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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2장
사도행전 1~2장 소개 및 연대
부활하신 구주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을 방문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사도행전 1:3) 사도행전에는 40일 동안 있었던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시기 동안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의 부재 시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40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으며, 그런 후 하늘로 “올려져 가[셨다.]”(사도행전 1:8~9)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이 사도들의 성역으로 수천 명의 삶이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성신의 영향력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베드로는 주님의 인도를 구한 후에 새로운 사도를 선택하는 일을 감리했다. 오순절에는 사도들 위에 영이 풍성하게 부어졌다. 그날 약 3천 명이 성신으로 “마음에 찔[림]”을 받았으며(사도행전 2:37), 그들은 베드로가 가르친 대로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다. 신생 교회는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사도행전 1~2장 주해
사도행전 1~2장. 주님께서 성신의 영향력을 통해 교회를 인도하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신의 영향력을 통해 지상의, 곧 권한을 지닌 성역자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사도행전에서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도행전의 더 완전한 제목은 ‘주님이 성임하신 사도들의 삶과 성역에서 성신을 통하여 일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행적’이 적절할 것입니다. … 누가가 제일 첫 부분에서 했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사도행전 1:1~2; 기울임체 추가)
교회를 이끄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구주께서 계신 곳은 바뀌어 왔지만, 교회를 이끄는 방식과 지도력은 정확히 똑같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는 일련의 영적 사건들에서 증명하려는 듯이, 그 점을 분명히 했으므로, 우리는 이 책 어디서나 성신을 통해 주님의 권능이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 사도행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이사도에게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은 그들이 ‘몇 날이 못되어 성령[성신]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라는 것과(사도행전 1:5), ‘오직 성령[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8절; 기울임체 추가)
[예수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베드로는 교회의 나머지 회원들을 모았습니다. 모두 합해서 백이십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고난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반대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이 되십니까? 백이십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6절; 기울임체 추가) 그들은 십이사도에 생긴 유다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오늘날 십이사도 정원회와 제일회장단이 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기도했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었는지] … 보이시옵소서.’(24절; 기울임체 추가) … 그리고 맛디아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돌아섬으로써 계속해서 교회를 이끌어갈 신성한 인도를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는 첫 장의 내용은 2장에서 이어질 일들에 대한 서막에 불과합니다.”(“Therefore, What?” [Church Educational System conference on the New Testament, Aug. 8, 2000], 6; si.lds.org)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을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여기서 “고난”이라는 말은 구주께서 속죄를 이루는 사건들을 겪으시며 받은 극심한 고통을 말하는데, 특히 겟세마네와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고난을 나타낸다. “확실한 많은 증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무언가를 확실히 알리는 표징이나 증거를 말한다. 부활하신 구주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셨을 때(사도행전 1:3), 그분을 보고 그분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확실한 많은 증거”를 목격했다. 그 증거에는 부활하신 그분의 손과 옆구리와 발에 난 상처도 포함되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살펴보는 두 사도, 제프 워드
구주께서 예루살렘에서 40일 동안 성역을 베푸시며 하셨을 법한 일에 대한 한 가지 모형은 제3니파이에서 볼 수 있다.(제3니파이 11~26장 참조) 그분은 부활하신 후 니파이인들을 방문하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하셨듯이) 속죄의 표징들을 보여 주셨고, 그리스도 교리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으며, 의식의 필요성과 그 의식들이 어떻게 집행되어야 하는지를 전하셨고, 자신이 선택한 열두 제자의 권세를 대략적으로 설명하셨으며, 영원에 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가르치시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축복하셨다.
사도행전 1:4; 2:33.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구주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40일간의 성역이 끝나갈 즈음에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명하셨다.(사도행전 1:4; 이와 같은 구주의 명령은 누가복음 24장 49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주어진 성신의 은사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누가복음 24:49]
그러한 능력이 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날, 십이사도는 어느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사도행전 2:2~4]
성신을 통해 십이사도들은 권능을 충만하게 부여받았습니다.”(“불의 갈라진 혀”, 성도의 벗, 2000년 7월호, 7~8쪽) 또한, 요한복음 14장 16~17, 26절을 참조한다. 구주께서는 사도들에게 자신이 떠난 후에 그들이 성신을 받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사도행전 1:6~8. 성신을 받고 구주의 증인이 됨
사도들은 부활하신 구주와 함께 보낸 40일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하실 때, 사도들은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고대해 온 메시야의 왕국, 즉 구약의 다윗 왕국 같은 왕국을 곧 재건하실지를 여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오는 위대한 사명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이 성신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 말은 그들이 권능을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 권능에는 가르치고, 치유하고, 예언하고, 영들을 분별하고, 방언을 말하는 은사 등 영의 은사가 포함될 것이었다.(고린도전서 12:1~10; 모로나이서 10:9~17; 교리와 성약 46:13~26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팔리 피 프랫(1807~1857) 장로는 성신의 은사가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권능을 주는 또 다른 방법을 이렇게 서술했다.
