼셨던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영적인 것들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진리를 인식했으며 때로는 여러분이 그들에게 말한 것 이상을 알고 있는 듯한 때도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 설명된 그 원리들은 다가올 장래에 우리 교실에서 그리고 우리 학생들과 그들 후손의 가정에서 확실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구한 후에 우리를 인도할 원리를 신앙으로 따르는 것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클라크 회장님은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도록 다음과 같은 것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순전히 문화적인 것과 세속적인 지식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조하는 뜻에서 다시 되풀이해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필수적이며 유일무이한 여러분의 의무는 이 후기에 계시된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 여러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여러분의 일에 억지로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든 또 아무리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것에 여러분의 가르치는 일을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미나리 수만큼 많은 다른 교회들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혼란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교회의 교리를 변경시키려 하거나 수정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표준 경전에서 선언된 대로 또 주님의 마음과 뜻을 교회에 선포하도록 권한을 받은 자가 말한 대로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을 두고 동일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교회 교육의 진로, 10쪽)
이제 그 교훈을 디딤돌 삼아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직접적으로 영적으로 굶주린 학생들에게 표준 경전과 살아 계신 선지자들이 선포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막중한 책임과 기회 때문에 우리는 더 잘할 부분은 없는지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일반 상식과 교리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답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바와 같이 브리검 영 회장님께서 그것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진보는 영과 하늘 계획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서 진보가 일어나게 하고, 지혜와 지식과 이해력을 증진시키며, 모두 하늘에 속한 지구와 하늘, 천체와 그 안에 존재하는 유기체의 목적에 관련된 온갖 지식을 기계적으로든 과학적으로든 얻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모두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또는 한 민족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약화되어 내리막길을 택하면, 그들은 하늘과 하늘의 것들에서 멀어집니다.”(Discourses of Brigham Young, sel. John A. Widtsoe [1941], 78)
자주 하는 일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진보하려 노력하며 얻은 약간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 사람과 조직이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대해 배웠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신경 쓰고 들여다 봐야 하는 곳은 우리가 매일 자주 하는 일들이며, 거기서 작은 변화들을 이루는 것입니다. 일관성을 갖고 반복하는 것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하기 위해 영감에 따라 올바르며 작은 것들을 택하여 계속 순종하면, 커다란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제 그런 이유로 저는 가르치는 순간마다 우리가 사용하는, 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도구를 제안하겠습니다. 그 모든 것 혹은 그중 하나에서 향상을 위해 작은 변화를 꾀한다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열망하는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영적 모임, 두 번째는 교과 과정, 세 번째는 질문하기와 대답하기입니다.
이제 제가 이룬 작은 진보인 작은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에 관해 조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클라크 회장님께서 가르치신 원리를 따르려 합니다. 그분은 우리 학생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도와 양육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양육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가르치는 복음 진리들을 성신께서 확증하고 확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경전 구절은 교리와 성약 6편 14절과 15절입니다. 학생들은 주님께서 설명하신 이 과정이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참되었으며 그들에게도 참되며, 그들의 자녀에게도 참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행한 일로 말미암아 너는 복이 있도다. 이는 네가 내게 물었음이라, 보라, 네가 물을 때마다 너는 나의 영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였더면, 너는 네가 지금 있는 곳에 오지 못하였으리라.
