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학생
제42장: 고린도후서 6~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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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13장

고린도후서 6~13장 소개 및 연대

고린도후서 6~13장은 세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고린도후서 6~7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성역을 베풀며 했던 일들을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앞서 보낸 서한에서 했던 권고를 고린도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회개했다는 전갈을 듣고서 기뻐했다.(고린도후서 7:4~8 참조) 그것을 계기로 바울은 시대를 초월하는 가르침이 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관하여 기록했다. 8~9장에서, 바울은 계속 성도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기부하도록 권면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원리를 강조했다. 10~13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는 일부 고린도 사람들에 맞서 자신이 지닌 사도로서의 권세를 변호했다. 바울은 자신의 행위와 가르침을 그가 “거짓 사도”라고 칭한 사람들의 것과 대조했으며,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참된 종과 거짓 교사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곧 있을 자신의 방문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라고 권고했다. 바울이 했던 모든 권고에서, 우리는 성도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그들이 의롭게 행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엿볼 수 있다.

제41과 연대표

고린도후서 6~13장 주해

고린도후서 6:1~2.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어떻게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후(고린도후서 5:17~21 참조), 고린도 성도들에게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가르치며 주님께 충실할 것을 권면했다.(고린도후서 6:2) 몰몬경에는 현세에서 회개하고 복음 성약에 충실하게 남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유사한 가르침이 실려 있다.(니파이후서 2:21; 앨마서 34:31~33; 42:4 참조) 현세에서 자신의 복음 성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다음 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교리와 성약 76:79; 88:20~24 참조)

고린도후서 6:3~10. 하나님의 성역자

고린도후서 6장 3~10절에서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선교 동반자들이 하나님의 성역자로서 일하기 위해 어떻게 애썼는지를 설명하고 자신들이 겪었던 고난 중 다수를 언급했다. 바울이 자신의 성역에 대해 묘사한 것들은, 우리 역시 봉사를 할 때 본받고자 노력해야 할 효과적인 성역자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훌륭히 보여 주신 본보기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리와 성약 4편 5~6절121편 41~44절에도 이와 유사한 특성이 열거되어 있다.

고린도후서 6:12. “너희가 …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경전에 나오듯이, 이 심정이란 단어는 종종 연민, 사랑, 친절이 솟아나는 내적 근원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이나 동정심을 느낄 때 종종 강한 내적 감정을 경험한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서, 사람의 심정이 좁아진다는 개념은 사랑을 제한하거나 베풀지 않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라고 말한 것은, 그에게 사랑을 보이지 않는 일부 성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자신은 여전히 고린도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의미였다. 신약전서에서 심정[bowels]이란 단어가 유사하게 사용된 성구는 다음과 같다. 빌립보서 1:8; 2:1; 골로새서 3:12; 요한1서 3:17.

고린도후서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바울은 동물이 함께 멍에를 메는 비유를 사용하여, 교회 회원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권고했다.(고린도후서 6:14) 모세 율법에서는 황소와 당나귀에게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을 금했다.(신명기 22:10) 상대적으로 약한 동물이 강한 동물을 방해하지 않고, 또 상대적으로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후기의 선지자들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결혼 상대자를 결정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지침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후기 성도들이 종교가 같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아마 우리가 결혼하면 그가 교회에 들어올 것입니다. 먼저 결혼부터 하고 나서 보겠습니다.’라는 태도로 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와 같은 선택은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 …

여러 해 동안 많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자녀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훈련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얼마나 열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바칠 수 있기를 얼마나 염원했는지 모릅니다! 성전에 가서 죽은 자를 위한 사업을 수행하고, 자신을 위한 의식을 수행하며, 영원히 인봉되고, 자녀들과도 영원히 인봉되기를 얼마나 원하였는지 모릅니다! …

교회의 회원은 모두 합당하고 비회원은 모두 불합당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영원한 결혼 의식은 성전 밖에서는 가질 수 없으며 비회원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리요.]’ (고린도후서 6:14) 아마도 바울은 종교적인 차이가 근본적인 차이임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해의 왕국의 결혼의 중요성”, 성도의 벗, 1980년 7월호, 2~3쪽)

교회 지도자들은 또한 고린도후서 6장 14절을 결혼을 준비하는 문제에 적용했다. 즉, 그들은 “멍에를 메는” 결혼 관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기 위해 교육, 직장, 영성과 같은 분야에서 자신을 계발하여 결혼을 준비하도록 권고했다.

