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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소개 및 연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에는 지도자들이 교회의 질서를 바르게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서한들은 목회 서한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서한들에서 바울은 감독의 자격 요건을 말했는데, 감독은 복음 생활을 합당하게 영위하는 현실적인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위험한 시기가 다가올 것을 경고하고, 거짓 가르침의 파괴적인 영향력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그는 거룩한 경전이 올바른 교리와 가르침의 근원임을 가르쳤다. 자신의 성역과 더불어 자신의 삶이 끝나 간다는 것을 안 바울은 자신이 끝까지 견디었고, 또한 영생을 받게 되리라는 영적 확신을 얻었음을 인정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서한은 성도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기면 필요할 때 그들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커질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디모데전서 주해
디모데전서 1:1~7; 4:6.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이 첫 번째 서한의 서두에서 자신의 자격에 대해 “하나님[의] … 명령을 따라 [부름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자신이 사도로 부름받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및 제3차 선교 여행 때 그와 함께 두루 여행했다.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의 충실한 아들인 듯이 그를 사랑했으며 그에게 많은 중요한 임무를 주었다.(고린도전서 4:17; 데살로니가전서 3:1~2; 디모데후서 4:9~13 참조)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시기에 에베소를 떠나면서, 디모데에게 그곳에 남아 교회를 인도하는 일을 도우라고 부탁했다.(사도행전 20:1 참조) 디모데전서 1장 3절에서, 바울은 다시금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남아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며, 성도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침받는 일이 없게 하라고 권고했다. 디모데전서 1장 3~7절에서, 바울은 한때 진리를 알았으나 그 참된 진리에서 “벗어[난]” 거짓 교사들을 언급했다. 디모데전서 1장 19~20절에서, 바울은 믿음에서 떠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특별히 언급하며, 자신이 그들을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파문했음을 의미한다.
신권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은 올바른 교리가 가르쳐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전에 교회의 교리를 순수하게 유지하고, 모든 모임에서 순수한 교리가 가르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 교리적인 가르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크고 사악한 거짓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 [1997], 620)
디모데전서 1:4~6; 6:3~5, 20; 디도서 3:9. 교화로 이끌지 못하는 가르침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회원들이 “신화와 족보에 끝없이 몰두하지” 않도록 가르치라고 요청했다. 이 성구에서 바울은 가족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올바른 행위를 비난한 것이 아니었다. 족보를 기록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이었으며(마태복음 1:1~16; 누가복음 3:23~38 참조), 다른 곳에서 바울도 자신의 족보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로마서 11:1; 빌립보서 3:5 참조) 여기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화와 족보”에 관해 말한 이유는 그저 “변론을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전혀 사람을 교화하지 않는 그릇된 개념의 예를 들기 위해(디모데전서 1:4), 그리고 자신들이 선택된 백성임을, 즉 남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하려고 조상들을 찾는 이들을 꾸짖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이 교훈의 목적[모든 교리의 요약 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 사랑”이라고 썼다.(디모데전서 1:5) 몰몬경의 선지자 몰몬은 “사랑은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이라, 영원히 견딤이요”라는 유사한 가르침을 전했다.(모로나이서 7:47)
사람을 교화하지 못하는 거짓 가르침과 관련하여, 바울은 무익한 토론이나 사색을 의미하는 “헛된 말”(디모데전서 1:6), “변론과 언쟁”(디모데전서 6:4), 그리고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에 관해서도 썼다.(디모데전서 6:20; 디모데전서 6:20 주해 참조) 바울은 이런 행위 때문에 믿는 자들의 시선이 진리로부터 분산되고 다툼과 논쟁이 일어난다고 경고했다.(디모데전서 4:7; 6:20; 디도서 3:9 참조) 후기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존재한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유일하게 승인된 교리는 하나님의 교리이다.
