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데살로니가전서 및 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소개 및 연대
바울과 그의 선교 동반자들은 데살로니가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파했지만, 결국에는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후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충실하게 남아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도 복음을 나누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기록했다. 또한,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우려하는 점에 대해 응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거짓 개념이 계속해서 우려를 낳는 것을 알고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데살로니가전서 주해
데살로니가전서 1:5. 말과 능력으로 복음을 가르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인사를 한 후(데살로니가전서 1:1~4 참조), 자신이 그들 사이에서 선교 사업을 할 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으로(데살로니가전서 1:5) 복음을 전파했음을 상기시켰다. 말과 능력으로 복음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하여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참된 복음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말과 능력이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말을 적은 책은 모든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와야 한다. 율법에 순종하여 능력을 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따라 능력이 베풀어지고, 또 베풀어져야만 한다. 복음의 말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거나 글로 표현한 것이다. …
그러나 실제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사용할 때만 온다. 여기서 그 능력이란 신권 권능과 성신의 권능을 말한다. 이런 권능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영혼은 깨끗해질 수 없으며, 거듭날 수 없고, 성신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으며,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도가 될 수 없고, 영으로 성결해질 수도 없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42–43)
데살로니가전서 1:5~9. 개종자들이 복음을 나누다
바울은 개종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들 주위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적었다.(데살로니가전서 1:7) 바울은 그들이 수고하여 복음을 전파한 일을 칭찬하면서,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라고 말했다.(데살로니가전서 1:8) 데살로니가 회원들이 매우 효과적인 선교사들이었기에, 바울과 그의 동반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그 지역에 다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5~6절을 사용하여, 개인적인 개심과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소망 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말씀을 듣고, 그렇게 배운 것으로 말미암아 삶에서 의를 행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품게 되었으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전한 자신의 가르침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기쁨을 느꼈습니다. … 바울은 복음의 메시지가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고 기뻐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들의 최고의 업적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영적인 모범을 보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디서나 사람들을 만나 존경심을 나타내며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행과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해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성도의 벗, 1976년 8월호, 54쪽)
데살로니가전서 1:10; 2:19; 3:13; 4:16~18; 5:2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궁금해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을 바울에게 전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각 장에서 재림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님의 재림이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의로운 성도들에게는 구원, 소망, 기쁨의 때가 될 것임을 성도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했다. 또한 재림 때에 악인들의 멸망, 즉 “장래의 노하심”이 따르지만, 의인들은 건지심을 받을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1:10) 조셉 스미스—마태 1장 4절에서는 구주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종말인 악인의 멸망”이 있을 것이라고 명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더 자세한 가르침을 알아보려면, 데살로니가전서 4:14~5:6 주해를 참조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1~12. 진실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라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행한 초기 성역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들 성구에서 바울이 한 말을 살펴보면, 그가 데살로니가에서 성역을 베푸는 동안 그곳의 비방자들이 바울의 진실성과 동기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과 동반자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성도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봉사했다고 설명했다. 바울이 한 말은 교리와 성약 12편 8절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연상시킨다. “겸손하고 사랑이 가득하며 신앙, 소망 그리고 자애를 지니[는] … 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 일을 도울 수 없느니라.”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을 보살필 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 개인적인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회원 선교사이든 전임 선교사이든 간에 가장 효과적인 선교사는 언제나 사랑으로 행동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이 교훈을 배웠습니다. 저는 저보다 연배가 높은 성공적인 전문 직업인이던 한 저활동 회원을 방문하도록 지명받았습니다. 지난 행동들을 돌이켜 볼 때, 저는 제가 방문했던 그분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정 복음 교육을 100% 달성했다고 보고하고 싶은 소망과 함께 저는 의무감으로 했습니다. 월말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저녁,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동반자와 함께 그날 방문해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꾸짖는 응답은 결코 잊지 못할 교훈을 주었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저녁에는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피곤하군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책을 읽는 중입니다. 당신이 이번 달 가정 복음 교육을 100% 달성했다고 보고할 수 있게 하려고 제가 방해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제 이기적인 동기를 알아차렸다는 생각에, 아직도 제 마음이 뜨끔거립니다.
