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56장: 공식선언—2


“제56장: 공식선언—2”,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 (2017년)

“제56장”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

제56장

공식선언—2

소개 및 연대

20세기에 선교 사업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아프리카 흑인 혈통의 교회 회원들에게 신권 성임과 성전 의식을 제한하는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했다. 1978년 6월 1일에 주님께서는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과 제일회장단 보좌들 및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에게 이러한 제한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계시하셨다. 1978년 6월 8일에 제일회장단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 계시를 발표했다. 이 계시는 공식선언—2에 기록되어 있다.

1973년 12월 30일스펜서 더블유 킴볼이 교회의 회장으로 성임되었다.

1978년 6월 1일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과 제일회장단 보좌들 및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이 신권과 성전의 축복을 모든 합당한 교회 회원에게 확대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1978년 6월 8일제일회장단이 편지를 통해 이 계시를 알렸다.

1978년 9월 30일6월 1일에 주어진 계시가 연차 대회에서 교회 회원들에게 발표되었고 “주의 말씀과 뜻”으로서 만장일치로 지지되었다.(공식선언—2)

1978년 11~12월선교사들이 서아프리카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가나와 나이지리아에 도착했다.

공식선언—2: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00년대 중반부터 1978년까지 … 교회는 아프리카계 흑인 남성을 신권에 성임하지 않았으며, 흑인 남성이나 여성이 성전 엔다우먼트나 인봉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이러한 신권과 성전의 제한의 기원에 관하여 2013년판 교리와 성약의 공식선언—2 소개 부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몰몬경은 ‘검거나 희거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다 하나님께는 동일’하다고 가르친다.(니파이후서 26:33) 교회 역사 내내 모든 인종과 민족이 수많은 나라에서 침례를 받고, 교회의 충실한 회원으로서 생활해 왔다. 조셉 스미스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는 교회 회원이었던 소수의 흑인 남성들이 신권에 성임된 바가 있다. 교회 초기에 교회 지도자들은 아프리카 혈통의 흑인 남성들에게 신권을 부여하는 일을 중단했다. 교회의 기록에서는 이 관례의 기원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식견도 찾아볼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 관례를 바꾸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인도를 구했다. 1978년 6월 1일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이 계시를 받았고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도 이 계시를 확인했다. 이로써 한때 신권에 적용됐던 인종 관련 제한이 모두 사라졌다.”(공식선언—2, 소개)

“신권 제한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해설들이 직접적인 계시 없이 쓰이기도 했으며, 이런 해설을 참조한 글들이 일부 책에 인용되기도 했다. 이전에 있던 이와 같은 개인적인 발언은 교회의 교리를 대표하지 않는다.”(“Race and the Church: All Are Alike Unto God,” Feb. 29, 2012, mormonnewsroom.org) “오늘날, 교회는 과거에 널려 퍼졌던 이론으로서 검은 피부가 신의 혐오나 저주의 표시라든가, 전세에서의 행위를 반영하는 것이라거나,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이 죄라거나, 흑인 또는 여타 인종이나 민족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든 열등하다는 이론을 거부한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형태이든 과거나 현재의 모든 인종 차별 행위를 단호히 규탄한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일부 사람들이 신권과 성전 제한에 관해 내놓은 과거의 이론들 및 근거 없는 추정에 관해 십이사도 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1978년 6월에 우리의 선지자이자 회장이신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이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성 회원은 인종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신권에 성임될 수 있습니다’라고 발표했을 때 우리는 환호했습니다.(공식선언—2) 계시에 의해 지침이 바뀌었으며, 그 계시로 인해 필멸의 인간이 이전 지침의 이유라고 내놓았던 것들은 모두 일소되었습니다.

1988년에, 신권에 대한 계시가 주어진 지 10주년을 맞이하는 기자 회견에서 저는 신성한 계시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람들이 그 계시가 주어진 이유를 만들어 내려는 것에 대한 제 입장을 밝혔습니다.

