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학생
제38장: 고린도전서 1~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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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1장

고린도전서 소개

왜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는가?

갈등, 회의론, 부도덕으로 둘러싼 오늘날 세상에서 신앙을 지니고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도전이 될 수 있다. 고린도전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했던 말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들이 살았던 사회에서 분열, 거짓 교리, 부도덕적인 사악함과 싸워야 했다. 바울은 이 서한에서 교회 안에서 화합을 이룩하는 법, 하나님의 것들을 배우는 법, 성신이 임하는 성전으로서의 육체의 역할, 영적 은사의 특징, 부활의 실재 등 다양한 복음 주제를 다루었다.

고린도전서는 누가 기록했는가?

고린도전서 서두의 첫 절을 보면, 사도 바울과 바울의 서기로 일했을 소스데네라는 제자가 이 서한을 보냈다고 나온다.(고린도전서 1:1 참조) 소스데네의 역할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서한의 내용을 쓴 사람이 바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린도전서 16:21~24 참조) 고대에 서한을 쓸 때 서기를 부린 것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16:22 주해를 참조한다.

고린도전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초반에 에베소로 갔으며, 그곳에서 약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했다.(사도행전 19:10; 20:31 참조) 주후 54년과 57년 사이였던 이 시기에(고린도전서 16:8 참조) 바울은 고린도전서로 알려진 서한을 포함해서 고린도 지부에 보내는 서한들을 기록했다. 이 서한은 사복음서를 포함하여 신약전서에 있는 어떤 기록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기록된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15장 3~4절에서 마지막 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부활에 대한 바울의 간략한 언급은 신약전서상에서 이 사건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된다.

흠정역 성경에는 고린도전서 16장 24절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의 각 서한 마지막에 짧은 설명문이 실려 있다.(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이런 설명문들이 실려 있지 않음—옮긴이) 이런 설명문은 원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설명문을 누가 기록했고 언제 신약전서 필사본에 추가되었는지를 판단할 증거가 거의 없기에, 대부분 학자들은 이런 설명문에 들어 있는 정보 중 다수가 부정확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고린도전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바울 시대에 고린도는 로마제국이 다스렸던 지역인 아가야의 수도였다. 아가야는 마게도냐의 남부에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이었다. 고린도는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중심지였기에 로마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그곳은 근방에서 가장 다채로운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우상 숭배가 고린도인들의 종교 문화를 지배했으며, 그 도시 전체에 수많은 신전과 성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바울이 성역을 베풀던 시기에 고린도인들은 극도의 부도덕으로 악명이 높았다. 예를 들면, 아프로디테 신전에서는 매춘 의식이 자행되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 고린도에 교회 지부를 세웠다.(사도행전 18:1~18 참조) 바울은 고린도에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조직했다. 이후에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때에, 고린도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는 지부로 답장을 보냈으나(고린도전서 5:9 참조), 안타깝게도 그 서한은 분실되어 성서 정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의 교회 회원들로부터 그곳 교회에 생긴 문제들에 대해 또 다른 보고를 받았다.(고린도전서 1:11 참조) 그러므로, 오늘날 고린도전서로 알려진 이 서한은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회원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이다.

바울이 고린도 회원들에게서 받은 최초 서신은 오래전에 분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독자들은 그 편지에서 제기된 실제의 질문과 문제를 추리하기 위해 바울의 답변을 공부해야 한다. 고린도전서에는 교회 회원들 간에 화합이 부족하다는 점과, 일부 이교도 믿음과 행위가 그들이 복음 원리와 의식을 준수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고린도전서 1:11; 6:1~8; 10:20~22; 11:18~22 참조)

현대의 독자들은 고린도전서의 몇몇 부분에서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이 했던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관한 충고(고린도전서 11:3, 8~9),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한 말씀(고린도전서 11:4~7), 예배 의식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말씀(고린도전서 14:34~35) 등이다. 바울이 그 시대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서 있었던 특정 문제를 해결할 방침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적절한 복음 원리들을 알아볼 것이다.

고린도전서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신약전서상에서, 바울이 고린도의 교회 회원들에게 준 권고는 다른 어떤 지부에 준 권고보다도 분량이 더 많다. 실제로,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두 서한의 분량은 현존하는 바울의 모든 기록 중 사분의 일을 차지한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 믿음과 행위로 되돌아가려는 문제로 고심하는 고린도 개종자들을 강화하고자 했다. 바울은 자신이 이 서한에서 다룬 여러 주제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고린도전서 1:17~18, 30; 6:20; 7:23 참조), 구주의 사망(고린도전서 1:23; 2:2, 8; 8:11; 10:16; 11:26; 15:3 참조), 그분의 부활(고린도전서 6:14; 15:4~8, 12~23, 55~57 참조), 종국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돌아오실 일을(고린도전서 1:7~8; 4:5; 5:5 참조)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바울이 로마인과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구원이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치지만,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고린도전서 7:19) 그리스도의 율법의 중요성을(고린도전서 9:21 참조) 강조했다.

