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학생
제2장: 마태복음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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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마태복음 소개

왜 마태복음을 공부하는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구 중 일부는 마태복음에 나온다. 팔복, 산상수훈 및 예수님께서 전하신 많은 비유와 가르침과 기적에 관한 기록이 그것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설교를 하면서 종종 마태복음을 인용했다.

마태복음은 누가 기록했는가?

이 복음서에 대해 언급한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모두 이 복음서의 저자가 구주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이자 기록에 나온 많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마태라는 데 동의했다. 조셉 스미스 역에서 이 복음서에 붙인 제목인 Testimony of St. Mattew[성 마태의 간증]”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마태는 개종하고 사도로 부름받기 전에 세리였으며, 알패오의 아들 레위로 알려졌었다.(마태복음 9:9; 마가복음 2:14; 누가복음 5:27~32 참조)

마태복음은 언제, 어디에서 기록되었는가?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일부 증거가 있다. 마가는 주님의 생애에 대해 베드로가 직접 목격한 것들에 크게 의존했으므로 마태는 마가의 기록을 신뢰했을 것이다. 마태는 마가에게서 얻은 자료를 상당히 많이 편집하고, 수정하고, 재편성하고, 추가했다. 또한 다른 구전 자료 및 기록들을 활용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기록된 때를 주후 70~90년으로 본다.

마태복음은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

마태는 유대인 독자를 위해(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을 유대인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전서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기록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마태는 종종 구약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이루려 하심이니”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왕의 왕위를 물려받은 적법한 계승자이시며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성취한 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에 “다윗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열두 번이나 사용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다윗과 유다와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마태복음 1:1~3 참조) 예수님이 통치하실 권리가 있으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셨음을 보여 주었다. 마태가 이방인들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과 가르침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아, 그는 자신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당시 구주의 사업이 이방인 가운데서도 행해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도록 독자들에게 권유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마태복음 8:5~13; 15:21~38; 28:19~20 참조)

마태복음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

마태복음에 나오는 많은 내용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나오지만, 약 42퍼센트는 독자적으로 이 복음서에만 있는 내용이다. 마태복음의 주요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러 오셨다는 것이다. 마태는 “천국”을 여러 번 언급했고, 복음서 저자 중 유일하게 “교회”를 언급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에 포함시켰다.(마태복음 16:18; 18:17 참조) 구주께서 왕국을 세우시는 것에 초점을 둔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1. 예수님은 인정된 권세선을 통해 태어나셨다.(마태복음 1:1~17 참조)

  2.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마태복음 4:17 참조)

  3. 그분은 산상수훈을 가르치시며 승영하는 사람들의 특성과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율법에 대해 설명하셨다.(마태복음 5~7장 참조)

  4. 그분은 자신의 교회, 즉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조직하셨고 십이사도를 승인된 종으로 부르셨으며 그들에게 신권의 권세를 부여하셨다.(마태복음 10장; 16:18~19 참조)

  5. 그분은 비유를 통해 자신의 왕국이 세워질 것과 배도 기간이 있을 것과 마지막 날에 왕국이 회복될 것을 예언하셨다.(마태복음 13장 참조) 주님은 성역 동안 모든 백성에게 지상에 있는 자신의 왕국에 속하라고 권유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모세의 성역과 예수 그리스도 성역의 유사점을 볼 수 있다.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는 둘 다 유아였을 때 왕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구했다.(출애굽기 2:1~10; 마태복음 2:13~18 참조) 둘 다 애굽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나아갔다. 모세는 모세오경이 있으며(창세기~신명기),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다섯 가지 위대한 설교를 기록했다.(마태복음 5~7장; 10장; 13장; 18장; 24~25장) 모세는 낮은 율법을 전달했고, 예수님은 모세 율법을 이루시고 더 높은 율법을 회복하셨다.(마태복음 5:17~48 참조) 마태는 유대인 독자들이 모세가 했던 다음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음을 깨달을 수 있게끔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명기 18:15; 또한 사도행전 3:22 참조)

마태복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여 준다.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로 임마누엘이라 지칭했다.(마태복음 1:23) 구주의 행동과 가르침, 기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보여 준다. 마태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다음 약속으로 자신의 복음서를 마무리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개요

마태복음 1~4장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와 탄생.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찾았다. 꿈에서 인도를 받은 요셉은 마리아와 아이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으며, 이후에 나사렛으로 갔다. 침례 요한이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침례를 주었다. 구주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온갖 질병을 고치시며 지상 성역을 시작하셨다.