‘마음속에 “주님께서 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명하신 것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경전을 읽는다면, 주님의 수많은 명령 중에서 주님께서 그 이유를 알려 주신 명령은 백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유를 밝히시는 것은 주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계시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계명에 대해서도 이유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독자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한 [신권과 성전 제한]에 관한 계시에 대해 이유들을 댔지만, 그 이유들은 보란 듯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 여기에서뿐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계시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면서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하지 맙시다. 그 이유들은 대부분 사람이 만들어 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계시란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고 지지하는 것이며 그것에 안전이 있습니다.’”(Life’s Lessons Learned [2011], 68–69)

아프리카계 흑인 교회 회원들에게 신권 성임과 성전 의식이 제한되었던 것에 관한 추가적인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려면, “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를 참고한다.

공식선언—2

주님께서는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성 회원은 신권에 성임될 수 있으며, 성전의 축복 또한 모든 합당한 교회 회원들에게 확대될 수 있다고 계시하셨다.

공식선언—2.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이 받은 계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충실하고 합당한 남자가 … 거룩한 신권[을] … [받을] 수 있는 오래 전부터 약속된 그 날이 바야흐로 이르렀”다는 계시는 편지를 통해 전 세계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공식선언—2) 이 편지는 공식선언—2에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는 1978년 6월 8일에 기록되었으며 1978년 6월 9일에 처음 방송 매체를 통해 공개되었다. 1978년 9월 30일에 열린 연차 대회 도중에 제일회장단의 엔 엘돈 태너 회장이 “신권과 성전 축복을 교회의 합당한 모든 남성 회원에게 주라는” 이 계시를 교회 회원들에게 발표하고 지지할 것을 요청하였다.(공식선언—2) 교회 회원들은 이 계시를 “주의 말씀과 뜻으로” 지지하였다.(공식선언—2) 그러므로 공식선언—2는 하늘이 여전히 열려 있고 주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계속되는 계시를 주심으로써 교회를 인도하신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주님께서 오늘날 그분의 선지자들에게 그분의 뜻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간증하며 이렇게 선언했다.

“계속되는 계시는 참으로 살아계신 주님이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명소입니다. …

이 혼란스러운 오늘날의 세상에 하나님의 계시가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 주님께서 구세계 팔레스타인에 살던 소규모의 사람들에게만 계시를 통해서 그분의 귀중한 지시를 주시고, 우리가 그것을 극도로 필요로 하는 현대에는 하늘을 닫아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

저는 약 한 세기 반 전에 강철 천장이 산산이 깨지듯 하늘이 다시 한번 열렸으며, 그 이후로 계시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오늘날 세상에 증거합니다.

강렬한 열망을 지녔던 또 한 명의 영혼이 신성한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했을 때 그 새로운 날이 밝아 왔습니다. 그는 혼자 있을 장소를 찾았으며,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소리 내어 간구했고, 한낮의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은 다시는 닫히지 않았습니다.

비할 데 없는 강한 신앙을 가졌던 어린 소년 조셉 스미스는 마법을 깨뜨리고 ‘철로 된 하늘’을 부수었으며 하나님과의 교통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 지상에 새 선지자가 세워졌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그분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이 왕국은 결코 파괴되거나 다른 이에게 넘겨지지 아니할 것이며 영원히 설 것입니다. …

1820년의 그 역사적인 날 이후로, 추가적인 경전이 뒤이어 나왔으며, 그 경전에는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선지자들에게 샘물처럼 끝없이 주시는 여러 가지 귀중한 계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우리는 계시가 계속됨을 간증하며, 교회의 금고와 서류철에는 달마다 혹은 날마다 내려오는 이러한 계시가 담겨 있음을 전 세계에 간증합니다. 우리는 또한 1830년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조직된 이래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승인한 선지자가 있어 왔습니다. 선지자는 시간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고, 계속해서 주님의 뜻과 생각을 해석할 것임을 증거합니다.”(“Revelation: The Word of the Lord to His Prophets,” Ensign, May 1977, 76–78)

