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49장: 히브리서 7~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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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13장

히브리서 7~13장 소개 및 연대

히브리서 7~13장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계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맡으신 탁월한 역할을 계속 역설하며, 특히 구주의 신권과 속죄 희생 및 성역의 우월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고대 성막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시하는 모세 율법의 의식을 설명하고,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있음을 가르쳤다.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충실히 남으라고 이야기하는 바울의 감동적인 권고로 끝을 맺는다.(히브리서 10:19~13:25 참조) 거기에는 놀라운 신앙을 보여 준 경전상의 남성과 여성들을 소개하는 설교도 포함되어 있다.(히브리서 11장 참조) 그런 본보기는 좀 더 충실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고무시킬 수 있다.

히브리서 7~13장 주해

히브리서 7:1~2. 멜기세덱

멜기세덱은 “홍수 이후, 아브라함의 시대에 살았던 구약전서의 위대한 대제사장인 선지자이며 지도자[였다.] 그는 살렘(예루살렘)의 왕, 평강의 왕, 의의 왕(멜기세덱의 히브리어 의미),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불렸다.”(경전 안내서, “멜기세덱”; scriptures.lds.org) 다른 경전 구절에서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신권을 부여했고,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으며, 그보다 더 큰 자가 없었다고 나온다.(교리와 성약 84:14; 히브리서 7:4; 창세기 14:18~20; 조셉 스미스 역, 창세기 14:25~40[경전 안내서]; 앨마서 13:19 참조)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전형으로 나온다.(히브리서 7:15~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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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을 축복하는 멜기세덱

아브람을 축복하는 멜기세덱, 월터 레인

히브리서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히브리서 7장 3절에 대한 조셉 스미스 역에는 신권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고 분명히 밝혀져 있다. “무릇 이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으로 성임되었나니 이 반차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느니라.]”(경전 안내서) 이 말은 고대의 레위 또는 아론의 반차와는 달리 멜기세덱 신권은 혈통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더 나아가 이렇게 설명했다. “이 대신권의 권리는 레위인들이나 아론의 아들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주어졌다. 대신권을 받는 데 가장 절대적인 필수 요건은 의로움이었다.”(Mormon Doctrine, 2nd ed. [1966], 478)

히브리서 7:3, 11~19. 멜기세덱 신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며 승영으로 인도한다

히브리서 7장에서 바울의 목적 중 하나는 레위 또는 아론 신권과 그 신권에 수반된 의식들보다 멜기세덱 신권이 더 높음을 보여 주려는 데 있었다. 만일 레위 신권을 통해 온전함과 승영에 이를 수 있다면, 왜 더 높은 신권으로 변경하는 일이 필요했겠는가? 바울은 온전함, 즉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존재가 되는 것]”은(히브리서 7:3) 레위 신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지닌 신권의 반차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레위가 아니라 “유다로부터 나”셨다. 그래서 바울은 신권에 대한 그분의 권리는 혈통이 아니라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바탕을 둔다고 가르쳤다.(히브리서 7:14~16 참조) 전세에서 여호와이실 때 그분은 필멸 상태에서 성역을 베풀 때 지니게 될 권능과 동일한 권능으로, 지구를 창조하고 구약의 일들을 주관하셨다. “멜기세덱이 소유한 신권은 하나님의 아들이 필멸의 삶 동안 소유하게 되리라 약속된 바로 그 신권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처럼 되셔야 했음을 의미한다.”(Bruce R. McConkie, The Promised Messiah [1981], 450) 멜기세덱 신권은 무한한 삶의 권능이다. 왜냐하면 이 신권은 끝없는 후손을 가져다주는 의식을 집행하기 때문이다.(교리와 성약 132:19~24 참조)

칠십인 정원회의 크레이그 에이 카든 장로는 멜기세덱 신권이 끼치는, 순화하는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논했다. “신권은 또한 우리의 성품까지도 바꿀 수 있는 권능이 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바와 같이, ‘이 신권에 성임된 자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처럼 [됩니다.]’[조셉 스미스 역, 히브리서 7:3; 또한 모세서 1:6 참조] 이와 같이 되는 것은 성임 및 의식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온전케 하는 과정, 즉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며, 육에 속한 사람을 벗어 버리’려는 과정에서[모사이야서 3:19] ‘때가 지남에’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모세서 7:21] 어떤 사람이 멜기세덱 신권에 성임된다면, 그는 한 ‘반차’를 따르게 되는 것이고[앨마서 13:2, 16; 교리와 성약 107:3]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 위한 봉사를 통해서 순화될 것[입니다.]”(“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감”,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95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신권이 교회의 남성 회원들에게 부여되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 신권의 온전하게 하는 권능과 그 의식으로 축복을 받는다며 이렇게 가르쳤다. “신권의 축복들, 즉 침례, 성신의 은사, 성전 엔다우먼트, 그리고 영원한 결혼 등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유효합니다.”(“가정과 교회에서의 신권의 권세”,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26쪽)

