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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8장
누가복음 4~8장 소개 및 연대
누가복음의 4~8장은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이야기로 시작되며,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신이 메시야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축복하러 왔다고 선포하신 이야기로 이어진다. 누가는 그다음으로 구주께서 개개인들이 악령들의 부정적인 영향, 질병, 죄와 사망을 극복하도록 도우신 연민 어린 노력에 대해 기록했다. 구주께서는 이런 기적들을 행하실 때마다 제자들에게 당신과 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관대하게 베풀고, 자비를 보이고,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이 장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망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성역을 베푸신 것 외에도,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 보인 다양한 반응을 보여 준다. 또한 개개인이 겸손, 신앙,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구주와 함께하는 그들의 경험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볼 수 있다.
누가복음 4~8장 주해
누가복음 4:1~2. “사십 일 동안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또한 마태복음 4:1~11; 마가복음 1:12~13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는 동안,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으며(마가복음 1:13), 그분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다.(누가복음 4:1) 이는 앞으로 다가올 성역을 위한 커다란 영적 준비의 기간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4:2~10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4:3~9. 광야에서의 사탄의 시험(또한 마태복음 4:8~10 참조)
사탄은 예수께 이기적인 이유로, 즉 온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분의 권능을 사용하라고 유혹했다. 사탄은 주님의 생애 마지막 때에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그분을 시험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군인들이, 또 옆에 나란히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 중 한 명이 했던 말도 그런 것들이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누가복음 23:37),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말했다.(누가복음 23:39) 사탄은 예수님이 자신의 권능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도록 유혹함으로써 자녀들을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려고 했다.
또한, 사탄은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왕국과 권능과 영광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것이 아니었다.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이미 이 지상을 지배하고 계셨다. 우리가 이 성구들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사탄은 평안과 행복을 포함하여 자신이 줄 수 없는 축복을 약속하며 우리를 유혹하기도 한다.(니파이전서 20:22; 앨마서 41:10; 몰몬서 2:13 참조)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사탄의 시험에 굴복하여 세상의 재물과 영광을 구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께 충실하고 모든 계명을 지킬진대 ‘아버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상속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며(교리와 성약 84:38), 하나님의 다른 자녀도 이렇게 할진대 그와 똑같은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현세와 영원한 세상의 축복을 잃는 가장 확실한 길은 사탄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그리스도가 받은 시험”,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17쪽)
이와 비슷하게, 몰몬경에도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의 예가 나온다. 그들은 유혹에 굴복함으로써 자신들이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울러, 몰몬경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가 나온다. “악마[는] 자기의 자녀들을 마지막 날에 도우려 하지 아니하고, 급히 지옥으로 끌어내”린다.(앨마서 30:60; 또한 52~60절 참조)
누가복음 4:9~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을 받으시다(마태복음 4:5~7 참조)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받들어 줄 것임을 믿으라는 제안을 거절하신 기사에서 구주의 성품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점을 통찰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권능을 이기적으로 드러내 보이기를 거절하셨다. 둘째, 그분은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구주의 모범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위험성이 있는 상황, 활동, 물질을 피하도록 이끌어 준다. 조셉 스미스가 영감을 통해 번역한 누가복음 4장 5, 9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고 예루살렘으로 데려온 것은 사탄이 아니라 영이었으며, 그런 후에 사탄이 와서 그분을 시험하였다고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Joseph Smith Translation, Luke 4:5 및 Joseph Smith Translation, Luke 4:9 참조; 또한 마태복음 4:1, 5, 8 주해 참조)
누가복음 4:13.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나다
누가복음 4장 13절에는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휴식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누가는 구주께서 후에 여러 시험을 당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누가복음 22:28 참조) 구주께서 직면하셨던 시험과 극복에 관해 더 많은 통찰을 얻으려면, 히브리서 2:10, 14~18 주해 및 히브리서 4:15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4:14~15.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 돌아가시니”
