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가족으로 하나가 될 거란다
1978년 6월 어느 날 저녁, 가나 케이프코스트의 빌리 존슨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와 그의 신도들은 여느 때처럼 금식을 하는 중이었지만, 이번 금식은 그의 영혼을 고양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신자들이 그와 함께 예배하는 것을 중단하고 이전에 다니던 교회로 돌아갔고 그래서 그는 지치고 낙담해 있었다.
빌리는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다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몇 달 전에는 신도 한 사람이 자신이 받은 계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곧 선교사들이 올 것입니다. 백인들이 우리 교회에 오는 걸 제가 보았거든요. 그들은 우리를 껴안고 우리와 함께 예배했어요.” 또 다른 여성도 비슷한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빌리도 백인 남성 몇 명이 자신의 예배당에 들어와서 “우리는 여러분의 형제이며 여러분에게 침례를 주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그 후 그는 흑인들이 교회에 가입하기 위해 멀리서 오는 꿈도 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는 낙담을 떨치지 못했다.
시간이 늦었지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다 그는 라디오에서 영국방송공사(BBC)의 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BBC는 그가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채널이었다.
그는 아랫부분에 네 개의 동그란 은색 스위치가 달린 갈색 라디오를 꺼냈다. 그가 라디오를 켜자 지지직 소리를 내며 라디오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그란 스위치를 이리저리 돌렸고 그러자 눈금판의 빨간 바늘이 미끄러지듯 앞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방송을 찾을 수는 없었다.
빌리는 한 시간 동안 스위치를 움직인 끝에 마침내 BBC 뉴스의 주파수를 찾아냈다.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이 계시를 받았다고 알렸다. 이제 인종과 관계없이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성이 신권을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빌리는 너무 기뻐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침내 가나에도 신권 권세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대다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본부 청녀 회장단 제2보좌인 아데스 캡도 모든 합당한 남성이 이제 신권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그녀는 생각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계시가 주어졌다. 게다가 이번 계시는 정말이지 아름답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후기에 우리를 인도해 주는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신권에 관한 계시가 발표된 것은 본부 청녀 회장인 루스 펑크가 아데스에게 청녀 회장단이 명예롭게 해임된다는 소식을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회장단은 적어도 10년을 봉사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회장단은 겨우 5년 반 만에 해임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지금 아데스는 주님의 시간표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청녀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새로운 목적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부름이 끝나 가는데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마흔일곱 살인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큰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볼 준비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되어 있는 시기에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기여할 것이 더 있음을 알았다. 아데스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지금은 큰 영향을 미칠 만한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청녀 회장단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해임을 받아들이기가 특히 힘들었다. 그들이 봉사를 시작한 처음 몇 해 동안은 교회 조직의 변화로 일이 더디게 진행됐었다. 아론 신권 상호향상회라는 명칭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고, 그 프로그램 내의 청녀의 위치도 혼란을 일으켰다. 해롤드 비 리 회장이 서거한 후, 새로운 제일회장단은 “상호향상회”라는 명칭을 폐지하고 청녀와 아론 신권이라는 두 개의 청소년 조직을 창설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후에도 아데스를 비롯한 청녀 지도자들은 교회 조직에서 청녀가 차지하는 위치를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런 변화의 결과 소통 채널이 만들어졌는데, 이 방식에서는 본부 회장단이 현지 청녀 지도자들을 직접 훈련하거나 그들과 서신을 주고받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현지 신권 지도자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다. 그후 현지 지도자들과의 소통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본부 청녀 회장은 여전히 제일회장단이나 십이사도 정원회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 그들과의 연락은 중개자 역할을 하는 칠십인 정원회의 회원을 통해 대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청녀 회장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펑크 회장은 청녀 회장단 초기에 청녀들이 영성을 함양하고,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펑크 회장은 이러한 역할이 대중 매체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을 존중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1977년에 첫선을 보였다. “『My Personal Progress』[나의 개인 발전 기록부]”라고 불린 이 프로그램은 청녀들이 영적인 자각, 봉사와 연민, 가사 기술, 오락과 자연 세계, 문화 예술과 교육, 개인 및 사회 교양이라는 여섯 가지 영역에서 기술을 개발하도록 장려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청녀들에게 일지를 쓰도록 권장했는데, 이는 킴볼 회장이 모든 성도에게 권유한 것이기도 했다. 같은 해에 아데스는 자신의 삶과 더불어 과거와 현재의 영웅 격 젊은 여성들의 삶을 다룬 베스트셀러 책인 『Miracles in Pinafores and Bluejeans』[앞치마와 청바지의 기적]를 출간했다.