마태복음 5~7장예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8~12장구주께서 나병환자를 고치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악령을 내쫓고,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고, 맹인들이 눈을 뜨게 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두 사도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당신이 하신 일을 그대로 행할 권세를 주셨으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세상으로 보내셨다. 예수께서 침례 요한을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15장예수께서 씨 뿌리는 자, 밀과 가라지, 겨자씨, 누룩, 밭에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바다에 던진 그물 등의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침례 요한이 참수되었다.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셨고, 예수님과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위로 걸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다.

마태복음 16~18장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간증한 후, 왕국의 열쇠들을 약속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변형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교회를 인도하는 방법에 관한 지침을 주셨다. 그분은 자비롭지 못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9~23장구주께서 결혼의 영원한 속성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여러 비유를 사용하여 자신을 반대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사악한 의도를 드러내시고, 그들의 고의적인 위선이 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25장; 조셉 스미스—마태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그분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26~27장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고 성찬을 제정하셨다. 겟세마네에서 고난을 겪으셨다. 예수께서 배반당하시고 체포되어 유대인과 로마인 지도자들 앞에서 재판받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안치되셨다.

마태복음 28장부활하신 구주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려서 예수님의 부활이 일반에 알려지지 않도록 막으려 했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하라고 명하셨다.

마태복음 1~4장 소개 및 연대

마태복음 1~4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성역을 여는 서막을 이룬다. 마태복음 1~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시절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1~2장에서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구주의 탄생이 구약전서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라는 점이다. 이는 예언의 성취라는 마태복음의 주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마태복음 3장에서 침례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언했고,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라고 말했다.(마태복음 3:2, 11) 이러한 선언은 독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 기록을 읽기에 앞서 준비가 될 수 있게 해 주는데, 이 침례식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에 대해 “기뻐하는 자”라고(마태복음 3:17)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적인 성역을 좀 더 준비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4:1 ) 광야로 가셨다.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유혹했으나 예수께서는 각각의 유혹을 즉시 거절하셨다.

제2과 연대표

마태복음 1~4장 주해

마태복음 1:1, 17.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구약전서에는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올 것이며(사무엘하 7:12~13; 이사야 9:6~7; 예레미야 23:5~6) 아브라함의 한 후손을 통해 “천하 만민이”(창세기 22:18; 또한 아브라함서 2:11 참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마태가 계보를 14대씩 세 차례로 나누어 언급한 것이(마태복음 1:17) 의도한 일이었고, 14라는 숫자가 “다윗”이라는 이름 및 호칭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말한다. 히브리어와 다른 고대 언어들은 알파벳 글자를 사용하여 소리뿐 아니라 숫자도 나타냈다. 다윗이라는 이름에 쓰이는 히브리어 글자는 수치적으로 14를 의미한다.(David[D-V-D]라는 이름의 글자에서 다음 수치를 얻게 된다. 4+6+4=14) 약속된 메시야가 다윗의 가계에서 태어나야 할 것이었으므로, 일부 학자들은 마태가 일부러 계보를 그와 같이 구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오래 기다리던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임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14라는 숫자는 7의 두 배이며, 7은 완전함과 온전함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한 완전함과 온전함의 실체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당시 사람들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가르쳤다.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일 거라는 보편적인 믿음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굳건하게 박혀 있던 개념이었다. … 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이라는 멍에에서 해방시켜 주고 다시금 자유롭게 해 줄 현세적인 구원자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이새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았을 때 누렸던 영광, 국제적 영향력, 명성을 회복해 줄 통치자를 원했다.”(The Promised Messiah [1978], 188)

마태복음 1:1~17.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1:1~17; 누가복음 3:23~38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임스 이 탈매지(1862~1933) 장로는 이 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연구가들이 판단하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점은 마태의 기록은 다윗의 왕위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계승자의 순서를 입증해 주는 왕족의 혈통에 관한 기록인 반면, 누가의 기록은 [장자 혈통]이나 가까운 친족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계승된 [왕위계승선에 치중하지 않은 채] 다윗의 자손을 보여 주는 개인의 가계도라는 [점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마리아의 가계도로, 마태의 기록은 요셉의 가계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요셉의 신부요 처녀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약속한 아이가 왕손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나리라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 88쪽)