예수께서는 “사십 일 주야를 금식하시고, 하나님과 함께 교통하신” 후에, 갈릴리로 돌아가 회당에서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4:2) 경전에는 그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 돌아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누가복음 4:14) 십이사도 정원회의 엘 톰 페리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금식은 그분에게 영적인 능력을 축복해 주었습니다.”(“금식의 법”,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36쪽) 우리는 구주의 모범을 따라 도움이 필요할 때 금식하고 기도함으로써 영적인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누가복음 4:16~21.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에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선언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에서 성역을 시작하셨다. 그분은 회당으로 가서 메시야의 사명이 기록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자신이 그 예언을 성취한 사람임을 밝히셨다.(누가복음 4:16~21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구주께서 회당에 참석하신 배경을 이렇게 기술했다.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많이 이 예배 장소[회당]에 앉아서, 율법서와 예언서와 그에 관한 … 주해서를 임명된 낭독자가 낭독하는 것을 들었었으나, 이번에는 합법적인 연령에 이른 교사로 인정받고 자신이 낭독자로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읽으려고 서 계셨을 때는, 회중에게 예언서의 한 부분을 택하여 읽는 단계였다. 담당하고 있는 제사장이 예수께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예수께서는 현재의 61장 처음 구절로 알려진 부분을 읽으셨다.[누가복음 4:18~19] … 그가 인용하신 성구는 특히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부분이며, 온 나라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다.”(예수 그리스도, 183~184쪽)
경전을 읽으신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설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셨다. 예수님 시대에는 경전을 읽는 동안은 서 있고, 가르치는 중에는 앉는 것이 관례였다.(마태복음 5:1; 26:55; 요한복음 8:2; 사도행전 16:13 참조)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분을 주목하여 보자, 예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누가복음 4:21)
예수께서 인용하신 성구들은 그분이 행하실 지상 사명과 속죄 희생을 요약한 것이었다.(이사야 61:1~2 참조) 이 성구들에는 “기름을 부[음]”받은 사람이 언급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이 말이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겼다. 메시야로서 예수께서는 “상한 자를 고치”도록 보내지셨다. 그분의 속죄 희생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희생을 드리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었다.(제3니파이 9:20; 교리와 성약 59:8 참조) 그분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전파하”고자 보내지셨다. 그분의 복음은 영적인 속박에 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자유롭게 할 것이었다.(베드로전서 3:18~20; 교리와 성약 138:18~30 참조) 그분은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사람들의 신체적인 시력과 영적인 시력을 기적적으로 회복하실 것이었다. 또한 그분은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이었다. 이브에게 하신 약속, 즉 뱀이 그 후손들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나 그녀의 후손들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권능을 갖게 되리라는 약속이 성취되었다.(창세기 3:15 참조) 그분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실 것이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자신의 성역을 시작하셨음을 전파하실 것이었다. 그분은 그렇게 하셨다!
누가복음 4:22~30.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시다(또한 마태복음 13:54~58; 마가복음 6:1~6 참조)
나사렛 사람들은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을 “놀랍게” 여기며,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누가복음 4:22) 제임스 이 탈매지 장로는 구주께서 자신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예상하셨으며, 그분이 메시야라는 증거를 눈으로 보고자 했던 그들의 무언의 바람을 꾸짖으셨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가나에서 행하셨던 일을 알고 있으며, 그의 말씀으로 가버나움에 있던 소년이 나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도 그는 기이한 일로써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그의 고향 사람들이 경시되었는가? 왜 그는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능을 나타내 보여 그들을 만족시켜 주시지 않았는가?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며,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 가뭄과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이방인인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선지자 엘리야가 보내졌으며,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합당한 신앙을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수리아 사람이 병 고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화를 내었다. 예수가 감히 우리를 이방인과 나병환자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취급하다니? 우리가 우리가 경멸하는 불신자들과 같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같은 지역에서 자라난 목수의 아들에게서 우리가 그러한 취급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화가 난 그들은 주님을 잡아서 그 마을이 건설된 산꼭대기로 데려다가 낭떠러지에서 밀쳐 떨어뜨림으로써, 그들의 상한 감정에 대해 복수하려 하였다.”(예수 그리스도, 184~185쪽)
누가는 그 방법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격렬한 군중들 “가운데로 지나서” 그들을 피하셨다.(누가복음 4:30) 이 일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는 사도 요한의 진술이 참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요한복음 1:11; 또한 이사야 53:2~3 참조)
누가복음 4:31~44.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구주를 배척했던 나사렛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가버나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찾아 나섰으며,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였다.(누가복음 4:42) 아마 이런 까닭으로도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본 동네”(마태복음 9:1), 또는 그분의 성역을 위한 교회 본부로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나사렛과 가버나움에서 드러나는 구주의 성역의 차이는 주님께서 “사람의 자녀들 가운데서 그들의 신앙에 따라서가 아니면” 역사하지 아니하신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니파이후서 27:23; 또한 마태복음 13:58 참조) 누가복음 4장 44절에 묘사된 대로, 예수님은 관례에 따라 먼저 회당으로 가서 가르치셨으며,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이 계속해서 이 관례를 지켰다.