개요

고린도전서 1~11장바울이 고린도의 교회 회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열을 경고했다. 그는 교회 회원들 간의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성적 부도덕에 대해 경고하고, 몸은 성신이 임하는 성전임을 가르치고, 자제력을 행사하라고 격려했다. 그는 결혼, 성찬(주님의 만찬) 의식, 그리고 이교도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다루었다.

고린도전서 12~14장바울이 영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12:31) 그는 다른 모든 영적 은사보다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사도, 선지자, 교사, 그리고 회원들이 서로 보살피는 일이 중요함을 상기시켰다. 그는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14:33)

고린도전서 15~16장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간증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이며, 죽은 자를 위한 침례는 미래에 있을 부활에 대한 진리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부활체는 영광의 등급에 따라 각각 다를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극복하셨기에 사망의 쏘는 것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모금 운동을 했다.

고대 신전의 유적

주전 600년 무렵에 지어진 고린도의 아폴로 신전. 이 신전은 바울 시대에 고린도에 있는 가장 웅대한 건축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교도 신상을 모셔 놓은 신전과 사당은 그리스 로마 세계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성행했다.

고린도전서 1~11장 소개 및 연대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서 성역을 베풀던 때에, 고린도 지부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개종한 고린도 회원들은 매우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살았으며, 몇몇은 올바른 원리에 따라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복음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매우 다양한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이 회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졌으며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음을 상기시켰다.(고린도전서 1:2)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분열을 몰아내고(고린도전서 1:10~16 참조) 하나님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복음 전파와 영의 권능을 신뢰해야 했다.(고린도전서 1:17~2:16 참조) 바울은 또한 그들에게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고(고린도전서 3:16~17; 6:9~20 참조), 결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고린도전서 7장; 11:11~12 참조), 주님의 만찬인 성찬을 합당하게 취하라고(고린도전서 10:16~17; 11:20~34 참조) 권고했다.

제38과 연대표

고린도전서 1~11장 주해

고린도전서 1:1~9. 바울의 인사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언급된 바울의 동반자 소스데네는 이전에 고린도에서 회당장이었던 것 같다.(사도행전 18:17 참조) 소스데네는 바울 덕분에 개종하고 침례를 받은 그리스보의 후임자였다.(사도행전 18:17; 고린도전서 1:14 참조) 이 서한에서 바울의 인사는 성도들에게 했던 것으로, 이는 우리 시대에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는 것과 같다. 바울의 인사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분리된 별개의 존재임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린도전서 1:3)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모든 점에서, 곧 언변과 지식 면에서 “풍족하”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1:5)

고린도전서 1:10~17. 침례에 관한 분쟁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서 저명한 여성인 글로에의 집에 모였던 회중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있는 문제들을 보고받았다.(고린도전서 1:11 참조) 교회 회원들 사이에는 파벌이 생겨나고 있었는데, 이런 분열 중 일부는 자신이 누구에게서 침례를 받았는가에서 비롯되었다.(고린도전서 1:12~16 참조) 바울은 특정 사람에서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어떠한 지위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회원들은 그리스도를 최선두에 두고서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고린도전서 1:10; 또한 교리와 성약 38:27 참조)

이후에 바울은 그 성도들에게 분쟁과 분열이 일어난 이유는 그들 중 일부가 영적이지 못하고 육욕적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3:3 참조)

고린도전서 1:17~18, 23~24. “그리스도의 십자가”

바울의 주요 메시지는 “십자가의 도”였다. 그가 가르친 이 십자가의 도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고린도전서 1:18) 바울은 속죄를 축약해서 언급하기 위해 “십자가”라는 말을 사용했다.(또한 에베소서 2:16; 빌립보서 3:18 참조) 그러나 속죄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칠십인 정원회의 시 스코트 그로우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구주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겪으시며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주님의 속죄는 겟세마네에서 시작되어 십자가 위에서 계속되었고 부활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속죄의 기적”,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108쪽; 또한 신앙에 충실함: 복음 참고서[2004], 134~136쪽 참조)

겟세마네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고통을 모두 포함했다.