마태와 누가의 기록이 모두 옳지만, 예수 그리스도 계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여러 상황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분명히 하신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태복음 17:5; 또한 마태복음 3:17; 제3니파이 11:7; 조셉 스미스—역사 1:17 참조)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구주의 신성한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저는 영원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 저는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로서 다윗의 혈통 중에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그분은 실제로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셨고, 그분의 출생은 이사야의 위대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었음을 믿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더라.]’[이사야 9:6]”(“아버지와 아들과 성신”, 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66쪽)

마태복음 1:3, 5~6, 16. 예수님의 계보에 나오는 여성들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몇몇 여성들이 언급되었다. 다말은 가나안 땅의 아둘람 출신이었다.(창세기 38장 참조) 라합은 여리고에 살던 가나안 사람이었다.(여호수아 2:1~7 참조) 룻은 유대교로 개종하기 전에 모압 사람이었다.(룻기 1:4 참조) 밧세바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다.(사무엘하 11:3 참조) 따라서 네 사람 모두 이스라엘인이 아니거나 이스라엘인이 아닌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 마태가 이 네 여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포함시킨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무엘하 11:3 참조)

첫째, 이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해 역사해 오셨음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그럼으로써 복음서 끝에 나오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라는(마태복음 28:19) 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 둘째, 구약전서에서 각각 어떤 식으로든 논란의 가운데 있었던 이 여성들을 언급한 것은 과거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사람들과 상황을 넘나들며 역사해 오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곧 이어질 내용, 즉 마리아와 동정녀 잉태에 대한 기록을 읽기에 준비된 상태가 된다. 셋째, 이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인 의로움이 “완전한” 혈통을 지녀야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도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구주의 족보에 여성들을 포함시킨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중요한 진리를 반영한다.

마태복음 1:18.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사이의 결혼은 양가의 가장, 주로 아버지들이 주선하고 동의하여 이루어졌다. 신랑의 아버지 또는 그 집안의 가장이 신부가 될 만한 여성을 찾으면,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중점을 두는 것 중 하나는 신랑의 아버지나 가장이 신부의 가족에게 지불하는 “신붓값”, 즉 지참금의 상대 개념이라 할 돈의 액수였다. 결혼이 합의되면, 결혼식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즉 약혼과(마태복음 1:18 참조) 결혼식이었다.

신약 시대의 신랑과 신부

그림: 라일 베즈

약혼은 그 뒤에 하는 결혼식보다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 중요했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후에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약혼은 엄숙한 성약의 마지막 부분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쪽 당사자들이 준수해야 할 성약으로서 구속력이 있었다.(창세기 2:24; 에스겔 16:8; 에베소서 5:21~33 참조) 약혼한 남녀는 법적으로 남편과 아내로 간주되었지만(신명기 22:23~24 참조), 약혼과 결혼식 사이의 기간에는 엄격한 순결 규정을 지켜야 했다.(마태복음 1:18, 25 참조) 약혼한 젊은 남자는 상대인 젊은 여성에 대한 법적 소유권이 있었지만, 그것이 육체적인 소유를 뜻하지는 않았다.

마태복음 1:18~25.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아님을 아는 요셉은 이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첫째, 그는 마리아와 공개적으로 파혼하고 어쩌면 그녀가 처형당하게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리아가 간음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것은 모세 율법에 따라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할 죄였기 때문이다.(레위기 20:10; 요한복음 8:5 참조) 둘째, 요셉은 두 명의 증인 앞에서 은밀히 마리아와 약혼한 것을 취소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선택안은 결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요셉은 조용히 약혼 서약을 무효로 하여 마리아에게 자비를 보이고자 했다.(마태복음 1:19 참조) 그러나 천사가 마리아의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인해 주었을 때 요셉은 그녀와 결혼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모욕을 살 수 있는 일임에도 말이다.(마태복음 1:20~25; 누가복음 3:23; 요한복음 8:41 참조)

후에 칠십인으로 부름받은 제럴드 엔 런드는 요셉의 시현과 영적 민감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마태복음은 [요셉이] 다윗 왕의 후손이며, 의롭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고, 꿈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아 그 아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순종했고, 그리하여 구주를 뜻하는 예수라는 이름을 아기에게 주었음을 알려 준다. (마태복음 1장 참조) 우리가 알듯이 요셉은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누가복음 2:4~6 참조) 2년이 채 되지 않아 요셉은 꿈에서 경고를 받고 헤롯을 피해 가족을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 애굽에서 그는 다시 꿈을 통해 언제 돌아갈지를 알았고, 또 다른 꿈에서 갈릴리로 가라는 명을 받았다. (마태복음 2:13~15, 19~22 참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꿈을 네 번이나 꾼 것이다! 요셉은 분명 남다르게 시현을 보는 사람이었고 또한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Jesus Christ, Key to the Plan of Salvation [1991], 51–52)

