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교리와 성약 42편
소개 및 연대
주님은 뉴욕주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오하이오주로 이주하라고 명하셨으며, 그곳에서 주님의 율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37:3; 38:32 참조) 조셉 스미스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도착한 직후였던 1831년 2월 9일에, 교회의 열두 장로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함께 모여 기도했다.(교리와 성약 41:2~3 참조) 이렇게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주님의 인도를 구하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42편 1~72절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2주 후인 1831년 2월 23일, 선지자는 주님께 추가적인 인도를 간구했고 그 결과로 교리와 성약 42편 74~93절에 기록된 지시를 받았다. 73절에 기록된 추가적인 세부 사항은 교리와 성약이 출판될 당시 선지자가 덧붙인 것이다. 이 두 계시는 함께 “교회의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교리와 성약 42편, 머리말) 이 계시에서 주님은 교회 회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교회의 여러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오하이오주로 오는 성도들을 돕는 데 지침이 될 영적인 율법과 현세적인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들은 또한 초창기 교회에 지침이 되었고, 성도들이 시온 백성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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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1월 2일뉴욕주의 성도들이 오하이오주로 모이면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교리와 성약 38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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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2월 초조셉과 에머 스미스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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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2월 4일에드워드 파트리지가 회복된 교회의 첫 번째 감독으로 부름받았다.(교리와 성약 41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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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2월 9일과 23일교리와 성약 42편을 받았다.
교리와 성약 42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1년 2월 초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선지자의 인도를 받지 못했던 그곳의 성도들이 교회의 교리와 정책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영적인 나타내심, 성도들의 공동체로 함께 사는 방법, 교회의 지도력, 그리고 성도의 집합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관해 많은 의문과 오해를 품고 있었다.
새로 침례받은 커틀랜드 교회 회원 일부는 회복된 복음을 배우기 전에 “가족”이라고 알려진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이 공동체는 신약전서에 묘사된 초기 성도들의 관행을 근거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있었다.(사도행전 2:44~45; 4:32 참조) 이 새 개종자들 중 많은 수가 회복된 교회의 회원이 된 후에도 기존의 공동체 생활 관행을 이어 갔다. 그런 집단 중의 하나가 커틀랜드 마을 외곽에 위치한 아이잭 몰리 농장에 살고 있었다. “존 휘트머는 [1831년] 1월 중순에 [뉴욕주에서] 도착하여, 그들이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 예로서, 히만 바세트가 리바이 행콕의 회중 시계를 가져다 팔았는데 그 이유를 묻자 히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그 시계가 가족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바이는 그와 같은 ‘가족 행위’는 맘에 들지 않으며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응수했다.[Levi W. Hancock, ‘Levi Hancock Journal,’ Church History Library, Salt Lake City, 81]” (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학생 교재, 제2판 [교회 교육 기구 교재, 2003년], 95쪽)
커틀랜드에 도착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경제 구조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뉴욕주에서 온 많은 교회 회원들이 그들의 집을 떠나 오하이오의 성도들과 합류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는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돕고 오하이오로 모이는 이주자들을 지원하려면 돈과 물건과 땅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조셉은 동쪽에서 오는 성도들의 유입에 대처하고 미주리에 있는 “레이맨인들의 변경”에 시온을 건설할 계획을 시작했다.(교리와 성약 28:9)
교리와 성약 41편 2~3절에 기록된 주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열두 명의 장로는 1831년 2월 9일에 함께 모여 기도하며 주님께 그의 율법을 주시기를 간구했다. 이 형제들은 주님께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사안에 관해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1) 성도들의 다양한 공동체가 한 장소에 모여야 할지, 아니면 당분간은 지금처럼 떨어져 있어야 할지, (2) 교회를 다스리고 규제하는 주님의 율법이 무엇인지, (3) 선교사로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의 가족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4) 헌납의 법에 따라 생활하는 성도들이 비회원들과 어떻게 거래해야 할지, 그리고 (5) 동쪽에서 도착하는 성도들을 돌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관해 여쭈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1: July 1828–June 1831, ed. Michael Hubbard MacKay and others [2013], 246–47, note 42)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선지자는 교리와 성약 42편 1~72절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는데, 주님께서는 이 형제들에게 처음 세 가지 사안에 관해 종합적인 답을 계시하셨다. 나머지 질문에 대한 답은 교리와 성약에 포함되어 출간되지 않았다.