이 교회는 논쟁을 하는 단체가 아니며, 구원 방식을 탐구하는 곳도 아니고, 사회 또는 정치 철학을 논하는 장도 아니다. 단지 이곳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님의 진리를 가르치라는 명을 받은 그분의 왕국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3:71)
디모데전서 1:13~16. 모르고 짓는 죄
디모데전서 1장 13~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개종하기 전에 지은 죄를 언급하며, 그것은 무지한 가운데 저지른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가르쳤다. 복음의 위대하고도 영원한 진리 중 하나는 주님께서는 무지한 가운데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것이다.(요한복음 9:39~41; 니파이후서 9:25~26; 모사이야서 3:11; 교리와 성약 45:54 참조) 바울은 구주께서 내리시는 은혜의 힘에 대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고 가르쳤다.(디모데전서 1:16) 자비와 은혜는 연약한 존재이나 거룩해지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은사이다.(이더서 12:27; 교리와 성약 38:14; 50:16; 101:9 참조) 바울의 경우처럼, 우리도 자비의 혜택을 받아 회개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결국 더 많은 자비를 얻게 된다.(교리와 성약 3:10; 61:2)
디모데전서 2: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디모데전서 2장 5~6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신다고 말했다. 중보자, 즉 중재인이란 주로 두 당사자가 화해하고 우정을 되찾도록 그 사이에서 중재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셉 스미스 역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성임되셨[다]”는 통찰을 더 얻게 된다.(조셉 스미스 역, 디모데전서 2:4[경전 안내서]) 친히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그분의 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회복된 경전은 예수께서 새로운 성약의 중보자이심을 증명해 준다. 그분은 모든 이가 의롭게 되게 하신 후, 온전하게 하신다.(니파이후서 2:9; 교리와 성약 76:6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신 중보자 역할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히브리서 8:1~13 주해를 참조한다.
디모데전서 2:9~10.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바울은 여성들에게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겸손과 경건을 의미하는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라고 권고했다.(디모데전서 2:9) 그는 또한 여성들에게 값비싼 옷차림과 보석류와 화려하게 장식한 차림새는 지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와 유사한 가르침은 다음 성구들에도 나온다. 니파이전서 13:7~8; 제4니파이 1:24; 몰몬서 8:36~39; 교리와 성약 42:40. 바울은 여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에게 걸맞은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단정한 복장을 하는 것에 대한 원리는 오늘날 교회의 남성 회원과 여성 회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복장과 외모를 통해 여러분은 …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고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늘 단정한 복장을 하도록 끊임없이 권고해 왔습니다. 훌륭하게 외양을 가꾸고 정숙한 옷차림을 하면 영을 동반하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청소년의 힘을 위하여[소책자, 2011], 6쪽)
디모데전서 2:11~15. 교회의 여성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에서, 바울은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구에 대해 바울 시대에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말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조용히 배우라”라고 권고한 것은 몇몇 여성들이 교회 지도자들의 권세를 침해하려 했기 때문에 바울이 그 문제를 바로잡고자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디모데전서 2:11) 여성이 교회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고린도전서 14:34~35 주해를 참조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여성이 교회에서 하는 귀중한 역할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다. “주님과 성약을 맺은 이 교회의 모든 자매들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돕고, 세상의 여성들을 인도하고, 시온의 가정들을 강화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할 신성한 책임이 있습니다. 제2대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이었던 엘리자 알 스노우(1804~1887)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교회에 있는 모든 자매는 의로움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다른 여성보다도 더 크고 높은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Great Indignation Meeting,’ Deseret Evening News, 15 Jan. 1870, 2)”(“의로운 여성”, 리아호나, 2002년, 12월호, 39쪽)
디모데전서 2:14. 아담의 타락에서 이브의 역할