누가복음 4:33~37, 40~41.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령을 내쫓으시다
악령을 내쫓으신 구주의 권능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마가복음 1:23~27, 34; 3:11, 14~15, 22~30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4:38~39. “시몬의 장모”(또한 마태복음 8:14; 마가복음 1:30 참조)
누가복음 4장 38절은 시몬 베드로가 기혼자였음을 밝혀 준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모든 경륜의 시대에 주님의 종들은 결혼 생활과 가족의 축복을 누렸다고 가르쳤다. “예수께서 특별히 택하신 제자들은 아내와 자녀와 가족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든 그분께서 특별히 부르시는 종들은 그러해야 한다.”(The Mortal Messiah: From Bethlehem to Calvary, 4 vols. [1979–81], 2:37)
누가복음 5:1~9. “깊은 데로 가[라]”(또한 마태복음 4:18~22; 마가복음 1:16~20 참조)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받을 당시 성공한 어부로 동업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두 척의 배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서 예수님을 따랐다. 시몬 베드로가 구주를 따르기 위해 극적으로 잡은 물고기를 버리고 간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실려 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부활 후에 일어났는데, 요한복음 21장 2~6절에 기록되어 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브리검 영 대학교 학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베드로의 생애에서 이 사건이 지니는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 바가 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의 말씀을 빌자면, 베드로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다이아몬드였습니다. 베드로라는 다이아몬드는 교정과 질책, 시험을 통해 깎이고, 다듬어져야 했고, 광을 낼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이아몬드가 지닌 진정한 특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주께서는 이 사도에게 왕국의 열쇠를 맡겨도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Peter, My Brother,’ Brigham Young University Speeches of the Year (July 13, 1971), 2]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몇 달 만에 많은 일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주어질 부름을 위해 가능한 한 빠르게 베드로를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분은 어느 날 아침 갈릴리에서 이 어부에게 권고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누가복음 5:4)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후, 전문가인 베드로의 입장에서 판단해 보면 한 번 더 해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 한 번의 시도로 잡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고기를 가득 채운 두 척의 배는 물에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배 안에서 베드로는 깜짝 놀라며 주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누가복음 5:10)
깊은 데로 가라! 베드로는 그 단순한 명령이 자신의 소박하고 평범한 인생 여정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신앙심이 커지는 곳으로, 구속받고 해의 영광의 삶을 살 수 있는 영원한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왕국의 비밀을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형언하기 힘든 것들을 듣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무한한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베드로는 배를 육지에 대고,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역대 최고의 어획물을 뒤로한 채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누가복음 5:11)
그 순간부터 예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를 가르치고 훈련하셨습니다.”(“The Lengthening Shadow of Peter,” Sept. 1975, 32)
누가복음 5:8. 베드로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다
베드로가 처음 구주를 만나 그분의 기적적인 권능을 목격했을 때, 베드로는 구주께서 지니신 구속의 권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누가복음 5:8) 베드로가 한 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자신이 죄가 많고 합당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며 더욱더 그분과 같이 되기 위해 그분의 도움을 바라게 된다.
