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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28장
마태복음 27~28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27~28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겪으신 엄청난 고난과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마태는 이런 사건들과 그 밖의 관련 사건들이 어떻게 예언을 성취시켰는지를 보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조롱과 재판에 이어 로마 군병들에게 학대를 받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시신은 무덤에 안치되었다. 그 주의 첫날, 동틀녘에 주님의 천사가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 직후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부활하여 구주의 부활을 통해 온 인류의 부활이 가능해졌다는 진리를 증명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갈릴리의 약속된 장소에서 제자들을 만나 복음을 온 나라에 전파하라고 명하셨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생애와 사명 가운데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속죄의 절정이었습니다.”(“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 리아호나, 2001년 4월호, 16쪽)
마가복음 27~28장 주해
마태복음 27:1~10. 가룟 유다의 죽음
마태는 분명히 동료 사도인 유다의 자살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 또한 예언의 성취였음을 알았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가룟 유다의 죽음을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배반 행위에 앞서 은 삼십이 아무리 탐나는 것이었을지라도 이제는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극도의 괴로움을 느낀 나머지 유다는 은 삼십을 버렸고, 그리하여 스가랴가 메시야에 대해 예언하며 그 돈에 대해 세세히 언급한 나머지 내용이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니라.]’ (스가랴 11:13~14)”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798)
마태가 인용한 구약전서 내용은(마태복음 27:9~10) 저자를 예레미야로 언급하긴 했지만 스가랴 11장 12~13절에 나오는 말씀과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이(아마도 예레미야 18:2; 19:1~2) 합쳐진 것일 수도 있다. 초기 기독교 저자들은 구약전서에 나오는 예언들을 훤히 알고 있었기에 이따금 여러 출처에 나오는 내용을 결합하기도 했다.
은 삼십과 관련하여 예언이 성취된 것에 관한 내용은 마태복음 26:14~16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7:11. “총독 앞”
본디오 빌라도는 주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 지역을 다스린, 주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던 로마 통치자였다. 총독으로 부임한 직후 그는 로마제국의 깃발을 든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행진시켰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에 분노했다. 유대인들은 그런 기를 우상숭배로 여겼다. 이후에 그는 성전의 보물을 착복하여 수도관을 건설하였으며, 그 때문에 일반 백성들 사이에 폭동이 일어났다. 빌라도는 또한 일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누가복음 13:1~2 참조)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면서 죄목을 변경시켰다. 즉, 로마 당국이 범죄로 간주하지 않는 종교적 혐의인 신성 모독에서 로마 당국이 정치 혐의로 인정하는 선동죄로 바꾼 것이다.(누가복음 23:2, 5; 요한복음 18:30 참조)
마태복음 27:15~21. 바라바냐 예수냐? (또한 마가복음 15:7~11 참조)
바라바라는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군중들은 대부분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선동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진짜 아들을 거부하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바라바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진짜 아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짐으로써 석방된 죄 많은 아들들인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 대한 그리스어 원문에 따르면, 바라바의 이름은 예수였다. 예수 바라바는 절도범이고 살인자이며 반역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셨다. 구주께 사형을 선고한 이들에게는 분명 선택권이 있었다. 그들은 악을 선택했다.
바라바가 석방되기 수세기 전에 그 일에 대한 예표가 모세의 율법에 나와 있었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염소 두 마리를 두고 제비를 뽑았다. 염소 한 마리는 아사셀(scapegoat: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광야로 떠나가는 염소—옮긴이)로 삼아 산 채로 광야에 놓아 보내는 반면, 다른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죽여서 사람들의 죄를 위한 제물로 바쳤다.(레위기 16:8~10 참조) 그런 후 대제사장은 죽인 염소의 피를 회막의 지성소로 가져갔다. 그는 그 피를 (속죄소라 불렸던) 언약궤 윗부분에 뿌리며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상징적으로 속죄했다.