2주 후인 1831년 2월 23일에, 조셉 스미스와 일곱 장로는 주님께 나아가 교회의 율법을 실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추가적인 질문을 했으며, 주님은 이들에게 지시를 덧붙여 주셨다. 이 지시는 2월 9일에 받은 계시와 합쳐졌고 현재 교리와 성약 42편 74~93절에 기록되어 있다. 교리와 성약 42편 73절에 기록된 추가 계시는 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리와 성약의 출판을 준비할 때 덧붙인 것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때로 이미 기록된 계시를 수정하거나 추가로 덧붙일 때는 주님께서 드러내신 내용을 명확히 하거나 추가적인 이해를 불러오기 위함이었다는 점을 주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영감 어린 수정은 지속되는 계시의 본질을 보여 주며, 주님과 그의 선지자가 가진, 기존의 계시를 수정하거나 명확히 할 수 있는 권리와 권세를 보여 주는 예이다.
교리와 성약 42:1~29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장로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관해 지시하시고, 성도들을 위한 율법과 계명을 계시하심
교리와 성약 42:1~3. “율법을 듣고 또 들으며 순종하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42편에 기록된 계시를 “교회의 율법”이라고 불렀다.(교리와 성약 42편, 머리말) 이 계시는 이전에 주님께서 하신 약속, 즉 조셉 스미스와 뉴욕주에 사는 성도들이 오하이오로 이주하라는 계명에 순종한다면 그들에게 그분의 율법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성취한 것이었다. 이 율법에는 이를 받기 위해 함께 모였던 선지자와 열두 장로들의 간청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다양한 주제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주님은 그가 계시하시는 진리들이 “[그분의] 교회를 다스리는 [그분의] 율법”이 된다고 선언하시고(교리와 성약 42:59), 성도들에게 “[이] 율법을 듣고 또 들으며 순종하라”고 명하셨다.(교리와 성약 42:2)
제일회장단의 조지 큐 캐넌(1827~1901) 회장은 교리와 성약 42편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다. “전반적으로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계시였다. 이것은 참으로 다양한 주제에 관해 밝은 빛을 비추어 주었고 수많은 중요한 의문을 종결지었다. 충실한 남자와 여자들은 주님께서 직접 그의 것이라고 인정하신 교회, 그리고 그분이 이번에도 그러하셨듯이 그분의 영감받은 선지자를 통해 친히 말씀하시는 교회의 회원임을 심히 기뻐하였다.”(Life of Joseph Smith the Prophet [1958], 109)
교리와 성약 42:4~9. 주님께서 성도들의 집합에 관한 지시를 주심
뉴욕주의 성도들이 오하이오로 이주해야 한다는 명을 받은 후, 교회 지도자들은 오하이오주 북동부에서 늘어나고 있는 성도들 또한 커틀랜드로 이주해야 하는지 알고자 했다. 주님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 “하나로 모[일]” 때가 올 것이나 아직은 그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42:9) 그러나 그때가 이르면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에 모임으로써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약속,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주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약속을 성취하게 될 것이었다.(교리와 성약 42:9; 또한 출애굽기 6:7; 19:5~6; 요한계시록 21:2~3 참조)
이 집합을 돕기 위하여 장로들이 커틀랜드에서 나아가 “둘씩 짝이 되어 … 복음을 전파하며”(교리와 성약 42:6), 믿는 자들을 찾게 되는 대로 모든 지역에 교회를 세워야 했다.(교리와 성약 42:8 참조)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은 “영의 권능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하나님의 천사들처럼 [그의] 말을 선포”해야 했다.(교리와 성약 42:6) 선교사들과 천사들은 서로 비슷한 일을 수행한다. 선지자 몰몬은 천사의 성역이 “사람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며 … 그리스도의 말씀을 … 선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모로나이서 7:31~32)
교리와 성약 42:11. “그가 권세를 가지고 있음 … 이 교회에 알려져”
올리버 카우드리, 팔리 피 프랫과 다른 선교사들이 오하이오를 떠난 후 커틀랜드의 새로운 개종자들은 강한 신앙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 없이 남겨졌다. 이 새로운 회원들 중 일부는 다른 종파나 문화에서 파생된 전통을 따랐으며 극단적이고 어리석은 종교 관행에 참여했다. 제일회장단의 조지 에이 스미스 회장은 후에 당시 상황에 관해 언급하며, 일부 성도들이 “자신은 천사들을 볼 수 있고, 하늘로부터 편지들을 받으며, … 그들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뒤틀리기도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Historical Discourse, Deseret News, Dec. 21, 1864, 90)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커틀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는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약간의 이상한 생각과 거짓 영이 그들[오하이오의 성도들] 가운데 스며들었음”을 보았다.(History of the Church, 1:146) 교리와 성약 42편 11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은 당신께서 정식으로 부름과 지명을 준 사람이 아니면 교회에서 누군가가 교사나 지도자나 계시자의 역할을 맡는 것을 금하셨다. 주님은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고 그분의 교회를 세울 권능을 부여받은 자는 “교회에 알려져 있[고]” “교회의 머리된 자들에 의해 정식으로 성임[된]” 자임을 명확히 하셨다.(교리와 성약 42:11)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1924~2015)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교회 회원들이 총관리 역원 및 지역 관리자들을 알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르침을 받을 사람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증인들의 이름이 발표되고, 지지를 받고, 성임되고, 성별되었으며, 많은 기록이 정리되고, 많은 증서가 작성되고, 많은 장소에 많은 사진들이 발행되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누가 합당한 권능을 소유한 사람인지에 관해 속임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성도의 벗, 1985년 7월호, 38쪽)