누가복음 5:10~11.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또한 마태복음 4:22; 마가복음 1:20 참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구주를 따름으로써 제자가 갖춰야 할 전형적인 자질을 보여 주었다.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1920~2007) 회장은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모범을 언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누가는 그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누가복음 5:10~11]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disciple(제자)이라는 단어와 discipline(수련)이라는 단어 모두 같은 라틴어 어근인 discipulus(문하생)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실습이나 연습을 강조합니다. 자기 수련과 자제는 참으로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좋은 예를 보였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일관되고 영구적인 특성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구주에 대한 순종을 뜻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순결입니다. 십일조입니다. 가정의 밤입니다.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
제자에게는 악한 죄를 버리고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께서 ‘용서가 낳는 기적’[The Miracle of Forgiveness (1969), 362 참조]이라 칭한 것을 누리라는 요구가 따릅니다. 이것은 회개를 통해서만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버리고 매일 진리와 의의 추종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제3니파이 27:27]”(“제자가 됨”,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20, 22쪽) 그물을 버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마태복음 4:18~22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5~6장. 이 교재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주해
누가복음 5~6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 중에 있었던 가르침과 사건의 다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나온다. 이런 가르침과 사건에 대한 주해를 이 학생 교재의 어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다음 도표에서 확인한다.
누가복음에서 각 주제가 나오는 위치 |
이 교재에 나오는 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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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2~15.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셨다. | |
누가복음 5:17~26.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 | |
누가복음 5:27~32.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도록 레위(마태)를 부르셨다. | |
누가복음 5:36~39. 그리스도께서 낡은 옷과 새 옷, 낡은 가죽 부대와 새 가죽 부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 |
누가복음 6:1~11. 예수께서 올바른 안식일 준수에 대해 가르치셨다. | |
누가복음 6:12~13. 구주께서 십이사도들을 택하셨다. | |
누가복음 6:17~49. 그리스도께서 평지수훈을 가르치셨다. |
누가복음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구주께서 마태복음 9장 14~17절에 기록된, 침례 요한의 제자들에게서 받은 질문에 응하여 누가복음 5장 39절의 비유를 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너희는 내 아버지께서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하도록 보내신 요한을 추종하면서도, 모세의 율법[묵은 포도주]을 따랐다. 그러나, 이제 모세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나니, 바로 메시야이다. 비록 너희의 묵은 가르침을 즉시 버리고 새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어려울지라도 요한이 가르쳤던 것처럼 너희는 이제 메시야를 따라야만 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186) 경전과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권고가 개인적인 견해나 전통과 맞부딪힐 때는 그 영감 어린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누가복음 6:17~49. 평지수훈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평지수훈에 나오는 많은 가르침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똑같거나 유사하다. 이 가르침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누가의 기사는 마태의 기사와 다른 점이 있는데,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이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사 평지에 서[서]” 그곳에서 “많은 무리”를 치유하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6:17) “평지[the plain]”가 산에서 떨어져 있는 저지대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산에 있는 고원을 말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마태가 기록한 산상수훈과 누가가 기록한 평지수훈이 같은 사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에서 연대순 배치와 맥락을 보면, 동일한 설교가 누가복음 6장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설교에 대한 두 기록에는 공통점이 많지만, 누가의 기록에는 몇 가지 독특한 요소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누가가 기록한 팔복은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누가복음 6:21)에 뒤이어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같이 “화”에 관한 내용이 대조를 이루며 등장하는데, 이는 마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6:25) 구주의 이 선언은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그분을 따르는 데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구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라고 선언하셨는데 (누가복음 6:26), 이는 의롭게 행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악을 행하려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르침은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 전반에서 거듭 강조했던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세상의 불의한 상태를 바로잡고자 오셨다는 주제에 일조한다.(누가복음 1:50~53; 16:19~31 참조) 평지수훈에는 또한 무언가를 빌려 주는 것(누가복음 6:34~35 참조), 자비심을 보이는 것(누가복음 6:36~37 참조), 후하게 주는 것(누가복음 6:38 참조)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는데, 이 가르침들은 마태복음 5~7장에는 실려 있지 않다.
