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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및 골로새서
빌립보서와 골로새서 소개 및 연대
빌립보서와 골로새서는 두 권 모두 아마도 바울이 로마에서 구금되어 있는 동안에 기록된 책일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바울이 이 힘든 시기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에 대해 썼다는 것이다.(빌립보서 4:7) 이 두 서한은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울의 가장 분명하고도 진심 어린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신앙과 감사함으로 생활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우리를 통해 복음 사업을 더욱 진척하실 것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토대 위에 세워짐으로써 세상의 철학과 전통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빌립보서 주해
빌립보서 1:1~14. 바울의 감금이 “복음 전파에 진전”을 일으키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다정하고 애정 어린 인사로 서한을 시작했다.(빌립보서 1:1~11 참조) 그런 후 그는 자신이 감금됨으로써 얻게 된 몇 가지 긍정적인 결과, 특히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음을 설명했다.(빌립보서 1:12) “진전[furtherance]”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군대에서 전진을 방해하는 덤불을 쳐내거나 장벽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빌립보서 1:25 참조) 따라서 바울이 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파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장애물이 제거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것이 “시위대”, 즉 군대의 본부에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빌립보서 1:13) 그와 더불어, 교회의 다른 회원들은 바울의 모범을 보고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빌립보서 1:14)
빌립보서 1:15~20. 복음을 전파하는 두 가지 방법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두 가지 방법을 언급했다. 한 가지 방법은 진심 없이 “투기”와 “분쟁”으로 전파하는 것이다.(빌립보서 1:15, 17) 더 좋은 방법인 두 번째 방법은 “착한 뜻”과 “사랑”으로 전파하는 것이다.(빌립보서 1:15~16)
빌립보서 1:21~25.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바울은 감금되어 있는 동안 서로 엇갈리는 두 가지 소망, 즉 죽어서 구주와 함께하고자 하는 소망과 살아서 계속 그분께 봉사하고자 하는 소망에 사로잡혔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세상을 극복한 다른 사람들처럼, 필멸의 삶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낙원에서 쉬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성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비록 자신의 구원은 확인받았더라도 계속 육신으로 남아서 다른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함을 알았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2:529) 이와 유사하게, 몰몬경의 선지자 몰몬도 자기 아들 모로나이에게 “이 흙의 성막”에서 살아 있는 동안 복음을 전파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치기도 했다.(모로나이서 9:6)
빌립보서 2:1~7.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교회 회원들이 단합을 이루는 것은 바울의 서한에서 공통된 주제였다.(빌립보서 1:27; 2:2 참조; 또한 고린도전서 1:10; 갈라디아서 3:28; 에베소서 4:13 참조) 이 주제는 경전의 다른 곳에도 나온다.(모사이야서 18:21; 교리와 성약 38:24~27; 모세서 7:18 참조)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단합을 이루기 위해 이기심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겸손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고 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하는 완전한 모범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했다.(빌립보서 2:7) 칠십인 정원회의 에이치 버크 피터슨(1923~2013) 장로는 이기심 없는 사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완전히 이기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기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편리나 안락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복지에 더 관심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봉사하면서도 굳이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 또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기심이 없는 사람은 기꺼이 희생하려 하며,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서 개인적인 욕망이나 욕구 또는 감정을 기꺼이 깨끗이 씻어 버리고자 합니다. 이기심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찬사나 인정을 얻고자 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인간적인 욕구를 더 충족시키려 합니다.”(“헌신: 행복의 형태”, 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71쪽)
빌립보서 2:5~8. 구주께서 “자기를 비[우셨다]”
바울은 구주께서 필멸의 인간으로 태어나셨을 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가르쳤다.(빌립보서 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전세의 지위를 버리고 “사람들과 같이” 필멸의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빌립보서 2:6~7) 몰몬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 아래로 내려오셨다는 개념을 “하나님의 낮추어 오심”이라고 부른다.(니파이전서 11:16; 또한 17~33절; 시편 22:14; 이사야 53:12 참조)
칠십인 정원회의 태드 알 콜리스터 장로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천상의 온갖 장식품으로 꾸며진 하늘의 집을 소박한 장식이 있는 이 세상의 거처와 맞바꾸셨다. ‘하늘의 왕’(앨마서 5:50),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주’이신(모사이야서 5:3) 그분은 보좌를 떠나 구유를 물려받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버리고 아기의 의존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부와 권능, 통치권, 충만한 영광을 포기하셨다. 왜 그러셨는가? 비웃음과 조롱, 굴욕, 굴종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교환이었고, 참으로 놀라운 낮추심이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내려오심이었다.”(The Infinite Atonement [2000], 64)
빌립보서 2:12~13.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말했다.(빌립보서 2:12)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받는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데 잘못 사용한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바울이 설명했듯이 성도들은 복음에 따라 생활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구원 사업이 그들이 했던 모든 것 안에서 드러나게 해야 한다.(빌립보서 1:6; 2:13 참조)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는 노력은 오직 우리 안에서 베푸는 주님의 은혜 덕분에 유효하게 된다.