“우리는 항상 누가 인도하거나 가르치도록 부름을 받는지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 계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42:11] … 이러한 방법을 통해 교회와 정원회, 와드, 그리고 스테이크는 교회를 전복하려는 협잡꾼들로부터 보호되고 있습니다.”(“교회의 연약한 자들과 단순한 자들”,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6쪽)
교리와 성약 42:12~15. “몰몬경과 성경에 있는 나의 복음의 원리를 가르칠지니라”
주님은 그분의 복음을 가르치도록 부름받은 자는 경전에 나와 있는 “[그분의] 복음의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선언하셨다.(교리와 성약 42:12) 이 계시가 주어진 당시 교회 회원들이 접할 수 있는 경전은 성경과 몰몬경 및 점점 늘어나는 후일의 계시들뿐이었다. 그러나 점차 더 많은 하나님의 경전, 즉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및 조셉스미스의 영감받은 성경 번역문이 주어질 것이었다.(교리와 성약 42:15, 56~58 참조) 오늘날 우리가 참조하여 가르쳐야 할 경전들은 표준 경전이라고 불린다.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경전들을 표준 경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했다. “‘표준 경전’은 … 우리의 교리의 저수지이며, 그곳에서 복음의 빛이 물처럼 흘러나옵니다. 이들 경전은 모든 복음 교리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을 제시합니다. 다른 모든 책, 교재 및 학습 과정은 이들 경전이 제시하는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Cornerstones of Responsibility” [address given at the Regional Representatives’ seminar, Apr. 5, 1991], 1)
교리와 성약 42:14. “영은 신앙의 기도로써 너희에게 주어지리니”
효과적이고 영감 어린 가르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강화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개종하도록 돕는다. 주님은 가르치도록 부름받은 자들에게는 그분의 영이 “신앙의 기도로써 … 주어[진다]”고 약속하셨으며, 영을 받지 않은 자는 “가르치지 말지니라”고 강조하셨다.(교리와 성약 42:14) 다시 말하면, 참된 복음의 학습은 영이 임재하지 않고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이는 교사가 효과적인 교수법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엘 톰 페리(1922~2015)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변함없는 동반자로서 우리가 교사로서 준비하도록 교화시키고 영감을 주는 신회의 일원인 성신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스스로를 준비하여 가르치는 능력을 증대시켜 주실 것을 주님께 간구할 때 강한 확신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영의 지시를 받을 때 우리는 큰 권세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시오”, 리아호나, 1999년 7월호, 8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만약 주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누구에게든지 그가 얼마나 잘 교육을 받았는지에 상관없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의 영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주님의 종이라면 그분은 모든 개개인의 마음속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영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하늘의 사자와 직접적인 접촉에 의하여 진리가 전해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고, 이해하기 쉽게 진리를 전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신을 통하여 진리는 우리 몸의 조직과 힘줄에 배어들어 잊을 수가 없게 됩니다.’(Doctrines of Salvation, comp. Bruce R. McConkie, 3 vols. [1954–56], 1:47–48)”(“영으로 가르치고 배움”, 리아호나, 1999년 5월호, 15쪽)
교리와 성약 42:18~29. “나의 율법이 나의 경전에 주어져 있[나니]”
교리와 성약 42편 18~29절에서 주님은 성경과 몰몬경에 나와 있는 대로 그가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신 많은 계명과 율법들을 되짚으셨다. 그분은 성도들에게 그분을 사랑하는 자는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셨다.(교리와 성약 42:29 참조)
교리와 성약 42:18.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하리라”
주님께서 오늘날 다시 확인하신 한 가지 율법은 “살인하지 말지니라”이다.(교리와 성약 42:18) 무죄한 피를 흘린 자, 즉 살인을 범한 자는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교리와 성약 42:18) 나아가 그들은 “넘겨져 그 땅의 법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교리와 성약 42:79)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살인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경고에 관해 설명했다. “요한은 두 가지 종류의 죄가 있다고 말했다.[요한1서 5:16~17 참조] 하나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며 이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 살인은 두 번째 경우이다. 이는 고의적으로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경우이다. … 전능자의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자기 죄를 버리는 모든 영혼에게 이르러 그들을 감싸 안을 것이지만, 요한의 말처럼 고의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경우는 예외이다.”(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1945], 204—5)
지침서 제2권: 교회 관리에는 이 계명과 관련하여 일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할 수 있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한 권고가 나온다.