누가복음 6:38.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누가복음 6장 38절에 기록된 대로, 구주께서는 다른 이에게 후하게 주라고 하셨다. 그분은 추수 바구니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수확물로 차고 넘치는 모습을 비유로 드셨다. 게다가 수확물을 더 많이 넣을 수 있도록 바구니 안에 든 것을 “누르고”, “흔들어” 바구니가 “넘치도록” 담았다. 후하게 주는 것에 대한 비유는 그에 상응하는 축복을 제시한다. 즉,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서도 같은 정도의 관대함을 받게 될 것이다. 후하게 주라는 구주의 가르침은 물질적인 제공뿐만 아니라(누가복음 6:30, 34~35 참조) 사랑, 자비, 용서와 같은 무형의 은사에도 적용된다.(누가복음 6:32~37 참조)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이 성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부정적인 행실이 아닌, 친절과 용서와 자애가 깃든 행동에 항상 집중하는 데에, 이 약속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리아호나, 2012년 5월호, 76쪽)
누가복음 7:2~10. 한 백부장의 위대한 신앙(또한 마태복음 8:5~10 참조)
백부장은 50명 내지 100명의 중대를 통솔하는 로마 군대의 장교였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백부장들을 경멸했는데, 이는 그들이 로마의 정치력과 군사력을 상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는 이 특별한 백부장에게 있는 몇 가지 존경스러운 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타적이었으며, 그가 요청을 한 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종을 위해서였다.(누가복음 7:2) 이 백부장의 선량함은 유대인 장로들도 인정했다. 그는 진정한 겸손을 보여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합당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직접 찾아뵙거나 그분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일 수도 없다고 여겼다.(누가복음 7:6~7 참조) 백부장이 예수님께 방문을 청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이방인들과 가까이하는 것, 즉 함께 식사한다거나 그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백부장은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구주께 도움을 청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엄청난 신앙을 행사했는데, 그분의 말씀만으로도 종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신성한 권세를 인정하였으며, 또한 주님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자신에게 익숙한 군 지휘권에 빗대어 생각했다.(누가복음 7:8 참조) 이에 구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신 것은(누가복음 7:9)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그분의 메시야적 선언과도 부합한다.(누가복음 4:16~30 참조) 또한 이는 주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관심을 보이신다는 누가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누가복음 7:11~18.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인 성에 사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다
이 기적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며,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신 세 가지 기록 중 하나이다.(또한 마가복음 5:35~43; 요한복음 11:1~44 참조)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청년은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다.(누가복음 7:12) 독자를 잃었다는 것은 그 과부가 아무런 현세적인 부양책도 없이 남겨졌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청년을 살리신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는 것을 인정했다.(누가복음 7:16) 이 진술은 사람들이 기적을 목격함으로써 구주와 두 고대 선지자의 성역 사이의 유사점을 깨달았음을 시사한다. 수 세기 전, 엘리야는 사렙다에 사는 한 과부의 아들을 살렸으며(열왕기상 17:17~24 참조), 엘리사는 나인에서 북서쪽으로 겨우 5킬로미터 떨어진 수넴 지방에서 한 과부의 아들을 살렸다.(열왕기하 4:17~22, 32~37 참조)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구주께서 보이신 동정심의 모범을 따르라고 권유했다. “구주의 성역 가운데서 나인에서 비통하게 우는 과부에게 보이신 동정심의 모범보다 저에게 감동을 준 것은 거의 없습니다. … 구주께서 얼마나 커다란 권능과 온유, 그리고 동정심을 보여 주셨습니까! 우리도 역시 그분의 고결한 모범을 따르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비참한 곤경에 빠진 이를 볼 수 있는 눈과 상한 심령의 말없는 호소를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과 눈으로 혹은 소리와 귀로 대화를 나눌 뿐만 아니라 구주께서 보여 주신 놀라운 방법에 따라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동정심이 가득한 영혼도 필요합니다.”(“삶의 고난을 헤치며”, 성도의 벗, 1994년 1월호, 71쪽)
누가복음 7:19~23. 침례 요한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 제자들을 보냈는가?