디모데전서 2장 9~15절에서 바울은 여성의 역할에 대해 논하면서, 이브가 속아서 범법했다고 썼다.(14절 참조) 이는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제일 먼저 따 먹은 사람이 이브라는 사실을 언급한다.(창세기 3:6 참조) 우리는 이브를 비난하기보다 그녀가 온 인류를 위해 담대하게 기꺼이 필멸의 삶을 시작한 것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대한 그리스어 원전을 보면, 바울은 이브의 범법이 그녀가 자신과 아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여 권세를 침해함으로써 도를 넘은 데 있었다고 여겼음을 내비친다. 이 성구에서 “죄”로 번역된 그리스어 parabasis는 글자 그대로 “넘다”를 의미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필멸의 상태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에덴의 한계를 범한 사람은 이브였습니다. 이유야 어떠했든 간에 이브의 행동은 엄밀히 말하면 범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영생의 문을 여는 영광스러운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아담 역시 똑같이 행하는 지혜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브와 ‘아담이 타락한 것은 사람이 존재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니파이후서 2:25]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브의 행위를 비난하여 이브와 그녀의 딸들이 그 때문에 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후기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를 통해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브의 행위를 찬미하며 타락으로 불리는 그 위대한 사건에 행사하였던 그녀의 지혜와 용기를 존경합니다. 조셉 스미스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죄’가 아니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The Words of Joseph Smith, ed. Andrew F. Ehat and Lyndon W. Cook, [1980], p. 63 참조) …
현대의 계시를 통해 우리는 첫 번째 부모가 타락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이는 내 범법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열렸고, 이 생에서 내가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또다시 육체로 내가 하나님을 뵈올 것임이니라.’(모세서 5:10)
위대한 행복의 계획의 목적과 결과에 초점을 맞춘 이브의 독특한 안목과 뛰어난 지혜에 한번 주목해 보십시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범법이 아니었더면 우리가 결코 후손을 갖지 못하였을 것이요, 선과 악, 그리고 우리의 구속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 모두에게 주시는 영생을 결코 알지 못하였을 것이니라.’(11절)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죽은 자의 구속에 관한 시현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모인 ‘위대하고 뛰어난 자’들을 보셨으며 그중에 있는 ‘우리의 영화로운 어머니 이브’도 보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38:38~39)”(“위대한 행복의 계획”, 성도의 벗, 1994년 1월호, 73쪽)
디모데전서 3:1~7. 감독의 자격 요건(또한 디도서 1:7~9 참조)
“감독”이란 직함은 그리스어 episcopos에서 파생되었는데, epi는 “빈틈없이”를 의미하고 scopos는 “보다” 또는 “지켜보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episcopos, 즉 감독은 감독관 또는 관리자로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디모데전서 3장 1~7절에서, 바울은 감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몇 가지 자격 요건을 열거했다. 신중함, 절제, 관대함, 인내 등 바울이 구체적으로 열거한 특성은 부름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에게 가치가 있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감독들에게 말씀하면서, 우리 시대의 신권 지도자에게 필요한, 유사한 자격 요건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여러분은 고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감리하는 회중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보다 높은 곳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끌어올려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정직해야 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주님의 기금[을] … 다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선함은 회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악마는 여러분을 파멸시킬 때, 그것이 와드 전체에 손상을 입히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간계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행위를 살펴 조그만 오점이라도 찾게 되지 않도록 모든 관계에 있어서 지혜를 행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외설 서적을 읽거나 심지어는 여러분 자신의 방의 은밀한 곳에서조차도 외설적인 동영상을 보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도덕적인 힘은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게 되더라도, 개인적인 타협이나 당황함 없이 판단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이스라엘의 목자들”, 리아호나, 2003년 11월호, 60쪽)
디모데전서 3:8~13. 초기 교회의 집사
집사[deacon]라는 단어는 “종” 또는 “성직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다. 집사라는 직분은 예비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이 “새로 입교한 자”(최근 개종자)를 집사로 부르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나 감독으로 부르는 것은 금했기 때문이다.(디모데전서 3:6) 집사가 되기 위한 다른 자격 요건은 감독의 요건과 유사했으며, 그중에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디모데전서 3:12; 2절과 비교)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초기 교회의 집사와 오늘날의 집사 간에 혼인 여부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 시대에 집사가 결혼한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은 바울의 판단이었다. 그 판단은 우리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바울 시대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30세가 되어야 성직에 참여할 자격이 된다고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집사, 교사, 제사는 성인들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런 요건이 없다.”(Answers to Gospel Questions, comp. Joseph Fielding Smith, 5 vols. [1957–66], 1:129) 오늘날 교회의 집사 직분에 관해 알아보려면 다음 성구들을 참조한다. 교리와 성약 20:57~60; 84:26~27, 30, 111; 107:85.