“지금까지 계시된 바로는 회개하면 낙태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2010], 21.4.1)
“자신의 목숨을 포함하여 생명을 빼앗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자살을 범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이 없을 수도 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그런 사안을 판단하실 수 있다.”(21.4.14)
교리와 성약 42:22. 부부는 “[서로] 결합하고 다른 아무와도 결합하지 말[아야]” 한다.
칠십인 정원회의 엘 휘트니 클레이튼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관찰한, 가장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는 가장 행복한 계명의 하나인 ‘사랑 안에서 함께 생활’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모습이 환하게 빛납니다.[교리와 성약 42:45] 주님은 남편들에게 ‘너는 네 온 마음을 다하여 네 아내를 사랑하여 그와 결합하고 다른 아무와도 결합하지 말지니라’라고 명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42:22] 교회 지침서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결합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에게 전적으로 헌신하고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결혼한 부부는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서로와 하나님에게 온전히 충실하면서 성약을 지켜 하나님과 서로에게 결합하게 된다.’ 남편과 아내 모두는 ‘독신 시절의 생활을 뒤로하고 결혼 생활을 삶에서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 부부는 하나님과 배우자를 상대로 맺은 성약 지키는 일을 …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하며, 다른 사람이나 관심사가 더 높은 우선순위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지침서 제2권: 교회 관리 [2010], 1.3.1] 보고 배우십시오. 성공적인 부부는 완전히 헌신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합니다.”(“결혼: 보고 배우십시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84~85쪽)
교리와 성약 42:23. 음욕의 결과
교리와 성약 42편 23절에서 “음욕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의롭지 못한 성적 욕망을 갖는 것을 뜻한다. 경전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음욕을 품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의[그녀의] 마음에 간음을 범”한 것임을 명확히 한다.(마태복음 5:28; 또한 제3니파이 12:28; 교리와 성약 63:16 참조) 불순한 생각, 언어, 또는 행동은 영을 잃게 만들 뿐 아니라 결국 사람이 “신앙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교리와 성약 42:23; 63:16)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힘을 침식시키고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성적인 욕망을 사용한다.
엘 휘트니 클레이튼 장로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오늘날 자극적인 메시지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영에 치명적인 외설물이라는 덫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덫과 마찬가지로, 외설물이라는 덫 또한 들어가기는 쉽지만 빠져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외설물의 해로운 영향력을 겪지 않으면서 그것을 가볍게 볼 수 있다고 합리화합니다. 그들은 처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그리 나쁘지 않아.’ 또는 ‘알게 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또는 ‘단지 호기심이 나서 그래.’ 그러나 그들은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신앙을 부인할 것이요, 영을 가지지 못하리니, 만일 그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쫓겨날 것이니라.’(교리와 성약 42:23) …
외설물을 보는 사람들은 영을 잃을 뿐 아니라 통찰력과 판단력도 잃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채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합니다.(니파이후서 27:27 참조) 자존심이 사라지고, 달콤한 관계가 악화되며, 결혼 생활이 시들해지고, 무죄한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실제적인 결과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이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더 극단적인 이미지를 찾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그것을 부인하면서 서서히 중독되어 갑니다. 결국 … 도덕적인 표준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행위도 타락합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다 복이 있나니”,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52쪽)
교리와 성약 42:24~26. “간음하지 말지니라”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적인 관계는 성스러운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권능, 즉 생명을 창조할 권능을 나타낸다. 이 권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서 중심이 되며 하나님은 이 권능의 사용을 다스리는 엄격한 계명을 주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은 전세에 있던 영이 필멸의 세상으로 들어오는 승인된 통로가 됩니다. 결혼하기 전의 완전한 성적 절제와 결혼 관계 안에서 기울이는 전적인 충실함으로, 이 성스러운 통로의 신성함이 보호됩니다.