침례 요한이 구주께 제자들을 보낸 이유를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1:2~6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7:24~30. “요한보다 큰 [선지]자가 없도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침례 요한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로 여겨지는 세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그는 주님의 면전에서 길을 예비하도록 하나님에게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와 같은 위임을 받은 사람이 요한 이전이나 이후에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둘째, 그는 자신의 손으로 행하도록 위임받은 중요한 사명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인자에게 침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그런 일을 행할 영예를 누렸습니까? 누가 그런 특권과 영광을 누렸습니까? …
셋째, 요한은 당시 지상에 있었던 왕국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능의 열쇠를 지닌 유일하고 합법적인 집행자였습니다. …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선지자가 된 것이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81~82쪽)
누가복음 7:28.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고 언급하셨다.(누가복음 7:28)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누구를 극히 작은 자로 가리켰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왕국에서 권리가 가장 적은 분으로 간주되었으며, [외형적으로 보기에] 그분을 선지자로 믿기에는 자격도 가장 적은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분은 마치 ‘너희 중에 극히 미약한 자로 여겨지고 있는 자는 요한보다 큰 자이니, 그는 나니라.’ 하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가르침: 조셉 스미스, 82쪽)
누가복음 7:31~35. 장터의 아이들
장터의 아이들에 대한 비유를 더 잘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1:16~19 주해를 참조한다.
누가복음 7:36~50. “이 여자가 … 죄인인 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과 식사를 하시는 동안 죄인으로 평판이 나 있던 여자가 그분 곁으로 다가왔다.(누가복음 7:37, 39 참조) 그 여인이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연회에 와서 남은 음식을 받는 사회 관습이 있었기에 그녀는 시몬의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녀는 눈물로 구주의 발을 적시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 시몬은 이 행동을 보았으며, 그 여인의 그런 행위를 허용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이에 주님께서는 시몬의 잘못에 주의를 돌리셨다. 구주를 향한 여인의 헌신적인 행위와는 대조적으로 시몬은 예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입맞춤의 인사도 하지 않았으며, 그분의 머리에 기름을 붓지도 않았다. 시몬은 의도적으로 손님에 대한 관례상의 친절함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구주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시몬과 그 여인을 신성한 재판관에게 빚진 죄인으로 빗댄 한 가지 비유를 들려주셨다.(누가복음 7:40~43 참조) 여인의 죄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구주로부터 용서와 평안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시몬이 아니라 그 여인이었다. 그녀가 구주를 믿는 신앙을 행사했고 자신의 죄를 회개했기 때문이었다.(누가복음 7:48, 50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구주의 비유와 일치하는 가르침, 즉 우리 각자는 우리 죄의 종류나 크기에 상관없이 구주의 사랑과 용서를 느낄 필요가 있음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합당함과 의로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우리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구주의 자비로운 팔을 느껴야 합니다.
수 년 전,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나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나기 오래전에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는 교회 회원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이제는 교회로 돌아온 지 오래되었으며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습니다만, 과거에 했던 행위들이 계속 뇌리에 남아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와 만났을 때 성약을 위반한 일에 대한 수치심과 깊은 후회를 그에게서 느꼈습니다 접견한 다음에 저는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신권 축복을 주었습니다. 입을 떼기도 전에 저는 그를 향한 구주의 사랑과 용서를 느꼈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축복이 끝난 후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그는 숨기지 않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은 죄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든에 상관없이 회개한 자를 감싸 안는 구주의 사랑의 팔과 자비는 놀라웠습니다. 저는 구주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또한 간절히 용서하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간증드립니다. 충만함을 안 후에 멸망을 택한 몇몇의 죄를 제외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죄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특권입니까. 신성한 용서는 복음의 가장 감미로운 열매 중 하나이며, 우리 마음에서 죄책감과 고통을 없애 주고, 그 대신 기쁨과 양심의 평안을 선사합니다.”(“회개하여 …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라”, 리아호나, 2009년 11월호, 40~41쪽)
구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일주일 전,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도 구주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그때의 기름부음은 구주의 사망과 매장을 예견한 것이었다.(요한복음 12:3, 7 참조)
누가복음 7:47.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라고 선언하심으로써(누가복음 7:47) 자기 죄에 대하여 성스러운 용서의 축복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칠십인 회장단의 매리온 디 행스(1921~2011) 장로는 이 가르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여기에는 죄를 조장하거나 너그럽게 봐 주는 것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에 의하여 개심하고 깊이 회개하였으므로,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기뻐하심이 있겠고 땅에서도 그러할 것입니다.”(“주께서 날 부르심”, 성도의 벗, 1979년 10월호, 113쪽)
이에 더해 우리는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은 구주의 속죄를 조롱하는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자 애쓰며, 우리 죄를 진심으로 회개함으로써 구주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회개를 미루면 축복과 기회, 영적인 인도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죄악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돌아오는 길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청소년의 힘을 위하여[소책자, 2011], 28쪽)
누가복음 8장. 이 교재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주해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구주의 성역 중에 있었던 가르침과 사건의 다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나온다. 이런 가르침과 사건에 대한 주해를 이 학생 교재의 어느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지는 다음 도표에서 확인한다.