고린도전서 1:17~2:13. 세상의 지혜

바울이 말한 “이 세상의 지혜”는(고린도전서 1:20) 결점이 있는 당시의 철학적 가르침을 의미하며, 주님께서 권하시는 학문과 교육에 대한 가치 있는 추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마태복음 22:37; 니파이후서 9:29; 교리와 성약 88:78~80 참조)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7절~2장 13절에서 세상의 철학과 그런 것들을 옹호한 사람들을 가리키기 위해 지혜 있는, 지혜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언급했다. 철학적 관념은 공개 토론회의 단골 주제였다. 바울은 인간의 제한된 지혜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와 대비시켰다.(고린도전서 1:17~25 참조) 복음을 비웃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성도들의 신앙은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고린도전서 2:5)을 의지해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모두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로마제국에서 십자가형은 범죄자나 노예를 처단하는 형벌이었으며, 수치와 패배를 상징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고통을 겪고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다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그리스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고린도전서 1:23)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왕권과 지배력을 갖고 정복하여 승리를 거두는 존재로 생각하고 기대했기에, 메시야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는 “거리끼는 것”이며(고린도전서 1:23)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고린도전서 1:18~29. “하나님께서 …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복음 메시지를 “미련한 것”으로(고린도전서 1:18) 여겨 배척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1:19~25) 하나님께서는 종종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거나 “약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수행하신다.(교리와 성약 35:13~14; 124:1 참조) 고린도전서 1장 28절에서, “세상의 천한 것들”은 지위가 낮고 미천한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택하시는 사람들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주께서 어떻게 교회의 일반 회원들을 통해 당신의 사업을 진척시키시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회에는 전문적인 성직자가 없습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지도자 직책에서 봉사하게 되는 부름은 일반 회원들이 받게 됩니다. 우리는 전문적인 지도자를 훈련할 신학교를 두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것, 즉 인도, 가르침, 부름, 성임, 기도, 찬송, 성찬 준비, 권고 및 그 밖의 모든 것은 ‘세상의 연약한 것들’, 즉 평범한 회원들이 하게 됩니다.”(“교회의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6쪽)

고린도전서 2:2~5. “설득력 있는 … 말로 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대단히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사도행전 22:3; 갈라디아서 1:14 참조) 그는 웅변술과 철학과 세속적 학문으로 고린도인들에게 감명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단순하고 겸손하게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은 자신이 영의 권능으로 가르친 한 선교사 때문에 개종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에 세상의 모든 재능과 재치와 지혜와 세련을 갖춘 어떤 사람이 몰몬경을 가지고 제게 와서 자신의 학문과 세상적인 지혜를 사용하여 몰몬경의 참됨을 세상에서 가장 품위 있는 방식으로 증언했다면 제게는 그것이 연기처럼 피었다 사라지는 것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말할 만한 웅변술도, 재능도 없이 단지 ‘몰몬경은 참되며, 조셉 스미스는 주님의 선지자임을 성신의 권능으로 압니다.’라는 말만 할 수 있었던 사람을 보았을 때, 제가 그 사람에게서 느낀 성신은 제 앞에서 저의 이해력과 빛과 영광과 불멸을 밝혀 주었습니다. 저는 그 영으로 둘러싸이고 충만해졌으며, 그 사람의 간증이 참됨을 스스로 알았습니다.”(Deseret News Weekly, Feb. 9, 1854, 24)

고린도전서 2:6~16. 하나님의 것은 영적으로 분별된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고린도전서 2:14) 세속적인 사람은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상기시켰다. 칠십인 정원회의 폴 브이 존슨 장로가 다음과 같이 가르쳤듯이, 영적인 지식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방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진리를 배우고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과학적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방법은 오랫동안 매우 유용했고, 엄청난 양의 과학 지식을 산출해 냈으며, 우리 물질세계에 대한 무지의 장막을 계속해서 밀어젖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에 관한 학습은 과학적인 것에 대한 학습과는 다른 접근법을 필요로 합니다. 과학적인 방법과 지성은 매우 유용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영적 지식을 얻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에 관한 학습은 지성을 수반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은 영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

영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고, 받게 되리라고 믿으며 신앙으로 구하고, 부지런히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이 방식을 따르더라도 답을 얻는 시기는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응답이 곧바로 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의문을 한동안 선반에 놓아둔 채 우리가 아는 답을 통해 생긴 우리의 신앙에 의지해야 합니다.”(“영적인 것들을 배우기 위한 패턴”[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위성 방송, 2012년 8월 7일], si.lds.org)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주님께서 설명해 주신 성스러운 지식을 얻는 방법은 연구를 통해 학문을 습득하는 사람들의 방법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적인 학문에서 빈번한 수법은 논쟁 혹은 상반되는 토론이며, 이 방법에는 저도 상당한 경험을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대 및 현대의 경전에서 그분의 교리의 여러 가지 점에 대해 분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3니파이 11:28~30; 교리와 성약 10:63 참조) … 복음 진리와 간증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연구하고 숙고함으로써 성신을 통해 받게 됩니다.”(“여러 음성”, 성도의 벗, 1989년 7월호, 37쪽)

고린도전서 3:4~7.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3장 4~7절에서, 바울은 선교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임을 설명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는 비유를 사용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다. 이 말은 사람들이 개종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영혼에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의미이다. 몰몬경에서 암몬도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앨마서 26:11~14 참조)

고린도전서 3:13.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언급된 “그 날”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드러나게 될 심판의 날이다.