출산 능력은 영적으로 중대합니다. 이 능력을 남용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우리 필멸의 삶에 있는 목적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께서는 창조주이시며 그분들에게 있는 창조 능력의 일부분을 우리 각자에게 맡기셨습니다.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도록 주어진 구체적인 지침들은 아버지의 계획에서 매우 중대한 요소입니다. 이 고귀한 능력을 어떻게 여기고 사용하느냐는 이 필멸의 기간 동안 누리는 행복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크게 좌우할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는 성적인 도덕성에 대한 분명한 한 가지 표준이 있습니다. 성적인 관계는 하나님의 계획에 규정된 대로 결혼 관계에 있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와 같은 관계는 탐구해 보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며,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추구하는 오락이나 유흥도 아닙니다. 이루어야 할 정복 대상도 아니며, 그저 해 보고 마는 행동도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궁극적으로 이 필멸의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지닌 신성한 본질과 잠재력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정서적, 영적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입니다.”(“우리는 … 순결을 믿는다”, 리아호나, 2013년 5월호, 42쪽)
간음이라는 죄는 부정하거나 음탕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결혼 외의 어떠한 성관계도 금하시며, 그분의 교회도 그러한 행위를 묵과하지 않습니다. 남자가 간음하면 아내가 상심하게 됩니다. 그는 또 아내와 자녀들의 신임을 상실하게 됩니다.(야곱서 2:35 참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여러분의 결혼 성약을 충실하게 지키십시오. 외설물, 다른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 건전하지 못한 상상들은 인간의 인격을 부식시키고 행복한 결혼 생활의 기초를 위태롭게 합니다. 그것은 결혼 생활의 융화와 신뢰를 파괴합니다. 생각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마음에 간음을 저지르는 사람이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는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42:23; 63:16 참조)”(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하워드 더블유 헌터 [2015], 215쪽)
교리와 성약 42:30~55
주님께서 헌납의 법의 원리들을 주시고 성도들에게 죽음과 병 고침에 관해 가르치심
교리와 성약 42:30~39. 헌납의 법
1831년 1월 2일에 뉴욕주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교회 대회에서 주님은 “모든 사람은 자기 형제를 자신과 같이 여기[라]”고 가르치셨다.(교리와 성약 38:24) 이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후일에 시온을 건설하게 할 중요한 원리임이 밝혀졌다. 1831년 2월 4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도착한 후, 주님은 그에게 에드워드 파트리지를 교회의 첫 감독으로 부르게 하시고 “나의 율법 안에서 그에게 지명되는 대로 모든 것을 돌보[게]” 하셨다.(교리와 성약 41:10) 5일 후인 2월 9일에 주님은 조셉에게 헌납의 법의 주요 원리를 계시하심으로써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돌보고, 그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백성이 시온을 건설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계획을 제시하셨다.(교리와 성약 42:30~39)
헌납한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 거룩한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서 바치는 것을 뜻한다. 헌납은 우리의 소유물, 시간과 자원을 하나님께 바치고 기꺼이 그분께 드리는 행위이다. 헌납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돌보고,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다. 헌납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이웃의 이익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구하는 순전한 눈으로 모든 일을 행하[라는]” 원리에 기반을 둔다.(교리와 성약 82:19; 또한 교리와 성약 38:24~25 참조)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헌납이란 도움을 구하는 자를 돕기 위하여—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또한 주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까지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시온이란 주께서 그의 성약의 백성에게 주신 이름으로, 마음이 청결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와 실망하는 자를 성실하게 돌보는 자들을 말합니다. (교리와 성약 97:21 참조) …
신권 사회에서 가장 높은 이 반차는 사랑, 봉사, 일, 자립, 그리고 청지기 직분 등 헌납의 성약으로 묶여진 교리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복지사업: 실천의 복음”, 성도의 벗, 1978년, 2월호, 117쪽)
교리와 성약 42편에 기록된, 교회의 율법으로 알려진 계시에서 주님은 교회 회원들에게 “깨뜨릴 수 없는 성약과 증서로” 그들의 소유 중에서 헌납하여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지시하셨다.(교리와 성약 42:30) 제일회장단의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1871~1961) 회장은 주님의 백성이 기꺼이 그러한 희생을 치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헌납의 법]에 관한 모든 계시에 깔린 기본 원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소유 중에서 어느 것이든, 혹은 전부라도 요구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그분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와 성약 104:14~17, 54~57)”(Conference Report, Oct. 1942, 55)
