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제34장: 어떤 상황도 맞설 수 있는 힘


제34장

어떤 상황도 맞설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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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에게 보급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2004년 10월 15일 아침, 앤 핑그리는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렸다.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 제2보좌인 그녀는 지역의 성도들을 만나고 상호부조회와 신권 지도자들을 훈련하기 위해 산티아고에 온 것이었다.

앤은 모임에서 상호부조회 임원회의 문맹 퇴치 위원회가 제작한 간략한 교육용 소책자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각 소책자는 대략 20여 쪽 분량이었고 『교회 지침서』에 나오는 간단한 원리들이 컬러 사진들과 함께 담겨 있었다. 앤은 상호부조회와 신권 지도자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협력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기 위해 교회의 복지를 다룬 이 소책자를 활용하고 싶었다.

앤은 미국을 떠나기 전에 칠레 지역 회장단의 칼 비 프랫 장로에게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최근에 교회는 칠레에 두 곳의 복지 자원 센터를 열었는데, 각 센터마다 감독의 창고, 취업 센터, 그리고 상담 사무실이 있었다. 본래 복지 자원을 나누어 줄 때는 감독이 상호부조회 회장과 협력해야 했지만 칠레의 감독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다.

앤은 산티아고에서 프랫 장로와 칠레 지역 회장인 프란시스코 제이 비냐스 장로와 가진 첫 번째 모임에서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냐스 장로는 많은 칠레 성도들이 글을 읽지 못하는 탓에 지침서를 찾아보기보다는 관습대로 행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많은 지역처럼, 칠레도 성차별이 심했고 스테이크 회장과 감독들 중에는 상호부조회 지도자들과 상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비냐스 장로는 말했다. “자매님께서 방법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침서에 있는 원리를 배움으로써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한 주 동안 앤은 수백 명의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많은 성도들이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가 최근에 칠레 지역 회장으로 봉사한 것에 대해 감사해했다. 홀런드 장로와 옥스 장로는 각자의 지역에서 1년 동안 봉사하도록 부름받았었지만 제일회장단은 그들이 지역 지도자들을 지원하고 성도들을 강화할 시간을 더 마련해 주기 위해 임무를 1년 더 연장했었다.

홀런드 장로는 칠레의 낮은 회원 유지율과 모임 참석률에 주목하며, 사람들을 교회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선교사들과 일반 성도들과 긴밀히 협력했다. 홀런드 장로는 와드와 지부가 취약한 지역의 신권 지도자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교회의 여러 단위 조직을 개편하여 칠레의 스테이크 수를 115개에서 75개로 줄였다.

또한 그는 3시간이던 일요일 모임을 2시간 15분으로 줄여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부하고, 가족과 함께하며, 어려움을 겪는 회원을 방문하고, 부름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했다. 칠레의 교회는 회원을 유지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많은 성도들은 교회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앤은 상호부조회 및 신권 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주님의 사업 안에서 그들은 협력자임을 일깨우며 다음과 같이 강권했다. “형제님들,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의 모범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복지 위원회 모임과 와드 평의회 모임, 그리고 월례 청지기 모임에서 자매들이 유용한 정보를 나눌 때 그들의 현명한 분별력에 귀 기울이십시오.”

또한 그녀는 상호부조회 지도자들에게 신권 지도자들과 협의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촉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준비한 뒤에 평의회 모임에 참석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십시오. 여기서 말하는 준비란 어려움이나 문제를 찾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해결책과 의견을 가지고 오는 것을 말합니다.”

앤은 복지에 대해 말할 때 오버헤드 프로젝터와 간략한 복지 소책자를 사용하여 지도자들에게 와드 복지 위원회 모임과 가정 방문 방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감독의 요청으로 가정 방문을 하는 것은 상호부조회 회장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책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상호부조회 회장이 자매의 집을 방문한다. 상호부조회 회장은 자매의 필요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 상호부조회 회장이 주의 깊게 들을 때, 상호부조회 회장이 필요사항을 충족할 방법을 제안할 수 있도록 영이 도와줄 것이다. 가정 방문을 하고 나면 상호부조회 회장은 감독이나 지부 회장에게 가서 자신이 알게 된 사항을 보고한다.”

