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마태복음 13~15장
마태복음 13~15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13~15장의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바리새인들로부터 점점 더 심한 반대를 받던 시기에 일어났다.(마태복음 12:14; 15:1~20 참조) 구주의 공식적인 성역 기간 중 이 시점부터는 청중의 영적 수준에 맞는 교수법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비유법이었다.(마가복음 4:34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를 사용하여 천국, 즉 교회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앞으로 있을 배도와 후기의 회복에 대해서도 가르치셨다.(Bible Dictionary, “Kingdom of heaven or kingdom of God”“Parables” 참조)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기록은 자연력을 다스리는 구주의 권능을 보여 주는 예이다. 이 사건은 구주께서는 물 위를 걷고 폭풍을 잠재우실 수 있는 분이며, 제자들이 거센 반대에 부딪힐 때 바로 그 구주께서 그들을 영적으로 강화하고 평안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려 준다. 폭풍우는 또한 당시 주님과 제자들이 직면한 반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강화하고 치유하는 구주의 권능은 마태복음 15장에 묘사된 여러 병고침의 예에서 더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3~15장 주해
마태복음 13장 비유
마태는 13장에 구주의 여덟 가지 비유를 기록했다. 비유라는 단어는 “비교” 또는 “나란히 놓는 것”을 의미한다.(Bible Dictionary, “Parables”)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된 여덟 개의 비유는 “천국”을 사물과 비교한다. (“천국”의 정의를 보려면, 마태복음 13:11 주해를 참조한다) 종종 비유의 의미는 맥락상의 단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비유의 대상이 되는 청중이나 예수께서 대답하신 질문 같은 것들 말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가르쳤다. “저에게는 경전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질문해 봅니다. 이 답은 어떤 질문에서 나온 것인가? 또는 예수께서는 어떤 연유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가? … 우리는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그 근원으로 가서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그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History of the Church, 5:261)
구주께서 직접 해석을 해 주신 경우도 있다. 예들 들면,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밀과 가라지의 비유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셨다.(마태복음 13:3~8, 18~30, 36~43 참조) 보통 하나의 비유는 한 가지 의미로 해석하지만, 하나의 비유에서 현대의 여러 상황에 적용되는 많은 교훈과 진리를 찾아낼 수도 있다.
제일회장단의 휴 비 브라운(1883~1975) 회장은 구주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은 평범한 일상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은 꾸며 낸 허구가 아니었다. 직접 인간 가운데에서 생활하시면서 관찰한 것을 생생하게 말로 묘사하신 것이었다. 그분은 들판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 양을 치는 목자, 회개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온 아들,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등을 보셨으며, 세리와 바리새인을 아셨고, 혼인 잔치에 참석하셔서 어리석은 처녀들의 등잔에 기름이 떨어진 모습도 보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실생활의 풍부함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분이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은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Eternal Quest, sel. Charles Manley Brown [1956], 181)
마태복음 13:3~52. 집합에 대한 비유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마태복음 13장에서 구주께서 말씀하신 비유들이 신약 시대와 더불어 후기에 복음이 지상에 세워지는 때에 사람들이 교회로 집합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가르쳤다. “성 마태의 복음서 13장에 기록된 구주의 말씀은 … 성경에 기록된 어떤 내용보다도 집합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더 명확히 이해하게 해 준다.”(History of the Church, 2:264)
다음 표에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 관해 가르친 것의 일부가 요약되어 있으며, 각 비유가 이스라엘의 집합과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복천년에 이르기까지 천국(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운명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 |
집합 |
---|---|
씨 뿌리는 자(3~23절) |