마태복음 1:20.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앨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에서 성신이 한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또 보라, 그는 우리 선조들의 땅인 예루살렘에서 마리아에게서 나시리니, 그는 처녀로서, 귀하고 택함을 받은 그릇이라, 성신의 권능으로 덮으심을 입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라.”(앨마서 7:10)

예수님의 탄생

예수 탄생, 테드 헤닝거

마태복음 1:21.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예슈아[Yeshua](영어로는 여호수아[Joshua])의 그리스어 형태인 예수스[Iēsous]에서 왔다. 예슈아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며 이 이름의 더 긴 형태인 예호슈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의 두 형태가 모두 전세에 여호와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증명한다. 마태는 구주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분의 사명을 설명했다.(또한 힐라맨서 5:10 참조)

마태복음 1:23; 28:20. 구주의 필멸의 성역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태복음의 첫 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것이며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밝힌다.(마태복음 1:23; 기울임체 추가) 마태복음의 마지막 절에는 구주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이 나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기울임체 추가) 이렇게 상응하는 두 선언을 복음서의 시작과 끝에 둠으로써 마태는 마태복음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메시지를 밝히려 했을 것이다.

마태복음 1:25. 그리스도의 탄생 연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연도에 대하여 “교회는 공식 선언을 내놓은 바가 없다.”(J. Reuben Clark Jr., Our Lord of the Gospels [1954], vi) 현재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사용하는 달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때로부터 여러 세기 후에 만들어졌고, 현존하는 역사 자료를 사용하여 그분의 탄생 연도를 계산하는 방법은 전문가마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시기 내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The Mortal Messiah: From Bethlehem to Calvary, 4 vols. [1979–81], 1:350)

누가복음 3장 23절에는 구주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라고 나온다. 경전에 기록된 사건들은 그리스도 성역의 기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는 최소 세 번의 유월절 만찬에 참석하셨다. 한 번은 요한복음 2장 13절에 설명되었고, 다른 한 번은 요한복음 6장 4절에,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의 만찬은 요한복음 11장 55~57절에 나온다. 이 정보를 근거로 볼 때 예수님의 성역은 적어도 2년 이상 지속되었다. 구주의 침례와 그분이 참석하신 첫 번째 유월절 사이에 일어난 여러 사건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분의 성역이 약 3년 동안 지속된 것으로 본다.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지각 변동이 있었다는 몰몬경의 기록을 미루어 볼 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는 태어나신 지 34번째 해가 시작되던 시점임을 알 수 있다.(제3니파이 8:5~11:14 참조)

마태복음 2:1~12. 동방 박사들

동방 박사들의 신원, 출신, 인원, 이름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마태는 그러한 세부 사항을 제공하지 않았다. 마태는 마고이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원래 페르시아나 바벨론에서 온 종교적 현자를 지칭했지만, 마태의 시대에 이 단어는 다양한 종교 수행자들을 포괄하는 의미였다.

동방 박사들의 신원과 출신에 대해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참된 선지자들이었을 것이고, 약속된 메시야가 사람들 가운데 탄생했음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시므온과 안나, 목동들처럼 의로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주께서 탄생하실 때 새로운 별이 뜰 것이라는 고대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계시로 개인적인 인도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마리아의 아들을 찾아 경배한 후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일에서 알 수 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1:103)

동방 박사들에 대한 마태의 기록은 그들이 구주에 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 어디에서 메시야를 찾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3:2 참조) 그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그것을 메시야의 표적으로 해석했다.(마태복음 2:2; 힐라맨서 14:5 참조) 동방 박사들의 질문을 받은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은 선지자 미가의 예언을 인용했다. 미가는 동방 박사들이 찾는 아기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미가 5:2; 마태복음 2:6 참조) 또한 베들레헴(마태복음 2:6)이란 이름은 “떡집”이란 뜻인데, 그곳이 바로 “생명의 떡”이 탄생할 곳이었다.

동방 박사들이 누구였든, 그들이 어디서 왔든 간에 그들의 방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수반되는 징조들을 알아차려야 했을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반면, 다른 지역에 살던 의로운 사람들은 성신의 인도를 받아 징조들을 알아보고 그에 응하여 행동했음을 보여 준다.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정확한 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태복음 2장 1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로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을 암시한다.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구유가 아니라 “집” 안에서 찾았고, 그가 아기가 아니라 “어린 아이[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baby’가 아닌 ‘young child’로 나옴—옮긴이]”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12~13, 19, 22. 계시의 한 형태인 꿈

마태복음 2장에는 동방 박사들과 요셉이 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윌포드 우드럽(1807~1898) 회장은 꿈이 계시의 한 통로가 된다고 확언했다.