나중에 칠십인 정원회의 일원이 된 제럴드 엔 런드는 속죄일에 행해졌던 일들이 어떻게 구주께서 피를 바치신 일에 대한 예표가 되는지를 설명했다. “여호와의 어린 양이자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를 흘려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으며, 그곳에서 그 피로 자신을 믿고 계명에 순종할 이들을 죄로부터 구속하셨다. (히브리서 9:11~14, 24~28; 10:11~22; 교리와 성약 45:3~5 참조)” (Jesus Christ, Key to the Plan of Salvation [1991], 67)
마태복음 27:19~24.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빌라도는 예수님이 기소된 죄명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아내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결백하다고 말했다.(마태복음 27:19~24 참조) 모세의 율법에는 살해된 사람을 발견하면 그 성의 장로들이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손을 씻는다는 조항이 있었다.(신명기 21:6~7 참조) 그리스와 로마 문헌에도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린 일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상징적 표시로서 손을 씻었다는 예가 나온다. 따라서 빌라도가 손을 씻은 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가 손을 씻었다고 해서 책임이 면해진 것은 아니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빌라도의 갓 씻은 손은 여전히 더럽고 얼룩진 손이었습니다.”(“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더라”,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86쪽)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형에 처하게 한 빌라도의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누가복음 23: 4~12 주해 및 요한복음 19:4~16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7:25.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지난 2천 년에 걸쳐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예수님 당시의 모든 유대인, 심지어 후대의 유대인에게까지 그 책임을 지게 하려고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는(마태복음 27:25) 말을 때때로 사용했다. 그러한 비난은 당시에 수많은 유대인이 그분을 믿었으며 그분이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은 비교적 소수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로마 당국과 협력하여 이루어진 일이라는 경전상의 기록을 무시하는 처사이다.(마태복음 26:3~5; 27:20; 누가복음 21:38; 23:27; 요한복음 12:42 참조) 마태복음 27장 25절을 근거로 하여 유대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경전상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이다.(마태복음 23:39; 로마서 11:1, 26; 니파이전서 19:13~17 참조)
구주께서는 니파이인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또한 너희는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집의 남은 자 중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는 비웃거나 경멸하거나 조롱하지 말지니, 이는 보라, 주께서는 그들에게 세우신 바 자기의 성약을 기억하심이요, 그 맹세하신 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주실 것임이니라.”(제3니파이 29:8)
마태복음 27:26. 채찍질
일반적으로 채찍질은 채찍으로 서른아홉 번을 때리게 되어 있었다.(신명기 25:3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채찍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것은 희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행하는 잔인한 행위였다. 그들은 희생자의 옷을 벗기고 그를 기둥이나 틀에 묶어서 날카로운 납 조각과 뼛조각을 박은 가죽 채찍으로 때렸다. 그런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은 피를 흘리고, 쇠약해지며,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807)
구주께서 로마 군병에게서 받은 그 심한 고통과 학대는(마태복음 27:26~31 참조)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고통과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과 더불어 속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었다. 이사야는 이렇게 증거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5)
마태복음 27:28~29. 왕의 모습으로 꾸미어 조롱하다
마태복음의 한 가지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합법적인 왕이시라는 것이다. 채찍질 후, 로마 병사들은 예수께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는 갈대를 들게 했다. 그런 후 그들은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그분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렀다. 왕복은 왕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색상인 자색이었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27:30; 또한 마가복음 15:17; 요한복음 19:2 참조)
마태복음 27:33. 골고다
경전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 골고다(아람어) 또는 갈보리(라틴어)라고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매장되고, 부활하신 곳으로 가장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이야기되어 온 장소는 현재의 성묘 교회가 있는 자리이다. 이따금 동산 무덤으로 언급되는 고든의 갈보리[Gordon’s Calvary]는 골고다에 인접해 있으며, 19세기에 구주께서 매장되고 부활하신 장소로 지목되었다. 많은 후기 성도들이 고든의 갈보리가 그런 일들이 일어난 실제 장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이 그렇게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고든의 갈보리가 바로 그 장소라면, 그 위치는 상징적으로 매우 큰 중요성을 띤다. 고든의 갈보리는 구약전서에 나오는 모리아라고 하는 산 위에 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 산에서 자신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을 받았다.(창세기 22:3, 14 참조) 그 번제는 구주의 속죄 희생과 닮아 있었다. 이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의 북쪽에 있으며, 성벽 밖에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구약 시대에 모세 율법에서는 속죄 또는 죄를 씻기 위해 드리는 속죄제는 제단의 북쪽 방향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의 바깥에 있는 장소에서 드리도록 규정되어 있었다.(Bible Dictionary, “Sacrifices”; 출애굽기 29:14; 레위기 4:11~12; 히브리서 13:12 참조)