히브리서 7:20~21. 멜기세덱 신권은 맹세로 받는다

바울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레위 또는 아론 신권의 제사장은 혈통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그들은 맹세로 신권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히브리서 7장 21절에 언급된 맹세는 시편 110편 4절에 나오는 다음 성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이 후기에 주님께서는 “[멜기세덱] 신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내 아버지의 이 맹세와 성약을 받아들이는 것”이며(교리와 성약 84:40), 충실한 신권 소유자에게 부여되는 영원한 축복은 “신권에 속한 맹세와 성약에 따르는 것”이라고(교리와 성약 84:39; 또한 33~42절 참조) 계시해 주셨다.

히브리서 7:22.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히브리서 7장 22절에 나오는 “보증”이란 다른 사람의 부채를 보증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더 좋은 언약”이란 그리스도께서 확립하신 더 높은 복음 성약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목숨을 바침으로써 우리의 영적 부채를 갚으셨으며, 당신께 나아오려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성약의 약속을 보증해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맺는 성약 관계를 최상으로 보증하신다.

히브리서 7:25. 그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온전히”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를 의미한다. 따라서 히브리서 7장25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구원하실 수 있다. 칠십인 정원회의 제이 데븐 코니쉬 장로는 우리가 진정으로 자문해 보아야 할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기꺼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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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그리스도, 베르텔 토르발센

사진 촬영: 레슬리 닐손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이라고[모든 사람을 위해 속죄했다고] 말씀하실 때, 거기에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은 믿어. 하지만 나는 너무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혹은 똑같은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나에게는 속죄가 효력을 미칠 수 없을 거야.’ 일부 충실한 교회 회원들조차도 자신이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는 구원하실 수 있지만 나는 구원하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지만,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몰몬경의 선지자 야곱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려 한다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시느니라. 이는 보라, 그가 …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 모두, 곧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의 고통을 겪으심이라.’(니파이후서 9:21)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완벽한가, 또는 용서받을 가치가 있는가가 아니라 그저 잘못할 때 기꺼이 그 잘못을 인정하고, 애통해하고, 적절히 고백하고, 일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Learning How the Atonement Can Change You,” Ensign, Apr. 2002, 22)

히브리서 7: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삶을 사셨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칠십인 정원회의 브루스 디 포터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깨끗하고 완전한 삶은 그분의 속죄에서 매우 중대한 요소였음을 설명했다. “예수께서 죄 없는 삶을 산 분이 아니었다면, 겟세마네에서 고난을 겪으실 수 없었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때부터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시고 산헤드린 앞에서 불법 재판을 받으시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삶에 따르는 대가를 치르시며, 역경과 육체적 고통, 깊은 슬픔,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 놓인 무자비하고 단호한 적들의 함정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고 순결한 길을 걸으셨다. ‘그는 유혹을 받으셨으나, 이에 개의치 아니하셨느니라.’(교리와 성약 20:22) 그분께서 이리 행하신 것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창조물이 파멸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가장 작은 것에서, 또는 가장 경미한 부주의 때문에라도 그분이 죄를 지으셨다면, 속죄는 불가능해지고 창조의 전체 목적은 좌절되었을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온 세상의 짐이 그분을 무겁게 짓눌렀다.”(The King of Kings [2000], 92)