1978년 6월 말, 아데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은 Monument to Women Memorial Garden[여성 기념 정원 기념상] 헌납식을 위해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었다. 약 2,400평 규모의 이 정원에는 인생의 여러 단계에 있는 여성을 나타낸 12개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이 조각상들은 모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해 후반부에 교회 최초로 개최될 본부 여성 위성 방송과 함께 이 기념상은 복음 계획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기리고,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여성의 공헌을 확언하며, 1842년의 상호부조회 창립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헌납식 당일에는 비가 내렸지만, 2천5백 명의 여성들이 거대한 천막 아래에서 헌납식을 지켜보았다.
헌납식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난 후, 제일회장단은 본부 청녀 회장단을 명예롭게 해임했다. 아데스는 이제 해임을 한결 편안하게 느꼈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낙관적이고, 더 헌신적이고, 더 자신감 있고, 더 감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데스의 감독은 곧 그녀에게 와드의 1년 차 월계반 고문으로 봉사하는 부름을 주었다. 그녀는 최근 본부 회장단에서 얻은 경험을 활용하여 이 열여섯 살 소녀들을 가르치고 훈련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일지에 이렇게 썼다. “나는 주님의 도움으로 내가 개개인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진심으로 믿는다.”
1978년 9월 29일, 킴볼 회장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교회 지역 대표 세미나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할 책임과 의무, 신성한 사명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 회원은 400만 명이 넘었고, 해마다 십만 명이 훌쩍 넘는 개종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는 여전히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행한 일은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제 전 세계에서 2만 6천 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전임으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이는 기존 시설에서 훈련받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였다. 이 거대한 그룹을 준비시키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은 최근 유타주 프로보에 선교사 훈련원을 건립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선교사들은 4주에서 8주 동안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를 비롯한 25개 언어 중 하나를 공부하게 될 것이었다.
새로운 선교 지역은 꾸준히 개설되고 있었다. 제일회장단 대행인 데이비드 케네디는 킴볼 회장의 격려에 힘입어 최근 포르투갈과 폴란드에서 교회의 공식 인가 과정을 도왔다. 이제 그는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스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할 일은 훨씬 더 많았다.
킴볼 회장은 지역 대표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며 가나와 나이지리아에 있는 믿음을 가진 이들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리비아, 에티오피아, 코트디부아르, 수단 등은 어떻습니까? 이 나라들의 이름은 일본, 베네수엘라, 뉴질랜드, 덴마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친숙해져야 합니다.”
중국, 소련 및 기타 여러 국가에도 회복된 복음이 필요했지만, 그곳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교회를 인가하지 않았고 믿음을 가진 현지인도 없었다. 그는 말했다. “현재 지상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지 않은 나라들에 사는 사람이 30억 명에 달합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나라에서 각각 작은 시작을 할 수만 있다면, 머지않아 각 족속과 방언의 개종자들이 자기 백성에게 빛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이 모든 나라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는 성도들이 기도하고 준비하기를 바랐다. 성도들이 교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할 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그 장애물들은 영영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교회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언어를 배우고 선교사로 봉사할 회원들이 필요했다. 그는 지역 대표들에게 “우리에게 올 수 있는 유일하고 지속적인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비롯되는 평화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만방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다음 날, 솔트레이크 태버내클은 연차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킴볼 회장의 요청에 따라 그의 보좌인 엔 엘돈 태너가 연단으로 다가가서 모든 합당한 남성이 인종에 관계없이 신권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제일회장단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을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이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으로 인정하며, 우리는 의사 표시권을 가진 자로서 이 계시를 주님의 말씀과 뜻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의합니다.”