앤은 대부분의 신권 지도자들이 복지에 관해 상호부조회와 협력하는 방법을 명확히 알고 싶어 하며 열린 마음으로 모임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호부조회 회장들 또한 이 훈련에 대해 특히 감사해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모임이 끝난 뒤 여성 한 명이 앤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은 어려웠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게 됐어요.”

나중에 앤은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이 삶에서 보인 선함과 주님의 사업에 대해 나타낸 헌신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상호부조회 본부 임원회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제가 배운 모든 것, 그리고 특히 이 나라에서 제가 본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인도 방갈로르 선교부의 얼윈 킬버트와 동료 선교사들이 새로운 선교부 지도자로서 임지에서 봉사하게 된 브렌트 보넘과 로빈 보넘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보넘 부부는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새로운 선교사 안내서로 훈련을 받고 유타를 떠나 이제 막 인도에 도착한 참이었다.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사들이 영의 인도에 따라 구주의 복음을 가르칠 때 필요한 유연성을 갖춤으로써 만나는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마련된 안내서였다.

얼윈은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수록 이것을 적용할 생각에 신이 났다. 그는 2001년 3월에 고향인 인도 코임바토르에서 교회에 들어왔으며 선교사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침례받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선교사들이 가르쳐 준 구원의 계획 덕분에 위로를 받았다. 이후에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교회 잡지인 『리아호나』에서 선교 사업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 얼윈은 자신도 선교 사업을 나가겠다고 결심했다.

후기 성도 교회의 선교사들이 처음 인도에 들어간 것은 1850년대였으며, 그 후로 인도에는 항상 소수의 성도들이 살고 있었다. 교회가 실제로 성장을 시작한 것은 20세기의 마지막 일이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1980년대에 교회 지도자들은 싱가포르 선교부에서 인도 지역으로 장년 선교사들을 보냈다. 장년 선교사들과 현지 성도들의 노력으로 교회는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십억 명이 넘는 인구 중에 후기 성도는 겨우 5천4백 명 남짓이었다.

인도의 교회는 여러 해 동안 성장이 더뎠다. 인도 방갈로르 선교부가 세워진 지 3년이 지난 1996년, 인도 정부는 인도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교사 수에 제한을 두었다.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힌두교나 이슬람교 신자였고, 기독교나 시크교 또는 불교, 자이나교, 바하이교, 파시교 신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얼윈과 선교사들이 구주와 그분의 교회에 대해 가르칠 무렵, 인도에는 토론에서 가르치는 기본 원리들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얼윈은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가 선교사들이 모든 배경과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복음 메시지를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 토론은 40년이 넘도록 6개 토론의 틀을 유지해 왔었다. 반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사들이 복음 원리를 배우는 데 집중하게 하여 그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해 토론을 더 잘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학습 과정에는 회복, 구원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계명, 복음의 율법과 의식에 관한 다섯 가지 토론이 있었고, 안내서의 다른 장에서는 몰몬경의 역할, 영을 인식함,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발전시킴 등의 중요한 원리들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토론에 나오는 한 주요 문단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아버지의 계획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죄의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으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한 신앙과 힘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보넘 선교부 회장 부부는 선교부에 도착한 후 몇 달간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새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선교부를 준비시켰다. 2004년 8월에 열린 지역 대회에서 보넘 회장 부부는 새로운 교과 과정에 나오는 원리 중 하나인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함”에 대해 말씀했다. 다음 날, 얼윈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새로 도입된 방식은 인도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선교사들은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 동시에 더 큰 책임을 갖게 되었어요.”