나무로 만든 멍에

멍에는 짐을 끄는 두 동물을 하나로 연결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바울은 멍에를 메는 동물의 비유를 사용하여 개인적인 관계에 관하여 권고했다.(고린도후서 6:14~18 참조)

고린도후서 6:14~18. “너희는 …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했다.(고린도후서 6:16) 그런 다음, 그는 성도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말고 그들의 “부정한” 행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이사야 52:11 참조) 바울은 이 가르침과 더불어 고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았던 다음과 같은 약속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즉, 만일 그들이 악인들 “중에서 나[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고린도후서 6:17; 또한 출애굽기 25:8; 레위기 26:11~12; 예레미야 32:38; 에스겔 11:19~20 참조)

고린도후서 7:2~7. 바울은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

고린도후서 7장 2~7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사람들에 맞서 계속 변론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하거나 속여서 빼앗지 않았음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마게도냐(그리스 북부 지역)에 있었을 때, 고린도 성도들이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느꼈으며, 그 힘으로 그곳에서 겪던 혹독한 시련을 견뎌 낼 수 있었다는 말도 전했다. 바울을 비방했던 사람들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고린도후서 10:7~18 주해를 참조한다.

고린도후서 7:8~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바울이 이전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서한을 보냈던 목적 중 하나는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기 위함이었다. 고린도후서 7장 8~13절을 보면 그의 서신이 잘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게 나온다. 바울에 따르면 고린도 성도들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었다.(고린도후서 7:9)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관한 경전의 가르침을 더 보려면, 다음 성구들을 참조한다. 니파이후서 2:7; 모사이야서 4:1~3; 앨마서 42:29~30.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의 은사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것이었음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 때문에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구주, 즉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인 주님이 고뇌와 고통을 겪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자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구주께서는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바로 이 진정한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고뇌가 경전에서 말하는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제3니파이 9:20; 모로나이서 6:2; 교리와 성약 20:37; 59:8; 시편 34:18; 51:17; 이사야 57:15 참조) 그러한 마음은 참된 회개의 절대적인 선행 요소입니다.”(“A Mighty Change of Heart,” Ensign, Oct. 1989, 4)

감독과 청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이 우리 마음에 작용하며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므로 세상적인 슬픔과는 다르다. 세상적인 슬픔이란 악행에 사로잡힌 것이나 언짢은 결과를 맞음으로써 후회를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몰몬서 2:12~14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교만한 사람은 얄팍한 슬픔으로 값싼 회개를 치르려고 합니다. 값싼 회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화해 대신 표면적인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회개”, 성도의 벗, 1992년 1월호, 36쪽)

