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육체적,” 신앙에 충실함 (2004), 161–62
“죽음, 육체적,” 신앙에 충실함, 161–62
죽음, 육체적 Death, Physical
육체적인 죽음은 영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은 세상에 육체적인 죽음을 가져왔다.(모세서 6:48 참조)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니파이후서 9:6 참조)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죽음을 겪은 후 부활한 완전한 몸을 가져야 한다.
육신이 죽더라도, 영은 계속해서 살게 된다. 영의 세계에서, 의로운 영은 “낙원이라 일컫는 행복의 상태, 곧 안식의 상태, 평화의 상태로 영접되어, 그 곳에서 그들의 모든 곤경과 모든 염려와 슬픔에서 놓여 쉬게 될”(앨마서 40:12) 것이다. 영옥이라고 불리는 곳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의 죄 가운데서 죽은 자들 또는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범법 가운데서 죽은 자들”(교성 138:32)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영옥에 있는 영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 죄 사함을 위한 대리 침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와, … 반드시 알아야 할 복음의 다른 모든 원리도 가르침을 받았느니라.”(교성 138:33~34) 만약 그들이 복음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죄를 회개하고, 성전에서 그들을 위해 행해진 의식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낙원으로 영접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로 인해, 육체적인 죽음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 모든 사람은 부활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영이 자신의 육신과 다시 결합된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그 적절하고도 완전한 구조로 회복되리라.”(앨마서 40:23; 또한 앨마서 11:44~45 참조)
여러분은 어쩌면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에서 고통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때에 슬픔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상, 애도는 가장 깊은 사랑의 한 표현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랑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그리하여 너는 죽는 자들을 잃음을 슬퍼할지니, 특별히 영화로운 부활의 소망을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하여 더욱 슬퍼할지니라.”(교성 42:45)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여러분은 부활에 대한 약속과 가족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여러분은 “슬픔과 또한 기뻐함의 큰 이유를 알게 되나니, 슬픔은 사람들 가운데 죽음과 멸망으로 말미암으며 기쁨은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말미암[아]”(앨마서 28:14; 또한 9~13절 참조)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을 때 위안을 받는 것 이외에, 여러분은 언젠가는 자신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 때 평안함을 지닐 수 있다. 여러분이 복음에 따라 생활할 때 주님의 다음과 같은 약속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죽은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니, 이는 죽음이 그들에게 달 것임이니라.”(교성 4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