회복된 복음의 메시지를 들어 보도록 우리가 나아가 권유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오직 그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우리가 귀중하다고 알고 있는 것을 나누려는 비이기적인 소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복음을 나눔”,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8쪽)
데살로니가전서 2:2. “많은 싸움 중에” 전함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선교 동반자들이 “많은 싸움 중에”(데살로니가전서 2:2)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적었다. 이 문구는 바울이 전파하면서 분쟁이나 논쟁을 일으켰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보다는 그가 언쟁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가르쳤음을 시사한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메시지를 완강히 거부했던 이들은 적대적인 유대인과 이방인들이었다.(사도행전 17:5~10 참조) 오늘날 선교사들도 이와 유사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이 했던 것처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헛되지 않은 줄을” 알게 된다.(데살로니가전서 2:1)
데살로니가전서 2:17~18. 사탄은 주님의 사업을 막으려 한다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난 이후로 다시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사도행전 17:10 참조) 그는 사탄이 “막았[기]” 때문에(데살로니가전서 2:18) 그곳에 다시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데살로니가로 다시 가지 못하도록 사탄이 어떻게 막았는지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바울이 여행길을 여러 차례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확실하다.(사도행전 17:13~15 참조) 주님의 종들에 대한 반대와 관련하여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탄은 항상 출현하며, 앞으로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방해하고 봉쇄하고 좌절시키고자 할 것입니다.”(The Teachings of Howard W. Hunter, ed. Clyde J. Williams [1997], 252)
데살로니가전서 3:10, 12; 4:1~10. 믿음이 넘치게 하사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 회원들 간에 이루어지는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데살로니가전서 3:6) 전해 듣고서 매우 기뻐했다. 그런 소식에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속적인 성장과 향상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성도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그들에게 “피차간[에] …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더욱 많이 힘쓰”고, 사랑으로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격려했다.(데살로니가전서 3:12; 4:1, 10)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도 이와 유사한 원리를 가르쳤다. 그는 “제자가 되는 것은 꾸준히 계속 성장하고 향상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Premortality, a Glorious Reality,” Ensign, Nov. 1985, 15)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후기에 지속적인 영적 성장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세력들이 급증함에 따라 한때는 영적인 힘이 충분했을지라도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힘의 성장 면에서도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영적인 힘의 필요성과 그 힘을 얻을 기회 모두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증가 속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Always,” Ensign, Oct. 1999, 9)
데살로니가전서 4:3~5. 순결의 법
바울 시대에 많은 이방인은 혼외정사를 묵인하거나 받아들였다. 데살로니가에서 교회의 새로운 회원들 대부분은 “우상을 버”린(데살로니가전서 1:9) 이방인 개종자였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순결에 관한 복음 원리를 더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5절에서, 바울은 이 회원들이 그리스도의 교회 회원들로서 “음란을 버리고”, “자기의 아내[를] 대”하며(자기 육신을 통제하며), “색욕”(욕정에 가득 찬 격정)에 굴복하지 않도록 해야 함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성적인 순결에 대한 주님의 표준과 관련하여,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성적인 도덕성에 대한 분명한 한 가지 표준이 있습니다. 성적인 관계는 하나님의 계획에 규정된 대로 결혼 관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와 같은 관계는 탐구해 보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며,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추구하는 오락이나 유흥도 아닙니다. 이루어야 할 정복 대상도 아니며, 그저 행하는 단순한 행동도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궁극적으로 이 필멸의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지닌 신성한 본질과 잠재력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정서적, 영적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도덕적 선택의지라는 은사를 받은 행위의 주체이며, 단순히 성적인 행위 또는 동시대의 관점이나 세속적인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받은 신성한 유산에 따라 규정되는 존재입니다.”(“우리는 … 순결을 믿는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42쪽)