디모데전서 4:1~5. “혼인을 금하고”
바울 시대에 극도의 금욕주의, 즉 육욕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육체적 쾌락을 금하는 관례는 교회에 위협이 되었다.(고린도전서 7:1~5 및 골로새서 2:20~23 주해 참조) 바울은 이 구절에서 결혼의 교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목회 서신에 나오는 다른 구절들에서는 결혼과 가족이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이라는 일관된 가르침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바울은 감독과 집사가 결혼하고 좋은 아버지여야 하며(디모데전서 3:2, 4, 12; 디도서 1:6~7 참조), 능력이 있는 성인은 자신의 가족을 현세적으로 양육해야 하고(디모데전서 5:8 참조), 결혼한 여성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가정을 돌보아야 하며(디모데전서 5:14; 디도서 2:4~5 참조), 세상의 마지막 날에는 부모에 대한 불순종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가르쳤다.(디모데후서 3:2 참조)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오늘날 결혼과 가족을 위협하는 현대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이 주셨고 경전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교리, 즉 결혼의 신성을 보호해 주는 교리, 가족의 신성함, 그리고 개인의 도덕에 관한 필수적인 교리를 변경하려 합니다. 그들은 사통과 간음과 동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덕의 재정의를 주창합니다. 어떤 이들은 공공연히 동성 결혼의 입법화를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보호해 주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율법에 대한 배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은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1995년에 세상에 선포한 영감받은 가족 선언문조차 공격합니다.”(“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75쪽; 또한 교리와 성약 49:15 참조)
디모데전서 4:7~8. 신체 운동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라고 촉구했다. 그런 후 바울은 이 신체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는 반면에(신체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가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함을 의미함),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설명했다.(디모데전서 4:7~8) 이런 대조는 바울의 독자들에게 특히 신랄했을 것이다. 로마 문화에서는 강건하고 튼튼한 몸을 높게 평가했으며, 운동가들은 로마제국 도처에 있는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몸을 단련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신체 단련이 지나치게 중시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독서, 권고, 교리, 영의 은사를 계발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디모데전서 4:13~15 참조)
디모데전서 5:1~16. 다른 사람의 현세적 필요를 보살핌
디모데전서 5장 1~16절에서, 바울은 복지 지원에 관한 참된 원리를 가르쳤다. 노인과 과부에 대한 존중과 관심은 경건의 원리이며, 이 성구들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은 특히 과부에게 적용되었지만, 그 원리 중 다수는 폭을 더 넓혀 우리 시대에 가족들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과부가 의로운데 자녀가 없거나 그녀를 돌볼 다른 친척이 없는 경우에만 복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가르쳤다.(디모데전서 5:4, 10 참조) 만일 가족들이 과부를 도와준다면, 교회는 “짐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디모데전서 5:16) 디모데전서 5장 9절에서 과부를 “명부에 올[린다]”는 말은 교회의 복지 지원을 받는 과부로 헤아림받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디모데전서 5:8) 바울 시대에는 가족을 현세적으로 부양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의 초창기부터 남편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신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기를 거부하는 남자는 좋은 회원으로 여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보다 큰 친절의 필요성”, 리아호나, 2006년 5월호, 58쪽)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현대의 선지자들은 가족의 개별적 “상황에 따라 이러한 원리를 개별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가르쳤다.(“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129쪽)
디모데전서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권고했다.(디모데전서 5:22) 이 말은 올바른 준비를 하지 않고 사람을 성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그런 준비에는 성임받을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합당하며(디모데전서 3:1~7 주해 참조)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포함되었다.(사도행전 1:24~26 참조) 칠십인 회장단의 리처드 제이 메인즈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침을 주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라고(디모데전서 5:22) 당부했습니다. 바울은 부름을 주기 전에 먼저 기도하고 숙고하며 영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초기 사도들의 말씀: 교회를 세움”, 리아호나, 2003년 9월호, 37쪽; 또한 신앙개조 제5조 참조)
디모데전서 6:6~19. 부에 관한 권고