공식선언—2. 교회 지도자들이 1978년 6월 1일에 주어진 계시를 받아들였으며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엔 엘돈 태너 회장은 신권과 성전의 축복 제한을 폐지하는 계시를 교회 회원들에게 발표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만장일치로 이 계시를 지지하고 승인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거룩한 성전에 있는 성스러운 방에서 오랜 명상과 기도를 한 후에 그에게 임한 이 계시를 받고 나서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그것을 그의 보좌들에게 전하였으며, 보좌들은 이 계시를 받아들이고 승인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십이사도 정원회에 전달되었고, 그들은 만장일치로 이 계시를 승인하였[다].”(공식선언—2) 이 모임은 1978년 6월 1일에 열렸으며 이 모임에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 중 열 명과 제일회장단이 참석하였다.(see Gordon B. Hinckley, “Priesthood Restoration,” Ensign, Oct. 1988, 69–70)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6월 1일에 주어진 이 계시는 일주일 뒤인 6월 8일에 영감을 주는 영에 의해 재확인되었으며, 그때 형제들은 세상에 발표될 문서를 승인하였다.”(“All Are Alike unto God” [Church Educational System Symposium, Aug. 18, 1978], 5, speeches.byu.edu) 그날 제일회장단은 6월 1일과 8일에 있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 두 명(마크 이 피터슨 장로와 델버트 엘 스태플리 장로)에게 연락했다. 임무로 인해 남아메리카에 있던 피터슨 장로는 전화를 통해 그 계시를 완전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스태플리 장로는 그날 제일회장단이 병원에 있던 그를 방문했을 때 그 계시를 지지하였다.(see Henry Dixon Taylor, Autobiography of Henry Dixon Taylor [1980], 286–87) 즉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하나가 되어 그 계시를 “주의 말씀과 뜻”으로서 지지했다.(공식선언—2; 또한 교리와 성약 107:27, 29 참조)

1976년의 십이사도 정원회

1978년 6월에 신권에 관한 계시가 주어졌을 당시의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

다음 날인 1978년 6월 9일에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은 당시 만날 수 있던 총관리 역원들을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만났다. 당시 칠십인으로 봉사했던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 장로(1926~2004)는 그 모임에 참석했다. 후에 그는 그 모임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때, 영이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난 후 킴볼 회장님께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Associated Press Interviews: 10th Anniversary of Priesthood Revelation,” May 24, 1988, Church History Library)

이 모임 중에 계시에 관해 알리는 편지가 낭독되었으며, 참석하고 있던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들 각자는 계시로 주어진 “신권과 성전 축복을 교회의 합당한 모든 남성 회원에게 주라”는(공식선언—2) 결정에 관한 자신의 증언과 간증을 나누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손을 들어 지지를 표할 것을 제안했고, 교회의 총관리 역원들은 만장일치로 이를 지지하였다.

주님의 영감과 계시에 관해 하나가 되어 일하고자 한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은 교회의 평의회를 관장하는 일에서 지침이 되는 원리이다.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정책과 절차, 프로그램 또는 교리에 관한 주요한 질문에 대해서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사숙고합니다. 이 두 정원회, 곧 제일회장단 정원회와 십이사도 정원회가 함께 모여 각 사람이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모든 주요한 질문들을 심사숙고하는 것입니다. …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만장일치가 없이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심의로부터 어떠한 결정도 나오지 않습니다. 문제들을 토의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배경은 각기 다릅니다. 그분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 이르기 전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만장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

… 저는 이러한 심사숙고의 과정에서 여러 다른 의견들이 제기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과 생각들이 걸러지고 추려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심각한 불화나 또는 형제들간의 개인적인 대립들을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보다는 한 가지 아름답고 놀랄 만한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것은 성신의 지시의 영향과 계시의 권능 아래서 완벽한 조화와 충분한 동의가 있을 때까지 여러 다른 견해들이 종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비로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의 사업을 지시하는 가운데 여러 차례 나타난 계시의 영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종류의 통치 조직도 알지 못합니다.”(“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성도의 벗, 1994년 7월호, 54, 59쪽)

공식선언—2. “지상에서 주의 사업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면서”