천사와 요셉

꿈에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 폴 만

“주께서 꿈에 요셉에게 어린 아이 예수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가라고 경고했고, 그렇게 해서 그는 헤롯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꿈으로 알게 되는 많은 것들이 참되고, 사람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형제 자매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든 여러분이 꾼 꿈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 주님께서는 인간의 자녀들에게 중요한 것들의 일부를 시현과 꿈을 통해, 그리고 신성한 진리의 기록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The Discourse of Wilford Woodruff, ed. G. Homer Durham [1990], 285–86)

마태복음 2:12~16. 무고한 어린이들의 학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은(마태복음 2:12~16 참조) 헤롯 대왕이 자행한 여러 폭력 행위 중 하나였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아기였을 때 생명의 위협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났다. 이는 모세의 삶과 예수님의 생애 사이에 있는 여러 유사점 중 하나이다.(출애굽기 1:17~2:10 참조)

마태복음 2:23.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조셉 스미스 역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나니, 예수는 자기 형제들과 함께 자라나며 강건하여지고 주께서 장차 임할 그의 성역의 때를 알려 주시기를 기다리시더라.

또 그는 자기 부친 아래에서 일하였고 다른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셨으며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나니, 이는 어느 누구도 그를 가르칠 필요가 없었음이더라.

그리고 많은 해가 지난 후 그의 성역의 시간이 다가왔더라.”(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3:24~26[경전 안내서])

“이는 어느 누구도 그를 가르칠 필요가 없었음이더라”(기울임체 추가) 이 구절은 예수께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사람에게 배운 것은 아님을 알려 준다. 구주께서는 자신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설명하신 바가 있다.(요한복음 8:28~29 참조)

마태복음 3:2. “천국”

구주께서는 “천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마태복음 3:2) 천국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제2장의 “마태복음에는 어떤 뚜렷한 특징이 있는가?”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3:6. 침례 요한이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구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가르치다

구주께서 성역을 베푸실 때가 가까워오자 침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메시야에 앞서 오기로 약속된 사람이었다.(이사야 40:3; 말라기 3:1; 니파이후서 31:4; 또한 누가복음 1:14~19, 26 주해 참조) 그는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일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가르쳤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회개에서 고백의 핵심적인 역할에 대해 그와 비슷한 가르침을 주었다.

“진정한 회개에는 고백이 포함됩니다.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라.]’ (에스라 10:11)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백하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백을 통해 인간을 병들게 하는 죄를 모두 비우게 되면 떠나갔던 영이 다시 돌아와 우리를 새롭게 채우게 됩니다. …

우리는 모든 죄를 주님께 고백해야 하며, 어떤 죄는 교회 역원에게, 어떤 죄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어떤 죄는 이 모든 분들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몇 가지는 공개적인 고백을 하도록 요구될 수도 있습니다. 고백하는 것은 죄를 버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회개”, 성도의 벗, 1992년 1월호, 35~36쪽)

마태복음 3:9.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누가복음 3:8 주해를 참조한다. 요한의 삶과 성역에 대한 주요 내용은 누가복음 3장 주해에서 다룰 것이다.

마태복음 3:11. 불의 침례

침례 요한은 물로 침례받은 뒤에 “성[신]과 불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마태복음 3:11; 또한 마가복음 1:8; 누가복음 3:16 참조) 제일회장단의 매리온 지 롬니(1897~1988) 회장은 “불의 침례”가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불과 성신의 침례는 … 앨마가 말한 것처럼[앨마서 5:14 참조] 사람의 마음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면 사람의 세속성은 영성으로 바뀌게 된다. 그것은 영혼을 깨끗이 하고 치유하며 정화시킨다. … … 그것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영적인 거듭남이다.[요한복음 3:3~5 참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회개, 그리고 물로 받는 침례는 모두 불과 성신의 침례를 위한 준비의 단계이고 선결조건이다. 불과 성신의 침례는 그 모두를 완성한다. 이것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옷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씻는다는 것이다.”(Learning for the Eternities, comp. George J. Romney [1977], 133)