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행하라고 한 말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걱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마태복음 6:25~34; 디모데후서 1:7 참조) 오히려, 우리는 경외와 경의로 주님께 봉사해야 하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열망으로 전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12) 이 표현은 우리의 의로움이 구원과 승영을 얻게 해 준다는 뜻일까요? …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 [말입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때로 그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말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잊을 수가 있습니다. 니파이가 말한 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부지런히 권고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후에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은혜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니파이후서 25:23) …
인간은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지치지 않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과 선한 일을 한 후에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죄의 영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73~74쪽)
빌립보서 3:2~3. 바울이 “개들”과 “몸을 상해하는” 것을 경고하다
개라는 말은 보통 성경에서 조소의 표현으로 쓰이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 2절에서 말한 “개들”은 유대주의자로, 그들은 기독교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포함하여 특정한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사도행전 15:1~5 주해; 사도행전 15:1, 5, 24 주해; 갈라디아서 1:1~7 주해 참조) 바울은 유대주의자를 비꼬아서 “몸을 상해하는” 자로 칭했는데, 여기서 상해한다는 말은 절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바울은 (유대인을 지칭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할례파”라는 말을 하나님의 성약의 백성인 기독교인을 언급하는 데 대신 사용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참된 “할례파”, 즉 성약의 백성이다.(빌립보서 3:3; 또한 로마서 2:25~29; 골로새서 2:10~13 참조)
빌립보서 3:4~8.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함
바울은 유대주의자의 가르침을 경고하고 나서, 자신이 독실한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자격 몇 가지를 열거했다.(빌립보서 3:4~8 참조)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 때, 그때까지 바리새파 유대인으로서 누렸던 명망 있는 지위를 포함하여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빌립보서 3:4~7 참조)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 잃은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빌립보서 3:8; 또한 10~11절; 마태복음 19:29 참조)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희생을 통해 오는 축복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제단에 올리며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바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명된 임무와 부름을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수행함으로써 이에 따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배워 완전히 수행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의 요청에 따라 또한 영의 속삭임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헌납합니다. …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 ‘희생은 하늘 축복 가져’ 옴을 압니다. (찬송가, 18장) 결국 우리는 그것이 전혀 희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27쪽)
빌립보서 3:12~14. “푯대를 향하여 … 달려가노라”
바울이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한 말은 그가 영생을 붙잡기 위해, 즉 영생을 얻기 위해 힘써 “앞으로” 나아갔다는 뜻이다.(빌립보서 3:12; 또한 니파이후서 31:19~20 참조) 바울은 또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상을 위하여”(빌립보서 3:14) 달려감에 대해 말했다. 이 성구에 나오는 몇 가지 비유는 경주를 떠올리게 한다. 경주에서 주자들은 항상 결승선에 초점을 두면서 계속 힘써 나아간다. 바울은 자신이 아직 결승선에 도달하지는 않았으나 과거를 뒤로하고 푯대를 향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상을 위해 힘써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에 관하여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대부분의 오늘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인생 여정에서 기쁨을 찾음”,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85쪽)
빌립보서 4:3.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
바울은 주님의 일에서 자신을 도왔던 어떤 여인들을 향한 다정한 감정을 나타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 도우라”라고 권했다.(빌립보서 4:3) 제일회장단의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1871~1961) 회장은 후기의 교회에서 여성들이 보여 준 희생에 관하여 이와 유사한 감정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신약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여성들은 교회를 위로하고 강화했습니다. 그들은 절반 이상의 짐을 졌으며, 절반 이상의 희생을 했고, 대부분의 번민과 슬픔을 겪어 냈습니다.”(Conference Report, Apr. 1940, 21)
빌립보서 4:3. 생명책
생명책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요한계시록 13:8 주해를 참조한다.