고린도후서 8~9장. 초기 교회의 복지 노력

바울이 선교 사업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했던 노력 중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금하는 것이었다.(사도행전 24:17; 로마서 15:25~32; 고린도전서 16:1~4 참조) 고린도후서 8~9장에는 이 모금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은 그 목적을 위해 후하게 기부했으므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유했다.(고린도후서 8:1~7 참조) 이후에 바울은 고린도인들도 그 요청에 호의적으로 응했다고 기록했다.(로마서 15:26 참조)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바울은 아주 풍성하게 줄 수 있는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기꺼이 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또한 모사이야서 4:24 참조) 고린도후서 8장 14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현세적으로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영적으로 풍성하게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기부를 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 것 같다.(로마서 15:27 참조) 바울이 성도들 사이에서 “균등하게” 한다고 말한 것은(고린도후서 8:14)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현세적인 복지 문제에서 균등이란, 각 개인의 필요 사항과 부족함, 형편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것임을 후기의 계시는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교리와 성약 51:3; 82:17 참조)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교회 회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주님의 계획에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신앙과 헌신의 깊은 뿌리는 복지 원리를 실천하겠다는 결심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 이후부터 하나님 아버지는 복지에 대해서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를테면, ‘만일 네가 나를 사랑하면 … 너는 가난한 자를 기억하고 … 네 소유 중에서 헌납하여”라고[교리와 성약 42:29~30] 부드럽게 당부하셨고, 또 ‘모든 일에 있어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병든 자와 고난 당하는 자를 기억하라. 이는 이일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님이니라.’라고[교리와 성약 52:40] 직접적으로 명하셨으며, ‘어느 사람이 내가 만든 풍성한 것을 취하고 나의 복음의 법에 따라 자기 몫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주지 아니하면, 그는 악한 자와 더불어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자기 눈을 들어 보리라.’라며[교리와 성약 104:18] 강한 어조로 경고하기도 하셨습니다. …

…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손길이 이웃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종교의 본질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영적 발전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현세적인 봉사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

바로 이 시간에도 많은 회원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굶주리고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으며 온갖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힘을 다해 도움과 구제를 받고자 간구하고 있습니다.

… 부디 이것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제 책임이자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업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 주님의 계획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주님의 방법으로 베푸십시오”, 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53~54쪽)

고린도후서 8:16~24.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보를 모금하도록 형제들을 보냈다

고린도후서 8장 16~24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연보[자선기금]를 모으도록 고린도 성도들에게 파견된 형제들, 즉, 디도와(16~17절) 다른 두 형제를 언급했다.(18 및 22절) 바울은 이 형제 중 한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신뢰를 표했다.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 고린도후서 8장 22~23절에는 이 신뢰가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더욱 간절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너희를 크게 신뢰하므로, 또한 너희가 너희에 관한 것들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므로 그를 너희에게 보내노라.

고린도후서 9:6~13.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바울은 많이 심는(궁핍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풍성하게 거두게(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둘 것이다.]”(고린도후서 9:6)

고린도후서 9장 9절에서, 바울은 시편 112편 9절을 인용하며 “빈궁한 자들에게” 내어 준 선한 사람을 언급했다.(시편 112:5, 9) 10절에서, 바울은 후하게 내어 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한다고 말했다. 12~13절에서, 바울은 이타적으로 내어 준 고린도인들 덕분에 두 가지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임을 언급했다. 즉, 예루살렘 성도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릴 것이다.

현대에 교회 회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금식 헌금을 내는 것이다. 제일회장단의 매리온 지 롬니(1897~1988) 회장은 금식 헌금을 후하게 낼 때 오는 축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와 왕국 건설을 위하여 기부한다고 해서 재정적으로 더 가난해질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 저는 [멜빈 제이] 밸라드 형제께서 제 머리에 손을 얹고 선교사로 성별하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그 기도를 하시던 중에 사람이 빵 부스러기를 주님께 드리고 그 대신 빵 덩어리로 돌려 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교회 회원들이 금식 헌금을 배로 내신다면 영성 또한 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헌금을 관대하게 내야 합니다.’ (Welfare Agricultural Meeting, 3 Apr. 1971, p. 1.)” (엘 톰 페리, “금식의 법”, 성도의 벗, 1986년 7월호, 35쪽)

금식 헌금 봉투와 헌금 명세서

고린도후서 9:6~7.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바울은 즐겨 내어 주는 사람은 억지로 내는 사람보다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다. 몰몬경의 선지자 몰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악하면서 선을 행할 수 없다 하셨음이니, 만일 그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거나, 기도한다 할지라도 이를 진정한 의도를 가지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이니라. 이는 보라,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김이 되지 아니함이니라.”(모로나이서 7:6~7)

고린도후서 10:3~6.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고 가르쳤다. 사탄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세상의 전투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의미하는 “육신에 속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영적 무기를 사용한다. 바울은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과 생각하는 방식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5~6절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생각은 믿음을 형성하는 재료와 같으며,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믿어야 하므로 옮은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네 모든 생각으로 주를 향하게 하라.’ (앨마서 37:36) ‘쉬지 말고 덕으로 네 생각을 장식하라.’ (교리와 성약 121:45) ‘우리의 생각이 또한 우리를 정죄할 것[이라.]’ (앨마서 12:14)” (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2:438)

바울이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언급한 영적 전쟁의 “무기”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에베소서 6장 11~17절에베소서 6:14~18 주해를 참조한다.