마태복음 3:12.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함

알곡과 쭉정이를 나눔

사진 촬영: 리처드 엘 더블유 클리브

마태복음 3장 12절에 나오는 “키”는 밀을 공중으로 쳐 올려서 까부르기 위한 도구이다. 이렇게 하면 밀이 쭉정이로부터 분리된다. 가벼운 쭉정이가 바람에 날려 가고 밀 알갱이는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후 밀은 모아서 곳간으로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웠다. 침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구주께서 밀과 쭉정이를 분리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믿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서 분리하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마태복음 3:13~17.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는 신회에 대해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신회의 세 구성원이 각각 별개의 존재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수께서는 물에 계셨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하늘에서 들렸으며, 성신은 비둘기처럼 구주 위에 내렸다.(또한 누가복음 3:22~23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신회의 교리가 경전 전반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비디오 아이콘“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이 독립된 개체이며 세 분의 신성한 인격체라는 것을 틀림없고 명백한 다음의 사건들, 즉 … 위대한 구주의 중재 기도, 요한의 손을 통해 받은 그분의 침례, 변형의 산에서의 경험,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등 네 가지 예에서 경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신약전서에 나오는 이러한 예들과 우리가 알고 있는 더 많은 예들을 볼 때, 예수께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하신 뜻을 묻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입니다.[요한복음 5:19; 또한 요한복음 14:10 참조] 다른 상황에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6:38] 예수께서는 적대자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요한복음 15:24] 물론 예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 어린 순종심을 항상 갖고 계셨으며 이때문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즉 하나님]이시니라.’[마태복음 19:17]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한복음 14:28]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그리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라는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포함하여 그 모든 세월 동안 누구에게 그렇게 간절히 간청하셨습니까?”(“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41쪽)

비디오 아이콘구주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의 중요성을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LDS.org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성경 비디오에 나오는 “예수의 침례”(2:55)를 시청한다. 이 비디오는 마태복음 3장 13~17절을 다룬다.

마태복음 3:15. “모든 의를 이루는 것”

니파이후서 31장 6~12절에 기록된 것처럼, 몰몬경의 선지자 니파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로 침례를 받으심으로 어떻게 모든 의를 이루셨”는지(니파이후서 31:6) 설명했다.

마태복음 3:16. 성신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다

성신이 비둘기처럼 내려온 것에 관하여 이해하려면 누가복음 3:22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3:17.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

구주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경전에 기록된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마태복음 3:17; 17:5; 제3니파이 11:7; 조셉 스미스—역사 1:17 참조) 각 경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필멸의 인간에게 당신의 아들을 소개하셨다.

마태복음 4:1, 5, 8.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 광야로 가시다

조셉 스미스 역에는 이들 성구에 중요한 수정이 가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마태복음 4:1) 가신 게 아니며, 또한 사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하기 위해 그분을 이곳저곳으로 데려갈 권한이 없다.(마태복음 4:5, 8 참조)

“그때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 성령에게 인도되어 광야로 가시더라 …

그때 예수께서 거룩한 성으로 이끌려 가시매 성령이 그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시니, …

그리고 또, 예수께서 성령 안에 계시더니 성령이 그를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사 그에게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들의 영광을 보이시니.”(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4:1, 5, 8[경전 안내서])

유대 광야

유대 광야

사진 촬영: 제임스 제프리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예수께서 왜 광야로 가셨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더했다.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시험 당하시러 광야로 가신 게 아니다. 의로운 사람은 유혹을 구하지 않는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 가셨다. 아마도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의 방문을 받으셨을 것이다. 특별한 영적 시현을 받으셨음이 분명하다. 유혹은 ‘사십 일 후에’ 그분이 ‘하나님과 말씀하신’ 후에 왔다.[Joseph Smith Translation, Matthew 4:12; Luke 4:2]”(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128)

마태복음 4:2. 구주께서 성역을 준비하기 위해 금식하시다

금식은 구주께서 성역을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예수께서는 침례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밤낮으로 40일 동안을 지내면서 바야흐로 시작하려는 성역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지상에서 성취될 가장 위대한 사업이 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하나님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영이 주는 하나님의 힘을 얻기 위해 광야에 머무는 40일 동안 금식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그리스도가 받은 시험”, 성도의 벗, 1977년 2월호, 16쪽)

십이사도 정원회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금식에서 오는 축복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힘찬 기도와 함께 하는 금식은 강한 힘을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영의 계시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의 때에 우리를 강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우리 내부에서 용기와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품을 강화시켜 주고 또 자제심과 자기 수양을 쌓게 할 수 있습니다. 금식하면, 종종 우리의 의로운 기도와 간구가 보다 큰 힘을 갖게 됩니다. 간증도 커집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또 우리의 영혼은 맑아집니다. 금식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적인 욕구와 열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금식의 법”,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89쪽)