9월에 보넘 회장은 얼윈을 인도의 남동부 해안에 있는 도시인 첸나이의 지역 지도자로 불렀다. 얼윈은 지역 모임에서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를 사용해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그들이 복음을 나누는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첸나이에서는 선교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얼윈과 동반자는 메리라는 여성과 그녀의 손자 유바라지를 만났는데, 이 가족은 유바라지가 현지 후기 성도가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회복된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나의 복음을 전파하라』에 나오는 토론을 가르쳤을 때, 메리는 몇 년 전에 사망한 남편에게 인봉되는 것에 대해 특히 관심을 보였다. 선교사들은 메리에게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조정하여 가족의 영원한 속성에 초점을 맞췄다. 얼윈과 동반자는 메리와 유바라지에게 침례를 권했고, 그들은 권유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침례식 날에는 다른 다섯 사람도 함께 침례를 받았다.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홍콩. 스탠리 완은 교회에서 모임을 하다 자리에서 나와 전화를 받았다. 그가 힝클리 회장의 홍콩 성전 부지 선택 과정을 도운 지도 10여 년이 흘러 있었다. 그는 이제 아시아의 칠십인 지역 관리 역원이었으며 지역에서 교회의 복지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교회의 인도주의적 대응 책임자인 게리 플레이크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스탠리는 게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인도네시아의 교회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에서는 쓰나미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뉴스 기사가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그날 이른 아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쪽 해안 인도양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지진의 힘이 바다를 가로질러 퍼져나갔고, 거대한 벽과 같은 바닷물을 육지를 향해 밀어붙였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태국에서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도시와 마을을 강타하여 거리가 침수되고 가옥과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구체적인 숫자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스탠리와 게리는 사태의 규모와 심각성을 깨닫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만나 상황을 가늠하기로 했다. 스리랑카에는 여러 명의 선교사와 850명 정도의 회원들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나 인도와 달리 교회 관리 본부나 현지 교회 직원이 없었다.

스탠리는 전화를 끊자마자 공항으로 출발했다. 스탠리가 한밤중이 다 되어서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스리랑카섬은 기자들과 자선 단체, 그리고 친구와 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스탠리가 방을 예약했던 호텔에서는 더 많은 돈을 낸 손님에게 스탠리의 방을 넘겨 버렸고, 그는 현지 선교사들을 찾아가 그들의 숙소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게리 플레이크가 미국에서 도착했고, 게리와 스탠리는 지부 지도자 및 회원들과 함께 오전 동안 모임을 했다. 그런 뒤 그들은 스리랑카섬을 돌아다니면서 피해 정도를 확인했다.

스리랑카 동부 해안이 가장 피해가 컸으며 그들이 살펴보는 곳마다 집과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도로는 혼란을 피해 빠져나가려는 차들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기차와 버스는 운행이 중단되었고, 군인들이 생존자를 찾는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잔햇더미 옆에서 집을 잃은 채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교회는 코소보, 시에라리온,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난민과 베네수엘라, 모잠비크의 홍수 피해자, 엘살바도르, 터키, 콜롬비아, 대만의 지진 생존자들을 도우며 전 세계에서 재난 구호 활동을 펼쳐 왔다. 그리고 이번에 동남아시아에서는 쓰나미 피해 지역에서 사용될 의료 물품을 화물 운반대 여러 개 분량으로 준비해 주었다. 스탠리와 게리는 교회 인도주의 기금으로 현지 지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줄 응급 의료용품과 식량 등의 자원을 추가로 구입했다. 그들은 또한 교회 회원들에게 지역 집회소를 사용하여 위생용품 키트 등의 구호 물품을 모으도록 지시했다.

스탠리와 게리는 스리랑카에서 며칠을 지낸 뒤에 인도네시아로 가서 게리가 전에 함께 일한 적 있는 인도네시아의 국민 복지 조정부 장관을 만났다.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게리가 묻자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시신을 담을 사체 운반 가방이 필요합니다.”

스탠리와 게리는 베이징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하루에 1만 개의 사체 운반 가방을 운송해 줄 업체를 찾아낸 뒤, 그것들을 인도네시아로 운송하는 과정을 조율했다.

사체 운반 가방이 운송되는 동안, 교회는 쓰나미 피해자들을 위해 텐트와 방수포, 의료용 키트, 중고 의류를 제공했고 힌두교 구호 단체와 함께 70여 톤의 추가 물품을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았다. 스탠리와 게리는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서 보고된 사망자는 수천 명이었고 인도와 태국에서도 수천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지진이 인도 첸나이를 강타했을 때, 얼윈 킬버트는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윈과 동료 선교사들은 전날 밤 지부의 크리스마스 활동에 참석한 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런데 침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얼윈은 동반자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킬버트는 소리쳤다. “왜 침대를 흔드세요, 이미 일어났는데요!”

동반자인 레반스 넬라발레가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지진 때문에 흔들린 거예요.”

인도 남부에서 지진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선교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 교회에 도착했을 때 얼윈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성찬식 모임이 시작된 뒤 지부 회장인 승양은 갑자기 양해를 구하고 단상에서 내려가 예배당을 나갔다. 쓰나미가 해안을 덮쳤다는 소식으로 그의 휴대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승양은 해변 근처에 있던 자신의 집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재해로 피해를 본 성도들의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 건물을 나섰다.