보라, 네가 내게 물었고 이에 내가 네 마음을 밝혀 깨닫게 해 주었음을 너는 알고 있나니, 이제 내가 이 일들을 네게 말함은 네가 진리의 영으로 비추임을 받아 깨닫게 된 줄 너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저는 이 내용을 참된 교리와 단순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작은 변화는 바로 제가 가르친 사람이 신앙으로 주님께 여쭐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분명히 영을 통한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우리가 가르치는 이들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양육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가르칠 때 우리가 정기적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개선을 이루는 데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영적 모임
또 다른 예인 영적 모임은 원리를 적용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를 위한 영적 모임은 보통으로 음악, 기도와 영적인 생각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시온의 찬송가는 성신을 그 공간으로 불러 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할 수 있을 때마다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찬송을 할 때 무심코 하거나 아니면 사려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사려 깊은 방식은 그 날에 가르칠 공과 내용을 미리 떠올려보고, 그것의 참됨을 알게끔 해 주고 싶은 중심 개념을 찾으며, 그런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될 찬송가를 선택하도록 한 학생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젊은이들에게는 그 임무가 사소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히 사려 깊게 행한 우리의 권유는 그들이 도움을 구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면,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 그 찬송가를 부르게 되면, 반주가 시원찮고 노랫소리가 조금은 형편없더라도 평소의 찬송보다 더욱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모임에서 한 학생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방식도 그와 같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업 전에 한 학생에게 개회 기도를 해 줄 수 있는지 물어 볼 수 있습니다. 그 학생이 그 날 수업 내용을 알고 있고,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 안다면, 하나님께 필요한 도움을 달라고 간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실에서 드리는 기도가 더 많은 간구와 감사를 포함하게 되고, 기도하는 학생과 그 간구를 듣는 학생들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영적 생각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한 학생이 노력을 배가하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우리가 공부하는 경전을 매일 읽습니다. 많은 학생이 또한 몰몬경을 읽습니다. 그 내용을 깨닫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신이 읽는 그 말씀이 진리라는 영적인 확증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는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영적인 생각을 나누도록 권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경전을 읽으면서 영적으로 감동받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구절을 우리에게 읽어 주고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런 권유를 한다면, 강력한 연쇄 작용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학생은 경전을 읽을 때 더 주의 깊게 영의 조용한 속삭임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면서 그 느낌이 더 빈번히 명확하게 오게 됩니다. 또한 어떤 경전 구절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한 영적인 속삭임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교실에서 경전의 말씀을 피상적으로만 듣지 않고 그날 경전에서 느낀 생각을 나누는 학생의 감정을 더 잘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교과 과정을 가르치기 전부터 영을 통해 가르침 받게 될 것입니다.
교과 과정
이제 또 다른 도구인 교과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클라크 회장님의 권고를 단순히 참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교과 과정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가르치면서 표준 경전에 담긴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와 그리고 교리를 선포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교과 과정을 고안하는 분들은 그 지침을 주의 깊게 따르고 있습니다. 모든 공과 계획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제언이 그 원리에 따라 준비되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의 정확성을 확인하도록 선지자로부터 부름 받은 분들이 여러분이 받는 교과 과정의 모든 단어, 모든 그림, 모든 도표를 면밀히 검토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교과 과정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준비된 것이라는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그 교과 과정에 깃든 힘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공과를 순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느 정도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몇 주 동안 저는 방송에 출연자들이 힐라맨서를 읽었더라면 뉴스를 얼마나 더 바람직하게 보도했을지를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힐라맨서 내용을 아시고, 또 텔레비전을 시청하신 분이라면 웃음을 지으실 것입니다.) 그 깨달음에 자극을 받은 저는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 교재에서 힐라맨서 7장부터 16장에 나오는 끔찍한 번영의 주기, 교만, 사악함, 재난, 그리고 약속의 백성들이 회개에 이르는 내용을 주의 깊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만약 3월 중에 그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면, 지금 당장 가르치려 할 것만 같습니다. 아주 활발한 반원 토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시 선지자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우리 시대를 보셨습니다. 학생들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지니고 경고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감명받을 것입니다. 그 경전의 가르침이 우리 시대의 위험성에 분명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는 권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영감 받은 교과 과정에서 제시하는 순서를 따를 때 잘할 것입니다. 기꺼이 그렇게 할 때 훨씬 더 강력한 신앙의 공과를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경전이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는 강한 확신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슬프게도 힐라맨서의 말씀은 3월이나 내년 3월, 또는 4년 후의 3월에도 우리의 상황에 비유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대 사건들에 대해 주께서 바라시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완벽한 신앙을 모범을 통해 보일 것이며, 클라크 회장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몹시 큰 잘못을 저지르기보다는 오늘날 선지자들이 주시는 말씀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여러분의 일에 억지로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이든 또 아무리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것에 여러분의 가르치는 일을 부합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세미나리 수만큼 많은 다른 교회들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혼란인 것입니다.”(교회 교육의 진로, 10쪽) 겸손해집시다. 살아 계신 선지자들이 우리 학생들의 마음과 가슴에 쏟아져 내리는, 때로는 끔찍하기도 한 뉴스를 경전을 적용하여 설명하시는 것을 기다리십시오.