빌립보서 4:6~7. 하나님을 신뢰하면 비길 데 없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로(빌립보서 4:6) 번역된 그리스어 문구는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조바심치거나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마태복음 6:25~34 주해 참조) 바울은 기도와 주님에 대한 신뢰가 염려에 대한 치유책이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할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빌립보서 4:7),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서 걱정을 떨쳐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칠십인 정원회 일원으로 봉사하던 시절에 제이 이 젠슨 장로는 자신과 가족이 슬픔 속에서 평화를 누린 경험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제 손자 퀸튼은 복합적인 선천성 질환을 안고 태어났으며 돌이 되기 3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퀸튼은 병원을 자주 오갔습니다. 당시에 젠슨 자매와 저는 퀸튼과 멀리 떨어져 아르헨티나에 살았습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자녀들 곁에 함께 있으면서 아이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저희가 그토록 사랑했고 곁에 있기를 바랐던 손자입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저희는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젠슨 자매와 저는 한 선교부를 방문하는 동안 퀸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희는 집회소 복도에 서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위로했습니다. 저는 그때 성신으로부터 확신을 받았음을 간증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며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평강으로부터 오는 확신 말입니다.(빌립보서 4:7 참조) 또한 아들과 며느리, 손자손녀들의 삶에서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신의 은사가 임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희 모두는 오늘날까지도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큰 신앙과 화평과 위안을 느낍니다.”(“성신과 계시”,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78쪽)
빌립보서 4:8. 바울의 훈계
바울은 성도들에게 참되고, 올바르고, 순결하고,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신중하게 계속해서 생각하라)라고 훈계했다.(빌립보서 4:8)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신앙개조 제13조에서 이 “바울의 훈계”를 인용하면서 “이것들을 생각하라”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이것들을 구하[라]”로 변경했다.(신앙개조 제13조; 기울임체 추가)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이것들을 구하[라]”는 권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한다는 말은 찾으러 나아가거나, 발견하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얻고자 노력하는 것을 뜻하며, 여기에는 적극적이며 계획적인 생활 태도가 요구됩니다. …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하지도 않고 무언가 좋은 것이 우리에게 오기를 수동적인 태도로 기다리는 것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른 것이 차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지 않고 선으로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택할 수 있는 선이 너무 많기 때문에 결코 악에 참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
유덕하고 사랑할 만한 것들을 구한다면 분명히 그것들을 찾게 될 것이고, 반면에 악을 구한다면, 그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선을 추구함”,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86쪽)
빌립보서 4:13.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서한을 마치기에 앞서, 자신이 힘든 시기에 개인적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고 보살펴 준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빌립보서 4:10 참조) 바울은 혹독한 어려움을 견뎌야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칠십인 정원회의 폴 브이 존슨 장로는 우리가 시련을 겪음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시험과 시련과 고난을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딱 필요한 만큼만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많은 시험들은 필멸의 삶에서 받는 당연한 과정이며, 우리가 진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때때로 우리는 고통 없는 성장을 바라며 아무런 투쟁도 없이 강인함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쉬운 길을 택하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된 훈련을 마다하는 운동선수는 결코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신성한 성품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들에 대해 억울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난 중에 감당 못할 일은 없습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빌립보서 4:13 참조]”(“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79~80쪽)
골로새서 주해
골로새서 1:1~3. 독립된 존재들
바울은 다른 서한에서와 마찬가지로 골로새 성도들에게 인사말을 하면서, 신회에 계신 서로 다른 두 분의 독립된 존재, 즉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했다.(골로새서 1:2; 또한 고린도전서 1:3; 고린도후서 1:2~3; 갈라디아서 1:1 참조)[개역개정판 한글 성경에는 골로새서 1장 2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번역되어 있지 않음—옮긴이]
골로새서 1:7. 에바브라
골로새서 1:14. “[그의 피로 말미암은] 속량”
골로새 지역에서는 거짓 믿음과 그릇된 숭배 형태가 성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역할과 신성을 축소시켰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혹여 미혹되어 숭배할 수도 있는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더 우월하시다는 사실을 논증하기 시작했다.(골로새서 1:14~20 참조) 그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기에 우리가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교사이시며, 구주이십니다. 그분의 속죄는 아담의 죗값을 치렀으며 죽음을 이기었고 모든 사람의 부활과 불멸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의 주체이시며, 그 이상의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주이시며, 그분의 속죄의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인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주이십니다.