헌납의 법은 교리와 성약에서 자주 언급되었다.(교리와 성약 38편; 42편; 44편; 48편; 51편; 54편; 56편; 58편; 70편; 72편; 78편; 82~85편; 92편; 96~97편; 104~106편; 119~120편; 136편 참조) 많은 구절에 성도들이 이 법을 시행하는 데 도움이 될 지침이 담겨 있다. 헌납의 법의 원리들은 변함이 없지만 그 절차들은 변화된 상황과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때때로 변경되어 왔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희생의 법과 헌납의 법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Teachings of Gordon B. Hinckley [1997], 639) 오늘날 충실한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들의 돈과 시간, 자원을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과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고난을 덜어 주는 일에 바침으로써 헌납의 법을 지킨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경전에는 ‘해의 왕국의 율법을 감당할 수 없는 자는 해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리와 성약 88:22) 희생의 법은 해의 왕국의 율법입니다. 헌납의 법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으로 열렬히 바라는 해의 왕국을 상으로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율법에 따라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헌납의 법을 온전히 지키라는, 즉 지상에 주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우리의 모든 시간과 재능과 수단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습니다. …
그러나 이 경전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해의 왕국의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는, 그런 요구를 받았을 경우, 온전히 이 율법들에 따라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실제로 그런 요구를 받은 것처럼 이 율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Obedience, Consecration, and Sacrifice,” Ensign, May 1975, 50)
교리와 성약 42:32~33. 청지기 직분
주님은 초기 교회에 헌납의 법을 실행할 본을 제시하셨다. 각 가족은 그들의 돈과 소유를 “교회의 감독과 그의 보좌들”에게 줌으로써 그 자원을 교회에 헌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교리와 성약 42:31) 그러면 주의 대표자로 봉사하는 감독은 각 가족의 “형편과 부족과 필요에 따라” 땅과 물건을 어느 정도씩 나누어 주었다.(교리와 성약 51:3; 또한 교리와 성약 42:32~33 참조) 배정받은 이 부분을 “청지기 직분”이라고 불렀다.(교리와 성약 42:72) 이렇게 각 가족은 땅과 자원을 맡아 이를 개인적으로 소유하며 그들의 선택 의지에 따라 관리했다. 그들은 주님의 자원을 맡은 청지기로서 주님께 그것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었고 주님이 맡기신 것에 대해 주님께 온전히 책임을 져야 했다. 가족에게 필요 이상의 잉여물이 생겼다면 감독에게 두어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 나누어 주[도록]” 했다.(교리와 성약 42:33)
교리와 성약 42:34~35, 55. 주님의 창고
주님이 제시하신 방식은, 헌납된 돈이나 재산에 “잉여물”, 즉 여분이 생겼을 경우 이를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었다.(교리와 성약 42:34; 또한 55절 참조) 그러면 감독이 이러한 자원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교리와 성약 42:34), 다른 목적, 예를 들면 교회를 위해 토지를 구입하거나, 예배하는 집을 건축하고,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는 일 등에 사용했다.(교리와 성약 42:35) 오늘날의 창고는 “감독이 후기 성도의 헌납된 헌물을 받고, 보관하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곳”으로 정의된다. “각 창고는 상황에 따라 크거나 작을 수도 있다. 감독이 필요한 시기에 가난한 자를 돌보도록 충실한 성도는 재능, 기술, 물자, 그리고 재정적 수단을 기증한다. 그러므로 창고에는 가능한 봉사, 돈, 음식, 또는 다른 일용품의 목록이 있다. 감독은 창고의 대리인이며 또 필요에 따라 그리고 주의 영이 지시하는 대로 물품과 봉사를 분배한다.(교리와 성약 42:29~36; 82:14~19)”(경전 안내서, “창고”, scriptures.lds.org)
교리와 성약 42:40~41. “너는 네 마음에 교만하지 말지니”
몰몬경의 선지자 모로나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후일에 겪게 될 영적인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그 어려움 중 하나는 교만이며 이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병든 자와 고난받는 자들”을 간과하고 “아주 좋은 옷을 입[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몰몬서 8:36~37) 회복된 교회 초창기에 주님은 “너는 네 마음에 교만하지 말지니”라고 명하시고 성도들에게 그들의 “옷은 검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42:40) 이 지침은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가 의복을 입을 때 지나침과 사치를 피하라는 뜻일 것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우리가 옷과 외모에 관해 내리는 선택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과 보호를 당당하게 요구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표준에 충실하고, 일시적인 풍습과 유행의 노예가 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교회가 여러분의 복장과 외모에 대한 여러분의 도덕적 선택의지를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항상 표준을 선포하고 원리를 가르칠 것입니다.”(“청녀들에게”,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28쪽)
교리와 성약 42:42. “너는 게으르지 말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자기 손으로 일하라고 명하셨다.(교리와 성약 52:39; 56:17; 모세서 4:25 참조) 나태하고 게으른 자는 주님께서 비난하시는 게으름을 범하는 것이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일이라는 복음 원리의 중요성에 관해 간증했다.
