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성약 역사 자료: 윌포드 우드럽, 『교리와 성약 역사 자료』(2025)
윌포드 우드럽, 『교리와 성약 역사 자료』(2025)
윌포드 우드럽
(1807~1898)
윌포드 우드럽은 1807년 코네티컷주 파밍턴에서 태어났으며, 1833년 12월에 뉴욕주 리칠랜드 인근에서 침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들어왔다. 1834년에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이주했으며, 미주리주로 향하는 이스라엘 진영 원정대에 참여했다. 그는 1834년부터 1836년까지 아칸소주, 테네시주, 켄터키주에서 선교 사업을 했다. 1836년에는 칠십인에 성임되었다. 이듬해, 그는 커틀랜드에서 피비 카터와 결혼했다. 1837~1838년에는 뉴잉글랜드 지역과 폭스 아일랜드에서 선교 사업을 했다. 1838년 7월에는 계시를 통해, 십이사도 정원회에 생긴 공석을 채우라는 부름을 받았다.(교리와 성약 118:6) 그 후에는 1839년부터 1841년까지 함께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했다. 1841년에는 일리노이주 나부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오십인 평의회 일원이 되었다. 우드럽은 1844년에서 1846년까지 영국 선교부를 감리했으며, 1846~1847년에는 유타 준주 솔트레이크밸리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사십 년 동안, 그는 교회 역사가와 유타 준주의 세인트조지 성전 회장을 비롯한 여러 직책에서 봉사했다. 1887년에 존 테일러가 세상을 떠난 후, 우드럽은 교회의 제4대 회장으로 지지받았다. 그는 1890년 성명서(공식선언 1)를 통해 발표된 계시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복수 결혼 시행이 종식되었다. 1893년에는 솔트레이크 성전을 헌납했다. 우드럽 회장은 1894년에 입양 인봉을 제한하고 결혼 및 부모와 자녀 관계 인봉에 집중하라는 계시를 발표했다. 그는 회원들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 계보를 탐구하고,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봉될 것을” 권고했다. (교회 역사 주제, “인봉” 참조) 그는 1898년 9월에 사망했다.
교리와 성약 참조 성구
교리와 성약 118편, 124편, 136편, 138편, 공식선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