사도 바울의 조각상

사도 바울의 조각상, 덴마크 조각가 바르텔 토발드센 작품. 바울이 자신의 순교를 상징하는 검을 들고 있다. 경전에서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한다.(에베소서 6:17; 요한계시록 1:16; 교리와 성약 6:2 참조)

고린도후서 10:7~18. 바울이 자신의 육체적 약점을 옹호했다

고린도후서 10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스스로를 변론했다. 바울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사람 중 일부는 완전히 사적인 문제를 겨냥했으며, 그것은 신체적 외모 및 언변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고린도후서 10:10 참조) 바울의 신체적 결점에 대한 이런 공격은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인격적 약점을 드러낸다. 경전에는 주님께서 신체적 약점을 자각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성취하신 예가 많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에녹과 모세는 둘 다 신체적 어려움이 있었다.(출애굽기 4:10; 모세서 6:31 참조) 주님께서는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나아와 힘 있고 강한 것들을 부[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19; 또한 고린도전서 1:25~27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마빈 제이 애쉬튼(1915~1994) 장로는 잘못된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잘못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디오 아이콘“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을 신체적인 외모나 외형, 즉 그들의 ‘잘 생긴 얼굴’이나 사회적인 지위, 가문, 학위, 경제력 등을 근거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주께서는 사람을 측정하실 때, 그 사람의 정신 능력을 재어 보기 위해 그의 머리에 줄자를 대어 보거나, 그의 남성다움을 알아보기 위해 가슴을 재어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그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나타내는 마음을 재어 보십니다.”(“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봄”, 성도의 벗, 1989년 1월호, 16쪽)

고린도후서 10:8, 13~17; 11:16~18. 바울이 사용한 자랑이라는 단어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의 직분을 변론하면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고린도후서 10장 8절에 나오는 자랑이란 단어는 “크게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또한 고린도후서 10:13~17; 11:16~18 참조) 바울이 자신의 선교 사업에 대해 말하면서 했던 “자랑”을 교만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보다는 몰몬경에서 암몬이 다음과 같이 표현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아노니, 내 능력으로는 내가 약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아니하겠고, 내 하나님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의 능력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이라. … 누가 주 안에서 지나치게 영광스러워할 수 있느냐? 참으로 누가 그의 크신 권능과 그의 자비와 사람의 자녀들을 향한 그의 오래 참으심을 지나치게 말할 수 있느냐?” (앨마서 26:12, 16)

고린도후서 10:10~13, 18.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그는 사람이 남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 주신 그 [표준에] 따라” 우리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고린도후서 10:10~13)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교회 회원들에게 하나님과 비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평가하도록 권유했다. “여러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여러분이 하나님과 같은지 보십시오. 저는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싶은 마음을 느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72쪽)

전임 본부 청녀 회장단 일원이자 십이사도 정원회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의 부인인 패트리샤 티 홀런드 자매는 우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통찰을 전했다.

“내가 가장 극심한 비참함을 느끼는 순간은 남들이 하는 것, 또는 남들이 나에게 기대한다고 생각되는 것에 나를 맞춰야 한다고 스스로 여길 때이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나다운 것에 만족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내가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때이다.