데살로니가전서 4:7~8. 성도들을 “부르심은 … 거룩하게 하심이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고 말했다.(데살로니가전서 4:7) 구약 시대 이래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하지 않으며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라는 명을 받았다.(레위기 20:24~26 참조)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개인적인 거룩함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우리의 노력과 하나님의 사업이 결합될 때 얻게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거룩함은 … 신앙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과 의식에 대한 순종을 통해 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신앙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며, 그 마음은 불경스럽고 합당치 않은 것들로부터 정화됩니다.”(“거룩한 곳에 섬”,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62쪽)
데살로니가전서 4:9~12. 거룩함이 커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0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서로에 대하여 사랑하기를 “더욱 그렇게 행하”라고 권했다. 그는 그들에게 조용한 삶을 영위하도록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정직하라고 격려했다.(데살로니가전서 4:11~12) 조용한 삶을 영위하라는 것에 관하여 칠십인 정원회의 브루스 디 포터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개인적인 기도와 공부와 명상은 우리의 영혼 속에 왕국을 세우는 데 절대 필요합니다. … 전능하신 분에 대해 조용히 상고하고 그분과 대화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분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왕국 건설”,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98쪽)
데살로니가전서 4:14~5: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데살로니가의 기독교인들은 사망한 교회 회원들의 운명에 관하여 염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사망한 의인들이 언제 부활하며, 그들이 재림에 참여하게 될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바울은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말라]”라고 말했다.(데살로니가전서 4:13; 또한 앨마서 46:41 참조)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예수 안에서 자는”(데살로니가전서 4:14) 의로운 성도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재림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데살로니가전서 4:16~17 참조; 또한 교리와 성약 42:45~47 참조) 이들은 재림 시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4:14)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서한의 다른 곳에서, 그리스어 parousia(파루시아)라는 말을 사용하여 재림을 언급했다. parousia(파루시아)는 누군가가 도착했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따금 통치자나 황제가 도착했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황제가 지역 사회에 도착하거나 방문할 때는 여러모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시는 날을 위해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현대의 계시에서도 확인된다.(교리와 성약 88:96~98 참조)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후일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했다. “후기 성도들에게 다음의 네 가지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것입니다. (1) 구주께서는 권능과 큰 영광으로 지상에 돌아오셔서 의로움과 평화의 복천년 기간 동안 친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2) 그분이 오실 때 악한 자들은 멸망하고 의로운 자들은 부활할 것입니다. (3) 아무도 재림의 시기를 아는 사람이 없으나 (4) 충실한 자들은 징조를 연구하고 그에 대비하라는 가르침을 받습니다.”(“재림을 위한 준비”, 리아호나, 2004년 5월호, 7쪽)
데살로니가전서 4:17. “함께 … 끌어 올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대해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 후에 살아 있는 그들은 남아 있는 자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많은 기독교인은 재림 시에 의인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구주를 맞이하는 때를 지칭할 때 (“끌려 올라감”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서 파생된) 휴거[raptur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5~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에게 도둑같이 오시지는 않을 것이다
바울은 그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상하지 못한 도둑의 도착에 비유했다.(데살로니가전서 5:2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전에 이런 비유를 사용하셨다.(마태복음 24:43; 누가복음 12:39 참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둠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데살로니가전서 5:4~5)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깨어 있고 방심하지 않는 “정신을 차”린 사람에 비유했다.(데살로니가전서 5:6~8) 악인들은 세속적인 생활에 만취되어 주님이 오시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데 반해, 깨어 있는 제자들은 그런 것의 해를 입지 않는다. 현대의 경전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그리고 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의 오심이 다가오고 있으며 밤에 도적같이 세상에 임하나니—그러므로 너희 허리를 동이고 빛의 자녀가 되라. 그리하면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교리와 성약 106:4~5)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언제 오실는지 나는 모릅니다. 아무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들까지도 이 위대한 진리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4:36~37 참조] 그러나 표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온 땅이 재앙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이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이 나는 것을 보듯이 우리는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압니다. 이러한 표적은 나와 여러분과 지상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사도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며 깨어 있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밤중의 도둑같이 올 것이며, 그때에 많은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구원의 교리, 브루스 알 맥콩키 편, 47쪽)