흥미로운 것은 경전에 “사십”이라는 숫자가 언급될 때, 이것은 문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사십 일은 상당히 긴 시간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마태복음 4:1~3. 사탄은 우리가 약할 때 유혹한다(또한 누가복음 4:2 참조)

경전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필멸의 인간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때, 사탄도 종종 자신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한다.(모세서 1:12~24; 조셉 스미스—역사 1:15~16 참조) 성역을 시작할 무렵 구주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려고”(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4:1) 광야로 가셨다. 그곳에 계시는 동안 굶주림으로 약해져 있을 때 사탄이 그분을 유혹하러 왔다.(마태복음 4:1~3 참조)

하워드 더블유 헌터 회장은 우리가 약할 때 종종 사탄의 유혹이 가장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하나님과 대화를 마치시고, 굶주림과 신체적으로 약한 상태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 유혹자가 노리는 때는 바로 이러한 때입니다. 우리가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지쳐 있고 피곤하고 약하여, 교활한 음모를 이겨 낼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가 참으로 위험한 순간입니다. 이러한 때에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교묘한 꼬임에 빠져들기 쉽습니다.”(“그리스도가 받은 시험”, 16쪽)

마태복음 4:2~10.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은 유혹의 성격(또한 누가복음 4:2~13 참조)

감리 감독단의 키스 비 맥멀린 감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신 유혹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같은 유형의 유혹에 처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비디오 아이콘“그분이 성역을 시작할 무렵에 겪으셨던 유혹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유혹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은, 돌을 떡으로 변하게 하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며 세상의 보물을 위하여 그분의 영혼을 팔라는(마태복음 4:2~10 참조) 유혹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의 형태를 분류해 보면, 여러분과 저를 더럽히는 유혹의 대부분이 예수께서 겪으셨던 세 가지 유혹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식욕의 유혹, (2) 하나님의 것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교만과 유행, 그리고 허영에의 굴복 또는 (3) 세상의 부에 대한 … 바람 또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권력에 대한 만족 중 하나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Conference Report, Apr. 1911, 59)”(“귀향을 환영하노라”,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93~94쪽)

마태복음 4:3~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유혹에 개의치 않으시다(또한 누가복음 4:4~13 참조)

닐 에이 맥스웰 장로는 구주께서 유혹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혹을 받으셨으나, ‘이에 개의치 아니하[신]’[교리와 성약 20:22] 주님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우리 또한 ‘사람이 감당할 시험’(고린도전서 10:13)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당신에게 닥친 수많은 유혹을 알아채셨지만 그것에 관해 거듭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유혹을 즉시 뿌리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유혹을 받아들이게 되면 곧 그 유혹은 우리를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내가 이긴 것 같이 … 이기라”, 성도의 벗, 1987년 7월호, 79쪽)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우리가 죄에 관심을 보이면 유혹에 더욱 취약해진다고 가르쳤다. “악마가 닫힌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어렵습니다. 자물쇠가 채워진 문을 여는 열쇠가 그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그는 발가락을 들이밀고, 곧이어 발을 들여놓으며, 그 다음에는 다리와 몸과 머리를 넣고, 마침내는 온 몸을 들여놓게 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2006], 106~107쪽)

마태복음 4:4~11. 경전 공부와 순종은 유혹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구주께서는 사탄의 유혹에 매번 답하실 때 “기록되었으되”라고(마태복음 4:4, 7, 10; 또한 누가복음 4:1~13 참조) 시작하셨다. 그리스도의 경전 지식은 그분이 유혹을 뿌리칠 만큼 준비되고 강화되는 데 일종의 밑거름이 되었다. 후에 구주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간직하는 자는 미혹을 받지 아니하리라.”(조셉 스미스—마태 1:37) 칠십인 정원회의 메릴 제이 베이트먼 장로는 유혹에 대항하는 힘을 경전 공부를 통해 얻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경전을 상고함으로써 얻게 되는 확실한 축복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에 순종하는 사람은 구주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되며 의롭게 살고자 하는 더욱 큰 소망을 갖게 됩니다.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커지며, 영적인 연약함을 극복하게 됩니다.”(“경전을 상고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나아옴”,성도의 벗, 1993년 1월호, 28쪽)