히브리서 8:1~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히브리서 8장에서, 바울은 앞 장의 개념을 요약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이 모든 점에서 레위 제사장들이 바친 성전 번제물을 능가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고 설명했다.(히브리서 8:6) 히브리서 8장 6절에서 “중보자”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불화를 해결하고 화합시키는 제삼자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시며, 그분을 통해 하늘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복음이 확립되었다. 바울은 또한 유대인 기독교도 독자들에게 주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옛 성약을 대체할 새 성약을 맺으시리라고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밝히셨음을 보여 주기 위해, 예레미야 31장 31~34절을 인용하면서, 이를 “더 좋은 언약[성약]”, “새 언약[성약]”이라고 칭했다.(히브리서 8:8~12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신약 시대의 유대인들이 대체로 이 새 성약을 거부했지만, 나중에 그것은 그들에게 다시 주어질 것이라며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지상에 계셨던 당시에 그들에게 성약을 맺자고 제의하셨지만, 그들은 그분과 그분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떨어져 나갔으며, 당시에는 그들과 주님 사이에 어떠한 성약도 맺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불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못했다. 다윗의 글에 따르면, 그분의 권능의 날인 또 다른 날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기꺼이 행하는 백성이 되어야만 한다. 그분께서 당신의 율법을 그들의 마음 판에 쓰시고, 그들의 생각 속에 새기시며, 그들의 죄와 불법 행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History of the Church, 1:313)

히브리서 9:1~7. 매년 한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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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그림

바울은 계속해서 레위 대제사장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며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에 하는 일을 언급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유대인의 성일 중 속죄일(욤 키푸르)이라 불리는 날에 성막(훗날의 예루살렘 성전) 안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는 히브리서 9장 3~5, 7절에서 둘째 장막으로 언급된다.) 그날에 “흰색 세마포를 입은 대제사장은 자신과 자신의 집을 위해 속죄물로 수소 한 마리와 번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취했다. 그리고 속죄물로 숫염소 두 마리를 취했다. … 그런 후 그는 염소 두 마리에 대해 제비를 뽑았다. 한 마리는 주님께 바치는 속죄물이 되어야 했다.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이 되어] 산 채로 광야로 보냈다. …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속죄물인 수소를 죽이고, 놋제단에 있던 숯불이 가득 담긴 향로와 두 움큼의 향을 가지고 지성소로 가서 향을 숯불에 넣어 자욱한 연기가 속죄소를 가릴 수 있게 했는데, 이는 마치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리는 것과 같았다. 그런 후 그는 수소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을 위한 속죄로서) 속죄소의 동편에 한 차례 뿌렸으며, (지성소 자체를 위한 속죄로서) 속죄소 앞에 일곱 차례 뿌렸다. 그다음에는 회중의 속죄물인 염소를 죽이고, 그 피를 해당하는 물체에 대해 같은 방법으로 뿌렸다. … 대제사장은 [아사셀] 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고백했으며, 그런 후 그 염소가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외딴 지역으로 가도록 그 염소를 한 남성에게 맡겨 광야로 보냈다. 이 의식은 백성의 죄를 내보내는 것을 의미했다.”(Bible Dictionary, “Fasts”; 또한 레위기 16:22 참조)

히브리서 9:11~15, 23~28; 10:1. 대제사장과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고대 레위 제사장들이 했던 의식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신 속죄를 예시했다.(히브리서 10:1 참조) 고대 제사장들은 이스라엘의 양 떼 중에서 어린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바쳤다.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바치셨다.(히브리서 9:12~14 참조) 대제사장은 해마다 속죄일에 이런 방식으로 제물을 바쳤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희생을 “단번에” 바치셨다.(히브리서 10:10; 또한 9:25~28 참조) 고대의 대제사장이 지상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해 염소의 피를 속죄소에 뿌렸듯이,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성소로 들어가셔서 회개하는 이들을 위해 하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흘린 피를 통해 중재하셨다.(히브리서 9:15, 23~25 참조)

따라서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제물을 바친 대제사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물 그 자체이기도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오셨다.(히브리서 9:26; 또한 Joseph Smith Translation, Hebrews 8: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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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와 모자 차림의 남자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의 옷차림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모형.(출애굽기 28장에 나오는 묘사를 바탕으로 만들었음)

히브리서 9: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바울이 예수님을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히브리서 9:11) 묘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우리 모두는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로나이는 몰몬경에서 그것을 ‘더 나은 세상[을] … 바랄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이더서 12:4] 축복이 가까이 있든지 아직 멀리 떨어져 있든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정서적인 건강과 영적인 활력을 위해 얼마간의 휴식, 곧 즐겁고 새롭게 하며 희망에 찬 어떤 것을 바라보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지 그곳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것이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간에 ‘장래 좋은 일’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확신이며, 특히나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그러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도움이 있습니다. 행복도 있습니다. 참으로 역경의 끝에서 빛이 보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빛이요, 광명한 새벽별이며, ‘결코 어두워질 수 없는 무궁한 빛’입니다.[모사이야서 16:9; 또한 요한복음 8:12; 요한계시록 22:16 참조]. … 이 빛을 보고 이 소망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을 분들께 저는 견디어 내라고 말씀드립니다. 계속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모든 일들이 나아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더 좋은 약속’의 미래를 가지고 그분의 ‘더 아름다운 직분’으로 여러분에게 오십니다. 그분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십니다.[히브리서 8:6; 9:11]”(“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42쪽; 또한 로마서 4:18~22 주해 참조)