1978년 6월 1일 이전에는 “복음이 주는 모든 특권과 축복”이 “합당한 교회 회원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공식선언—2) “교회가 전 세계로 성장해 나감에 따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태복음 28:19]라는 교회의 중차대한 사명이 신권 및 성전에 관한 규제와 갈수록 상충되는 듯했다. 몰몬경에는 구원의 복음 메시지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나와 있다.[모사이야서 15:28; 니파이전서 19:17] 주님께서 침례를 통해 ‘그의 선하심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대상에는 제한을 두지 않으셨던 데 반해,[니파이후서 26:23, 28] 신권 및 성전을 제한하신 것은 커다란 장벽을 낳았으며, 교회가 다양한 인종 및 혼혈 민족이 사는 국제적인 지역으로 뻗어 나감에 따라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브라질에서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법적 및 기타 다른 형태의] 인종주의로 차별이 심한 사회가 된 미국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달리, 브라질은 자국의 개방적이고 통합적인 인종 정책과 혼혈 민족으로 이루어진 유산에 강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1975년, 교회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성전이 건축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성전 건축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교회 지도자들은 재정적으로나 다른 여러 방법으로 상파울루 성전 건축에 이바지한 충실한 흑인 및 혼혈 [교회 회원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들은 상파울루 성전이 완공되어도 자신들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바친 희생 및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수천 명의 나이지리아 및 가나 사람들의 개종이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

상파울루 성전은 1978년 10월 30일에 헌납되었다.

“지상에서 주의 사업이 확장되고 있음”과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회복된 복음의 메시지에 응답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교회에 가입하고 있[다]는 … 사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복음이 주는 모든 특권과 축복을 합당한 교회 회원 모두에게 주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 하여 주었”다.(공식선언—2)

공식선언—2. “우리 전에 있었던 교회의 선지자들과 회장들이 한 약속을 알기 때문에”

복음의 모든 축복들을 모든 합당한 교회 회원에게 확대하고자 하는 소망은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이 경전 및 선지자 조셉 스미스부터의 교회 지도자들의 말씀을 사려 깊게 연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많은 후기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중에 언젠가는 합당한 우리의 형제 모두가 신권을 받게 되리라고” 가르쳤다.(공식선언—2)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은 “교회의 흑인 회원들이 언젠가 다른 회원들이 누리는 ‘[모든] 특권과 그 이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데이비드 오 맥케이(1871~1970) 회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중에 언젠가는”, 합당한 아프리카계 흑인 남성에게 “신권을 소유할 권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간증했다.(in “Policy Statement of Presidency,” Church News, Jan. 10, 1970, 12) 해롤드 비 리(1899~1973) 회장은 교회의 회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의 아프리카계 흑인 회원들이 복음의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우리는 다만 그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in L. Brent Goates, Harold B. Lee: Prophet and Seer [1985], 506)

그들은 “오래 전부터 약속된 그 날이 … 이르”는 것을 보길 바랐지만(공식선언—2), “교회 지도자들은 [아프리카계 흑인에 대해 신권과 성전을 제한하는] 방침을 바꾸려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가 필요하다고 믿었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 알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계시가 그때 주어진 이유에 관해서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신앙과 의로움 그리고 간구가 한 가지 이유였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신성한 시간표가 그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All Are Alike unto God,” 3, speeches.byu.edu; “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in Priesthood [1981], 133)

공식선언—2. “신권이 유보되어 온 사람들의 충실함을 보고서”

브라질의 엘베시오 마르틴스와 루다 마르틴스, 그리고 가나의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의 사례는 하나님께서 신권과 성전의 축복을 그분의 모든 합당한 자녀들에게 확대하시기를 인내하며 기다렸던 이들의 놀라운 충실함을 보여 준다.