조셉 비 워스린 장로는 구주께서 보이신 순종의 모범을 따르면 유혹을 이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꺼운 순종은 매력적이고 애타게 만드는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보호받게 합니다. 예수님은 순종의 완전한 모범이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이 유혹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행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육신은 금식으로 쇠약해지셨지만 그분의 대답은 빠르고 확고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누가복음 4:8](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이 부분 번역이 누락되어 있음—옮긴이) … 사탄이 접근하기 시작할 때 가능한 신속히 물리치십시오.”(“순종하는 생활”,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40쪽)

마태복음 4:13~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지도, 갈릴리

구약전서에 나오는 스불론과 납달리는 신약전서 시대에 갈릴리 땅이 되었다.

마태복음 4장 13~16절에서 마태는 이사야 9장 1~2절을 인용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애와 성역의 대부분을 갈릴리의 여러 마을, 즉 가버나움, 나인, 나사렛, 벳새다 등지에서 보내셨다. 구약 시대에 이 지역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기업이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지키려는 전투가 수없이 벌어졌다. 이곳 전투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이사야가 이 지역의 사람들을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로(마태복음 4:16)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사야는 이처럼 죽음이 창궐한 땅에 “큰 빛”이(이사야 9:2) 비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빛은 세상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태는 구주께서 갈릴리 땅에서 베푸신 성역이 메시야에 대한 이 예언의 성취임을 독자들이 알기를 바랐다.

마태복음 4:18~22. 첫 제자들을 부르시다

조셉 비 워스린 장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구주를 따랐던 초기 제자들의 경험을 어떻게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들은 부름을 받기 전에 어부였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는, 나사렛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와서 눈을 들여다보시며 ‘나를 따라오라’는 간단한 말을 했을 때 그물 던지는 일을 멈추었습니다. 마태는 그 두 어부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 구주께서 오늘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기꺼이 여러분의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시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

우리는 그 그물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따르지 못하도록 우리를 유혹하거나 방해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물은 우리의 일, 취미,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혹과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물은 하나님 아버지나 그분의 회복된 교회와의 동반 관계로부터 우리를 이끌어 내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예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컴퓨터는 유용하고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쓸데 없고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그것은 얽어 매는 그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운동 경기를 즐겨 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선수에 관한 모든 것은 알고 있으면서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잊거나 가족을 소홀히 하거나, 그리스도처럼 되도록 도와 주는 봉사 활동의 기회를 무시한다면, 그 운동은 얽어 매는 그물이 될 수 있습니다. …

구주를 따르지 못하도록 우리를 얽매고 방해할 수 있는 많은 그물을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진지한 소망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즉시 세상의 복잡한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나를 따르라”,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14~15쪽)

첫 제자들의 부름에 관하여 더 알아보려면 누가복음 5:1~9 주해누가복음 5:10~11 주해를 참조한다.

마태복음 4:23. 치유로 이어지는 가르침(또한 마가복음 1:39; 누가복음 4:43 참조)

마태복음 4장 23절에는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전파하시”고 병을 “고치”셨다고 나온다. 이후의 여러 장에서 마태는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가르치시고(마태복음 5~7장 참조) 수많은 개인들을 고치신 것을(마태복음 8~9장 참조) 기록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가르침치유를 연계하여, 복음의 가르침에는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잠재되어 있음을 가르쳤다.

“다음은 마태가 한 말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23; 강조체 추가)

그 가르침과 설교들은 우리가 알고 있고 또 바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방식의 병 고침을 볼 만큼 잘 준비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초기부터, 바로 그 첫 시간부터, 고침이라는 말은 마치 가르침과 설교의 동의어인 것처럼 언급됩니다. 최소한 그 세 가지 사이에는 명확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성구는 가르침이나 설교보다는 고침에 대해 더 많이 말해 줍니다. …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고침’은 신권의 공식적인 사용이나 병자를 위한 의식 집행,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것들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조직에서 교사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의 가르침이 영적인 종류의 고침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주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일어나는 고침으로 우리 가르침의 성공 여부를 측정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조금 더 노력해서 매우 강력하게, 매우 영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정말로 홀로 걷고, 홀로 살고 있는, 또는 어두운 밤에 홀로 울고 있는 개인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요?” (“가르침, 설교, 병 고침”, 리아호나, 2003년 1월호, 13~17쪽)

조셉 스미스 역에는 구주께서 “자기 이름을 믿는 백성 중에서” 온갖 병을 고치셨다는 내용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4:22[경전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