지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조셉 스미스—마태 1:46~54 주해 및 마태복음 24장 42~51절을 참조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 교회 지도자들을 귀히 여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3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는 이들을 “알고” “귀히 여기”라고 권했다. 바울은 이들 성구에서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서 했던 것처럼 특정한 직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가르침은 (주후 52년 무렵인) 초기에도 교회 지도력에 일종의 체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초기 교회에는 지도자 위계 제도가 없었으며, 지도력의 체계는 훨씬 이후, 아마도 2세기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의 초기 지부의 지도력 체계는 이후 바울의 기록에 묘사된 감독, 장로, 집사에 비해 정식 체계가 덜 잡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은 회복 초기와 비슷한데, 당시 교회 지도부는 처음에는 첫째 장로와 둘째 장로만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 등은 나중에야 구성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마무리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해 몇 가지 실질적인 권고를 전했다.(데살로니가전서 5:6~23 참조) 그 권고의 일부로, 바울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다.(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을 소멸한다는 말은 자신의 삶에서 성신의 영향력을 멈추게 하거나 억누르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에베소서 4:30~31 참조)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우리가 영의 동반을 온전히 누리려면 우리에게서 영을 몰아내는 활동들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우리를 성신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런 것들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하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를 즐겁게 하는 무언가가 우리를 성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면, 그런 류의 것들은 분명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저속하고 무례하며 조심성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므로,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님은 자명한 일입니다. 우리가 피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영을 밀쳐 내므로, 그것은 절대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 우리는 좀 더 주님의 영에 몰두함으로써, 영의 느낌이 올 때 그것을 감지하고 성신으로부터 자신을 물러나게 하는 영향이나 사건을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그리하여 저희가 항상 그의 영과 함께하도록 하시옵소서”,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30쪽)
데살로니가전서 5:21. “좋은 것을 취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헤아”리거나 시험하라고 했다. 이 말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좋은 것을 취하”라는 의미이다.(데살로니가전서 5:21)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좋은 것을 취하”라는 말의 의미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도 바울은 이 훈계의 말씀을 특히 교회 회원들에게 썼다. …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둠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기이한 빛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사도 바울이 교회 회원들을 향해 신앙을 굳게 지키라고 말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 셈이다. ‘좋은 것을 고수하라. 쇠막대를 굳게 잡으라. 간증에 용감하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의 회원들이다. 여러분은 회개와 침례의 문으로 들어왔으니, 끝까지 힘차게 나아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왕국에서 구원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행하라.’”(Doctrines of the Restoration: Sermons and Writings of Bruce R. McConkie, ed. Mark L. McConkie [1989], 347)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악이라면 어떤 “모양”이라도, 다시 말해 온갖 종류의 악을 삼가라고 가르쳤다. 또한, 교회 역원들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을 사용하여, 악을 행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상황마저도 피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 예를 들면, 제임스 이 파우스트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저는 여러분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를 경우 그것을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권고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우리의 행동 중 어떤 것이 옳으며 어떤 것이 그릇된 것인지 일일이 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악뿐 아니라 악의 모양까지도 양심적으로 피하려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 되며 다른 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악마의 목구멍”,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51쪽)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13절에서도 이와 유사한 권고를 했다.