마태복음 27:34. “포도주를 … 마시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쓸개 탄 포도주를 거부하신 내용을 읽으려면 마가복음 15:23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7:35~50.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다(또한 마가복음 15:15~37; 누가복음 23:24~46; 요한복음 19:16~30 참조)
성경학자 프레드릭 윌리엄 파라는 십자가형의 잔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발은 땅 위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희생자는 자신을 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이 완전히 닿을 수 있고, 바로 앞에서 온갖 모욕과 증오에 찬 몸짓을 대할 수 있는 지점에 있었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서 학대와 능욕을 당하고, 심지어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
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에는 고통과 죽음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온갖 무섭고 끔찍한 것을 다 경험하는 것 같다. 현기증, 경련, 갈증, 배고픔, 불면, 외상성 발열, 파상풍, 치욕, 오랫동안 지속되는 육체적 고통, 아픔이 예상될 때 엄습하는 공포, 방치된 상처에서 일어나는 괴저 등 이 모든 것이 격렬해지면서 수반되는 고통을 그 희생자는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의식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서 그 고통에서 해방되지는 못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고통을 안겨 주었다. 찢긴 정맥과 뭉개진 힘줄은 그칠 새 없는 고통으로 파르르 떨렸으며, 노출로 염증을 일으킨 상처는 점차 부패되었다. 동맥, 특히 머리와 배에 분포된 동맥이 부어올라 과도하게 쌓인 혈액으로 그는 압박을 받았으며, 갖가지 고통이 서서히 증가하는 동안 바짝바짝 타 드는 극심한 갈증으로 인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더해졌다. 이 모든 신체적 합병증 때문에 그는 내적인 동요와 불안을 겪으며 죽음 자체를 기대하게 된다. 그 끔찍한 미지의 적이 다가오면 보통 인간은 가장 큰 공포를 느끼며 전율하지만, 십자가형의 희생자에게 그것은 오히려 즐겁고 감미로운 해방이었다. 바로 그러한 죽음이 그리스도에게 선고된 것이었다.”(The Life of Christ [1874], 640–41)
마태복음 27:35. “That It Might Be Fulfilled[이루게 하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7장 35절은 요한복음 19장 24절과 유사하지만 개역개정판에서는 “제비 뽑아 나누고” 다음 부분의 번역이 누락되어 있음–옮긴이] 다음 도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과 사망에 관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성취된 몇 가지 예언들을 보여 준다.
성취된 고대 예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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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
마태복음 27: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
이사야 53:5.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니파이전서 19:9. “그리하여 그들이 그를 채찍질하나 그는 이를 참으시며” |
마태복음 27:26.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
이사야 50:6.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니파이전서 19:9. “그들이 그에게 침을 뱉으나, … 그는 이를 참으시느니라.” |
마태복음 27:30. “그에게 침 뱉고” |
시편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vinegar]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
마태복음 27:34. “쓸개 탄 포도주[vinegar]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
시편 22:16. “악한 무리가 …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니파이전서 19:10. 그는 “자신을 … 내어 주사 … 들리우실 것이요, …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요” |
마태복음 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더라]” |
시편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
마태복음 27:35. 로마 병사들은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더라]” |
이사야 53:9, 12.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
마태복음 27:38, 44.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
시편 22:7~8.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
마태복음 27:41~43.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며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이사야 53:9.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
마태복음 27:57~60.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었더라]” |
마태복음 27:37. 빌라도의 비문
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27장 39~40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그리고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 적었더라.”(마태복음 27장 37절과 비교)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았으며 그분을 석방시킬 권한이 있었던 빌라도는 모든 사람이 보도록 그 진리를 패에 써서 예수님의 머리 위쪽 십자가에 붙이게 했던 것이다.