고린도전서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 알지 못하느냐”라고 가르쳤다. (고린도전서 3:16) 이 성구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 전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칭하기 위해 복수 대명사 너희[y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바울의 요지는 교회 회중이 하나님의 영이 임할 수 있는 성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고린도후서 6:16; 에베소서 2:21 참조) 이 비유는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서 사용한 것과는 약간 다른데, 이 성구에서 바울은 사람의 몸을 성전에 비유했다.(고린도전서 6:19 주해 참조)

고린도전서 4:9~10. 사도들의 죽음

바울은 사도들이 “죽이기로 작정된 자”라고(고린도전서 4:9) 가르치면서, 자신이 사도 부름으로 말미암아 결국 죽게 될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또한 많은 고린도인들이 자신들은 지혜롭고 강한 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바울과 그 밖의 사도들은 어리석고, 약하며, 멸시받는 자로 여긴다고 말했다.(고린도전서 4:10 참조) 대배도는 이 두 가지 요인, 즉 사도들의 죽음과 사도들의 권세에 대한 교회 회원들의 거부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다.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바울의 말씀을 들었던 당시 성도들이 그에게 있던 열쇠의 가치와 권능에 대한 간증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사도들은 지상에서 거두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 바울[은] 주님에게서부터 그분의 사도들을 거쳐 주님의 교회 회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신권 열쇠의 연결 고리가 지닌 가치를 사람들이 느끼기 바랐[습니다.]”(“신앙과 열쇠”,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27쪽)

고린도전서 4:20.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복음을 권능으로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더 읽어 보려면, 데살로니가전서 1:5 주해를 참조한다.

고린도전서 5:1~13.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음행[fornication]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porneia에서 번역되었으며, 결혼 관계 밖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Porneia는 또한 외설물[pornography]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바울이 알게 된 음행의 한 가지 사례에는 고린도의 교회 회원 한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의붓어머니와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러한 관계는 구약의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었고(레위기 18:8, 29; 신명기 22:30; 27:20 참조), 비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그릇된 행위로 여겨졌다.(고린도전서 5:1 참조)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 죄를 지은 회원에 대해 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꾸짖었으며, 그 죄인을 “내쫓”거나 파문하라고 권고했다.(고린도전서 5:13) 바울은 그 범법자가 교회에 남아 있다면 그 사악한 영향력이 교회 전체로 번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린도전서 5:6~8)

바울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교회 회원들이 때로 죄가 되는 행동으로 파문을 당하기도 한다. 교회 공식 평의회는 선도 조치를 수행하며, 언제나 그 죄인이 회개 과정을 밟도록 지원함으로써 그 사람을 돕고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경전에서 주님께서는 교회 선도 평의회에 관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102편 참조) 평의회라는 단어는 범법자의 구원과 축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사랑과 염려에서 나오는 유익한 조처를 떠올리게 합니다.

회원들은 교회 선도 평의회가 열리는 이유를 묻곤 합니다. 선도 평의회의 목적은 세 가지입니다. 바로, 범법자의 영혼을 구하고, 무죄한 자를 보호하며, 교회의 순수성과 고결성 및 명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

… 복음의 기적은 우리 모두 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운영 제도에서는 교회 선도 평의회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체제에서는 회개에 따른 회복도 요청합니다. 그 회원이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한, 제명 또는 파문은 최종 결말이 아닙니다.”(“A Chance to Start Over: Church Disciplinary Councils and the Restoration of Blessings,” Ensign, Sept. 1990, 15, 18)

고린도전서 5:9~11.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라고 충고했다.(고린도전서 5:9)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 가르침을 이야기하며, 선한 사람이라도 불의한 영향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음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들에 비해 너무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시 에스 루이스가 기록했듯이,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타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상황은 선한 사람들까지도 약화시킨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에게는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분별력과 튼튼한 다리가 있었습니다.”(“The Stern but Sweet Seventh Commandment,” Morality [1992], 29)

고린도전서 6:1~7. 성도들과의 법적 분쟁을 피함

고린도에 있는 교회 회원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사소한 민사적 분쟁으로 같은 교회 회원들을 치안 판사 앞에 세운 사건이었다. 바울은 교회 회원들에게 같은 회원을 상대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기보다는 그들 사이에서 불화를 해결하도록 애쓰라고 권고했다. 바울의 권고는 구주께서 지상 성역 때 주신 유사한 가르침이 반영되어 있다.(마태복음 5:25; 18:15 참조) 현대 경전은 교회 회원들이 국법을 통해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음을 인정한다.(교리와 성약 42:78~89 참조)

고린도전서 6:9~1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죄가 되는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갈라디아서 5:19~21에베소서 5:5에 나오는 유사한 구절 참조) 9절에서 “탐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문구는 동성애 관계를 말함을 유의한다. 온갖 형태의 성적 부도덕은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주신다. 바울은 성적인 죄를 범한 일부 사람들이 회개하여 이제는 깨끗하게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6:11)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관하여,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의 다음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죄를 너그럽게 봐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죄 지은 사람은 사랑합니다.”(“신앙과 간증으로 짠 천”,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89쪽) 동성애 관계에 관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1:26~27 주해를 참조한다.