히브리서 9:15~17. “유언한 자가 죽어야”

바울은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라고 기록했다.(히브리서 9:16)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바울이 기록한 이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법률 용어로, 유언자는 임종 시에 유효한 유언을 남기는 사람을 말한다. 유언장은 유언자가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기록 문서이다. 복음의 견지에서, 유언은 성약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새 성약 또는 유언의 중보자이시며, 이 복음 성약은 모세 율법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다. …

바울은 기본적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법률적 정의와 복음의 정의를 혼합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해 돌아가셔야만 했다. 유언 또는 구원의 성약은 그 죽음과 관련하여 성립하는 속죄 덕분에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유언자이다. 모든 유언자가 그렇듯이, 그분의 선물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물려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이 올 수 있도록 돌아가셨다.”(Mormon Doctrine, 784–85)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조셉 스미스 역에는 히브리서 9장 15~20절에 나오는 모든 유언이라는 단어 대신에 성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됨을 주목해야 한다.

히브리서 9:18~28; 10:1~4, 10~12, 17.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바울이 옛 성약과 새 성약 모두 희생의 피가 요구되었다고 가르쳤듯이, 그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했다.(히브리서 9:22)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모세 율법에서 속죄물을 바치기 위해서는 동물의 피를 흘려야만 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주님께서는 희생 의식에 관한 율법을 발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동물의 피는 옛 성약을 승인함으로써, 새 성약을 승인하고 죄 사함을 가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예시했다.(히브리서 10:4; 모사이야서 3:14~15 참조)

수 세기 동안, 의식으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고 성결하게 하기 위해 염소의 피를 흘려야 했다.(히브리서 9:13 참조) 그러나 바울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라고 가르쳤다.(히브리서 10:4) 구주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으며, 이는 유일하고 참된 희생이었다.(히브리서 9:28; 또한 마태복음 27:15~21 주해 참조)

히브리서 9:23~24; 10:1, 3.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바울은 모세 율법의 실행과 희생 제물이 어떻게 장차 일어날 일을 상징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모형”(히브리서 9:23), “그림자”(히브리서 9:24), “그림자”와 “형상”(히브리서 10:1), “기억”(히브리서 10:3) 구약의 제사장 직무와 성전 희생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속죄 희생을 나타냈다.

히브리서 10: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바쳐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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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제물을 드리는 아담과 이브

희생 제물을 드리는 아담과 이브, 델 파슨

히브리서는 반복해서 바쳐야만 했던 모세 율법에 따른 희생 제물과 “단번에”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간의 차이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히브리서 10:10; 또한 7:26~27; 9:25~28; 10:10~12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구주께서 단 한 차례 바쳐지신 일이 그 범위 면에서 어떻게 무한한 것이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무한하며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온 인류가 끝없는 죽음으로부터 구원받게 된다는 점에서 무한하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 정도가 무한했기 때문에도 그러합니다. 속죄는 시간 면에서도 무한하여 그전까지 상징으로 행해졌던 동물 희생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범위 면에서도 무한하여 한번에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해져야 했습니다.”(“속죄”,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35쪽)

히브리서 10:19~20. 그분의 육체의 휘장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성소로 들어가는, 즉 자신의 피를 통해 우리를 위한 중재를 하려고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으로 설정한 뒤, 독자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을 걸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했다. 그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라고 설명했다.(히브리서 10:20) 고대 성막 또는 성전의 휘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듯이, 바울의 비유에서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바쳐지고 영화롭게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요한복음 6:51; 히브리서 10:10 참조) 각각의 경우에 이는 그분의 면전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유일한 수단이었다.(사도행전 4:10~12; 모사이야서 3:17; 앨마서 38:9 참조) “휘장”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27:51 주해를 참조한다.

히브리서 10:22~24, 32~39.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히브리서는 유대인의 믿음으로 되돌아갈지 고민하던 교회 회원들에게 쓴 서한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유대인 성도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설명하며 히브리서의 교훈을 우리에게 적용했다.