복음이 전파될 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또한, 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절정의 시대에 세워졌다.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말씀의 전파로 초래되는 효과를 명시하기 위해 전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비유가 그 당시[신약 시대]에 왕국의 도래, 곧 시작을 직접 암시하고 있다고 믿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297쪽) |
밀과 가라지(24~30, 36~43절) |
신약 시대에 의로운 자들과 사악한 자들은 함께 자랐고, 결국 대배도로 이어졌다. 후기에 그들은 함께 자라 세상의 끝이 되었을 때 악인들은 멸망하고 의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거둬질 것이다. “우리는 이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결실을 맺은 좋은 씨에 비유된 구주 시대의 왕국이 세워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가라지에 비유되고 원수가 심었으며 구주께서 제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셨다면 뽑혔을, 즉 교회에서 없애 버리고자 한,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분께서 너희의 소견은 정확하지 않으며 교회는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이같이 성급한 조치를 취하면 가라지와 더불어 알곡, 즉 교회까지 망칠 수도 있으니 추수 때까지, 즉 세상의 종말까지 함께 자라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종말은 악인의 멸망을 뜻하며, 그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99쪽) |
겨자씨(31~32절) |
교회는 후기에 회복될 것이다. “‘천국은 마치 … 겨자씨 한 알 같으니’[마태복음 13:31~32] … 이 상징은 후기에 나아올 교회를 상징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 몰몬경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신앙으로 이것을 취하여 자기 밭에 감추고 마지막 날, 곧 때가 이르는 날에 싹이 나게 했습니다. 정말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 땅에서 나와서, 가지가 높게 뻗어 하나님과 같은 위엄을 지니고 거대하게 되어, 겨자씨와 같은 작은 것이 모든 풀 중에서도 가장 크게 될 때까지 지켜봅시다. …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권능과 은사와 천사를 내려 보내시어 그 가지에 깃들게 하십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300~301쪽) |
누룩과 새것과 옛것(33, 52절) |
후기 성도 교회는 세 증인의 간증과 후기의 경전들이라는 누룩의 도움으로 온 땅 위에 퍼질 것이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태복음 13:33] 이 말씀은 후기 성도 교회가 단 세 사람의 증인에게 넣어진 작은 누룩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유와 일치하는 사실입니까! 이 누룩은 조그만 부분부터 시작하여 곧 전부를 부풀릴 것입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마태복음 13:52] 이 비유가 적용되는 예로, 마음의 곳간에서 나오는 몰몬경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후기 성도들에게 주어진 성약들[교리와 성약], 또한 성경의 번역은 곧 마음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어 오는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순화되고 있는 가루 서 말에 대한 응답이요, … 그것은 반죽을 모두 부풀게 한 누룩이 상징하는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302~303쪽) |
의인들의 집합. “성도들은 [감추인 보화와 같은] 방식으로 일합니다. 후기 성도 교회를 보십시오. 회원들은 가진 것을 모두 팔고 상속의 땅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소로 모이며, 재난의 시대에 서로의 고난을 짊어집니다. … 시온과 시온의 스테이크와 잔류민을 위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시온을 위한 장소, 즉 값진 진주를 찾으면, 즉시 가진 것을 팔아 그 장소를 삽니다.”(History of the Church, 2:272) 교회 초창기에 성도들은 나부나 솔트레이크시티처럼 지리적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한 장소에 모이도록 권유받았으나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 머물고 자신이 사는 도시와 마을에 교회를 세우도록 권유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
그물(47~50절) |
교회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 [마태복음 13:47~48]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 요셉의 후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의 그물을 세상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좋은 것들은 준비한 그릇에 담겨지고 나쁜 것들은 천사가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301~302쪽) |
마태복음 13:4~8. 서로 다른 유형의 토양(또한 마가복음 4:1~20 참조)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또한 토양의 비유로도 불림) 밭은 세상을, 씨 뿌리는 자들은 사도들을 나타낸다. 토양의 유형이 서로 다른 것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서로 다름을 나타낸다. 구주께서는 “천국 말씀”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가르치셨고(마태복음 13:19), 이 비유는 사람들이 복음 말씀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묘사한다.