마태복음 27:40~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는 조롱이 구주께서 초기에 맞섰던 여러 유혹과 유사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용한 ‘만일’이라는 단어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마태복음 4:6) 이러한 말은 삼 년 후에 있을 마지막 시험, 곧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마태복음 27:40)의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때가 오면 모든 자가 자기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이며 모든 혀가 고백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시험 역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 특히 거룩하지 못한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
예수께서는 죄를 범할 수도 있었고, 사탄에게 굴복할 수도 있었으며, 생명과 구원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진실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완전하시고 죄 없는 분이셨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께서 그와 같이 되고자 하여 행하였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가 받은 시험”,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17~18쪽)
마태복음 27:45. 어둠이 “제육시로부터 … 제구시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각은 그날 “제삼시”(마가복음 15:25), 즉 오전 아홉 시경이었다. 마태는 제육시(정오 열두 시경)부터 구주께서 돌아가신 제구시(오후 세 시경)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다고 기록했다.(마태복음 27:45) 세상의 빛이신 분이 돌아가시자 예루살렘에서는 세 시간 동안, 그리고 고대 미대륙에서는 사흘 동안 어둠이 땅 위에 임했다.(제3니파이 8:20~23 참조)
마태복음 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또한 마가복음 15:34 참조)
버려진 것에 대한 구주의 울부짖음은 수세기 전에 시편 22편에서 예언되었다.(1절 참조) 구주께서는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으시고 자신의 행동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된 적이 결코 없으셨지만 우리를 위해 속죄를 하시는 동안 그 분리를 경험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계실 때, 그분에게 위안을 주던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 물러간 일은 마가복음 15:34 주해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셨던 일곱 가지 말씀을 각각 읽어 보려면 요한복음 19:26~30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7:50.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렇게 나온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며 이르시되, 아버지여 이제 끝났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졌나이다, 하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27:54) 전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겠다고 사심 없는 제의를 하셨다.(모세서 4:1~4 참조) 예수님은 이제 육신의 사망을 겪으심으로써 그 약속을 완수하셨다.
마태복음 27:51. “성소 휘장이 … 찢어져”(또한 마가복음 15:38; 누가복음 23:45 참조)
지성소는 고대 성전에서 가장 성스러운 방이었으며, 하나님의 면전을 상징했다. 일 년에 한 차례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성전의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물의 피를 뿌렸다.(레위기 16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면서 성전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된 것은(마태복음 27:51) 대제사장이신 구주께서 죽음의 휘장을 통과하셨으며, 곧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실 것임을 보여 주는 극적인 상징이었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히브리서 9:11~15, 23~28; 10:1 주해를 참조한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들어가신 것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성소는 이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어린 양의 속죄 보혈을 통해 모든 사람은 이제 모든 장소 중에서도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한 곳, 즉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의 명확한 설명은(히브리서 9장 및 10장) 고대에 성전의 휘장을 통해 행해진 의식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일의 모형이 되는지를 보여 주며, 이제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기에 모든 사람은 그 휘장을 통과하여 주님의 면전으로 들어가 완전한 승영을 상속받을 자격을 갖게 되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830) 사도 바울은 성전의 찢어진 휘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찢긴 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고 가르쳤다.(히브리서 10:12, 19~20 참조)
마태복음 27:51, 5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더불어 지진이 뒤따르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들은 우주의 창조주께서 돌아가심을 알리는 신호로 지질적인 격변이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니파이전서 19:10~12; 힐라맨서 14:21~22; 모세서 7:55~56 참조)
마태복음 27:52~5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시작으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부활할 수 있게 되다
마태복음 27장에서 부활에 관한 성구들이 왜 그 부분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부활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나타난 것은 그분의 사망 직후가 아니라 “예수의 부활 후에”(마태복음 27:53; 기울임체 추가) 있었던 일임은 분명하다. 경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로 부활한 사람이라고 거듭 언급되어 있다.(사도행전 26:23; 고린도전서 15:20; 요한계시록 1:5 참조) 몰몬경에 나오는 선지자 아빈아다이는 구주께서 부활하신 시기에 부활한 사람들은 바로 모든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던 사람들이었다고 가르쳤다.(모사이야서 15:21~22; 교리와 성약 138:38~51 참조)
다른 경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한복음 5:28~29; 고린도전서 15:22; 앨마서 11:43~44 참조)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될 것임을 담대하게 간증했다.