“바울은 새로운 간증, 개인적인 개심, 영적인 침례 경험이 그들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그런 다음, 그는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다음과 같은 훌륭한 권고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브리서 10:32, 35; 기울임체 추가] …

항상 그렇게 어려웠지만, 바울이 말했듯이, 물러서지 마십시오. 당황해하거나 후퇴하지 마십시오.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전에 어떻게 느꼈는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

이러한 방해나 반대는 무엇인가 선한 일이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교육받고자 하는 때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새로운 선교 임지의 첫 번째 달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과 결혼의 문제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가족, 교회 부름 또는 직업에 관련된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주요 결정을 내릴 때에 주의하고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단 여러분이 선한 일을 하려고 결정하였다면, 선한 일에서 물러서게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 기도하고 그것을 신뢰하며 그것에 따라 생활했을 때 그것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지금도 그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압력이 심해져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행복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결코 무릎 꿇고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의심에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의 두려움을 극복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끝까지 견디어 여러분 앞에 펼쳐지게 될 인생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십시오.”(“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리아호나, 2000년 6월호, 37~38쪽)

히브리서 10:26, 29. 진리를 알고 난 후에 고의로 죄를 지음

바울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짐짓 죄를”(히브리서 10:26) 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치르신 희생을 경멸하는 것이기에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소책자 청소년의 힘을 위하여에는 이렇게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에 가거나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회개하겠다는 생각으로 고의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깁니다. 그와 같이 의도적인 죄는 구주의 속죄를 조롱하는 것입니다.”(청소년의 힘을 위하여[소책자, 2011], 29쪽)

히브리서 10:36; 12: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

바울은 유대인 성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았기에(48장에 나오는 “히브리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부분 참조), 독자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고했다. 히브리서 10장12장에 나오는 인내라는 단어는 참을성 또는 버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번역되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인내와, 끝까지 견디는 일에서 인내가 하는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바울은 충실한 제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10:36) 처음에는 올바른 일을 하다가도 계속 압박을 받으면 잘못을 범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압박이 심한 어려운 순간에도 올바른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지속적인 압박을 극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히브리서 12:1) 이 경주는 단거리 육상 경기가 아니며 장거리 마라톤입니다.”(“이를 잘 견디어 내면”, 성도의 벗, 1990년 7월호, 41쪽)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독자들에게 신앙으로 견디고 약속된 축복을 받도록 확신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과거에 살았던 충실한 사람들과 그들이 신앙을 통해 행했던 의로운 행위들의 실례를 상기시킨다. 조셉 스미스 역,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실상이라는 단어가 확신으로 변경되어 있다.(경전 안내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이 비유를 인용하며 우리는 신앙을 통해 과거의 확신을 기억하고, 미래를 맞이하며, 현재에 행동을 취하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했습니다.(히브리서 11:1) 앨마는 신앙이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신앙이 있을 경우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앨마서 32:21) 또한 Lectures on Faith[신앙강좌]에서는 신앙이란 ‘계시된 종교의 첫째 원리이자 모든 의의 기초’이고 ‘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라고 나옵니다.[Lectures on Faith (1985), 1]

바울과 앨마와 Lectures on Faith에 나오는 이 가르침들은 다음과 같이 신앙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강조합니다. (1) 참된 것을 바라는 확신으로서의 신앙, (2)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서의 신앙, 그리고 (3) 모든 지적 존재의 행동 원리로서의 신앙입니다. 저는 동시에 미래를 맞이하고, 과거를 돌이켜보며, 현재에 행동을 취하는 관점에서 구주를 믿는 신앙의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서의 신앙은 미래를 바라봅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과 승영을 바라는 소망과 불가분의 관계인 동시에 그 소망을 낳습니다. 우리는 확신과 소망을 통해 빛의 가장자리를 걸어가면서 빛이 길을 밝혀 주리라는 기대와 신뢰로 어둠 속에서 몇 발자국을 더 내딛게 됩니다.(보이드 케이 패커, “주님의 등불”, 성도의 벗, 1983년 10월호, 27쪽 참조) 확신과 소망이 함께하면 현재의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로서의 신앙은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참됨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확인합니다. 확신과 소망을 갖고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딘 우리는 빛이 실제로 움직여 필요한 곳을 밝혀 줄 때 증거와 확신을 얻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시련을 겪은 후 얻은 증거는(이더서 12:6 참조) 우리의 확신을 키우고 강화시킵니다.