고린도전서 6:12~20; 10:23. “모든 것이 … 가하나”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린도전서 6장 12절10장 23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회에서 “모든 것이 … 가하[다]”, 즉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그릇된 관념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 나오는 조셉 스미스 역을 보면, 바울이 “모든 것이 … 가하”다는 관념을 다음과 같이 논박했음을 알 수 있다. “ 모든 것이 내게 가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지 않으며, 따라서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Joseph Smith Translation, 1 Corinthians 6:12; 또한 Joseph Smith Translation, 1 Corinthians 10:23 참조)

고린도전서 6:15~18. “음행을 피하라”

바울은 이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분 몸의 영적 “지체”가 된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6:15~18) 그는 죄가 되는 행동, 특히 “창녀와 합하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 또는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과 양립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결혼을 위해 성적 관계를 유보하는 것이 중요함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결혼 전에는 옷을 입은 채로나 입지 않은 채로 정열적인 입맞춤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몸 위에 올라가거나 은밀하고 성스러운 부분을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성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어떠한 것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신체에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십시오.”(청소년의 힘을 위하여[소책자, 2011], 36쪽)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니라]”

고대 고린도 사람들 다수는 성적 부도덕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믿었다. 바울은 이 믿음을 반박하며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다고 말했다.(고린도전서 6:13) 그는 육체가 “성령의 [성]전”이 되어야 함을 교회 회원들이 이해하도록 도왔다.(고린도전서 6:19)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우리 몸을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오디오 아이콘“육신이 다만 진화가 낳은 산물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육신과 관련된 책임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와 현세, 사후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증거를 가진 우리는 육신의 창조라는 최고의 업적을 이루신 하나님 앞에 책임을 느껴야만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20)

이 진리들을 이해한다면 … 몸에 문신을 새긴다든가, 마약으로 몸을 상하게 하거나, 간음, 간통, 음란한 행위 등으로 육신을 더럽히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 영의 도구가 되므로 육신을 최대한 잘 보살펴야 합니다. 또한 타인에게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 육신의 힘을 성별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성별된 삶을 고찰하며”,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17쪽)

고린도전서 6:20. “너희는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우리가 구주의 자비로운 희생을 통해 어떻게 값으로 산 바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구주의 영적인 고통과, 사랑이 지극하여 값 없이 주신 무죄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경전에서 지칭하는 아담의 범법인 ‘원죄’(모세서 6:54)의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살았던 인간들과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인류의 죄와 슬픔, 그리고 아픔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분이 가르치셨던 복음의 원리와 의식에 순종하여 살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니파이후서 9:21~23 참조)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값으로 산 것’(고린도전서 6:20)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값비싸며 자비로운 구매였습니까!”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67쪽)

고린도전서 7:1~40. 결혼에 대한 질문

고대 고린도에서 성적 부도덕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정반대의 믿음, 즉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모든 성적 관계, 심지어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성관계를 삼가야 했다.(고린도전서 7:1)

바울이 했던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와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는 조언으로(고린도전서 7:7~8),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독신 생활을 결혼 생활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장려했다고 그릇되게 믿었다. 그러나 바울은 아마 결혼을 했거나 어느 시점에 결혼을 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이 유대인의 통치 조직인 산헤드린의 일원이거나 아니면 이 조직의 측근이었음을 인정한다.(사도행전 8:3; 9:1~2; 22:5; 26:10 참조) 바울은 산헤드린의 회원 자격을 따르기 위해 결혼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만일 바울이 단순히 산헤드린의 대리인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유대인의 모든 관습을 따라야 했을 것이므로 결혼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바울은 결혼과 가족 생활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가르쳤다.(고린도전서 7:2; 11:11; 에베소서 5:21~6:4; 디모데전서 3:2 참조)

7장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 중 다수는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결혼을 적절히 미루는 것을 교회 회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조셉 스미스 역에서는 이 결론을 다음과 같이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성역에 부름 받은 너희에게 말하노라. 무릇 내가 이를 이르노니, 형제들이여, 남아있는 시간, 곧 너희가 성역에 파송될 시간이 얼마 없도다. 아내를 둔 자들도 없는 자 같이 할지어다. 이는 너희가 주의 사업을 행하도록 부름 받고 택함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형제들이여 내가 바라노니 너희 부르심을 영화롭게 하라. 나는 너희가 염려 없기를 바라노라. 이는 결혼하지 아니한 자는 주께 속한 일들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나니 그러므로 그는 승리를 얻느니라.