오랜 세월 나는 이따금 조용하고, 사색적이며, 신중한 나, 패트리샤 홀런드를 원기 왕성하고, 명랑 쾌활하며, 말하기를 좋아하고, 활기찬 사람인 나의 남편 제프리 홀런드 혹은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 비교해서 판단하려 했다. 심신을 지치게 하는 몇 번의 실패를 통해 나는 명랑 쾌활한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명랑 쾌활한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모순이다. 나는 나 자신을 결점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남편만큼 힘이 넘치지도 않고, 그이처럼 말을 많이 하지도, 빨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창조된 목적 안에서 나 자신의 방식과 성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뻐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Jeffrey R. Holland and Patricia T. Holland, On Earth as It Is in Heaven [1989], 69–70)

구내 식당의 청남, 청녀들

바울은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으며 그보다는 주님의 칭찬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린도후서 10:12, 18 참조)

고린도후서 10:12, 18.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기를 칭찬하”므로 “지혜가 없”다고 말했다.(고린도후서 10:12) 바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칭찬해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주님의 인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권했다.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자기 칭찬을 하는 것과 관련된 교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비디오 아이콘“교만은 보통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멋진지 봐라.’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기본적으로 교만은 비교에서 오는 죄입니다. 교만은 항상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더 낫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우리는 심각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로 큰 계명 두 가지를 어기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2:36~40 참조] 교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우리가 실제로 섬기고 사랑하는 대상은 바로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속에 비치는 사람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중죄입니다. …

이 죄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 성취, 재능, 부, 또는 지위에 열중합니다. 그들은 이런 축복을 자신이 ‘선택된’, ‘더 뛰어난’, 또는 ‘더 의로운’ 증거로 삼습니다. 교만은 ‘내가 당신보다 더 잘나서 다행이야.’라는 죄입니다. 그 중심에는 사람들에게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죄입니다.”(“교만과 신권”, 리아호나, 2010년 11월호, 56쪽)

고린도후서 11:1~5, 13~15; 12:11~12. 거짓 사도들에 대한 경고

고린도후서 11~12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서 의로운 성역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들을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뱀”에 비유했다.(고린도후서 11:3) 바울은 사탄이 빛의 천사로 나타날 수 있듯이(니파이후서 9:9; 앨마서 30:53; 교리와 성약 129:8; 모세서 5:13, 28~30 참조), 고린도에 있는 “거짓 사도”들도 “의의 일꾼”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추론했다.(고린도후서 11:13, 15) 이들은 “또 다른”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이 거짓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교리를 가르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또 다른 시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주장이 고린도에서 제기되어 바울이 그것을 논박해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린도전서 15:13~19 참조)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거짓 사도들과 대조적으로, 자신이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진짜 사도라고 간증했다.(고린도후서 11:5; 12:11)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회원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있을 때 행한 일들이 그의 성역을 증명하는 참된 사도의 징표가 아닌지 판단해 보라고 권했다.(또한 마가복음 16:17~18 참조)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우리 시대에 참된 사도와 거짓 사도 간의 몇 가지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참된 사도는 주님의 이름에 대한 특별한 증인으로, 계시를 통해 예수가 주님임을 아는 사람이다. 거짓 사도는 필요 조건인 개인적인 계시를 받지 않은 채, 참된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증인인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참된 사도는 멜기세덱 신권으로 그 직분에 성임을 받고 보통으로 십이사도 평의회의 일원으로 봉사하는 사람, 즉 교회를 다스릴 권능과 권세를 지닌 사람이다. 거짓 사도는 지상에서 교회의 일을 다스릴 권능이 있다고 공언하지만, 실제로는 꼭 필요한 신성한 권세의 엔다우먼트를 받지 않은 사람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2:440)

고린도후서 11:7~9; 12:13~17. 바울이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은 고린도에서 성역을 베푸는 동안 마게도냐의 교회 회원들이 낸 헌금에 다소 의지하기는 했지만(사도행전 18:3 참조), 재정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하기 위해 직접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현세적으로 필요한 것들 때문에 교회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또한 모사이야서 2:11~15 참조)