데살로니가후서 주해
데살로니가후서 1:4~9. 악인에 대한 심판
데살로니가후서의 내용은 데살로니가전서와 비슷한데, 아마도 바울은 첫 번째 편지가 전해진 후에도 재림에 관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의문이 완전히 다 해소되지는 못했다는 전갈을 받은 것 같다. 이 서한의 초반에 바울이 했던 몇 가지 말을 살펴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계속해서 박해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데살로니가후서 1:4~9 참조)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데살로니가후서 1:9) 조셉 스미스 역에서는 9절에 나오는 “영원한”이라는 단어의 배치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 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면전에서, 그리고 그분의 영원한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Joseph Smith Translation, 2 Thessalonians 1:9)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연약한 간증을 파괴하려는 악인들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를 대면하는 것보다 연자 맷돌(곡식을 가는 데 사용되는 커다란 돌)이 그들의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태복음 18:5~6; 교리와 성약 121:19~23 참조)
데살로니가후서 2:1~2, 9~15. “흔들리[지] …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바울 시대에 일부 신자들이 주님의 재림이 이미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서 놀라거나 두려워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들의 걱정은 교리적 오해로 비롯되었거나, 바울이 썼다고 하는 위조된 편지의 거짓 가르침에 그들이 속았을 수도 있다.(데살로니가후서 2:2 참조)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회 지도자들이 이전에 가르치지 않은 내용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데살로니가후서 2:15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는 속임수의 위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는 교회의 지도자에 의해 정식으로 성임되지 않은 채로[교리와 성약 42:11 참조] 정치 및 경제적 혼란과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들은 회원들을 그릇되게 인도하[고] … 있습니다.
그러한 속이는 자들은 총관리 역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거나 총관리 역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승인했지만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느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총관리 역원들은 지상의 모든 곳을 끊임없이 여행하는 덕택으로 세상 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며, 예언적인 이해력을 통해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
합당하게 성임되었고 공개적으로 지지받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잘못된 길로 인도되지 않을 것입니다.”(“학식을 얻음이 유익할 것이나…”,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73쪽)
데살로니가후서 2:3. 재림에 앞서 일어날 배도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는 성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바울은 재림 전에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데살로니가후서 2:3) “배교”란 그리스어 apostasia를 번역한 말로, “모반” 또는 “반란”의 의미에 더 가깝다. 이때 바울이 사용한 배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복음에 대항하여 의도적으로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몰몬경에서 니파이는 미래에 대한 시현으로 “이스라엘의 집이 어린 양의 열두 사도를 대적하여 싸우려고”(니파이전서 11:35) 크고 넓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한 것을 보았다. 배도는 종종 단순히 진리를 버리는 소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성약의 공동체 내에서 시작되는 적극적인 모반이다.
제임스 이 파우스트 회장은 신약 시대의 사도들이 어떻게 배도를 분명하게 예언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부 초기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배교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이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기] …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데살로니가후서 2:3; 기울임체 추가]
이 배교와 더불어 신권의 열쇠를 잃게 되었고, 구주께서 조직하신 교회의 일부 진귀한 교리들은 변경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침수로써의 침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를 받음, 각각 별개의 인격체를 지닌 신회의 본질, 모든 인류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사도행전 24:15]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부활하게 됨, 하늘이 닫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지속적인 계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성전 사업 등이 있습니다.