“성신의 은사는 … 모든 지적 능력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모든 자연스러운 감정과 애정을 증대하고 확대하고 확장하고 정결하게 하며, 지혜의 은사로써 그것들을 조절하여 합당하게 쓰게 한다. 성신의 은사는 연민, 기쁨, 관심사, 타인을 향한 감정, 애정 등 타고난 온갖 훌륭한 덕성에 영감을 선사하고, 그것들을 계발하고 함양하며 성숙하게 한다. 성신의 은사는 유덕하고 친절하고 선량하고 부드러우며 온화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불어 넣어 준다.”(Key to the Science of Theology [1978], 61)
그런 다음, 구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자신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기록된 그분의 말씀은 사도행전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 윤곽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 1~7장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을 묘사한다. 사도행전 8~9장은 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행한 몇 가지 일을 들려준다. 사도행전 10~28장은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땅 끝까지” 전했는지를 말해 준다. 이 후반부 장들은 주로 사도 바울에 관련된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다른 제자들의 선교 사업에 관하여 구전되는 이야기들도 이 외의 다른 기록들에 보존되어 있다. 베드로전서 5장 13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이 성구에서는 바벨론으로 언급됨)에서 성역을 베풀었다. 다른 기록들에 실린 구전에 따르면, 요한은 에베소에서 성역을 베풀었고, 안드레는 현대의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러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빌립은 시리아와 터키, 그리스에서, 바돌로매는 인도에서, 열심당원 시몬은 영국과 페르시아에서, 도마는 인도에서, 마가는 로마와 이집트에서 성역을 베풀었다.
사도행전 1:9~11. “예수는 … 그대로 오시리라”
구주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시간이 끝나자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제자들은 그 경이로운 사건을 목격했다. 증인의 율법에 따라(신명기 17:6; 고린도후서 13:1 참조), 두 명의 천사들이 나타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지상에 돌아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발표는 온 인류가 구주의 재림과 관련하여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 준다.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그 약속이 실현된 한 가지 방식은 바로 조셉 스미스의 첫번째 시현을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이신, 우리 모두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다시 지상에 그분의 교회를 회복하실 것이며 다시 ‘[유대의 성도들이] 하늘로 [올려져]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사도행전 1:11]라고 한 옛날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서 소년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 땅에 다시 선지자들이”,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106쪽)
승천, 해리 앤더슨
이 예언은 또한 재림 때 다시 한번 성취될 것인데, 이는 구주께서 내려오셔서 그분이 승천하셨던 감람산 위에 실제로 서심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스가랴 14:4; 교리와 성약 45:47~53 참조)
사도행전 1:12. 안식일에는 얼마나 멀리 여행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구전에 따르면,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걷도록 허가된 거리만큼만 여행할 수 있었다. 후에 랍비들이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그 거리는 2,000규빗, 즉 대략 1,100미터라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다락방”이(사도행전 1:13) 있었던 자리로 전해 내려오는 장소의 내부 모습. 이곳은 구주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교회의 초기 회원들이 기도하기 위해 만났던 곳이며, 이곳에서 오순절 날에 영이 풍성하게 부어졌다. 이 방은 주후 1335년에 지어진 것이나, 로마 시대에 세워진 이전 건축물들이 있던 위치에 건립한 것이다.