“이 세상에는 생산적인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것은 꿈을 현실화시키고 불투명한 꿈을 역동적으로 달성하게 해 주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천성적으로 게으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하기보다는 앉아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느 정도 놀고 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애에서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바로 일입니다. 일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우리의 손의 능력을 활용하여 평범한 상태에서 벗어나 더욱 높은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일을 통하여 음식과 의복과 거주할 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장해 나가고 개인적으로 번영을 누리기를 바라며, 우리의 조국이 세계 앞에서 우뚝 서기를 바란다면 능숙한 손과, 지식과 경험 등을 겸비한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여호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19)” (“나는 믿습니다”, 성도의 벗, 1993년 3월호, 5쪽)
교리와 성약 42:44, 48. “죽기로 정해져 있지 아니한 자는 병 고침을 받으리라”
한 인간의 필멸의 삶의 길이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교리와 성약 42편 44, 48절은 치유가 필요하고 충분한 신앙이 있으며 “죽기로 정해져 있지 아니한” 자는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48절) 칠십인의 랜스 비 위크맨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죽기로 정해져 있지 아니한 자’(‘또는’ ‘병이나 정신이나 신체 장애를’ 추가할 수도 있음)라는 조건이 딸린 문구를 못 보고 지나칩니다. 간절한 기도와 신권 축복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가 좋아지지 않거나 심지어 죽게 될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안을 삼으십시오. 그러한 신앙, 금식 그리고 축복은 헛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회복되지 않은 것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화평과 재확신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축복의 근원이시고 모든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서도 그 자녀를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기도, 금식 그리고 신앙의 경험은 그 자녀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을 줍니다.”(“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리아호나, 2002년 11월호, 31쪽)
교리와 성약 42:45~48. “내 안에서 죽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니”
충실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들에게 죽음은 “그들에게 달 것”이나 반항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죽음이 쓸” 것이다.(교리와 성약 42:46~47) 이것은 의로운 자들이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들이 삶을 마칠 때 사악한 자들이 느낄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이 원리를 설명했다.
“저는 몇 달 전에 불치병에 걸린 한 사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신적인 신권 지도자인 그는 죽음의 현실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기도문을 통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셨던 구주의 모범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마태복음 6:9~10)
제 친구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시련과 고난에 직면했을 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구절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 우리는 그가 충실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행하며 다른 사람과의 거래에서 정직하고 자신의 가족을 보살피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논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끝까지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죽고 난 직후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와 영의 세계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영의 세계는 의롭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행복과 낙원의 상태입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자신의 아내와 자녀 및 손자녀를 포함한 모든 가족을 함께 모으고 모두가 부활하게 될 속죄의 교리를 다시 가르쳤습니다. 모든 가족이 잠시 동안 작별하는 것은 슬프지만 주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요한계시록 14:13; 교리와 성약 42:46 참조) … 그는 다음날 오후에 모든 가족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의 계획을 이해하고 가족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화와 위안입니다.”(“영원한 가족”,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65~66쪽)
죽음과 마찬가지로 죽는 이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은 필멸의 삶의 일부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를 향한 강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깊은 슬픔과 심적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사랑하는 자들을 잃고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적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애도는 순수한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으로, 주님께서 주신 다음 계명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너는 사랑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그리하여 너는 죽는 자들을 잃음을 슬퍼할지니’ (교리와 성약 42:45)
더구나 지금 슬픈 이별이 없다면 우리는 후에 재회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없습니다. 삶에 사랑이 있는 한 죽음에는 슬픔이 있을 것입니다.”(“죽음의 문”, 성도의 벗, 1992년 7월호, 72쪽)
교리와 성약 42:56~93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율법을 추가로 주시고 그의 율법을 시행할 방법을 가르치심
교리와 성약 42:56~58. “너는 구하라. 그리하면 … 나의 경전이 주어지리니”
커틀랜드 지역에 정착한 후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성경을 영감으로 수정 또는 “번역”하는 일을 계속했다. 교리와 성약 42편 56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선지자는 한 언어의 단어들을 다른 언어의 해당 단어들로 변환하는 전통적인 번역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 조셉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기도로 주님의 인도를 간구했고 주님은 그에 따라 그를 이끄셨다.