그는 찬성하는 모든 사람에게 오른손을 들라고 요청했고, 수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물었다.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직후, 킴볼 회장은 교회 행정 건물 회의실의 긴 탁자 끝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두 보좌와 몇몇 총관리 역원, 그리고 두 쌍의 노부부인 에드윈과 재너스 캐넌, 렌덜과 레이철 메이비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캐넌 부부와 메이비 부부는 서아프리카에서 첫 선교사로 봉사하기로 하는 데 방금 동의했다. 그렇지만 재너스는 그 부름을 받아들임으로써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의 제1보좌에서 해임되어야 했다.
그들은 선교사들의 임무와 부부들이 가나와 나이지리아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논의했다. 40분 후 모임을 마칠 시간이 되자, 킴볼 회장은 부부들의 충실함에 감사를 표했다.
“질문이 더 있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메이비 장로가 다른 선교사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딱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그가 말했다. “저희가 얼마나 빨리 떠나기를 바라십니까?”
킴볼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마르틴스 가족 가운데 신권 계시에 대해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후다였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리우데자네이루 지역에는 전화가 불통이었고 그래서 가족의 한 친구는 그녀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 왔었다. 그 젊은 친구는 문을 두드리며 알려줄 소식이 있다고 외쳤다.
“교회가 계시를 받았다고 들었어요!”그녀는 이제 합당한 모든 남성이 신권을 소유할 수 있다고 후다에게 말했다.
엘베시오는 직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말했다. “알려줄 소식이 있어요, 놀라운 소식이에요! 엘베시오, 당신이 신권을 소유하게 될 거예요.”
엘베시오는 말문이 막혔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동료였다.
“내 손에 공식 선언문이 있어. 이걸 읽어 주겠네.”
엘베시오는 전화를 끊고 나서 후다와 함께 하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다. 상파울루 성전의 헌납식이 몇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고 네 자녀와 함께 인봉도 받을 수 있었다.
2주 후, 엘베시오와 마르쿠스는 아론 신권을 받았다. 그리고 또 일주일 후, 엘베시오는 장로로 성임되었고, 곧바로 그가 마르쿠스에게 멜기세덱 신권을 부여했다. 마르쿠스는 귀환 선교사인 미리안 아벨린 바르보자와 약혼한 데다 이미 청첩장도 나눠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마르쿠스가 선교사로 봉사할 수 있도록 결혼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1978년 11월 초, 마르틴스 가족은 성전 헌납식에 참석했다. 후다는 합창단과 함께 앉았는데, 가까이에 킴볼 회장과 헌납식에 온 다른 총관리 역원들이 앉아 있었다. 엘베시오는 자녀들과 함께 회중석에 앉았다. 브라질 네 개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헌납식에 참석하도록 허락을 받았기에, 상파울루 북 선교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마르쿠스도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난 11월 6일, 후다와 엘베시오, 마르쿠스는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인봉실로 안내되었으며, 그곳에서 마르쿠스가 증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후다와 엘베시오는 현세와 영원을 위해 인봉되었다. 그러자 흰옷을 입은 어린 세 자녀가 안내를 받아 인봉실로 들어왔다.
세 살배기 딸이 “엄마, 우리 여기서 뭐 해요?”라고 물었다.
후다는 제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이 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가족으로 하나가 될 거야.”
그러자 딸이 말했다. “내가 정말로 엄마 딸이 된다니 정말 기뻐요.”
“넌 이미 내 딸이란다.” 후다가 딸을 안심시키며 확신을 주었다.
가족은 제단 둘레에 자리를 잡았고 인봉자는 의식을 집행했다. 자녀들 중 그 순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의 자녀는 마르쿠스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인봉실에서 경이로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후다와 엘베시오가 보기에 가족이 성전에 함께 있는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들은 기쁨이 차고 넘쳤다.