디모데전서 6장 6~19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가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경고했다. 바울의 경고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디모데전서 6:10) 바울은 또한 돈을 “탐내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라고 말했다.(디모데전서 6:10)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돈과 재산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영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은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감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웃이 가진 것을 우리 가족이 가지고 있지 못하면 무안해하고, 창피해하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 살 형편도 안 되고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느라 빚을 집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현세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해집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소중하고 값진 선택의지를 포기하고, 자신을 노예 상태로 만듭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사용할 수 있었을 돈을, 이제는 빚을 갚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나마 남은 돈은 대개,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필요 사항을 충족시킬 정도입니다.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자긍심에 영향을 받으며, 가족, 친구, 이웃, 주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영적인 것들을 추구할 시간이나 열정, 혹은 관심을 두지 못하게 됩니다. …
무언가를 사거나, 소비하거나, 세속적인 것들과 활동들을 즐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것을 원하긴 하지만, 살 형편이 안 돼요!’ 또는 ‘살 형편은 될지 모르지만, 필요하지도 않고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아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자원에 영향을 미칠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갖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할 수 있습니다. ‘이 유익이 일시적인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가치와 중요성을 가진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면 과도한 빚과 다른 중독적인 행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앞날을 예비하여 부양하는 자가 됨”,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8~10쪽)
디모데전서 6:15~16. 인간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가?
바울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다고 말했다.(디모데전서 6:16) 그러나 조셉 스미스 역,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에서는 깨끗하고 합당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명시한다.
“그의 때가 되면 그가 보이시리니, 그는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 그에게 존귀와 권능이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으며 그에게 다가갈 수도 없으나 다만 불멸의 빛과 소망이 자기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 할 수 있느니라.”(경전 안내서)
신약전서의 다른 곳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보고 그분께 다가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사도행전 7:55~56; 요한계시록 3:21; 22:3~4; 요한복음 1:18 주해 참조)
디모데전서 6:20. 과학
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헛된 말과 … 지식[과학]의 반론을” 피하라고 말했다.(디모데전서 6:20) 이 성구에서 “지식”은 그리스어 gnōseōs의 번역으로, 특히 당시에 초기 기독교로 유입되고 있던 그노시스주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노시스주의자는 (영지[gnosis]라고 불리는) 은밀한 지식을 가르침받아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노시시즘[영지주의]은 2세기 기독교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요 근원이었다. 이 주의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52장에 나오는 “요한복음은 누구를 위해, 왜 기록되었는가?”를 참조한다.
디모데후서 주해
디모데후서 1:6, 14.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디모데후서 서두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라고 격려했다.(디모데후서 1:6) 이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삶에서 그것을 강하고 활기 있게 유지하라는 권고였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두 단어로 된 ‘성신을 받으라’라는 선언은 수동적인 말이 아닙니다. 즉, 단순히 행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하라는 지시가 담긴 권고이며 신권의 명령입니다.(니파이후서 2:26 참조) 성신은 단지 머리 위에 손이 얹어져 두 단어로 된 그 중요한 말이 전해진다고 해서 우리 삶에 역사하지는 않습니다. 이 의식을 받을 때 우리는 모두 실제로 ‘성신과 성신이 동반하는 영적 은사를 받는’ 삶을 원하고 추구하며, 그러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합당하게 살겠다는 성스럽고 지속되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성신을 받으라”,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95쪽)
디모데후서 1:7~8.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바울은 투옥되어 극심한 박해를 견뎌 냈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박해를 받으면 어떤 두려움을 느낄지를 몸소 알고 있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다음과 같이 교회 회원들에게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면서, 디모데후서 1장 7절을 인용했다.