고린도후서 11:23~33. 바울의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됨을 선언하려는 그의 결심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고린도후서 11장 23~33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로서 성역을 베푸는 가운데 겪었던 많은 고난을 열거했다. 바울의 성역은 30년에 달하며, 그 기간에 그는 대부분 도보로 16,093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울은 놀랄 만큼 많은 고난을 기꺼이 감내했는데, 그중 다수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사도행전 14:19; 16:22~40; 21:31; 27:13~44 참조) 바울이 유대 당국으로부터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은 것은(고린도후서 11:24~28 참조) 바울이 유대인 율법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태의 채찍질이었다.(신명기 25:1~3 참조)

반복해서 매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계속 여러 회당을 다니며 동족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했다.(로마서 1:16; 9:1~5 참조) 그가 당한 모든 시련을 헤아려 볼 때,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사도의 권세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이 아니었더라면, 바울은 그처럼 극심한 고난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이 “거짓 사도”라고 칭한 사람들과 대조적으로(고린도후서 11:13), 그는 정당한 권세가 있었으며(고린도후서 11:5, 22~23 참조), 또한 그의 성역은 그가 진실하고 헌신적인 제자임을 증명해 준다.

고린도후서 12:2~4.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사람은 누구였는가?

바울은 그 시대에 일반적이었던 수사적 기교를 사용하여, 제3자의 입장에서, 한때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한 사람”을 언급했다.(고린도후서 12:2~4) 여기서 셋째 하늘은 해의 왕국을 뜻한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셋째 하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시를 받았다.(교리와 성약 76:50~112; 88:22~31 참조)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는 야곱의 사다리에서 세 가지 주요 가로대, 즉 별의 영광, 달의 영광, 해의 영광 또는 왕국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누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History of the Church, 5:402; 또한 고린도전서 15:39~44 주해 참조) 바울은 고린도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과 “거짓 사도”들은 도저히 필적할 수 없을 이 경험을 전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이 지닌 권세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하늘의 해,

해의 왕국인 셋째 하늘은 경전에서 해로 상징된다.(고린도전서 15:40~41 참조)

고린도후서 12:4.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을 때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듯이(고린도후서 12:2, 4), 우리 역시 영으로 지시를 받은 경우에만 나누어야 하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저는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조심해서 간직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도록 영이 직접 우리에게 그 경험을 사용하라고 권고하실 때에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앨마의 말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은 많은 자에게 허락되어 있느니라. 그럴지라도 그들은 다만 사람의 자녀들이 그에게 기울이는 주의와 부지런함에 따라, 그들에게 내려 주시는 그의 말씀의 분량을 따라서만 나누어야 한다는 엄격한 명령하에 놓여 있느니라.’ (앨마서 12:9)

한번은 매리온 지 롬니 회장님께서 … 다음과 같이 권고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제가 아는 것을 모두 아내에게 이야기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그 까닭은 만일 제가 신성한 것을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면 다음에는 주님께서 저를 믿으려 하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출생을 둘러싼 여러 사건에 대하여 행한 것을 누가가 기록한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2:19 참조)” (“주님의 등불”, 성도의 벗, 1983년 10월호, 31~32쪽)

고린도후서 12:7~9. “육체에 가시”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가시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원래 날카롭게 깎은 말뚝, 의료용 기구, 또는 낚시 바늘과 같이 뾰족한 것을 가리켰다. 바울 시대에 이 단어는 몹시 따가운 가시나 파편을 의미했다. “육체에 가시”라는 말은(고린도후서 12:7) 바울의 고질적인 질환을 암시하는 비유이다. 다수의 경전 해설자들은 바울의 질환을 간질, 심각한 시각 장애(갈라디아서 4:13~15 참조), 말라리아 등으로 추측했다. 이 고통의 긍정적인 결과 중 하나로, 바울은 시련 덕분에 더 쉽게 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린도후서 12:7 참조) 연약함은 결과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겸손을 낳을 수 있다.(야곱서 4:7; 이더서 12:27, 37 참조)

나무의 가지들

이스라엘에 있는 어떤 나무의 가지에는 5센티미터 정도 되는 가시들이 달려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는 바울의 가르침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상에 있는 동안 치유받지 못하는 고통들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 번이나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주시도록 간청했습니다. 주님은 간단하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고린도후서 12:7~9] 대답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분은 사도 바울에게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주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성장을 위한 주님의 방법이라면 그 고통을 극복할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배우길 원하십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구속주께서는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병 고침을 받음”,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7쪽)