사진 촬영: 켈리 옥든
사도행전 1:1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살던 초기 성도들이 하나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현대의 경전에서는 하나가 되는 것을 주님의 제자들이 지녀야 하는 자질로 여긴다.(교리와 성약 38:27 참조) 제일회장단의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은 기도로 하나가 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단합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여호와이신 주님은 그분의 백성이 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돌아오실 것이며, 그 백성이 그분과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고 한마음으로 단합된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
… 저는 어느 가정에 손님으로 초대되었던 적이 있는데, 취침 시간이 되자 그 가족은 제게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고 권유했습니다. 가장 어린 아이가 기도를 부탁받았습니다. 그 아이는 가족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불러 가며 마치 축복사처럼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다른 자녀들과 부모의 표정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떴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 어린아이의 기도에 자신들의 신앙과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몇 상호부조회 자매님들이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한 젊은 미망인을 처음으로 방문할 준비를 하면서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장례식 때 올 가족과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를 돕기 위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대신하여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알아야 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왔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자, 각 자매님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가 너무 빨리 끝난 나머지 일부 자매님들은 할 일이 더 없는 것을 서운해했습니다. 가장 적절한 위로의 말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로 굳게 결합하여 주님의 봉사를 했습니다.”(“우리 마음을 하나로 결합하여”, 리아호나, 2008년 11월호, 68~69쪽)
사도행전 1:14.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들”
사도행전 1장 14절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들”은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부형제들이다.(마태복음 13:55; 마가복음 6:3 참조) 예수님의 아우들이 그분의 신성을 항상 믿었던 것은 아니었지만(요한복음 7:5 참조), 이 시점에 그들은 믿는 자 가운데 속해 있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후에 예루살렘에서 교회의 지도자와(사도행전 12:17; 15:13 참조) 사도가 되었다.(갈라디아서 1:19 참조) 그의 동생인 “유다”는(마가복음 6:3) 유다서의 저자일 것이다.
사도행전 1:18~19. “피밭”
사도행전 1장 18~19절은 마태복음 27장 3~10절에 나온 기사를 다룬다. 가룟 유다(“이 사람”)가 자살한 후, 대제사장은 유다가 성전에 던져버린 은 30개(“불의의 삯”)를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을 샀는데, 그곳은 이후로 나그네의 묘지가 되었다.
사도행전 1:21~26. 우리 시대에 사도들은 어떻게 부름을 받는가?
지상에 남은 사도들은 십이사도 정원회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택할 때 예수님의 침례에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성역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증인이 될 사람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했다.(사도행전 1:22 참조) 목격자의 증언이 지닌 중요성은 초기 교회와 사도행전 초반부에서 주요 주제로 다뤄진다.(사도행전 2:32; 3:15; 4:20; 5:32 참조)
고대에 제비뽑기는 의견을 결정하는 수단이었다.(사도행전 1:26 참조)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여 그 결과를 이끄신다고 믿었다.(잠언 16:33 참조) 이 경우에 정확하게 어떤 방법으로 제비를 뽑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대에 사용한 방식 중에는 각 투표자가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적어 내면 거기에 적힌 이름을 읽거나 계수하는 방법이 있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누구를 택하셨는지 알고자 했다.(사도행전 1:24 참조) 현대의 교회에서도 유사한 과정을 따른다.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가 사도로 부름을 받고 지지된 후에,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오늘날 사도를 부르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님의 계획에 따라, 역원을 선출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이 지배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를 택하시겠는가?’ 그들은 조용하고 사려 깊게 숙고합니다. 그리고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성신으로부터 확인받기 위해 수많은 기도를 드립니다.
… [십이사도 정원회의] 공석을 채우는 과정에서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 모두가 자유롭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모든 경우에 대해 거룩하고 열렬한 기도를 드렸다고 확신합니다. 다시 거룩하고 진지한 기도를 드린 후에 제일회장단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십이사도 평의회에서 그 결정을 지지하였습니다. 오늘 대회에 참석한 교회 회원들도 그 결정을 지지하였습니다.