“우리가 세상과 우리 삶의 안 좋은 일에만 온통 신경을 쓴다면 좌절하게 되고 미래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하며, 심지어 앞으로 닥칠 일들을 두려워하게 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우리 주변의 어려움들에서 돌이켜 교회 회원으로서 받는 축복들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디모데후서 1:7]
이 때가 찬 경륜의 시대에 교회의 역사에는 고난을 겪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의 중심으로 두면서 끝까지 굳건하며 기뻐했던 사람들의 경험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태도는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견딜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물론 그 태도가 우리의 고난을 없애 주지는 않겠지만 그 역경들에 굳건하게 맞서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기뻐하라”, 리아호나, 2009년 5월호, 89쪽)
디모데후서 1:8~13; 2:1~14. “우리 주를 증언함[을] …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울은 자신이 제자로서 살아온 삶을 숙고하며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너는 … 우리 주를 증언함[을] …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디모데후서 1:8)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디모데후서 1:12 참조) 그는 디모데에게 이전에 배웠던 교리를 “본받아 지키”라고 권고했으며(디모데후서 1:13), 이 권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히 적용된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당국에 의해 곧 사형에 처할 것을 예상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셨음]”을 알았다.(디모데후서 1:10)
바울은 디모데 또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알았기에(디모데후서 1:8), 고난을 충실하게 견디고 상관을 기쁘게 하려고 다른 일들을 제쳐두는 좋은 병사와(디모데후서 2:3~4 참조), 정해진 규칙대로 행할 경우에만 승리할 수 있는 경기자(5절 참조), 그리고 수고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힘써 일해야 하는 농부의 비유를 들면서(6절 참조) 디모데에게 충실할 것을 권고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격려는, 제자라면 응당 다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난을 기꺼이 견뎌야 한다는 통찰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10절 참조)
디모데후서 2:22. “청년의 정욕”을 피함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진지하게 추구하라고 독려했다.(디모데후서 2:22) 청년의 정욕에 관하여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자주 [마음이 청결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청년의 정욕을 버리십시오. 마약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여러분을 반드시 파멸시킵니다. 끔찍한 질병을 피하듯 그것들을 피하십시오. 실제로 그것들이 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정하고 더러운 말을 피하십시오. 그것은 파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절대 정직하십시오. 부정직은 부패시키고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며, 피울 수도 없습니다. 입담배를 씹어서도 안 됩니다. 술을 마시지 마십시오. … 여러분은 이 유혹의 손짓을 하는 것들을 이겨 내야 합니다.”(“개종자와 청남”, 성도의 벗, 1997년 7월호, 49쪽)
디모데후서 3:1~7. “고통하는 때”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서, 바울은 재림으로 이어지는 “고통하는 때”에 지상을 뒤덮을 지독한 어려움과 사악함을 예언했다.(디모데후서 3:1)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마지막 날에 영적 안전을 확보하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날에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고통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가족으로서, 그리고 교회 회원으로서 안전하려면 ‘복음의 법과 의식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신앙개조 제3조]”(“시험”,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88쪽)
디모데후서 3:8. “얀네와 얌브레”는 누구인가?
유대인의 전언에 따르면, 얀네와 얌브레는 바로의 왕궁에서 모세와 아론을 반대했던 두 마술사의 이름이었다.(출애굽기 7:10~12 참조)
디모데후서 3:14~17. 경전은 “의로 교육”한다
바울에 따르면, “성경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다.(디모데후서 3:15~16) 이런 권고는 자녀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경전 공부를 통해 어떻게 신성한 인도와 보호를 받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경전은 우리가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충분히 오랫동안 마실 수 있는 생수의 보고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거룩한 경전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모사이야서 1:5 참조), 공부하고(교리와 성약 26:1 참조), 상고하여(요한복음 5:39; 앨마서 17:2 참조) 흡족히 취함으로써(니파이후서 32:3 참조) ‘생수의 근원이신’(니파이전서 11:25; 또한 이더서 8:26; 12:28 비교)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에게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필멸의 여정 동안 영적인 지시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생수의 보고”[청년 성인을 위한 교회 교육 기구 노변의 모임, 2007년 2월 4일], 2쪽, si.lds.org)
디모데후서 4:1~5. 거짓 교사들