길가는 밭 주변이나 밭을 가로지르는 길을 의미한다. 그곳은 농부들이나 행인들이 빈번히 그 위를 지나다니므로 땅이 단단해졌다. 길가는 단단한 땅이어서 씨가 떨어져도 땅 속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새들이 쉽게 찾아서 먹어버렸다. 돌밭은 비옥한 흙이 얇게 덮인 돌투성이 지면이다. 여기에서는 씨가 뿌리를 얕게 내릴 수는 있어도 바로 아래에 있는 돌 때문에 뿌리가 더 깊이 박히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 식물은 대낮의 뜨거운 열기를 버틸 수 없었다. 가시떨기로 덮인 땅은 비옥했지만 이미 가시나무와 잡초가 가득하여 생산적인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물과 양분을 빼앗아 버렸다. 좋은 땅은 비옥한 땅이고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정도의 깊이가 있어서 식물이 자라나 다양한 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마태복음 13:10~12. “있는 자는 받아”(또한 마가복음 4:11~12 참조)
주님께서 마태복음 13장 12절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니파이후서 28장 30절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내가 더 줄 것이며, 우리는 넉넉히 가졌노라 할 자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임이니라.”(또한 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13:10–11 참조) 따라서 구주께서 마태복음 13장 12절에서 하신 말씀은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는 받[게 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복음을 이해하는 일에서 개인의 선택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조차도 받으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몰몬경에는 이 원리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구절이 나온다. 거기에는 사람이 영적인 진리에 대해 계속해서 강팍한 마음을 먹으면 한때 있었던 영적인 지식마저도 잃게 된다고 나온다.(앨마서 12:10~11 참조)
마태복음 13:11. 하늘 왕국
“천국”이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13장에 여덟 번 언급되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마태복음에서 사용된 “천국”이 “교회와 지상에 있는 하나님 왕국,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정의 시대에 공식적으로 세우고 조직하신 교회”를 뜻한다고 설명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296; 또한 Bible Dictionary, “Kingdom of heaven or kingdom of God” 참조)
마태복음 13:13.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구주께서는 영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의미를 숨기고, 받을 준비가 된 자들에게는 위대한 진리들을 드러내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셨다.(마태복음 13:10~16 참조) “비유는 듣는 사람에게 신앙과 예지에 비례해서 종교적 진리를 전달한다. 둔하고 영감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비유는 그저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가르침을 받은 영적인 사람에게 비유는 천국의 기이한 것들과 비밀을 드러낸다. 따라서 비유는 모든 참된 지식의 조건을 나타낸다. 오직 구하는 자만이 찾게 된다.”(Bible Dictionary, “Parables”) 따라서 구주의 비유들에는 그 안에 담긴 진리들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권유가 함축되어 있었으며, 그렇게 하는 이들은 더 큰 깨달음을 상으로 받았다.(마태복음 13:10, 36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왜 일부 사람들이 비유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보여 주는 간단한 예를 들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씀을 들으나, 그들 중 하나는 게으르고 무관심하여 듣고 나서는 무시해 버리거나 잊어버리지만, 그 말씀이 전하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배우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로 들은 부지런한 자는 명령받은 대로 즉시 행한다. 한 사람은 현명하나 또 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한 사람은 영원한 이익을 얻게 되나, 한 사람은 영원한 정죄를 받게 된다.”(예수 그리스도, , 300쪽)
마태복음 13:23.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되도록 준비하라(마가복음 4:20; 누가복음 8:15 참조)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복음 메시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우리 생활 속에서 신앙의 씨가 자라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사탄의 손아귀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판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매일 겸손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힘과 용서를 간구하며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한 감정을 극복함으로써 땅을 써레질하여 골라야 합니다. 우리는 최선의 능력을 다하여 계명을 지킴으로써 모판을 준비해야 합니다.”(“씨와 땅에 관하여”,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57쪽)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영적인 것들에 우리 마음을 열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선지자들이 가르친 교리입니다. 앨마는 하나님의 말씀에 큰 권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말씀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인 것을 볼 수 있게 인간의 사고를 열어 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도 합니다.”(“교리를 가르치는 일이 미치는 권세”,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85쪽)