그러나 결혼한 자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나니 그러므로 차이가 있도다. 이는 그가 방해를 받음이니라.”(조셉 스미스 역, 고린도전서 7:29, 32~33[경전 안내서])

고린도전서 7:1~5. 결혼 생활에서의 친밀한 육체적 행위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서 바울이 대답하고 있었던 질문을 모두 알기는 어렵지만, 그는 남편과 아내가 결혼 생활에서 친밀한 성적인 행위를 서로에 대한 “의무”를 보이기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7:3)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일어나는 육체적으로 친밀한 행위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자녀를 출산하고 사랑을 표현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밀한 성적 행위를 결혼을 위해 아껴 두라고 명하셨습니다.”(청소년의 힘을 위하여, 35쪽)

이 성구들에서 바울이 어떤 경위에서 이런 가르침을 주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사람들은 금욕이 결혼 생활보다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린도전서 7:1 참조) 또, 일부 사람들은 또한 결혼한 사람들까지도 금욕을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에 응하여,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합의한 경우 외에 배우자 사이에 친밀한 육체적 행위를 금하는 것은 배우자를 “속이는[defraud]” 행위라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7:5)[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defraud가 분방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이 단어의 뜻은 속여서 빼앗는다는 것이다—옮긴이] 바울은 부부가 결혼 생활에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이 주제에 관해,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특히 친밀한 부부 관계에서 아내를 상냥하고, 정중하며, 친절하게 대하도록 남편들에게 권고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압제적이거나 합당치 못한 행위를 하지 마십시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것은 영화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한 몸이 되라고 하셨으며,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습니다.(모세서 2:28; 3:24 참조)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자신을 바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에베소서 5:25~31 참조)

이기심은 제외하고, 온화함과 존경이 아내와 남편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데 지침이 되는 원리여야 합니다. 각 배우자는 서로의 필요 사항과 소망에 대해 사려 깊고 민감해야 합니다.”(“의로운 남편과 아버지가 됨”, 성도의 벗, 1995년 1월호, 51쪽)

고린도전서 7:12~19.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

바울은 믿음이 없는 사람과 결혼한 회원들에게 배우자가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하지 말고, 결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삶을 살라고 권고했다. 그렇게 할 때, 당사자는 믿음이 없는 배우자를 성결하게 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1832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고린도전서 7장 14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교리와 성약 74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는 바울이 이야기했던 문제에 대한 중요한 경위를 알려 준다.

고린도전서 7:14. 아이들은 거룩하니라

바울은 아이들이 “거룩하”다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7:14) 교리와 성약에서 주님은 고린도전서 7장 14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해명하는 계시를 주셨다. 유대인들에게는 어린아이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전통적인 사상이 있었으나, 주님은 “어린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성결하게 되어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으며, 또한 남자 아이들이 모세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을 필요성은 없음을 가르치셨다.(교리와 성약 74:4~7 참조)

고린도전서 8:1~13; 10:14, 19~33. 우상 숭배의 제물로 쓰인 고기에 대한 바울의 권고

바울 시대에 고린도와 다른 도시의 시장에서는 이교도 신에게 바치는 제물용으로 도살된 고기가 일부 유통되었다. 충실한 유대인들은 이런 고기를 취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서 금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바울의 말에 따르면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런 것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린도전서 8:1~13; 10:14, 19~33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응답을 다음과 같이 논했다. “고린도인들은 이교도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고기를 먹는 것에 관하여 바울에게 조언을 구했다. 바울은 우상이 진짜 신은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런 고기를 먹든 먹지 않든 이론상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실제로 그릇된 제물에 대해서는 어느 쪽으로든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런 고기를 먹을 경우 신앙이 약한 사람들이 제물에 효험과 이득이 있다고 추측하며 결과적으로 배도할 수도 있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6–73], 2:348) 바울이 더 크게 관심을 두었던 점은, 타인의 신앙을 약화시켜 무심결에 죄를 짓게 이끄는 행동은 무엇이든 피하는 것이었다.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통찰을 더 얻으려면, 사도행전 15:6~31 주해로마서 14:1~15:3 주해를 참조한다.)