교과 과정 내용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그 순서를 따른다면 우리 고유의 가르치는 재능은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교수 제언,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방법, 이용할 수 있는 상호 참조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선지자들의 지시에 순종하여 줄이고 단순화하더라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이 교과 과정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교수법에 적합한 부분을 선택할 충분한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주님께 간구하여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과 과정의 모든 내용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참고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학생들을 아시며 그런 상호 참조 자료와 풍부한 자료들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빡빡한 일정을 아시며 우리 마음속의 소망을 고마워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모든 내용을 언제 읽을 것이며 준비할 것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학생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우리가 얼마나 돕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요청할 때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교과 과정의 어떤 부분을 사용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어떤 참고 자료를 찾아야 할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오랜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것이 수수께끼였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가르쳤던 교사 자질 향상 반에는 “사전 평가” 단계가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그 부분이 언제나 저를 괴롭혔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아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알아내기 위해 그 공과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의 짧은 공과를 가르칠 때에도 각 학생을 사전 평가하는 것은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학생들이 아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하며 추측할 수 있을 만큼 반원이 소수였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기가 몹시 어려울 만큼 반원이 많았기에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아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완전하게 아십니다. 그분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사전 평가를 하여 우리의 가르치는 권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교과 과정의 부분들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날 우리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하늘의 권능이 임하게 해 줄 부분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과 과정에 무언가를 추가해야겠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2월이 그 같은 일을 하기에 적합한 때입니다. 학생들이 수업에 보이는 관심이 부족할 수도 있고 정규적인 참석이 줄어들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을 추가해야 할지 생각할 때 우리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른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들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세상적인 오락을 접하며 끌립니다. 클라크 회장님의 메시지는 우리가 무엇을 추가하도록 선택할지, 어떤 깨달음을 전해야 할지, 어떻게 현명하게 선택할지를 제안합니다. 우리와 미래 세대가 미디어의 영향 속에 흠뻑 빠져서 살게 될 것을 예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간구한다면 어떤 경험이 영을 초대하게 되는지, 어떤 경험이 우리가 추구하는 영의 강한 영향력을 물러나게 할지를 알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에 그분의 말씀 중에 우리를 위해 하셨던 그분의 기도가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제 약속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의로운 수고를 하시는 여러분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고 여러분의 이해를 북돋아 주시며 지혜를 더해 주시고 경험을 통해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인내, 자비를 주시고 또 가장 값진 은사인 분별의 영을 주셔서 의로운 영과 불의한 영을 알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가르치는 자의 심중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곳이 성스러운 장소임을 알게 해 주시며 죄악에 가득 찬 나쁜 행위나 거짓이나 타락한 교리로 오염되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지식에 의로움을 가르치는 기술과 능력을 더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간증이 커져 가기를 바라며 시온의 청소년들을 권고하고 양육하는 여러분의 능력이 매일 커져 그들이 모두 가르침을 받고 양육되고 권고 받으며 격려를 받아 옆길로 나가지 않고 영생을 향해 나아가서 이러한 축복을 받게 되고 여러분도 그들을 통해 축복을 받게 되기를 간구합니다.”(교회 교육의 진로, 12쪽)
클라크 회장님의 축복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을 더 재미있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영을 해칠 수도 있는 음악이나 공연, 연사, 또는 유머를 결코 선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감을 이끌어 내는 질문
이제 저는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통상적인 도구 한 가지를 더 제안하겠습니다. 질문을 하고 답하는 것은 모든 배움과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성역을 베푸시는 동안 질문하고 답하셨는데, 때로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기도 하셨습니다. 교과 과정에는 물어보아야 할 질문들과 생각해볼 질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이 기억해서 답해야 하는 사실에 근거한 단답형 질문들입니다. “누가 힐라맨의 부친이었습니까?” 또는 “이 땅은 누구를 위해 성별되었습니까?”