… 저는 헤일즈 형제님을 이 고귀하고 신성한 직분에 부르라는 영감이 성신과 예언과 계시의 영으로부터 왔음을 여러분에게 간증합니다. 헤일즈 형제님은 자신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영이 그분을 추천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53~54쪽)
사도행전 2:1. 오순절
“모세 율법의 일부로서, 오순절 또는 초실절은 유월절 이후 오십일 만에 열렸다.(레위기 23:16) 오순절은 수확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으며 구약전서에서 그것은 맥추절 또는 칠칠절로 불리웠다.”(경전 안내서, “오순절”, scriptures.lds.org) 그러므로 첫 수확을 기념하는 이날, 약 “삼천 [명]”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사도행전 2:41) 오순절은 성지 순례 축제로, 성약을 맺은 모든 남성은 예루살렘에서 주님 앞으로 와야 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여러 나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며, 도시는 북적거렸다.(사도행전 2:9~10 참조)
사도행전 2:2~4. 성신이 충만하게 임함
오순절에 십이사도들은 한 장소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영이 그들에게 풍성하게 임하였다. 성신으로 충만해진 사도들은 예언을 하고 방언으로 말하였다. 오순절에 영이 충만하게 임한 일에 대해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순절이라는 말은 특별한 영적인 나타내심과, 성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 부어진다는 말의 동의어로서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습니다. 계시가 하늘로부터 왔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 온 집에 가득[했고]’(사도행전 2:2) 사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Therefore, What?” 6; si.lds.org)
대규모로 운집한 사람들 위로 성신이 임하신 이 놀라운 오순절의 사건과 비슷한 일이 후기 성도 역사에도 있었다. 커틀랜드 성전 헌납식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다음과 같이 높은 곳으로부터 영이 특별히 강림하시기를 기도드렸다. “오순절 날에 저들 위에 이루어진 것같이 그 일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그는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간청했다. “방언의 은사 곧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과 또 이를 통역하는 은사를 당신의 백성 위에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하심같이 당신의 영광으로 당신의 집이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교리와 성약 109:36~37) 이 간구는 첫 번째 헌납식 때 단 한 번만이 아니라 그 후로 며칠 동안 여러 번 성취되었다. 조셉 스미스는 그중 한 차례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휘몰아치는 강풍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커틀랜드] 성전을 가득 채웠고, 모든 회중이 보이지 않는 힘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방언과 예언을 시작하는가 하면 영광스러운 시현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성전이 천사들로 가득 찬 장면을 보았고, 그 사실을 회중에게 전했다.”(History of the Church, 2:428)
사도행전 2:3.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
극적인 영적 나타내심은 보통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가 어렵고(제3니파이 17:15~17; 19:31~34; 조셉 스미스—역사 1:32 참조) 오직 영의 권능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고린도전서 2:9~14 참조)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란 글자 그대로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혀, 즉 불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을 나타낸다. 성신이 제자들 위에 부어졌을 때, 여기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란 말은(사도행전 2:3) 영이 임재했음을 나타낸다.
침례 요한은 성신을 받는 것을 “불로” 침례를 받는 것에 비유하였다.(마태복음 3:11; 누가복음 3:16) 고대 이스라엘에서 불은 보통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했다.(출애굽기 3:2~5; 13:21; 24:17; 힐라맨서 5:22~24, 43~45; 제3니파이 19:13~14 참조) 한 예로, 주님의 “불”은 고대 이스라엘의 성막 위에 머물러 있었다.(출애굽기 40:38 참조) 오순절의 신성한 불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라는 비유는, 제자들이 방언의 은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권능을 포함하여 구주께서 약속하신 성신의 은사를 받았음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신성한 불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타오르는 빛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타오르는 하나님의 빛”으로 묘사될 수 있다.(Joseph Smith, History of the Church, 6:317) 오순절 날, 하늘의 환경이 지상으로 옮겨졌다.
사도행전 2:5~11.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 말하는 것을 듣고”
사도행전 2장 5~11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 각각의 장소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이 지도에서는 또한 예루살렘을 방문한 뒤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된 경로를 보여 준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였던 군중은 디아스포라(이스라엘의 자손이 팔레스타인 이외의 나라로 흩어짐)에 속했던 다양한 유대인 무리로,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언어를 구사했다. 하지만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언어로 사도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오순절 날, 초기 사도들이 다양한 언어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방언의 은사가 베풀어졌다. 이 은사는 참된 교회의 표시 중 하나이다.(신앙개조 제7조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 은사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에서 성신의 권능에 의한 방언의 은사는 오순절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년], 383쪽) 방언의 은사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고린도전서 14:2~22 주해를 참조한다.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방언의 은사는 교회에서 그 어떤 영적 은사보다도 더 풍성하게 나타나는 은사일 것이다. 외국어로 복음을 가르치러 나가는 모든 선교사는 신앙심이 깊고 충실할 때, 이 은사를 받는다.”Answers to Gospel Questions, 5 vols. [1957–66], 2:29)
사도행전 2:14~36. 베드로가 경전을 자세히 설명하다
영이 풍성하게 임한 후에, 베드로는 일어서서 그곳에 모인 군중을 가르쳤다. 성신으로 충만해진 그는 경전에 담긴 말씀의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하며 통찰을 더했다. 베드로는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와 그 외에 여러 영적 나타내심을 경험한 것은 요엘 2장 28~32절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였다고 가르쳤다.(사도행전 2:14~21 참조) (요엘 2장에 나오는 예언이 이 사건에서만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현대 선지자들은 복음의 회복과 관련된 사건들도 이 예언의 또 다른 성취였다고 가르쳤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께서는 그들이 직접 보았듯이 기적을 행하셨고, 그분이 바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인자이시며, 그분은 부활하시어 “사망의 고통”을 이기셨다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전했다.(사도행전 2:22~24 참조)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칠 때 시편 16편 8~11절(사도행전 2:25~28 참조) 및 시편 110편 1절(사도행전 2:34~35 참조)을 인용하면서, 그 성구에서 다윗 왕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했다고 설명했다.