마태복음 13:24~30, 36~43. 밀과 가라지의 비유
“[가라지]라는 단어는 독보리를 뜻하는데, 이것은 독이 있는 잡초이며 이삭이 팰 때까지 밀과 비슷한 모양이다.”(Bible Dictionary, “Tares”) 구주께서는 가라지를 모아 태우는 것은 이 세상이 끝날 때 악인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셨다.(마태복음 13:38~42 참조) 제일회장단의 매리온 지 롬니(1897~1988)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악함과 파괴의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졌으며 … 밀을 모으는 속도도 그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라지들은 스스로 다발로 묶이고 있으며, 밭을 사르도록 준비되고 있습니다.”(Conference Report, Oct. 1966, 53)
주님은 마태복음 13장 36~43절에서 이 비유에 대해 설명하셨고, 이에 더하여 교리와 성약 86편 1~7절에서도 이 비유가 어떻게 배도, 회복, 그리고 세상의 종말에 적용되는지를 분명하게 밝히셨다. 주님은 또한 이 경륜의 시대에 밀을 모으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라지를 태우는 것은 그분이 승리자로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01:63~68 참조)
마태복음 13:31~32.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또한 마가복음 4:30~32; 누가복음 13:18~19 참조)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나무로 자라서 그 가지에 새들이 거주하며 보호를 받는다. 1830년에 교회가 회복되었을 때, 교회는 작은 겨자씨와 같았다. 그 이후로 교회는 그 ”가지”가 지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 뻗어 있고 그 회원들이 그 안에서 영적인 “집”을 얻고 세상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구주께서는 겨자씨의 비유를 사용하여 당신의 교회가 작은 시작에서부터 매우 큰 조직으로 성장할 것임을 가르치셨다.(다니엘 2:44; 교리와 성약 65:1~2과 비교)
윌포드 우드럽(1807~1898) 회장은 1834년 4월에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에서 열린 신권 모임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형제들에게 전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 주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교회와 왕국의 운명에 대해 어머니의 무릎에 있는 아기만큼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계십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은 이곳에서 오직 몇 명의 신권 소유자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북미와 남미 대륙을 채울 것이며, 온 세상을 채울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137쪽)
마태복음 13:35.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
마태는 구주의 비유들이 “창세부터 감추인”(마태복음 13:35) 진리들을 드러냄으로써 예언을 성취했다고 기록했다.(시편 78:2~3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장로는 주님께서 우리 시대에도 그러한 진리를 계속해서 드러내고 계신다고 가르쳤다. “주님은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마태복음 13:35] 드러내기로 오래전에 계획하셨습니다. 몰몬경에 기록된 계시들이 거기에 포함됩니다.[니파이후서 27:10 참조] 또한 거룩한 성전의 의식과 성약들도 거기에 포함됩니다.[교리와 성약 124:40~41 참조] 주님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창세 이전부터 감추어져 온 것들, 때가 찬 경륜의 시대에 관한 것들을 내가 나의 교회에 드러내려고 생각하고 있음이니라.’[교리와 성약 124:41]”(“굳도다 그 기초”, 리아호나, 2002년 5월호, 84쪽)
마태복음 13:44~46.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는 세부 사항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각각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귀히 여기는 물건, 즉 보화와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 두 비유에서 모두 귀히 여기는 물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징한다. 두 비유를 나란히 놓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큰 가치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비유의 한 가지 차이점은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방법이다. 밭의 보화는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상인은 진주를 얻으려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연히 알게 되었든 목적을 갖고 찾아다녀서 알게 되었든에 관계없이, 복음을 얻는 일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할 만큼 가치가 있음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 13:55~56.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
마태복음 13장 55~5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 구성원에 대해 사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뒤이어 요셉과 마리아는 최소한 여섯 자녀, 즉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그리고 한 명 이상의 딸을 두었다. 야고보는 후에 사도로 부름받았다.(갈라디아서 1:19 참조) 많은 사람들이 이 성구에 아버지 요셉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태복음 14:1~12. 침례 요한의 죽음
침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14~29 주해를 본다.