“1972년 4월의 어느 청명한 밤에, 리우데자네이루의 교통 체증 한가운데서 엘베시오 마르틴스는 가족이 찾고 있던 진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와 그의 아내 후다는 여러 종교를 탐색해 보았으나 영적인 공허감을 채울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밤, 저는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Elder Helvécio Martins of the Seventy,” Ensign, May 1990, 106) 며칠 뒤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그들의 집에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마르틴스 장로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두 명의 젊은이들이 집으로 들어서던 순간, 우울한 마음과 영적인 불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것이 성신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 제가 이 선교사들을 맞이하고 제 두 자녀들에게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 특별한 안도감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

…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시간은 벌써 새벽 한 시가 되었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선교사들은 우리에게 거의 모든 선교사 토론을 가르쳤습니다.”(Helvécio Martins, with Mark Grover, The Autobiography of Elder Helvécio Martins [1994], 43)

“가족들은 1972년 7월 2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마르틴스 장로에 따르면, ‘우리는 진리를 찾았고, 그 무엇도 (자신의 가족이 신권의 축복을 직접 누릴 수는 없다는 사실조차도) 우리가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르틴스 장로는 말했다.] ‘영이 복음이 참되다고 말해 주는데 어떻게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Elder Helvécio Martins of the Seventy,” 106) 마르틴스 장로와 그의 가족들은 성신을 통해 회복된 복음에 대한 간증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는데도 주님을 신뢰하며 침례를 받았다.

마르틴스 가족은 교회에서 충실히 봉사했다. 1975년에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브라질 상파울루에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른 회원들처럼 성전 건축을 위해 일했습니다. … 어찌 되었든 그곳은 주님의 집이었습니다.’ 마르틴스 자매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보석을 팔았고 마르틴스 형제는 홍보 위원회에서 봉사했다.”(“Elder Helvécio Martins of the Seventy,” 106)

아프리카 성도들도 이와 비슷한 헌신과 충실함을 보였다. 1978년 12월에 교회가 가나에 선교사들을 보냈을 때, 그들은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인해 “복음이 그곳에 이미 잘 확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Elizabeth Maki, “‘A People Prepared’: West African Pioneer Preached the Gospel Before Missionaries,” history.lds.org) 존슨 형제는 14년 전에 한 친구가 그에게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 및 다른 교회 서적을 주었을 때 교회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몰몬경을 읽었을 때 저는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읽을 때면 이따금씩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영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책이 특별히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간증과 같은 영감받은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Joseph William Billy Johnson, “We Felt the Spirit of the Pioneers,” in “All Are Alike unto God” ed. Dale E. LeBaron [1990], 14)

아프리카 가나의 후기 성도들

아프리카 가나의 후기 성도 집회

“존슨은 [그의 친구] R. A. F. 멘사와 클레멘트 오세크레와 함께, 한 권의 몰몬경 및 멘사가 유럽에서 한 여성에게 받은 몇 개의 소책자에 있는 가르침에 기반하여 회중을 조직하였다. 멘사는 세상적 학문과 종교를 모두 가르치는 학교를 조직하였다. 이 학교 수업에서도 몰몬경이 사용되었다. 특히 존슨은 매일같이 거리에서 거리로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며, 지칠 줄 모르고 회복된 교회의 메시지를 가나에 전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했다. ‘저는 정말 심하게 반대를 겪었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마주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나아갔습니다. 저는 그것을 도무지 멈출 수 없었습니다.’ …

그 사람들은 솔트레이크에 있는 교회 본부에 편지를 보내 선교사들을 가나에 파송하여 그곳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막는)[신권의 제한]으로 인해 그들의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회 회장 데이비드 오 맥케이는 계속해서 경전을 공부하고 충실하라고 그들을 격려했다. …

1969년에 그는 솔트레이크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던 중에 교회 회원인 린 힐턴이 곧 사업차 가나를 방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슨과 그의 동료들은 힐턴을 찾아가 정말로 그가 ‘거룩한 멜기세덱 신권’을 소유하고 있는지 물었으며, 그를 자신들이 모임을 하던 건물로 안내했다.

‘그것은 진흙으로 지어진 1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라고 힐턴은 회상했다. ‘그리고 문에는 이렇게 적힌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가나 아크라 지부” … 그들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고, 안에는 거친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힐턴에게 자신들이 가진 낡은 몰몬경을 보여 주었다. …

그들은 한 사람당 몇 분만 그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다음엔 다음 사람이 읽도록 넘겨 주었으며, 그들은 그 책을 ‘끊임없이 읽고 사용했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들이 신권 소유자와 함께하게 되자, 그들은 힐턴에게 자신들에게 침례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힐턴은 그 대신 신권 축복을 주었고 집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권의 몰몬경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