누가복음에서 각 주제가 나오는 위치 |
이 교재에 나오는 주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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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4~15. 그리스도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주셨다. | |
누가복음 8:19~21.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 | |
누가복음 8:22~25. 예수 그리스도께서 폭풍을 잠재우셨다. | |
누가복음 8:26~40. 구주께서 많은 악령을 쫓아내셨다. | |
누가복음 8: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 |
누가복음 8:41~56.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셨다. | |
누가복음 8:43~48. 구주께서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치셨다. |
누가복음 8:1~3.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시중을 들다
누가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했던 여인들의 기사를 통해, 구주께서는 여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신다는 점을 강조했다. 1세기 유대인 사회에서 여인들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구주께서 갈릴리에서 성역을 베풀며 그 지역의 “각 성과 마을”에서 가르치실 때(누가복음 8:1), 그분의 여정에 사도들이 함께했으며, 많은 여성들도 거기에 동행했다. 그중 몇몇은 여러 가지 질병에서 치유를 받았다. 다른 여자라고 언급된 사람들 중에는 사도들의 아내가 있었을 수도 있다. 몇몇 여인들은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 그리고 그 후에도 그분을 따랐다.(누가복음 23:27; 24:10; 요한복음 20:11~18 참조) 이 여인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예수님과 그분의 지도자들을 도왔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은 구주께서 모든 여성을 존중하신다는 사실을 확언하며, 우리 시대에 교회의 여성들에게 형제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주님의 일을 추진하라고 요청했다.
“우리의 구주이신 바로 이 예수님이 속죄를 통해 당시의 여성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이셨음을 기억할 때, 그분의 교회에 속하신 사랑하는 자매 여러분은 분명 큰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곁으로 많은 여성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중에는 매우 절친한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 예수님이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다소 덜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우리의 주님이신 구주께서 그 당시 심지어는 굴욕을 당하시고 고뇌를 겪으시며 죽임을 당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여성들이 지닌 위로의 손과 듣는 귀, 믿는 마음, 친절한 눈, 격려의 말, 충실함이 필요했듯이, 전 세계 교회에 있는 우리 주님의 종들 역시 우리의 곁에 서서, 우리를 집어 삼키려고 위협하는 악의 물결을 막도록 우리를 지지해 줄 교회의 여성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함께 우리보다 훨씬 수가 많은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들을 충실하고 굳건한 신앙으로 맞서야 합니다. 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의 물결을 막고 구주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형제들 곁에 서서 그들을 지지해 줄 교회의 여성들을 결집시킬 필요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교회의 여성들에게”,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95~96쪽)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구주께서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던 여인으로, 예수님과 동행했던 여인들 중 한 명이었다.(요한복음 20:10~18 참조) 누가는 구주께서 그녀에게서 일곱 악령을 내쫓아주셨다고 기록했다.(누가복음 8:2 참조) 막달라 마리아를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언급된 죄 많은 여성 또는 베다니의 마리아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누가복음 10:38~42; 요한복음 11:1 참조) 요한복음 20장 10~18절과 다른 경전 구절에서 시사하듯, 막달라 마리아는 왕국에서 명예로운 위치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