‘이제 이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야. 정말로 내 아이들.’ 후다는 생각했다.
뉴올리언스의 캐서린 워런은 침례 후 친척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북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로 가는 일이 많았다. 그들 중 많은 이가 얼마 전부터 그 지역에 있는 오순절 교회에 참석하고 잇었다. 캐서린은 회복된 복음에서 얻은 통찰을 그 시간에 전하기도 했지만, 교회에 대한 열정으로 친척들의 진을 빼지 않도록 조심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붓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그녀는 그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신권 계시에 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좀처럼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다. 캐서린은 조카딸 베티 바운챈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다. 베티의 가족은 캐서린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교회에 대해 잘 몰랐고 계시의 중요성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캐서린의 감독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감독은 즉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캐서린 자매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시나요?”라고 그가 말했다.
“네.” 그녀가 대답했다.
감독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마침내 말했다. “자매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저는 자매님을 선교사로 부를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발표가 있은 지 한 달 후, 뉴올리언스 와드의 또 다른 흑인 여성인 프리다 볼류는 워싱턴 디시에 있는 가장 가까운 성전으로 가기 위해 1,600여 킬로미터를 움직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고 대리인을 통해 죽은 남편에게 인봉되었다.
이제 캐서린은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난생 처음 성전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캐서린은 곧바로 성전에 가지는 않았지만 하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다.
어느 날, 베티 바운챈드의 남편 세베리아는 직장 동료가 몰몬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캐서린과 함께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기에 세베리아는 그 동료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세베리아에게 선교사들을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좋아요.” 세베리아가 말했다. “선교사들한테 저희 집에 들르라고 하세요.”
장로들은 그날 밤 세베리아를 방문하여 교회의 최신 선교사 토론 시리즈인 『The Uniform System for Teaching Families』[가족을 가르치기 위한 표준 체계]의 일곱 가지 공과 중 첫 번째 공과를 가르쳤다. 1973년에 출판된 이 공과는 영어를 포함한 20개 언어로 제공되었으며 첫번째 시현, 몰몬경, 신권 회복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었다.
세베리아 가족은 토론을 좋아했고 선교사들과 함께 다음 방문 일정도 잡았다. 베티와 세베리아 모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했으며, 그들은 다른 가족들도 토론에 초대했다. 곧 바운챈드의 집은 선교사들이 올 때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느 주말에 바운챈드 가족을 방문한 캐서린은 우연히 베티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되었다. 베티가 말했다. “아니요. 다음에 가겠습니다. 뉴올리언스에서 고모가 오셨거든요.”
“누군데?” 캐서린이 물었다.
“후기 성도 교회 장로님들이에요.” 선교사들은 일요일 모임에 바운챈드 가족을 초대하고 있었다.
“간다고 하렴.”
돌아온 일요일, 바운챈드 가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루이지애나주 베이커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그리고 뒤이은 선교사 토론에서 그들은 모두 지혜의 말씀과 순결의 법에 순종하고, 십일조를 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이자 구속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견디겠다고 결심했다.
교회를 처음 방문한 지 약 2주 후, 바운챈드 부부는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왜 전화했게요? 저희 침례 받아요, 고모도 침례식에 오셔야 해요!”
침례식이 열리던 날, 집회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10명의 교회 회원들이 밖으로 나와서 베티와 세베리아, 그리고 캐서린의 다른 친척 열한 명을 와드로 맞이했다. 활동실과 침례탕 쪽은 공사 중이어서 침례식 내내 한기가 돌았다. 그러나 강력한 영이 임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온기를 느꼈다.
캐서린은 새로 침례받은 가족들을 마른 수건으로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도해 온 순간이었어요.” 그녀는 교회를 사랑했으며,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과 같은 흑인 회원들이 교회에서 제공하는 모든 축복을 받기를 바랐다.