그 이후의 시기는 암흑시대로 알려졌습니다. 이 배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도 미리 예견된 바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두리라.’[사도행전 3:20~21] 회복은 이 진귀한 것들을 잃어버렸을 경우에만 필요할 것입니다.”(“만유의 회복”,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61~62쪽)
사도들의 생애 동안 배도의 과정이 급속도로 시작되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신약전서의 서한들은 이따금 일어나는 반대가 아니라 심각하고 광범위한 배도가 속히 시작되었다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교회 ‘중에 싸움[과] … 다툼’을 피하라고 권고했습니다.(야고보서 4:1) 바울은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과 ‘사나운 이리’가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을 탄식했습니다.(고린도전서 11:18; 사도행전 20:29~31) 그는 배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기 전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으며, 더 나아가 ‘불법[이] …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충고했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 2:3, 7)
말년에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며(디모데후서 1:15), 배도가 이미 만연했음을 인정했습니다. …
사도들은 사방에 만연하고 있는 음란한 성행위와 우상 숭배에 대하여 경고의 음성을 높였으며(고린도전서 5:9; 에베소서 5:3; 유다서 1:7 참조) 요한과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탄식했습니다.(고린도후서 11:13; 요한계시록 2:2 참조) 교회가 악에 사로잡힌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반대했습니다. 바울은 한번은 특별한 상황에서 홀로 된 채로 ‘다 나를 버렸’다고 탄식했으며(디모데후서 4:16),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 사람들의 행위를 꾸짖었습니다.(디도서 1:11)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한 어떤 지역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맞아들이지 않고 거역했습니다.(요한3서 1:9~10 참조)
브리검 영 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신권이 교회로부터 거두어졌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가 신권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Journal of Discourses, 12:69)
베드로, 야고보, 요한 및 바울이 사람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은 과대망상증적인 발로가 아니라 ‘배도[Apostasia]’에 대한 예언적인 경고였습니다.”(“태초부터”, 성도의 벗, 1994년 1월호, 18~19쪽)
데살로니가후서 2:3~9. “불법의 사람”과 “멸망의 아들”
“배교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르침에 더하여, 바울은 “불법의 사람” 또는 “멸망의 아들”이 주님의 재림에 앞서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데살로니가후서 2:3) 멸망[perdi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perditionem의 파생어로, “몰락” 또는 “파멸”을 의미하며, 루시퍼가 전세에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을 때 그가 받은 칭호였다.(교리와 성약 76:26 참조) 전세에서 사탄과 함께 하나님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났을 때 멸망의 아들이 되었다. 바울은 또한 “불법의 사람”을 “신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 …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는 사람으로 묘사했다.(데살로니가후서 2:4) 데살로니가후서 2장 7~9절에 대해 조셉 스미스 역에서는 바울이 사탄을 언급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밝힌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지금 활동하는 자가 그라, 때가 차서 그가 옮겨질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그가 활동하도록 버려두시리라.
그 후에 저 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기의 입의 기운으로써 그를 소멸하시며 주의 오시는 광채로써 멸하시리라.
그러하도다, 주 곧 예수께서는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으로 행하는 사탄의 역사로 인해 배도하는 일이 이른 후에야 강림하시리라.”(경전 안내서)
복음 및 현대 경전의 회복으로 대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회복되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 바울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말했다. 신약 시대에 비밀이라는 단어는, 감추어졌으나 이미 드러났거나 앞으로 드러날 것들을 의미한다.(골로새서 1:26 참조) 따라서 사탄이 하나님의 교회를 반대하고 파괴하기 위해 감추었던 일들을 하나님의 종들이 드러내게 될 것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 2:10~12. “진리의 사랑”
사탄의 속임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바울은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할 사람들에 관하여, 바울은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내버려두실 것이며, 그리하여 그것으로 그들의 구원을 박탈하실 것이라는 뜻이다.(데살로니가후서 2:10~12; 또한 야곱서 4:14; 앨마서 12:10~11 참조)
데살로니가후서 3:6, 11~15. “[무질서하게] 행하[는] … 모든 형제”
바울은 “[무질서하게] 행하”는 교회 회원은(데살로니가후서 3:6, 11) 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누리지 못한다고 가르쳤다.[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무질서하게(disorderly)”가 “게으르게”로 번역되어 있음—옮긴이] 바울은 특히 일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부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다.(데살로니가후서 3:10~12 참조) 우리 시대의 교회 회원들도 진리를 반대하는, 무질서한 사람들과 친교를 맺지 않도록 권고받는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원으로 인도하는 교리와 관례를 왜곡하는 내부의 적, 대업의 배반자, 사이비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에게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증원된 영혼들은 자신이 기대했던 하늘 왕국의 유산을 상실하게 된다. 사이비와 적들이 일신을 바쳐 교회를 반대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전향시켜 자신들과 같이 분열을 일으키는 대열에 세우고자 할 때, 바울이 여기에서 알려 주었듯이 지혜로운 행동 방침은 그들을 피하고, 그들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66; 또한 마태복음 5:29~30 주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