메시야의 속죄의 희생은 모든 시대에 선지자들이 전한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71~72쪽)
골로새서 1:15.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닮음 또는 나타냄을 의미함]”이시라고 말했다.(골로새서 1:15) 바울이 하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분으로 묘사한 것은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지, 반드시 “볼 수 없다” 또는 “보여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는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성품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입증한다는 것이 바울의 요점이었다.(요한복음 14:7~11; 16:25 주해 참조)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영적 및 신체적 본질로, 우리는 후기의 계시와 더불어 하나님 아버지의 육체를 직접 목격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기록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조셉 스미스—역사 1:17; 교리와 성약 130:22 참조)
바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가르쳤다.(골로새서 1:15) “예수는 우리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들 중의 장자였고, 육으로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며, 또 부활에 있어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서는 첫 번째였다.(골 1:13~18)”(경전 안내서, “장자”; scriptures.lds.org)
골로새서 1:16~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이 … 창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권능을 갖고 계신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시와 계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즉 만물의 빛과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현대 계시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한의 간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과 구속주요, 세상에 오신 진리의 영이셨음이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지음을 받았음이니, 그의 안에 사람의 생명과 사람의 빛이 있었느니라.
세상들이 그로 인하여 지음을 받았고 사람이 그로 인하여 지음을 받았으며, 만물이 그로 인하여, 그를 통하여, 그에게 지음을 받았느니라.’(교리와 성약 93:9~10)”(“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 성도의 벗, 1988년 1월호, 68쪽; 또한 요한복음 1:1~3; 히브리서 1:2; 교리와 성약 76:24; 모세서 1:33 참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 섰느니라”라고 말한 것은 모든 창조물이 존립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의미했다.(골로새서 1:17)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창조물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교리와 성약 88편 6~13절을 참조한다.
골로새서 1:18. 그리스도께서는 이 교회의 머리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시라는 바울의 가르침은(골로새서 1:18 참조) 천사나 어떤 사람 또는 사물을 그분보다 앞세우려 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준다.(골로새서 2:18 참조)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장으로 지지받을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이름을 받든 이 교회의 머리이심을 간증합니다. 제 온 생애에서 가장 감미로운 경험은 그분의 사업을 진척시키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영향력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감”,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8쪽)
골로새서 1:19. 어떻게 “모든 충만”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거하는가?
바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이] … 거[한다.]”(골로새서 1:19) “충만”에 대한 그리스어는 신성한 권능의 완전성을 암시한다. 그런고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 다른 모든 철학과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말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에게 “하늘과 땅” 모두에서 권능의 충만함을 부여하셨으며(마태복음 28:18), 그분을 당신의 우편에 두셨고(사도행전 7:55; 히브리서 1:3 참조), 당신이 온전하심 같이 그분도 온전하게 하셨다.(에베소서 1:23; 골로새서 2:9; 제3니파이 12:48 참조)
골로새서 1:23; 2:6~10. 세상의 철학과 전통, 그리고 초등 학문
골로새서 1장 23절과 2장 6~7절에서, 바울은 나무와 건물에 빗대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오는 안전을 묘사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성도들에게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 흔들리지” 말라고 격려했다.(골로새서 1:23)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성도들에게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라고 경고했다. 이 성구에서 사로잡다[spoil]는 말은 정복자가 전쟁에서 사람을 포로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인간이 만든 믿음과 숭배 체제를 가리킨다. 바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기 때문에(골로새서 2:10), 참된 복음이 아닌 다른 믿음이나 종교적 행위를 받아들인다면 영원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세상의 이론과 철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대비하였다.