확신, 행동, 증거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Seek Learning by Faith” [evening with Elder David A. Bednar, Feb. 3, 2006], 1~2; si.lds.org)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 지어[졌다]”

바울은 신앙을 통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진 경전상의 사례를 세상의 창조 시기의 것부터 언급하기 시작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브리서 11:3) Lectures on Faith[신앙강좌]에서는 여러 세상이 어떻게 신앙으로 지어졌는지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었던 권능의 원리는 신앙이었으며, 그 원리로 여러 세상이 지어졌다.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이 권능의 원리 덕분에 모든 피조물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하늘과 땅,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신앙이 그분 안에서 존재했던 것처럼 신앙으로 존재한다.

신앙의 원리가 아니었더라면 여러 세상은 결코 지음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인간도 티끌로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일하시는 원리이며, 그분께서는 이 원리를 통해 모든 현세적 및 영적인 것들에 대해 권능을 행사하신다.”(Lectures on Faith [1985], 3)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신앙이 권능의 원리라며 이렇게 가르쳤다.

“온전히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사한다면, 신앙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권능의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강력한 힘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물이 갈라지고, 병자가 고침을 받고, 악한 자가 잠잠해지고, 구원이 가능해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영적인 모든 생활이 근거를 두는 기초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이 되어야 합니다.”(“인자가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리아호나, 2002년 11월호, 84쪽)

히브리서 11:4. “아벨은 …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왜 아벨의 희생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가인의 희생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속의 계획을 믿는 신앙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희생 제물로 바쳤으며, 하나님은 이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신앙으로 제물을 바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신앙이 있을 수 없었거나, 하늘의 계획과 상반되는 신앙이어서 행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속죄하기 위해서는 독생자의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속의 계획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희생이 하나의 예표로 제정되었으므로, 그 예표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위대한 희생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예표에 어긋나는 희생을 드리면서 신앙을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은 그러한 방법으로 오지 않을뿐더러, 구속의 권능도 그러한 반차로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인에게는 신앙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48쪽)

히브리서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 믿어야 할지니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히브리서 11:6) Lectures on Faith[신앙강좌]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어떤 이성적이고 지적인 존재가 인생과 구원에 관련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행사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그분이 실제로 존재하신다는 개념. 둘째, 그분의 품성, 완전함, 속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 셋째,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 과정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실질적인 지식.”(Lectures on Faith [1985], 38)

히브리서 11:7~12, 29~35. 신앙은 기적에 선행한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의로운 성취 중 다수는 기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기적이 일어나기에 앞서 신앙의 시험이 먼저 온다는 것을 가르쳤다. “신앙은 기적에 선행합니다. 항상 그래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라는 계명을 받았을 당시에 비가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할 당시에는 수풀에 걸린 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셉이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온 두 분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신앙에 대한 시험이 있었으며 그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봉사하라는 부름”,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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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 있는 노아와 동물들

주께서 자신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나니, 클라크 켈리 프라이스

히브리서 11:8~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바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가 셀 수 없이 많은 후손과 약속의 땅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죽었지만, 이 약속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어디로 보내실지 알지 못한 채, 신앙을 가지고 고향인 우르 땅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그리고 그의 아들과 손자는 “이방의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결국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우실” 성, 즉 에녹의 성 또는 하나님의 성으로도 불리는 해의 왕국의 시온 성에 들어가고자 애쓰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지자 멜기세덱 또한 자신의 백성과 함께 이 성에 들어갔다. (히브리서 11:8~9, 13, 16; 조셉 스미스 역, 창세기 14:34[경전 안내서]; 교리와 성약 45:11~14 참조)

주님이 주시는 최상의 축복 중 다수는 육체적 사망 이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이다. 칠십인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스펜서 제이 콘디 장로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은 인내와 오래 참음, 그리고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에 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브리서 11:4~13 참조) 이 충실한 성도들은 이 지상에서의 삶이, 지나가는 여정이지 종착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요구함”,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17쪽)