후기 성도 역사에도 성신이 선지자의 영적 이해력을 높여 주는 유사한 예가 나온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자신과 올리버 카우드리가 침례와 성신의 은사를 받은 후에 일어난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성신으로 충만하였으며, 우리 구원의 하나나님으로 말마암아 기뻐하였다. 이제 우리의 생각이 깨우침을 받아, 우리는 경전을 분명히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전에는 결코 얻을 수 없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경전의 더욱 신비로운 구절들의 참뜻과 의도가 우리에게 밝혀지기 시작하였다.”(조셉 스미스—역사 1:73~74) 구약전서에 나오는 성구들에 대한 베드로의 가르침을 더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가복음 24:27, 32 주해를 참조한다.
사도행전 2:27.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사도행전 2장 27절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말라고 간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성구에서 음부[hell]라는 단어의 어원은 hadēs이다.(이는 sheol이라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말로, 시편 16편 10절에는 “스올[hell]”로 번역되어 있음)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사용된 대로, 이 단어는 “세상을 떠난 영들의 거주지”를 의미한다.(Bible Dictionary, “Hell”) 경전의 다른 부분에서, 음부[지옥]라는 말은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사용된다. 첫째는 현세에서 불순종했던 자들을 위하여 영의 세계에 있는 임시 거처이다. 이러한 뜻에서, 지옥에는 끝이 있다. 그곳에서 영들에게 복음이 가르쳐질 것이며 언젠가 그들이 회개한 후에는 그들에게 합당한 영광의 등급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의 영원한 장소이다. 이러한 뜻에서, 지옥은 영원하다. 이곳은 ‘여전히 더러운’(교리와 성약 88:35, 102) 채로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한 곳이다. 이곳은 사탄, 그의 사자들, 그리고 멸망의 자식들, 곧 아버지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이후에 그 아들을 부인한 자들이 영원하게 거할 곳이다.(교리와 성약 76:43~46)”(경전 안내서, “지옥”; scriptures.lds.org)
다윗 왕이 받게 될 영원한 유산에 관하여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즉, 그는 멸망의 아들이 되지 않을 것이며, 악마와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영원히 쫓겨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망과 지옥이 죽은 자들을 내놓을 때 그는 무덤에서 나아와 자신에게 합당한 유산을 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을 참조한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 2:39)
사도행전 2:37. “그들이 … 마음에 찔려”
오순절, 시드니 이 킹
베드로의 말을 들은 군중이 “마음에 찔[려 했다]”는 말은(사도행전 2:37) 베드로의 말에 죄책감을 느끼고 비탄과 회한에 빠졌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고서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괴로워하며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쳤다. 사도들을 자신의 “형제들”이라 칭함은 그들이 이미 설득되어 회개하고 구주를 믿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음을 시사한다.
사도행전 2:38. “회개하여 … 침례를 받[으라]”
군중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질문한 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 사함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신의 은사를 받으라고 가르쳤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베드로가 가르친 원리들을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와 의식”이라고 칭했다.(신앙개조 제4조; 또한 제3니파이 11:31~36; 27:13~21 참조)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침례와 성신의 은사를 받고, 신앙으로 끝까지 견디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가져다주는 충만한 축복을 받는 데 필수적이다.
사도행전 2:39. “이 약속은 너희[에게] … 하신 것”
베드로는 죄 사함과 성신의 은사라는 약속이 사도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 축복은 회개하고, 침례받고,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성신의 은사의 이용 가능성에 대하여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어떤 언어권에서든지, 하나님의 영, 즉 성신은 교회의 모든 회원을 인도하며 또 인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와서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 이 신성한 은사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고 있습니다. …
…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37]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도되고 교정되며 보호될 것입니다. 우리는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 저는 신성한 영적 권능인 성신의 은사가 그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불의 갈라진 혀”, 성도의 벗, 2000년 7월호, 10쪽)
사도행전 2:40~41.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고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 주변의 부정직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훈계는 우리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다.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약 삼천 명의 사람들은 개종하여 침례 의식을 받았다.