마태복음 14:13~14. “불쌍히 여기사”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따로 빈 들에 가신 이유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가능한 이유로 그분이 침례 요한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애도하러 가셨다는 추측은 해 볼 수 있다.(마태복음 14:13 참조) 예수께서는 혼자 있고 싶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는 무리를 보았을 때는 노하거나 성가시게 여기시지 않고 연민을 보이셨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구주께서 보이신 연민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구주의 크나큰 동정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동정심이라는 말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길을 보여 주셨으니 그분은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을 표시해 놓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사심없는 봉사 그 자체였습니다. … 구주께서는 모든 성역 기간 동안 … 이웃 사랑을 몸소 보이셨습니다.”(“주님의 길”, 성도의 벗, 1996년 7월호, 55쪽)
마태복음 14:15~21. 오천 명을 먹이심(또한 마가복음 6:34~44; 누가복음 9:11~17; 요한복음 6:3~14 참조)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6:32~44 주해 및 요한복음 6:15 주해를 본다.
마태복음 14:22~33. 예수께서 “밤 사경에”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시다(또한 마가복음 6:45~52; 요한복음 6:15~21 참조)
로마인들은 밤 시간을 네 개의 경으로, 즉 대략 저녁 6시~9시, 9시~자정, 자정~새벽 3시, 새벽 3시~새벽 6시로 구분했다. 구주께서 밤 사경에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마태복음 14:25 참조), 그들은 역풍에 맞서 밤새 노를 젓고 있었다. 수잔 더블유 태너 자매는 본부 청녀 회장으로 봉사하던 당시에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린다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로 오실 것이라고 간증했다.
“저는 [주님의] 친절하신 자비와 기적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들은 그분이 정하신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옵니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가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갈릴리 바다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새도록 역풍을 맞으며 힘들게 노를 저은 후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우러 오셨습니다. 그분은 밤 사경인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6:45~51 참조) 때로는 밤 사경이 되어서야 오겠지만 저는 기적이 분명히 온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나의 영혼은 주의 것을 기뻐하며”,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2~83쪽)
마태복음 14:26. “제자들이 … 보고 …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구주께서 물 위를 걸으신 기록을 들어, 두려움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분에게 나아가는 데에서 방해가 되는지를 설명했다.
“경전의 이 기록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첫 걸음, 또는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는 첫 걸음이 공포감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두려움이 없어야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큰 역설 가운데 하나는 필멸의 인간이 지닌 근시안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과 안전을 제공하는 그 근원으로부터 우리가 도망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저는 침례를 안 받으려고 달아나는 구도자들, 선교사 부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로들, 결혼을 피해 도망가는 연인들, 그리고 가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젊은 부부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무나 자주 우리를 축복하고, 구원하고, 위로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칩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복음의 의무와 계명들을 두려워하고 저버려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Come unto Me”[Brigham Young University fireside, Mar. 2, 1997], 8; speeches.byu.edu)
마태복음 14:27~31.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와(마태복음 14:27) 같은 표현은 표준 경전에 여러 차례 나온다. 이렇게 안심하라는 말은 대개 사도 등의 어떤 개인이 절망하거나 좌절스런 상황에 있을 때 구주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제자들은] 큰 곤경에 빠져 있던 순간에 어둠 속에서 겉옷을 펄럭이며 굽이치는 물결 위로 걸어오는 어떤 형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물 위를 걸어오는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마치 우리들이 인생의 어둠 한가운데서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대양을 조그만 배로 저어 나갈 때처럼 폭풍우와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근원적이고 위안을 주는 평화로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성난 파도 위를 걸어가는 동안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물방울에 옷이 젖을지라도 모든 것이 안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흔들려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성난 파도와 자기 밑에 있는 어두운 소용돌이로 시선을 돌리자, 곧바로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대부분의 우리들처럼 그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손을 내밀어 물에 빠진 제자를 붙잡으시며 부드럽게 나무라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 (Farrar, The Life of Christ, pp. 310–13에서 각색; 마태복음 14:22~33 참조)