히브리서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신앙으로 이삭을 바쳤다

바울이 이야기한 것 중 아브라함의 신앙에 관한 가장 중요한 예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주님의 명에 기꺼이 순종한 그의 의지에 관한 것이다. 이삭은 생득권을 지닌 아들로, 주님께서는 그 아들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이미 성약하신 바가 있었다. 주님의 명에 순종한다면 그 약속은 불가능해질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당신이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시리라는 신앙이 있었다. 바울이 이삭을 아브라함의 “외아들”로 묘사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일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에 대한 상징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몰몬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광야에서 그 아들 이삭을 바치는 일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과 같으니라. 이는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의 표상이니라.”(야곱서 4:5; 기울임체 추가; 또한 창세기 22:2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아브라함이 받은 신앙의 시험을 언급하며 왜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속의 상속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하늘의 명령보다 더 호된 신앙의 시험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상속자를 반드시 죽음에서 살려 내야만 이삭에 관한 그분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었다. (창세기 21:12) 그 이후로 계속 이어진 모든 세대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경외심과 존경 어린 마음으로 이를 보게 된다는 것은, 즉 한 필멸의 인간이 거의 인간의 능력 이상의 순종심을 보이도록 시험받는 장면을 되돌아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시험을 생각해 내셨을까? 확실히 그 시험은 아브라함의 축복과 유익을 위해서였다. 시험이 힘들수록 그것을 통과했을 때 따르는 보상도 더 크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뜻을 완전히 제단에 내려놓고 자신이 승영을 얻기에 합당함을 증명해 보였으며, 지금 그 승영을 누리고 있다. (교리와 성약 132:29)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마자 곧바로 하늘로부터 그와 그의 후손을 위해 예비된 영광과 명예가 나타났다. (창세기 22:15~18)

또한, 이삭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의지는 주님께서 영원토록 모든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기대하시는 완벽한 순종의 본보기가 되도록 의도되었음이 분명하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206–7)

히브리서 11:23~26. “잠시 죄악의 낙”

모세는 바로의 왕가에서 자랐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히브리서 11:25~26)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일시적인 쾌락이나 부가 아닌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떻게 참된 평안과 행복을 얻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탄의 유혹에 굴복한 자들은 경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릴]’지 모르나(히브리서 11:25), 그런 종류의 쾌락은 결코 지속적인 행복과 영원한 기쁨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죄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며 비참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부탁드립니다.[앨마서 41:10 참조] 젊은이 여러분,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세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릇된 것에서 영속적인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기쁨과 자비”, 성도의 벗, 1992년 1월호, 88쪽)

히브리서 11:33~39. 경전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

히브리서 11장 33~39절에는 경전상의 역사 전반에 걸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다니엘(히브리서 11:33; 다니엘 6:16~22 참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히브리서 11:34; 다니엘 3:21~27 참조), 에녹 (히브리서 11:34; 모세서 7:13~15 참조), 사르밧의 과부(히브리서 11:35; 열왕기상 17:17~23 참조), 이사야(히브리서 11:37 참조; 이사야는 “톱으로 켜[서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히브리서 11:40; 12:1.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히브리서 11장에서 바울은 고난과 주님을 믿는 신앙을 통해 많은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고 완전을 향해 나아간 남성과 여성들을 열거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 히브리서 11장 40절에는 그들이 겪은 고난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다음과 같이 밝혀져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고난을 통해 더 좋은 을 예비하셨은즉, 이는 그들이 고난 없이는 온전함을 이루지 못함이니라.” 바울은 이런 본보기들을 살펴본 후에 독자들에게 더욱더 충실하라는 권고를 전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히브리서 12:1)

바울은 11장에서 열거했던 남성과 여성들을 “구름 같[은] … 증인들”이라고 언급했다. 그들의 삶은 의로운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신앙의 힘을 증명하므로, 그들은 증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또한 경주에 대한 비유를 전하기 위해 “구름 같[은] … 증인들”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고대의 충실한 성도들은 경주자들을 응원하는 관중으로 빗대어졌다. 이 두 가지 의미는 고대 성도들의 강력한 모범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도록 힘과 자신감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말은(히브리서 12:2) “우리 신앙의 선도자요 완성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222)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견디라는 권고가(히브리서 12:2)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했다.

“이 큰 인생의 경주에서 우리는 혼자 달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의 모범을] 바라보자.’[히브리서 12:1~2]”(“Great Expectations” [Brigham Young University devotional, Jan. 11, 2009], 6; speeches.byu.edu)

히브리서 12:2.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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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십자가형은 희생자가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그를 욕보이며, 고문할 목적으로 행해졌다.(고린도전서 1:17~2:13 주해 참조) 바울은 구주께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기록했다.(히브리서 12:2) 그분께서 십자가형의 고통과 공개적인 모욕을 개의치 않으시고 참으신 것은 결국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기쁨이 올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십자가형을 죽음에 이르는 굴욕적인 방법으로 여겼지만, 초기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형에서 순종과 겸손, 사랑, 권능을 보았다.