그녀는 구주께서 성도들을 눈여겨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1978년 11월 18일, 나이지리아 남동부의 앤서니 오비나는 자신의 그룹이 모이는 집회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세 명의 미국인(여성 한 명과 남성 두 명)에게 엄숙하게 다가갔다. 앤서니는 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회소로 달려왔었다. 10년 넘게 그들을 기다린 터였다.
세 명의 미국인은 렌덜 메이비 장로, 레이철 메이비 자매, 에드윈 캐넌 장로였다. 그들은 “앤서니 오비나 형제님이시죠?”라고 물었다.
앤서니는 “네”라고 대답했고, 그들은 집회소로 들어갔다. 건물의 길이는 약 9미터였다. 한쪽 문 위의 벽에는 “LDS”라는 글자가 장식되어 있었고, 다른 문 위에는 “선교사의 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지붕 바로 아래에는 누군가가 “나이지리아 후기 성도”라는 글자를 그려 놓았다.
“길고 힘겨운 기다림이었습니다.” 앤서니가 방문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여러분이 오셨으니까요.”
그러자 캐넌 장로가 말했다. “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충만한 복음이 이곳에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앤서니에게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고, 앤서니는 자신이 마흔여덟 살이고 근처 학교의 보조 교사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해 전에 솔트레이크 성전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나중에 오래된 잡지에서 우연히 그 성전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까지 그는 교회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앤서니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꿈에서 들어가 본 바로 그 건물이 제 눈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된 복음을 주의 깊게 공부했고, 러마 윌리엄스와 서신을 교환했으며, 그동안 나이지리아에 교회가 없어서 슬펐다는 것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간증했고, 자신과 동료 신자들이 진리에 헌신한 이유로 박해를 받았을 때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앤서니가 이야기를 마치자, 메이비 장로는 그에게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들은 옆방으로 들어갔고, 메이비 장로는 나이지리아에 아직 교회가 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침례를 제한하는 법이 있는지 물었다. 앤서니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쁘군요.” 메이비 장로가 말했다. “저희는 형제님의 그룹과 같은 그룹들을 방문하기 위해 앞으로 몇 주 동안 많은 곳을 다녀야 합니다.” 그는 그 그룹들을 방문하는 데 5주에서 6주가 걸릴 수 있으며 그런 후에 선교사들이 다시 와서 앤서니와 그의 그룹에게 침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앤서니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많다는 건 알지만, 저희는 1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메이비 장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침례를 집행해 주십시오.” 앤서니가 말했다.
“여러분 대부분이 정말로 준비되어 있습니까?” 메이비 장로가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앤서니가 대답했다. “지금 신앙이 가장 강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중에 더 가르치도록 합시다.”
사흘 후, 앤서니는 메이비 장로를 만나 교회의 지부를 이끄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밖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선교사들에게 배운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곧이어 앤서니와 선교사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이들이 에케오누미리강가의 한적한 못 근처 둑에 모였다. 못의 지름은 약 9미터였고, 사방에는 울창한 초록 덤불과 나무들이 있었다. 밝은 햇살이 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 수면 위에서 춤을 추었고,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들이 둑 근처를 잽싸게 왔다 갔다 했다.
메이비 장로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앤서니의 손을 잡았다. 앤서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 들어갔다.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잡은 앤서니가 메이비 장로의 손목을 잡자 메이비 장로가 오른손을 들었다.
“앤서니 우조디마 오비나 형제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을 받아, 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침례를 주노라.”
앤서니는 메이비 장로가 자신을 물속에 넣을 때 물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물 밖으로 나오자 둑을 따라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췄던 숨을 내뱉었고 뒤이어 기쁨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앤서니의 아내 피델리아와 다른 열일곱 명이 침례를 받은 후, 그룹은 집회소로 돌아왔다. 앤서니와 그의 세 형제인 프랜시스, 레이먼드, 앨로이시어스는 아론 신권 제사 직분에 성임되었다. 메이비 장로는 앤서니를 아보 지부의 회장으로 성별하고 프랜시스와 레이먼드를 보좌로 성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