그날 오후에 얼윈과 동료 선교사들은 상황을 알아보려고 해변으로 갔다. 경찰들은 구경꾼들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친 채 말을 타고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물에서 시체를 끌어내고 있었다. 바닷물이 내륙으로 800미터가량 밀려 들어왔던 터다. 해안을 따라 자리 잡고 있던 저지대 어촌 마을들은 황폐해졌고 많은 어부가 배와 장비를 잃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나가파티남도 성한 곳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얼윈과 동료들은 도시 내 두 곳의 지부가 마련한 봉사활동을 돕기 위해 첸나이1 지부의 집회소로 갔다. 교회가 밤사이 약 64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로부터 트럭 여러 대 분량의 보급품을 보내왔었다. 그 후 이틀 동안 선교사들과 회원들은 옷과 침구, 위생용품, 식기가 담긴 구호 키트를 만들고 분류했다.

12월 28일 화요일에 얼윈과 선교사 동료들은 선교부 회장인 보넘을 만났다. 쓰나미가 닥친 후 인도의 후기 성도들은 교회가 제공한 물품을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위생용품 키트를 비롯한 수백 개의 구호 물품을 여러 대의 트럭에 싣고 인도 적십자 기지에 그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보넘 회장과 함께 이동했다.

기지에서 선교사들을 맞이한 남성은 선교사 명찰을 알아보고는 “후기 성도 교회에서 오셨군요. 무엇을 가져오셨나요?”라고 물었다.

선교사들은 손전등과 위생용품 키트, 그리고 수 톤의 옷가지를 가져왔다고 답했다. 그는 기부 물품을 보고 감격하며 트럭들을 몰고 시설로 들어가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거대한 옷더미 주위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작업자들은 더미 속에서 깨끗하고 상태가 괜찮은 옷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다른 종교와 단체에서 온 사람들도 물품을 내리고 있었고, 얼윈과 선교사들도 몇 시간에 걸쳐 트럭들에서 물품을 내려 필요한 곳으로 옮겼다.

얼윈은 서로 다른 단체에서 온 사람들을 보며 모두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을 모으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는 생각했다. ‘선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2005년 5월, 에마 아코스타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엑토르 다비드 에르난데스는 교제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에마는 열아홉 살이었고, 엑토르는 과테말라시티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막 귀환한 상태였다. 둘은 서로 깊이 사랑했으며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대개 몇 년간 교제를 하고 대학 공부를 마친 후에 결혼을 했다.

에마는 최근에 공립대학에 들어갔으며, 학위를 딸 계획이었다. 1년 전 교회의 본부 청녀 총회에서 힝클리 회장은 청녀들에게 진지하게 학업에 임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했었다. “가능한 한 모든 교육을 받[으십시오]. … 훈련은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엑토르 또한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엑토르와 에마는 많은 기혼 학생들이 결혼과 가족 부양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책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을 미루지 말라는 영의 속삭임 또한 느꼈다.

하루는 에마가 엑토르 다비드에게 와드 회원들이 함께 과테말라시티 성전에 간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한 번도 성전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성전에 가고 싶었다.

그러자 엑토르 다비드는 “같이 가서 주님께서 우리 관계에 대해 원하시는 것을 여쭤보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의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에게 연애와 결혼에 대해 질문이 있다면 주님께 인도를 구하도록 당부해 왔다. 에마와 엑토르 다비드는 개인적인 계시를 받기 위해 주님의 집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성전은 인도를 구할 때 주님과 그분의 영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테구시갈파에서 과테말라시티까지는 열네 시간이 걸렸다. 성전에서의 첫 번째 날 아침에 에마와 엑토르 다비드는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받았다. 에마는 탈의실에서 나왔을 때 흰옷을 입은 엑토르 다비드가 침례반 옆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에마에게 침례를 주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엑토르 다비드와 결혼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증거를 받았다.

이후에 엑토르 다비드는 엔다우먼트 의식을 마치고 나서 성전 경내 정원에 있던 에마에게 갔다. 그는 에마의 손을 잡고 포옹했다. 그도 응답을 받은 것이었다. 엑토르 다비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어. 그분께서는 지금부터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실 거야.”라고 말했다.