고린도후서 12:8. 치유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바울이 주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도록 반복해서 간구한 것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신앙이 치유를 얻는 유일한 요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주께서는 고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을 고칠 수 있었지만 그분의 신권 권세를 가진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그 권세를 행사하는 것은 그 신권을 지닌 주님의 뜻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장로들이 축복해 주었는데도 그들이 ‘죽기로 정해져’(교리와 성약 42:48) 있기 때문에 치유되지 못한 사례들을 듣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괴롭혔던 ‘육체[의] 가시’를(고린도후서 12:7) 고쳐 달라고 간구했지만, 주님은 고쳐 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무거운 짐 진 자들을 고치심”,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7쪽)

고린도후서 12:8~10. 약한 데서 기쁨을 얻음

바울은 육체의 가시, 즉 자신의 육체적 연약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약한 것들[을] … 기뻐”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가 고통 때문에 주님께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12:8~10)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장기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지내면서 받은 축복 몇 가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디오 아이콘“지난 2년 동안, 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명상을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삶의 교훈을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지속적이고 격렬한 고통은 우리를 성결하게 하는 놀라운 정화제로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에 더 가까워지도록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한다면, 그분의 영의 인도를 받을 것이며 우리는 매일 노력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행할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우기 원하시옵니까?’와 같은 직접적인 질문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중대한 이 시기 동안 경전을 공부하면서 휘장은 얇아졌고, 저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생애에 기록된 것과 같은 응답이 저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내 아들아, 네 영혼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네 역경과 네 고난은 잠시 뿐이리니,

그러고 나서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내면, 하나님이 너를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요.’(교리와 성약 121:7~8)

저는 영을 통해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평안과 위로를 받았으며, 절망이 드리운 어두운 순간은 복음이 발하는 빛으로 금세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따금씩 저는 제가 배워야 할 교훈을 확실히 배웠으며 더 이상의 고통은 저에게 필요치 않을 것 같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한 간구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결하게 하는 이러한 시험의 과정을 주님의 시간에 따라 주님의 방법대로 견뎌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마태복음 26:42) 가르치는 것과, 그에 따라 사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저는 또한 이러한 역경과 시련을 저 혼자 감당하도록 버려진 것이 아니고, 수호 천사들이 저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은 제가 영적으로 더 강해지도록 해 주었으며 제 마음속의 깊은 느낌을 더욱 담대하게 세상에 간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침례 성약: 왕국 안에 있으며 왕국에 속해 있음”,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6쪽)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사도의 일을 하므로 그들은 사도의 권세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사도의 표는 “병자를 치유하고, 악마를 내쫓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업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고난을 겪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 가족에 아들로서 입양되어, 그분의 친아들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된다. 그것은 왕국의 모든 장로들과, 성신을 끊임없이 동반할 권리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머물러 있어야 하는 바로 그 신성한 엔다우먼트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2:450)

고대 고린도의 유적

고대 고린도의 유적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님은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마태복음 22:42)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인들에게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라는(고린도후서 13:5) 과제를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에 대해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충성심은 어디를 향합니까?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이 인상 깊게 표현하신 기독교인들처럼 시온으로 거주지를 옮기고서도 바벨론에 별장을 계속 두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A Wonderful Flood of Light (1990), 47 참조]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교회와 복음에 속하는 백성이므로 바벨론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그곳 시민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이 세상의 것들을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 그의 의를 세우기를 구[해야]’ 합니다.(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6:38)”(“예수님의 가르침”, 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93쪽)

고린도후서 13:11.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의 조셉 스미스 역, 고린도후서 13장 12절에는 “입맞춤”이라는 단어가 “인사말”로 수정되어 있다.[영문의 11~12절 내용이 한국어판 성경에는 11절에 모두 번역되어 있음—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