“그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빈 무덤은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욥기 14:14]라는 욥의 질문에 대해 위안의 확신과 긍정의 대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욥의 질문을 그 답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장정이라도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때 오는 눈물과 시련을 통해, 두려움과 슬픔을 통해, 마음의 고통과 외로움을 통해서 삶은 영원하다는 확신이 옵니다. 우리 주님이신 구주께서는 그 사실에 대한 살아 계신 증인이십니다.
제 온 마음을 다해 영혼의 간절함으로, 저는 특별한 증인으로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소리 높여 간증드리고 선언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그분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내 구주 살아 계시다”, 리아호나, 2007년 5월호, 25쪽)
마태복음 27:57~60. 아리마대의 요셉(또한 마가복음 15:43~46; 누가복음 23:50~53; 요한복음 19:38~40 참조)
아리마대의 요셉은 유대인의 통치 조직인 공회의 부유한 회원이었다.(마태복음 27:57; 마가복음 15:43 참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었다.(요한복음 19:38)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요셉은 자신의 지위와 관련된 위험을 무릅쓰고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마가복음 15:43) 안식일이 되기 전에 구주의 시신을 매장하도록 허락을 얻었다. 요셉은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매장했다.(마태복음 27:60 참조) 산헤드린의 또 다른 회원인 니고데모는 시신에 바르기 위해 값비싼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요한복음 19:39) 가지고 왔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함께 구주께서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이사야 53:9) 있을 것이라는 구약전서의 예언을 성취했다. 니고데모가 구입한 몰약과 침향은 왕의 매장에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양이었는데, 그것은 구주를 따랐던 사람들이 그분의 신분을 왕으로 인정했음을 나타낸다.(역대하 16:14 참조)
마태복음 28:1.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신 결과로, 안식일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성약의 백성들은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일을 지켰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
주 중 첫날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주님의 제자들은 주 중 첫째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시작했다.(사도행전 20:7 참조)”(신앙에 충실함, 117쪽) 또한 요한복음 20:1~10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 살아나셨느니라”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구주의 부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태복음 28:6]
이것은 온 인류 역사에서 가장 확신에 찬 말씀입니다. 보편적이고 최종적인 죽음은 이제 정복되었습니다. …
이런 일이 전에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소망 없는 죽음만이 있었습니다. 이제 영생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생애와 사명 가운데서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속죄의 절정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위한 그분의 생명 희생은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을 위한 부활의 확신을 갖고 그분이 무덤으로부터 나오지 않고서는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모든 승리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그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무덤에서 나오신 주님의 승리만큼 위대하거나, 그 효과 면에서 보편적이거나, 그 결과 면에서 그렇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건의 증인이 된 사람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분에게서 듣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모든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이 기적의 실재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신성한 사건의 진실함을 외치며 살다가 죽어 갔습니다.