히브리서 12:6~11. 주님의 징계

경전은 주님이 징계하시는 수많은 목적을 알려 준다. 히브리서 12장 10절에서, 바울은 주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려고 우리를 징계하신다고 가르쳤다. 그분의 징계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히브리서 12:11) 주님의 징계는 여러 형태로 올 수 있으며, 이는 늘 개개인에게 가르침과 더불어 그 사람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징계로 사람들은 주님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용서와 구조를 받고, 순종을 배우고 황금처럼 정련된다.(힐라맨서 12:3; 교리와 성약 1:27; 95:1; 105:6; 욥기 23:10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디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는 주님의 징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삶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려면(에베소서 4:13), 교정은 꼭 필요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는 교정, 곧 징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히브리서 12:6) 때로는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과 문제를 주실 만큼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신다는 점에 기뻐해야 합니다.”(“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98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올슨 에프 휘트니(1855~1931)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가 겪는 어떠한 고통도, 그 어떤 시련도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가르침을 얻고, 인내와 신앙, 충실, 겸손 등과 같은 자질을 계발합니다. 우리가 겪고 견디는 모든 것은, 특별히 우리가 그것을 끈기 있게 견디어 낼 때, 그것은 우리의 성품을 강화하고 마음을 순화시키며, 영혼을 넓혀 주고, 우리를 더욱 부드럽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Spencer W. Kimball, Faith Precedes the Miracle [1972], 98)

히브리서 12:9. “모든 영의 아버지”

히브리서 12장 9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자녀라는 교리를 확언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 교리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 ‘난 하나님의 자녀’에 나오는 개념의 힘을 생각해 보십시오.[찬송가, 187장] … 여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생의 한 가지 위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나는 하늘 부모님의 영의 계보에 따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한 부모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훌륭한 견해는 우리가 좌절하지 않게 해 줍니다. 그것은 의로운 선택을 하고 우리 내부의 최선의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강화시킵니다. 젊은이의 마음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여러분이 인생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자긍심과 동기를 주었다는 훌륭한 개념을 세워 주십시오.”(“훌륭한 개념”,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25쪽)

히브리서 12:16~17. 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부도덕하거나 불경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에서의 성격을 적나라한 말로 표현했다.(히브리서 12:16~17 참조) 망령된 자[불경스러운 사람]란 에서가 약간의 음식을 얻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이삭에게 팔았듯이, 거룩한 것을 경솔하게 다루거나 경멸하는 사람을 말한다.(창세기 25:28~34 참조) 17절에 나오는 “축복”은 장자의 명분을 말하며, 에서는 그것을 팔아버린 후에 다시 얻고자 했다.(창세기 27:34~38 참조)

히브리서 12:22. “천만 천사”

바울은 “천만 천사”라고 언급함으로써 승영에 이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무수히 많으리라는 것을 시사했다.(또한 다니엘 7:10; 요한계시록 5:11 참조)

히브리서 12:23. “장자들의 … 교회”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장자[의] 교회’에 속한다는 바울의 가르침은(히브리서 12:23) 성경에서 이 표현이 사용된 유일한 사례이다. 후기의 계시를 통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장자의 교회란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말하며, 해의 왕국의 승영에 오른 충실한 회원들이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교리와 성약 76:54; 88:4~5 참조) “예수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들 중의 장자였고, 육으로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며, 또 부활에 있어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서는 첫 번째였다(골로새서 1:13~18) 충실한 성도는 영원히 장자의 교회의 회원이 [된다.](교리와 성약 93:21~22)”(경전 안내서, “장자”; scriptures.lds.org)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하나님께서 “소멸하는 불”이라는 비유에 관해(히브리서 12:29)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불 속에 거하신다. 살과 피는 거기에 갈 수 없으니, 부패하는 모든 것은 그 불에 타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우리 육체가 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때, 이 장막[육체]에는 피가 없을 것이다. 일부는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영광 속에서 거하게 된다.”(History of the Church, 6:366)

히브리서 13:9. “끌리지 말라”

굳건하게 복음 안에 남고, 이상한 교리를 피하는 것에 관하여 더 알아보려면, 다음 자료를 참조한다. 에베소서 4:11~14; 조셉 스미스—마태 1:11 주해.

히브리서 13:12.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에 관하여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27:33 주해를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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