몇 주 뒤에 에마가 가족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때 엑토르 다비드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방금 에마의 아버지에게 에마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화가 그리 좋게 마무리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에마의 아버지는 후기 성도였지만 한동안 교회에 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에마가 벌써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은 뒤 에마는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가게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녀가 약혼한 것을 축하해 주었지만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에마가 학위를 마치지 못할 것을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할 계획이 있다면 직장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다. 이제 이곳에는 일하러 오지 말거라.”

어디로 가서 일을 찾을지 막막해진 에마는 테구시갈파에 있는 교회의 취업 자원 센터로 갔다. 2002년에 문을 연 이 취업 자원 센터는 성도들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도록 돕기 위해 전 세계에 세워진 수백 개의 센터 중 하나였다. 센터의 안내자들은 현지의 귀환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2001년에 힝클리 회장이 발표한 영구 교육 기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으나 에마는 현재로서는 학자금 대출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에마에게 취업 면접 방법을 조언해 주었고 이력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그들이 알려준 이러한 기술 덕택에 에마는 이내 은행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에마는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아버지는 결혼식 비용은 대겠다면서 결혼은 반대했다. 다른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반대는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어느 날 에마는 홀로 거실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다. “이것은 당신께서 저희에게 명하신 일이고 저는 순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에마의 마음속에 구주께서 물 위를 걸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가려고 했으나 두려워하자 물에 가라앉았던 사실이 기억났다. 에마는 베드로처럼 자신도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때 평화로운 느낌이 에마를 감쌌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너는 폭풍에 집중하고 있구나. 너는 나만 보면 된단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이미 네 마음에 넣어준 것에 집중하거라.”

에마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 그녀의 손을 잡아주시는 것 같았다.


2005년 9월 말, 앤절라 피터슨은 중동에서 오는 고위 정부 관료를 맞이할 준비로 열심히 한 달을 보냈다. 워싱턴 디시의 국제 및 정부 관계 기업에서 일하면서 그녀는 종종 귀빈을 위한 도보 관광, 저녁 식사 및 문화 행사 계획 임무를 받았다.

중동 관료가 도착했을 때, 앤절라와 관료는 이야기 끝에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농촌 지역에서 자랐으며, 가족과 신앙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었다. 관료는 이슬람의 믿음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앤절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자 감명을 받았다.

앤절라는 관료의 체류 기간을 위해 많은 행사를 계획했지만, 며칠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워싱턴은 다 본 것 같아요. 저한테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으세요? 좀 색다른 걸로요?”

그러자 앤절라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워싱턴 디시 성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에 그를 데려가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 몰라 망설였다. 하지만 성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실 한 군데 보여드리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워싱턴 디시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랍니다.”

관료는 기쁜 마음으로 그곳에 가겠다고 했고, 앤절라는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성전 방문자 센터의 책임자인 제스 엘 크리스텐슨 장로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몇 시간 동안 성전을 닫고 관료가 개인적으로 성전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앤절라는 관료를 차에 태우고 아름답고 구불구불한 공원 도로를 따라 성전으로 갔다. 차로 거의 한 시간을 가는 동안, 그는 앤절라에게 교회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으며 그녀는 생각과 말이 아주 명확히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관료는 주의 깊게 경청했으며 첫번째 시현과 몰몬경, 현대의 선지자들, 교회의 전 세계적인 인도주의 사업, 그리고 십일조의 법에 관심을 보였다.

앤절라가 공원 도로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을 즈음에는 저녁이 되어 주님의 집이 노을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성전 경내를 가로질러 가자, 방문자 센터의 그리스도상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크리스텐슨 장로의 안내에 따라 성전 곳곳을 둘러보았고, 그러는 중에 관료의 모국어인 아랍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의 몰몬경 전시 장소도 보게 되었다.

둘러보기가 끝날 무렵, 크리스텐슨 장로는 힝클리 회장이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간증하는 영상을 틀어 주었다. 텔레비전 화면 옆에는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관료는 선언문을 눈으로 읽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제 믿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믿음이기도 하고요.”

도시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관료는 앤절라에게 교회가 가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인상 깊었으며, 자신의 종교처럼 가족에 가치를 두는 또 다른 종교를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관료가 워싱턴을 방문하던 마지막 날, 앤절라는 그에게 가족 선언문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나라의 국민들께 의미 있을 만한 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관료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 “도움이 되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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