디모데후서 4장 1~4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대배도의 도래를 예시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그보다는 “귀가 가려워서” 청중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는 거짓 교사들을 따를 것이다. “귀가 가려워서”라는 말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듣는 사람들을 묘사한다고 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디모데후서 4:6~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삶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던 바울은 자신이 “부어지고[ready to be offered]”라고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되었음을 내비쳤다.(디모데후서 4:6) 그런 후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음을 묘사하려고 다음과 같이 승리를 거둔 경기자의 비유를 들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디모데후서 4:7) 십이사도 정원회의 조셉 비 워스린(1917~2008) 장로는 교회 회원들이 자신의 달려갈 길을 어떻게 충실히 마칠 수 있는지를 이렇게 가르쳤다. “끝까지 견디는 것은 우리의 삶을 복음의 토양 위에 굳건히 세우고, 받아들인 교리들을 계속 지키며, 겸손하게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생활을 하고, 성약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견디는 사람들은 균형이 잡혀 있고, 한결같고, 겸손하고, 꾸준히 발전하고, 간사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간증은 세상적인 동기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지식, 경험 및 영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전진하라”, 리아호나, 2004년 11월호, 101쪽)
디모데후서 4:8. “의의 면류관”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을 승리를 거둔 경기자에 비유하면서, 자신을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에 관해 말했는데(디모데후서 4:8), 이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준 월계수 가지로 만든 관을 가리킨다. 그런 후 바울은 끝까지 의롭게 견디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모든 성도에게 영원한 면류관이 주어지리라고 설명했다. 바울은 자신이 박해를 받는 동안 “주께서 [자신] 곁에 서 [계셨고]” 자신이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분께서 “[자신]에게 힘을 주[셨다]”고 간증했다.(디모데후서 4:17)
디도서 주해
디도서 1:2. 전세
디도서 1장 2절에서, 바울은 “영생은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구는 성경에 나오는 다른 구절들과 더불어, 우리가 육신을 입고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음을 입증한다.(욥기 38:7; 예레미야 1:5; 로마서 8:29; 에베소서 1:4; 히브리서 12:9; 요한계시록 12:7 참조)
디도서 1:7~9. 감독의 자격 요건
디도는 그리스의 그레데 섬에 있는 교회 지부를 감리했기에 교회 회원들을 관장하는 감독을 부를 권세가 있었다. 디도서 1장 7~9절에서, 바울은 감독의 자격 요건을 약술했다. 이런 자격 요건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디모데전서 3:1~7 주해를 참조한다.
디도서 1:10~11.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 가르쳐”
바울은 디도에게 “더러운 이득을” 추구했던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를 경고했다.(디도서 1:10~11) “더러운 이득”은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 획득한 돈을 가리킨다. 부정직한 사람들은 돈과 세상의 칭찬을 얻기 위해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디도서 1:11) 몰몬경에서는 이런 행위를 “사제술”로 칭한다.(니파이후서 26:29)
디도서 1:12. “그레데인”의 특성
바울은 디도의 회중 가운데 있는 탐욕스러운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면서, “그레데인”이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고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디도서 1:12) 키케로, 리비우스, 플루타르크, 폴리비우스 같은 고대의 작가들도 그레데 사람들이 탐욕스럽다는 유사한 보고를 한 바가 있다. 역사적으로, Cretan[그레데 섬 사람]이라는 단어는 부정직과 동의어로 쓰였다. 이 성구에서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말은 “게으른 배”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으며, 이는 게으르며 식탐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디도서 1:14~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그레데의 교회 회원들은 어떤 것들이 의례적으로 깨끗하다 또는 깨끗하지 않다는 유대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디도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가르쳤다. 이는 의례적으로 깨끗하지 않다고 선언된 것을 만지거나 취하더라도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내적 영적 상태의 깨끗함을 의미한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 디도서 1장 15절에는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하라”라고 나온다.
디도서 2:1~12. “바른 교훈[참된 교리]”의 효과
그레데 섬의 성도들 사이에 거짓 가르침이 슬며시 스며들고 있었기에, 바울은 디도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칠 것을 촉구했다.(디도서 2:1) 그런 후 바울은 참된 교리가 어떻게 남녀노소와 종들의 행동을 인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몇 가지 예를 들었다.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복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잘 가르쳐진 교리 및 원리는 규칙보다는 행동에 더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복음의 교리와 원리를 가르칠 때,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을 강화시키기 위해 영의 인도와 증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복음 교육”, 리아호나, 2000년 1월호, 96쪽)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또한 이렇게 가르쳤다.