“세상은 망설임 없이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 무수한 새 답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타는 듯한 영혼의 질문들에 답해 줄 무언가를 찾고자 새로운 지식들 사이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미나에 참석하고 서적들과 … 기타 제품들을 구매하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는 데 열중합니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이론의 불길은 사라지고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을 해 준다고 약속하는 또 다른 ‘새롭고 향상된’ 해결책이 이를 대체할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선택에 진리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중 많은 것에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는 모두 실패합니다. 흥분이 가신 뒤에는 공허함이 남게 되고, 행복의 비밀을 알고자 새로운 지식을 찾게 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복음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하거나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참된 행복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론이나 제안도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를 만드시고, 우리가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진리를 아시는 분의 순수하고 영원한 샘에서 솟아나옵니다.”(“제자의 길”,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75쪽)
골로새서 1:26~29; 2:2; 4:3. “이 비밀은 … 감추어졌던 것”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밀”로 언급했다.(골로새서 1:26~27) “하나님의 비밀은 오직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지는 영적 진리이다. 하나님은 그의 비밀을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밝혀 준다.”(경전 안내서, “하나님의 비밀, scriptures.lds.org)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는 도무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복음의 진리는 영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린도전서 2:14 참조)
골로새서 2:12~14. 침수로써의 침례가 지니는 상징
침수로써의 침례가 지니는 상징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로마서 6:1~11 주해를 참조한다.
골로새서 2:13~15.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로새서 2장에 나오는 이 성구에 앞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하나님께는 그들을 용서하셨음을 상기시켰다.(골로새서 1:14, 20, 22 참조) 바울이 골로새서 2장 14~15절에서 사용한 비유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바울의 시대에 로마에서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죄를 패에 적는 관습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범법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할 때, 그 패를 십자가에 함께 못 박아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보게 했다.(요한복음 19:19~22 참조) 바울은 13~15절에서 이 비유를 사용하여 골로새인들에게 그들이 용서받았음을 가르쳤다. 그것은 마치, 모세 율법의 의식을 어긴 그들의 죄와 위반 사항을 포함한 모든 골로새 성도들에 대한 영적 고발과 비난의 목록이 패에 적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이 목록은 지워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와 부활을 통해 지상의 모든 힘과 권세를 이기셨다.(골로새서 2:15 참조)
골로새서 2:18~19. “천사 숭배”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천사 숭배를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골로새서 2:18 참조) 비록 천사가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광스러운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요한계시록 19:10 참조) 천사 숭배는 그노시즘[영지주의]의 몇몇 가르침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노시스 철학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사람들과 교통하시고, 육신은 사악하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이런 거짓 종교 체제를 거부하고 비난했다. 그노시즘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제52장에 실린 “요한1서는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를 참조한다.
골로새서 2:20~23. “자의적 숭배”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는데도 왜 그들 중 일부가 세상의 “규례”에 참여하며 “사람의 … 가르침”을 따르는지를 물었다.(골로새서 2:20, 22) 그는 사람의 그런 가르침을 “자의적 숭배”라고 칭했는데(골로새서 2:23), 이는 인간이 만든 숭배, 즉 사람의 뜻이나 생각으로 고안해 낸 종교적인 규칙과 행위를 의미한다. 바울이 언급한 “자의적 숭배”의 한 가지 형태는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금욕주의를 실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욕구를 극복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육체적 쾌락을 완전히 삼갔다. 그들은 종종 극도의 음식 제한 규정을 따랐으며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성관계를 피했다.(또한 고린도전서 7:1~5; 디모데전서 4:1~3 참조) 그처럼 과도한 실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조셉 스미스 역에서는 골로새서 2장 21~22절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인간의 교리와 계명을 따르는 규례에 순종하느냐? 그들은 너희에게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치나니, 그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느니라. 그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에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육체의 욕구를 만족하는 것에 관해서는 몸을 경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지 못하느니라.”(Joseph Smith Translation, Colossians 2:21–22)
골로새서 3:1~2. “위의 것을 찾으라“