남성들과 동물의 부조 조각

동물을 제물로 사용하고자 준비하는 장면을 묘사한 로마의 대리석 부조; 2세기 초(고린도전서 8:4 참조)

고린도전서 8:5~6. “많은 주”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고린도전서 8장 5~6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나는 항상 하나님이 별개의 인격체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는 분리된 별개의 인격체이시며, 성신 또한 별개의 인격체로서 이분은 영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세 분은 각기 다른 인격체로서 세 분의 하나님이 되신다. …

어떤 사람들은 내가 [고린도전서 8장 5절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을] 자신들과 똑같이 해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말이 이교도의 신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도 많고 주님도 많다고 말했으며, 그 말은 하나님이 복수임을 의미한다. … 나는 성신의 증거를 갖고 있으며, 바울이 그 성구에서 이교도 신을 시사하지 않았음을 증언한다.”(History of the Church, 6:474–75)

고린도전서 9:20~23.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

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으며,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성역을 베풀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품행을 맞추었다. 그는 어떤 문화나 나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충성을 다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 성구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서 바울은 여러 사람이 복음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이 그들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과 간증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그들이 처한 상황과 형편에 맞게 대처하고 처신했다. 그런 후 바울은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그들의 그릇된 교리나 행위를 받아들이거나 복음과 그릇된 숭배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든 타협했다는 추측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 복음의 율법에 순종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2:353)

고린도전서 9:24~27.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운동 경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4년마다 개최되었으며 지중해 전 지역에 걸쳐서 사람들이 몹시 고대했던 행사였다. 고린도에서는 지협 경기가 2년마다 열렸다. 경기 참여자들은 명예를 위해, 그리고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 또는 월계수나 소나무 가지로 만든 우승자 관을 위해 겨루었다. 바울은 선수들이 “모든 일에 절제”했다고 말했는데(고린도전서 9:25), 아마도 경기자들이 시합을 위해 훈련할 때 채택한 엄격한 음식 조절과 훈련 일과를 언급했던 것 같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승리를 얻고자 애쓰며, 유혹을 극복하고 영적 자제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와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경주한다. 그리고 상은 “썩을” 관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영생의 관이다.(고린도전서 9:25; 또한 디모데후서 4:7~8; 히브리서 12:1~2; 모사이야서 4:27 참조)

화관

키프로스(구브로)에서 나온 주전 3~4세기의 황금 화관. 바울은 그리스 로마의 경기 참가자들이 결국에는 썩어 없어질 관을 받고자 경주에 참가하지만,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영생의 관을 얻기 위해 자제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고린도전서 9:24~25 참조)

고린도전서 10:1~9. 바울이 고대 이스라엘을 실례로 들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몇 가지 경험을 인용했다.(고린도전서 10:1~9 참조)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왔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무수한 기적으로 축복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불평하고, 사악한 것들을 갈망하며,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런 나쁜 본보기를 따르지 말라고 훈계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세에게 … 침례를 받”았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애굽이라는 속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듯이, 그들의 기독교 후손들도 침례를 통해 육욕을 버리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2:355)

고린도전서 10:10~13. 하나님께서 유혹을 “피할 길을 내[실]” 것이다

바울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 다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무수한 축복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유랑하는 동안 유혹에 굴복했다고 이야기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유혹에 빠진 사람들의 예들을 “조심하라”라고 역설했다.(고린도전서 10:12)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했던 훈계가 우리를 위한 훈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 또한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그리고 말세를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기 위해 쓰였느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1 Corinthians 10:11) 바울은 또한 독자들에게 주님께 의지한다면 그들이 못 견딜 유혹은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베드로후서 2:9; 앨마서 13:28 비교) 바울은 비록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사악한 유혹에서 항상 보호해 주시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분은 그들에게 힘과 유혹을 “피할 길”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다.(고린도전서 10:13)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유혹에 직면할 때 기도로 도움을 구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성신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가 되는 최초의 생각들을 인식하고 거부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 또한 필요하다면, 우리는 회개를 위한 겸손과 신앙을 간구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하지만 나에게는 유혹이 너무나 커.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오랫동안 견디어 왔어. 나에게 계명은 너무 지키기 힘들고 표준은 너무 높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주께서는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변호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알고 계십니다. 유혹받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도 알고 계십니다.”(“어린아이와 같이”,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17쪽)

고린도전서 10:16~21. “참여함”의 잔과 떡

바울은 “한 떡에 참여함”으로써 함께 먹고 마시는 교회 회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린도전서 10:16~17) 고대 근동 문화에서 같은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은 화합과 평화, 우정의 표현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문제나 불화가 있다면, 함께 앉아 음식을 먹기 전에 그것을 해결했으며 모든 당사자가 화해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참여함”으로 언급한 성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개념을 상기시켰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서 “참여함[communion]”으로 번역된 단어는 친밀한 우정, 협력, 나눔을 의미한다. 따라서 회원들은 성찬식 동안에 “한 떡”(빵 한 덩어리)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서로와도 하나가 되고 화합함을 확인한다.(고린도전서 10:17) 그들은 “주의 식탁[에] … 참여하”면서(고린도전서 10:21), 그리스도와 화목하고 그분과 함께하는 더 큰 참여를 누리게 된다.