주님은 또한 성도들이 “[그의 경전들을] 완전히 받[고 나면]” “만민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42:57~58; 또한 교리와 성약 42:15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 시드니 리그돈, 그리고 프레드릭 지 윌리엄스는 1833년 7월 2일에 미주리주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우리는 경전 번역을 끝냈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History of the Church, 1:368) 1979년부터 후기 성도판 흠정역 성경의 경전 학습 보조 자료에 조셉 스미스역 성경에서 취한 수백 구절이 추가되었다. 그 이후로 조셉 스미스 역 성경에서 발췌된 부분은 경전 학습 보조 자료로서 여러 나라의 언어로 교회 회원들에게 주어졌으며, 이렇게 하여 이를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가르[치라]”는 주님의 명이 성취되는 것을 도왔다.(교리와 성약 42:58)
교리와 성약 42:60~62, 65. “계시 위에 계시를 … 받을 것이요”
주님은 그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는 더 많은 거룩한 계시 및 지식뿐 아니라 “여러 비밀 … 을 알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42:61)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올바른 신권 권세를 통해 구원 의식, 즉 죄 사함을 위한 침례를 침수로써 받고, 안수례를 통해 성신의 은사를 받은 모든 사람, 그리고 ‘성신을 받으라’라는 신권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신앙으로 행하는 모든 사람은 계시의 영을 받습니다. 이 축복은 교회를 감리하는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책임질 나이가 되어 성스러운 성약을 맺은 모든 남녀와 어린이들은 이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들은 생활 속에서 그 축복을 활용해야 합니다. … 진정으로 그 축복을 열망하고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으로 계시의 영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 대부분 계시는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열망과 합당성과 준비에 따라 조금씩 더해지는 방식으로 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는 그러한 계시는 점차로, 그리고 부드럽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우리의] 영혼을 적[십니다].’(교리와 성약 121:45) …
주님께서 계시를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주신 사례는 교회 역사와 우리의 개인 생활 모두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니파이후서 28:30] 예를 들어 회복된 복음에 담긴 기본 진리들도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성스러운 숲에서 단번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귀중한 보화들은 필요한 상황과 적절한 시점에 알려졌습니다.”(“계시의 영”,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87~88쪽)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가 계속되는 계시를 추구할 때, 지속적인 계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시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주님께서는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영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
… 우리는 인도받기 위해 계속 기도하지만, 계시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우리는 계속되는 계시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도를 구할 때마다, 그리고 우리의 여건이 지혜와 사랑이 많으신 주님께서 계시를 주실 만하다고 여기실 때마다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주님이 정하시는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리아호나, 2013년 8월호, 24, 29쪽)
교리와 성약 42:74~93. 주님의 율법이 그의 교회를 다스림
교리와 성약 42편 1~72절에 기록된 계시가 주어진 후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교회 회원들을 다루는 일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2주 후인 1831년 2월 23일에 교리와 성약 42편 74~93절에 기록된 계시가 주어졌다. 주님은 교리와 성약 42편에 나오는 교회의 “율법”이 “[그의] 교회를 다스[린다]”고 선언하셨다.(교리와 성약 42:59) 나아가 교회 회원들은 “교회의 모든 계명과 성약을 지켜 준행”해야 했다.(교리와 성약 42:78)
교리와 성약 42:88. “네 형제 또는 자매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범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어떤 식으로든 또 어느 순간에 가서는 이 교회 내의 누군가는 마음을 상하게 할 만한 행동이나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우리 각자 모두에게 분명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해치거나 마음 상하게 할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분별 없는 언행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의도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합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도덕적 선택의지가 부여된 행동의 주체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마음 상해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흥미로운 점은 ‘그러므로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는 권고의 말씀 바로 전에 잘못된 행위와 무례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나와 있다는 점입니다.[마태복음 5:43~44, 46 참조] 분명한 것은 성도들을 온전함으로 이끄는 엄격한 요건들 중에는 우리를 시험하고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마음 상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우리의 첫 번째 의무는 마음 상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그다음,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솔직하게 직접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은 성신으로부터 영감을 얻게 해 주며 오해가 풀리게 해 주고 진정한 의도가 제대로 이해되도록 해 줍니다.”(“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9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