사도행전 2:42. 초기 성도들이 “오로지 … 힘쓰니라”
누가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기를] … 오로지” 힘썼다고 가르쳤다.(사도행전 2:42) 이렇게 함으로써 초기 성도들은 교회에서 충실하게 남을 수 있었다. 구주께서는 이와 똑같은 원리를 니파이인과 우리 모두에게 가르치셨다. “너희 중에서 내가 택하여 너희에게 성역을 베풀게 하고 너희의 종이 되게 한 이 열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진대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제3니파이 12:1)
신약 시대의 성찬, 라일 베즈. 교회 회원들이 교회에서 계속 충실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성도들과 정기적으로 모이고 성찬을 취하는 것이다.(사도행전 2:42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엠 러셀 밸라드 장로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참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살아 있는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귀 기울이고 또 우리의 권고를 경청한다면, 여러분은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너희는 저의 말을 받아들이라”, 리아호나, 2001년 7월호, 81쪽)
예루살렘 성도들은 “떡을 떼며” “기도”하기 위해 함께 만났는데(사도행전 2:42), 이는 주님의 만찬인 성찬이 포함된 식사를 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성도들과 정기적으로 모이고 성찬을 취함으로써 교회에 충실히 남게 된다.
사도행전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행전 2장 43절에 나오는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경건함” 또는 “경외심”를 의미한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는 문구는 모든 성도가 경건함과 경외심으로 충만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2:44~45; 4:3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사도행전 2장 44~45절과 4장 32절에 기록되었듯이, 예루살렘의 초기 성도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그들 중에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현 시대에도 단합하고, 청결한 마음을 구하며,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우리 중에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마땅히 행해야 할 세 가지 기본적인 일”을 이렇게 제안했다.
“첫째, 우리는 영혼을 함정에 빠뜨리고 마음을 위축시키며, 정신을 어둡게 하는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 가정에서, 우리의 사업과 직업에 관한 일에서, 또한 교회의 일에서 이기심을 없애는 것은 곧 우리의 의무입니다. …
둘째, 우리는 다른 사람과 완전하게 협동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일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만장일치의 원리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단합된 유대 안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 주님의 영이 우리의 노력을 영화롭게 하도록 단합과 협동의 정신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
셋째, 우리는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제단에 올리며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을 바칩니다. 우리는 지명받은 임무와 부름을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수행함으로써 이를 따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배워 완전히 수행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지도자의 요청에 따라, 또한 영의 속삭임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헌납합니다.”(“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 성도의 벗, 1978년 10월호, 126~127쪽)
사도행전 2:46.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성전이 지닌 중요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세 율법을 성취하셨으나, 이 율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계속 실행되고 있었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계속 예루살렘 성전을 중요한 경배의 장소로 여겼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구들을 보면,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기도하고 경배하고 가르치며, 성역을 베풀고,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주 성전에 갔음을 알 수 있다.(사도행전 3:1; 5:12, 20, 42; 21:23~31; 22:17~18 참조) 사도들도 자주 성전에서 설교를 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 또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성전에서 경배를 드리고 설교를 했다. 주후 58년경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그를 체포한 사람들이 그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고 그의 뒤에서 육중한 성전 문을 닫아 버린 일이 있었다.(사도행전 21:30 참조) 정확히 12년이 지난 주후 70년에, 유대인들은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결과로 성전은 로마 군인들에게 파괴되고 말았다.
사도행전 2:46. 집에서 드리는 예배
1세기의 예루살렘 모형에 나오는 주택
사진 촬영: 제임스 제프리
유대인 대중은 오랫동안 성전과 회당에 모여 경배를 드려왔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교회 회원의 집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사도행전 2:46; 5:42; 12:12; 로마서 16:3~5; 고린도전서 16:19; 골로새서 4:15; 빌레몬서 1:1~2 참조) 이런 모임 장소를 “가정-교회(house-churches)”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한에는 이 초기 성도들이 경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자주 함께 식사를 하고(사도행전 2:42, 46 참조), 성찬을 취했으며(고린도전서 11:26~34 참조), 기도를 드리고(사도행전 2:42 참조), 서로 복음을 전하고(사도행전 20:7 참조), 찬송을 불렀다고(에베소서 5:19 참조)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