이 모든 간증에, 주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삶과 죽음의 주인으로서 다시 경이롭게 부활하셨다는 간증을 더합니다.”(“그리스도의 특별한 증인들”, 리아호나, 2001년 4월호, 16~17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16:1~7 주해 및 요한복음 20:1~10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28:8. 부활의 기쁨(또한 마가복음 16:1~7; 누가복음 24:2~9; 요한복음 20:1~18 참조)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자 큰 슬픔을 느꼈지만, 또한 그분의 부활 소식으로 “큰 기쁨”을(마태복음 28:8) 느끼기도 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구주의 부활에서 얻는 위안에 대해 가르쳤다. 그는 우리 삶의 암울한 시기도 언젠가는 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금요일이 얼마나 암울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
저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암울했던 날이 바로 그 금요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슬픈 날의 운명은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이 사망의 사슬을 힘차게 끊으셨기 때문에, 절망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 인류의 구주로서 영광스런 승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
우리 각자에게는 우주 자체가 파괴되고 세상이 산산조각이 난 것 같이 느껴지는 그런 날들, 즉 우리만의 금요일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결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파탄의 시간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금요일들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망을 이기신 분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간증드립니다. 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어두운 비탄 속에서도 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스럽고 아무리 비통할지라도 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이생에서 또는 다음 생에서, 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부활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았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간증들을 갖고 있습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무수한 사람들이 부활하신 구주를 증거했습니다. …
사랑하는 구속주로 인하여 우리는 가장 암울한 금요일 한가운데에서도 소리 높여 선포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일요일은 올 것입니다”,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29~30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우리가 부활에 대해 느끼는 감사함이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들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가르쳤다. “부활을 통해 온 인류가 받게 된 불멸의 은사는 매우 강력한 약속이 됩니다. 그 약속이란 우리가 이 위대하고 풍성한 은사를 기뻐할 때 그 어떤 슬픔도 떠나 보내게 되고, 그 어떤 비통함도 누그러뜨리며, 그 어떤 기분도 극복하고, 그 어떤 절망도 가벼워지고, 그 어떤 비극도 잠재우게 되리라는 것입니다.”(“All Hell Is Moved” [Brigham Young University devotional, 8, 1977], 7; speeches.byu.edu)
마태복음 28:11~15.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려는 음모
마태복음 28장 13절에 기록된 거짓말은 매우 특이한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보초 근무를 서는 중에 잠이 든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할 경우 군인들은 사형에 처해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제자들이 경비병 모르게 돌을 치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꺼내 간다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 이 허황된 이야기는 대제사장들이 얼마나 초조해했는가를 보여 준다. 더욱이 그 대제사장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었다.(마태복음 22:23 참조) 부활 이후 여러 주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부활 소식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사도행전 4:1~3 참조) 마태는 시신을 도둑맞았다는 이야기가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당시에도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져 있다고(마태복음 28:15) 적었다. 그가 복음서를 기록했던 시기는 아마도 주후 70년 이후의 어느 때였을 것이다.
마태복음 28:16~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장 16~20절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만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때 구주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마태복음 28:18) 말씀하셨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부활체로서 이 말씀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태어나셨을 때는 아니었으나 후에는 그분이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는 점을 교리와 성약을 통해 알 수 있다.(교리와 성약 19:2~3; 93:12~17 참조) 그 권세에는 삶과 죽음을 이기는 권능, 부활하는 권능, 승영하는 권능, 심판을 수행하는 권능, 사탄을 멸하는 권능, 여러 하늘에서 다스리는 권능이 포함되었다.
마태복음 28:19~20.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또한 마가복음 16:15~18 참조)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마태복음 28:19) 전하라고 명하셨다. 이 성구는 마태복음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복음이 결국에는 이방인들에게 나아갈 것이라는 수많은 암시들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이다.(마태복음 4:15~16; 8:5~13; 10:18; 13:47; 24:14 참조) 신약전서의 사도행전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기록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이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하라는 그 계명에 어떻게 순종했는지를 볼 수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 모두가 복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구주의 계명을 수행할 책임이 있음을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좋은 소식들을 선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 원리입니다. 복음서 작가 중 세 사람이 구주께서 주신 이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 마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는(마태복음 28:19) 구주의 명령을 인용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6:15~16; 누가복음 24:46~47] … 구주의 명령을 우리 시대에 적용하여, 현대의 선지자들은 우리 각자에게 복음을 나눌 것을 촉구하여 왔습니다.”(“복음을 나눔”, 리아호나, 2002년 1월호, 7쪽)
마태복음 28:19~20. 개종자의 침례와 교육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로(마태복음 28:19) 번역된 그리스어 문구는 주님의 제자들이 모든 나라에서 구주의 제자들을 찾아 침례를 베풀어야 함을 의미한다. 침례를 받는 것은 제자가 되는 요건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침례를 받은 후에 가르쳐야 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 신약전서의 나머지 기록들에서는 개종자의 침례와 교육이 일관되게 설명되어 있다.
마태복음 28:20. “내가 …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구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은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우리가 주님께 봉사할 때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우리의 부름이 무엇이든,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가서 행합시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그들은 기도하고 갑니다”,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