그러나 어떤 질문은 영감을 불러옵니다. 훌륭한 교사는 그러한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과 어조를 조금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어떻게 인식될까요?” 이런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경전과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말씀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인용해서 답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이 대답할 것입니다. 대부분 적어도 괜찮은 답변 하나쯤은 할 것이고, 학생들의 마음은 고무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이런 식으로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의 면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언제 받아 봤나요?” 그러면 학생들은 느낌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볼 것입니다. 질문한 후에는 누군가를 지명해 답을 듣기 전에, 잠시 기다려 볼 수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 학생들 역시 영적인 경험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신이 임하게 됩니다. 그때 비록 아무도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지자에게서 인도받고 가르침 받는 삶을 영위하도록 축복 받았다는 여러분의 간증을 듣도록 준비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질문함으로써 우리는 확실하게 그들의 마음에 질문이 솟구치게 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것들을 질문할 것이며 또는 그 질문에 대해 선지자께서 주신 답을 우리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우리의 목적을 기억하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학생들이 성신이 확인해 주신 진리를 들음으로써 양육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이고 잘 확립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가운데 어디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면 학생들에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단순하게 말하십시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구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 아주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하늘 천사가 대답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대답이 필요한 모든 질문에 답하신다는 신앙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대답에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인내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제안이 참신하지 않거나 특별히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잠시 장래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을 떠올려 봅시다. 아담한 거실에 작은 어린이 몇 명이 둘러앉아 있는 광경을 떠올려 보십시오. 몇 명은 바닥에 앉아 있고 부모가 된 우리 학생은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습니다. 가정의 밤을 시작하려는 시간입니다. 부모 한 명이 조용히 프로그램을 발표합니다. 어린이들은 평소처럼 하던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 명이 노래를 이끌고 다른 한 명이 기도합니다. 한 명이 영적인 생각을 나눕니다. 그런 이후에 우리 학생이 침대에서 가져온, 오래 써서 낡은 경전에서 몇 구절을 가장 큰 자녀에게 읽게 하면서 간단한 공과를 전합니다. 우리 학생은 지난 주 공과에서 배운 것을 언급하고 다음 주 공과 내용을 말씀합니다. 몇 개의 활동이 이어지고 놀이를 하는데, 시작할 때 함께했고 잠자리에 들 때도 함께할 똑같은 느낌이 존재합니다.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통상적이고 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찰자로서 알아채지 못한 몇 가지가 있는데, 그 몇 가지가 훨씬 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교사인 여러분의 훌륭한 본보기가 오래 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래 가정의 부모들은 어떤 경전 교과 과정을 따를지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공과를 준비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어떤 개념을 가르쳐야 할지, 어떤 경전 내용을 사용할지 알기 위해 기도로 간구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자녀들에게 부탁하여 노래와 기도를 선택하고 영적인 생각을 나누도록 권유했을 것입니다. 또한, 관찰자는 어린 소녀가 매일 밤 경전을 읽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며, 아마도 한 자녀가 눈을 반짝거리며 영을 불러오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살피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회 교육 기구 교사로 일하면서 노력의 열매를 보는 것이 어려운 시절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 권능이 함께하는 위대한 사업에 속해 있습니다. 수확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며 지도자이십니다. 그분께서 그분 사업의 특별한 일부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 노력의 결과를 영화롭게 할 도구들을 두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고 있는 신뢰에 충실할 것이며 그분은 그분의 약속에 충실하실 것입니다. 시온의 젊은이들은 용기를 얻고, 생명의 떡으로 양육 받으며,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 왕국의 기초이며 하늘 왕국의 약속인 영원한 가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교회 교육 기구에 속한 우리는 우리의 진로를 따를 것입니다. 학생들은 몇 년 동안만 우리와 함께 항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모범으로 축복받은 수천 명의 후손과 함께 이 여행의 끝에서 우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충실한 봉사에 사랑을 표하고 계시며 그분께서 수확을 풍성하게 해 주실 것임을 여러분이 알게 되도록 축복을 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