기도하는 여인

로마의 프리실라 카타콤바에서 출토된 주후 3세기의 이 그림은 관습에 따라 머리를 가리고(고린도전서 11:6) 두 손을 위로 올려 기도하는 기독교 여인을 묘사한다.(열왕기상 8:22; 시편 28:2; 디모데전서 2:8; 교리와 성약 109:16~19 참조)

고린도전서 11:11~12.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남자와 여자가 주님을 따를 때,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협력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진리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 봉사할 때, 특히 결혼 관계에서 함께 성장할 때 적용된다. 조셉 에프 스미스(1838~1918) 회장은 바울의 가르침이 어떻게 결혼 생활에 적용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남자도 여자 없이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승영에 이를 수도 없으며, 어떤 여자도 혼자서는 하나님 왕국에서 온전함과 승영에 이를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은 태초에 결혼을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남녀가 결혼이라는 신성한 유대를 통해 하나로 결합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사람은 짝이 없이는 완전하지 못한 것입니다.”(Gospel Doctrine [1939], 272)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상호 의존성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했다. “이 지구가 창조된 후 아담은 에덴 동산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모세서 3:18; 또한 창세기 2:18)라는 중요한 말씀을 하셨고, 그렇게 해서 이브가 아담의 아내이자 반려자가 되었습니다. 행복의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영적,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의 독특한 조합이 필요했습니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습니다.]’(고린도전서 11:11)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 강화하고 축복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기 위해 지어졌습니다.”(“우리는 … 순결을 믿는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41~42쪽)

젊은 신랑과 신부

남성과 여성 간의 결혼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한 부분이다.(고린도전서 11:11 참조)

고린도전서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은 가정에서 남편이 하는 감리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주님은 아내가 남자를 위한 돕는 배필(돕는 배필이라는 말에는 동등한 관계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완전한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동등하고 필수적인 반려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의롭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책임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족의 모든 문제에서 함께 그 문제를 알고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하여 행해야 합니다. 남자가 독자적으로 아내의 조언과 느낌을 고려하지 않고 가족을 다스리는 것은 의롭지 못한 통치 행위입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의로운 남편과 아버지가 됨”, 성도의 벗, 1995년 1월호, 50~51쪽) 남편이 가정에서 하는 감리 역할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에베소서 5:25 주해를 참조한다.

고린도전서 11:17~29. 주님의 만찬인 성찬

구주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드시는 동안 성찬을 제정하셨다.(마태복음 26:26~29; 마가복음 14:22~25; 누가복음 22:19~20; 고린도전서 11:23~25 참조) 교회의 초기 회원들은 성찬 집행에 이어서 함께 식사를 하는 관례를 유지했다. 식사는 집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나누는 화평과 화합과 우정의 표시였으며, 또한 회원들의 현세적인 필요 사항을 보살피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사는 이따금 불화의 근원이 되었다. 회원들이 모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음식을 갖다 먹어서, 일부 회원은 굶주린 채로 집으로 돌아갔으며 같은 성도들에 대해 마음이 상하는 상황이 빚어졌다.(고린도전서 11:17~22 참조) 따라서 함께 모이는 목적 중 하나, 즉 “주의 만찬”을 취할 때 우정을 쌓겠다는 목적은 수포로 돌아갔다.(고린도전서 11:17~18, 33~34)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런 종류의 논쟁을 피하고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먹지 말고 기다려야 하며, 식사한 후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면 나중에 집에 가서 먹어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가르쳤다.(고린도전서 11:33~34 참조)

고린도전서 11:27~29. 성도들은 성찬을 합당하게 취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에서, 바울은 성찬을 취할 때 개인적인 합당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성찬 예배를 개인적인 성찰의 시간으로 삼으라고 권고했다. 칠십인 정원회의 태드 알 콜리스터 장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찬식은 … 깊은 성찰과 자기 반성을 하는 시간이다.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권고했다.(고린도전서 11:28) 성찬식은 구주를 기억하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대한 모범자의 삶에 견주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자기기만을 내려놓는 시간이며, 절대적으로 숭고한 진리의 시간이다. 온갖 변명과 허울을 다 버리고, 우리 영의 참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재판관이 되어 자신이 실제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다윗도 이런 마음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간구했을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편 139:23~24)

… [구주께서는] 연약한 우리가 침례 시에만 한 차례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자주 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아신다. 매주, 매달, 매년 우리는 손을 뻗어 그분의 상징물을 취하면서, 그 가치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의 명예를 걸고서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거룩한 표준과 일치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The Infinite Atonement [2000], 29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