저는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지역 사회와 국가로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불신앙의 세찬 파도를’ 이기고 확신에 차 걸으며 ‘의심의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두려움 없이’ 남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그분에게서 눈을 돌린다면, 그러기가 쉽고 또 세상은 그렇게 하도록 크게 유혹하기에, 우리가 우리를 돕고 또 구할 수 있는 그분을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하고 파괴적인 요소들이 지닌 힘과 맹렬함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필코 다툼과 슬픔과 절망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엄청난 파도에 압도당하여 물속에 잠길 것 같고 우리 신앙의 배가 깊은 바다에 삼켜질 것 같을 때 우리 모두가 폭풍우와 어둠 가운데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4:27)라는 세상의 구주의 부드러운 음성을 항상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항구에서 비치는 불빛”,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19쪽)
마태복음 14:30. “바람을 보고”
베드로가 주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된 것은 세찬 바람 때문이었다. 패트리시아 피 피네거 자매는 본부 청녀 회장단 제2보좌로 봉사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구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오늘날의 방해 요소들을 나열했다.
“[베드로가]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곧 ‘바람’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자, 그는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활에서 바람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그분에게서 돌려놓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우리의 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해 줄 것을 생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5:44 참조) 그것은 우리가 TV나 비디오, 음악을 통해 듣는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소리일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요한복음 12:37 참조) 언제나 방해가 있고, 바람도 불겠지만, 우리가 주님께 향하고, 주님을 믿고, 그분을 따를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키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주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 14:30~31]”(“신앙이 증가됨”,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95쪽)
마태복음 15:1~9. 씻지 않은 손
씻지 않은 손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마가복음 7:1~13 주해를 본다.
마태복음 15:8.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장 8절에 기록된 것처럼 구주께서는 이사야 29장 13절을 인용하시며 그 말씀을 당시의 백성들에게 적용하셨다. 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최후의 심판 때에는 우리가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세상의 제도는 우리에게 뭔가를 알도록 가르치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뭔가가 되도록 권유합니다. …
…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32) …
예수께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들에게 요구하신 개심에는(마태복음 18:3 참조) 그저 복음이 진실함을 증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간증한다 함은 알고 선언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개심’할 것을 권유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행함과 됨됨이가 요구됩니다.”(“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과제”,리아호나, 2001년 1월호, 40~41쪽)
마태복음 15:21~28. 가나안 여자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었으나 이방인들에게는 아직 전해지지 않았던 시기에,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약속된 메시야로 알아보았다. “개”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집에서 키우는 작은 애완용 개를 가리켰다. 그런 애완동물은 상에 앉은 사람이 주는 음식이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었다. 구주께서 이스라엘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그 여자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은 상에서 버려진 것을 먹도록 허락한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신이 이스라엘의 상 옆에서 구걸하는 자임을 겸손히 인정했다. 구주께서는 그녀가 표현한 신앙을 칭찬하셨다.
이 부분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가져가려는 주님의 계획과 관련된 기록으로, 마태복음의 주제 중 한 부분이다. 이 여자는 이방인이었음에도 큰 신앙이 있었지만, 제자들은 예수께 그녀를 내보내시라고 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셨다. 제자들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할 때가 왔을 때(마태복음 28:19~20 참조) 그들은 이 여자와 같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을 찾게 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마태복음 15:29~39. 사천 명을 먹이시다(또한 마가복음 8:1~9 참조)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8:1~9 주해를 참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