“참된 교리란 이해되기만 한다면, 태도와 행동에 변화를 줍니다.
복음의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연구가 행위를 향상시키는 것보다 더 빨리 행동을 향상시켜 줍니다. 합당하지 않은 행위에 대한 집착은 합당하지 않은 행동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복음 교리 공부에 그토록 많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어린아이들”, 성도의 벗, 1987년 1월호, 21쪽)
디도서 2:14. “자기 백성[선민]”
바울은 디도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우리가 “자기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디도서 2:14) 선민[peculiar]의 의미를 더 알아보려면, 베드로전서 2:9~10 주해를 참조한다.
디도서 3:5. “중생[重生]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디도서 3장 5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자비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기록했다. “중생의 씻음”은 침례를 의미한다.[중생: 重生, 거듭남이라는 뜻—옮긴이] “중생”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재창조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침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성약 관계를 맺게 되며, 죄 없는 상태로 새롭게 창조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린도후서 5:17; 갈라디아서 6:15) 신생아에게 이름이 붙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새로운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짊어지며 그분처럼 살고자 애쓰겠다는 성약을 맺는다.
칠십인 정원회의 크리스토펄 골든 이세 장로는 성결하게 하는 성신의 영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속죄만이 인간의 죄를 없애고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성결함의 은사가 주어져서 깨끗하고, 순결하며, 흠이 없는 상태가 되게 합니다. 이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과 복음 의식에 순종하는 조건으로 성신의 권능을 통해서만 베풀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침례를 받았다고 간증했으며(사도행전 22:12~16 참조), 디도에게 우리는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상기시켰습니다.(디도서 3:5)”(“Words of the Early Apostles: Grace,” Ensign, Oct. 2003, 51)
빌레몬서 주해
빌레몬서 1:7, 12, 20.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빌레몬서 1장 7, 12, 20절에서, “마음[bowels]”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며, 사람의 감정과 애정을 의미한다. 바울이 성도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한 것은(빌레몬서 1:7, 20 참조) 다른 사람들을 통해 마음에 위로를 얻고 감정이 고양되었음을 의미한다.
빌레몬서 1:8~9, 18. 바울이 빌레몬에게 한 간청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도망친 종이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투옥된 곳으로 도망쳤으며, 그 후에 복음으로 개종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려고 그에게 편지를 썼다.(빌레몬서 1:16)
바울은 빌레몬이 “마땅한 일”, 즉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도록 명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권세를 사용하지는 않겠다고 설명했다.(빌레몬서 1:8) 그보다, 바울은 자신이 나이도 많고 감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에 빌레몬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단순히 요청했다.(빌레몬서 1:9 참조)
바울이 빌레몬에게 “마땅”하니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들이라고 제안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빌레몬서 1:8) 그러나, 흠정역이 제작된 당시에 마땅한[convenient]이라는 말은 “적절한” 또는 “적합한”을 의미했을 수 있다. “마땅한”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의 본딧말은 “~까지 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생겨났으며, 이 단어는 어떤 수준 또는 표준에 부합하라는 개념을 함축한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도달해야 하는” 가장 적합한 일, 또는 가장 적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후 바울은 만일 오네시모가 했던 행동으로 재정적 손실을 보았다면 자신이 개인적으로 빌레몬에게 보상하겠다고 말함으로써 기독교인다운 자애의 모범을 보였다.(빌레몬서 1:18 참조)
빌레몬서 1:16. 로마의 노예
그 시대의 로마 관습에 따라 노예는 주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도주했다가 되찾은 노예는 흔히 이마에 낙인을 찍고, 심하게 매질하고, 힘들고 비천한 일을 하도록 보내며, 위험한 짐승들이 있는 원형 극장에 던져 넣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죽이기도 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다시 받아들이라고 요청함으로써, 도주한 노예에 대한 관례적인 형벌을 오네시모에게 가하지 말도록 간청했다.(빌레몬서 1:10, 1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