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 나오는 거짓 가르침을 반박한 후에, 독자들에게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라고 권했다.(골로새서 3:2) 이와 유사하게 조셉 비 워스린 장로는 후기 성도들에게 세상의 것으로 너무 분주해서 영원한 우선순위에 집중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우리는 종국에 가면 실제로는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 그것들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처리하며 인생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힘을 영원한 의미를 가진 것에 쏟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주변 생활 속에서, 우리는 ‘이리 오시오’ 혹은 ‘저리 가시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끄는 음성과 유혹 속에서도 ‘나를 따라오라’라고 조용히 우리에게 외치는 한 사람이 갈릴리 바닷가에 서 계십니다.”(“나를 따르라”, 리아호나, 2002년 7월호, 16쪽)
골로새서 3:3~12.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새 생명
바울은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고 가르쳤다.(골로새서 3:3) 성도들이 육체적 사망을 겪은 것은 아니었으나, 바울은 그들이 “옛 사람[을] … 벗어 버”렸을 때(골로새서 3:9) 이전의 죄 많은 그들은 죽었으며, 따라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이 새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는 바울의 말은(골로새서 3:3), 구주께서 현세에서든 영원한 견지에서든 항상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의 삶은 안전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충실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그분과 함께 나타날 것이다.(골로새서 3:4) 바울은 더 나아가 교회 회원들에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라고 권고했다.(골로새서 3:5) 이 말은 그들이 세상의 본질에 속하는 소망과 동기를 죽이거나(없애거나)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삶에서 겪었던 한 경험은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는 말의 의미를 잘 설명해 준다. 어느 날, 조셉 스미스는 친구인 윌리엄 클레이튼의 무릎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님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다른 많은 분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님은 신권의 권능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인봉되었으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지 않는 한 그 어느 것도 형제님이 영생을 상속받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5:391) 여러분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다는 것은 여러분의 부름과 택하심을 굳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골로새서 3:10~11.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모든 사람, 즉 헬라인(그리스인), 유대인, 야만인 및 스구디아인이 평등하게 되었다고 가르쳤다.(골로새서 3:11 참조) 야만인은 로마인들이 예절과 문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스구디아인은 (오늘날 우크라니아에 있는) 흑해 북부 연안 출신으로, 헬라인들이 폭력적이고 무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골로새서 3:12~17. “자비[로] … 옷 입고”
바울은 구금 중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향한 친절, 용서, 자비, 자애로 가득 차 있는 권고를 작성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도 리버티 감옥에 있는 동안 성도들에게 이와 유사한 권고를 적으면서, “모든 사람을 향하여 … 사랑이 네 가슴에 가득하게 하”라고 말했다.(교리와 성약 121:41~45 참조) 이 말씀은 불법적으로 구금된 주님의 종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시대를 초월하는 권고이다. 그런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구주의 제자들은 자신의 영혼에서 비통함을 지워 버려 주님의 영이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골로새서 3:18~4:2. 가정 규례
골로새서 3장 18절~4장 1절은 이른바 “가정 규례”로 불리며, 일가권속을 위한 원리와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다.(다음 성구에도 유사한 구절이 나옴. 에베소서 5:19~6:9; 디도서 2:1~10; 베드로전서 2:18~3:8)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 당시 문화에서 권속에게 요구하는 일반적인 관례를 따르도록 격려하는 대신 권속들과, 또한 그들과 자신의 관계를 주님의 표준에 따라 평가해 봄으로써(“주 안에서” 또는 “주께”와 같은 어구 참조) 기독교인 가정과 회중에 더 큰 단합과 평화를 이룩하라고 촉구했다. 권속과 결혼 생활의 조화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더 읽어 보려면, 에베소서 5:17~6:9 주해, 에베소서 5:21~6:9 주해, 에베소서 5:21~25 주해 및 에베소서 5:25 주해를 참조한다.
골로새서 3:18~19. 배우자들에게 주는 권고
바울이 권속에게 주는 권고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애정 어린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러한 관계에 관하여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남편 또는 아내의 삶에서 배우자는 가장 우위에 [있어야 하며], 사회 생활, 직장 생활, 정치 생활, 다른 어떤 관심사나 사람이나 물건도 동반자인 배우자보다 결코 우선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
결혼은 완전한 충성과 완전한 정절을 전제로 합니다. 배우자는 자신의 동반자가 자신에게 온 마음, 힘, 충절, 지조, 그리고 애정을 완전히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그 동반자를 받아들입니다. 어떠한 일탈도 죄가 됩니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범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구하는 눈’을 지녀야 하듯이[교리와 성약 4:5; 82:19], 우리는 결혼 생활과 더불어 배우자와 가족만을 전념하여 구하는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Conference Report, Oct. 1962, 57)
골로새서 4:5~6. 너희 말을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라고 권했다.(골로새서 4:5) “외인”은 교회 회원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 후에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라고 말했다.(골로새서 4:6) 고대에 소금은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데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복음 성약의 상징이 되었다.(레위기 2:13 참조) 또한 소금은 정화제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말을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교회 회원들이 서로 대화할 때는 물론 비기독교인들과 대화할 때도 그들이 주님과 맺은 성약에 부합되는 말을, 또한 정결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골로새서 4:16. 잃어버린 서한
이 성구는 바울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도 서한을 보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에는 이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