이윽고 존슨은 아크라에서 케이프코스트로 옮겨 전도를 계속했으며, 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가나에는 몇 개의 지부가 세워지고 수백 명의 회원이 생겨났다. 여러 해 동안 그는 회원들이 정기적인 금식을 하도록 이끌었으며, 선교사들을 보내어 그들 가운데 교회를 세워 달라고 솔트레이크에 요청했다.(Maki, “A People Prepared,” history.lds.org)

마르틴스 가족과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이 장의 “신권 성임을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성 회원들에게 확대하고 성전 축복을 모든 합당한 교회 회원에게 확대하는 일의 중요성”의 주석을 참조한다.

공식선언—2. “하나님의 인도를 구[함]”

경전과 교회사에는 선지자들이 지상에서 주님의 사업과 교회를 이끌기 위해 주님께 신성한 인도를 구했던 많은 예가 있다. 1978년 이전에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신권의 제한에 관해 여러 차례 토론하였고 그것에 대해 열심히 기도했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 형제들은 오랜 기간 동안 [신권과 성전의 제한]에 관해 큰 염려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All Are Alike unto God,” 3, speeches.byu.edu; “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132)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형제들은 신권의 축복을 흑인들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에 관한 사안을 오랜 기간 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사안은 교회 회장들에 의해 여러 번 논의되었습니다.”(“Priesthood Restoration,” 70) 예를 들어 데이비드 오 맥케이 회장은 이 사안에 관해 연구했지만 “인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 후에도 이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인종과 신권”, 복음 주제, topics.lds.org)

스펜서 더블유 킴볼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 (1895~1985)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이 교회 회장이 되었을 때, 그는 신권의 제한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그 문제에 관해 신성한 인도를 받기 위해 했던 자신의 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하나님의 여러 자녀들에게 지극히 중요한 무엇인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합당하고 주님의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우리가 그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저는 매일 참으로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성전의 위층 방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제 영혼을 쏟아부었으며 그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분께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옳은 일만 하고 싶습니다. … 저희는 당신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일만을 하고 싶으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 일을 하기를 바라며 그때까지는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2006], 238쪽)

1978년 6월 1일에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이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만났다. 그들은 금식하며 그곳에 모였다.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매월 첫째 주 목요일은 교회의 총관리 역원들이 금식하고 간증을 나누는 날입니다. 많은 형제들이 스테이크 대회에 방문하는 임무로 인해 첫째 주 일요일에 집을 떠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에 솔트레이크 성전 위층에 있는 방에서 금식 간증 모임을 합니다. 저는 1978년 6월 1일 목요일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몇몇 형제들의 간증을 들었고 주님의 만찬인 성찬을 취했습니다.

이 신성한 장소에서,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가지는 모든 모임이 그러하듯이, 이것은 놀랍도록 영적인 모임이었습니다. 그 후 칠십인 정원회와 감리 감독단을 제외하고, 교회 회장과 그의 두 보좌, 그리고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 중 열 명이 남았습니다. 다른 두 명은 불참했는데, 한 명은 남아메리카에 있었고 한 명은 입원 중이었습니다.”(“Priesthood Restoration,” 69–70)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킴볼 회장님은 모든 인종에게 신권을 부여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지난 몇 달간 여러 차례에 걸쳐 논의한 주제였습니다. 회장님은 관련된 문제를 다시 말씀하시고, 우리의 이전 토론을 상기시키셨으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 [성전의] 위층 방에서 주님께 간구하며 홀로 많은 날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장님은 이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방법으로든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킴볼 회장님은 형제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느낌과 관점을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했으며, 각자 상당한 시간을 들여 자유롭고 유창하게 자신의 관점을 말하고 마음의 느낌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평의회에서 놀랍도록 풍성한 단합과 일치 및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 모임은 대략 두 시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킴볼 회장님은 우리가 함께 공식적인 기도를 드릴 것을 제안하셨고, 나머지 분들이 동의한다면 그분이 소리 내어 기도하시겠다고 겸손히 말씀하셨습니다.(“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in Priesthood, 127–28)

맥콩키 장로는 또한 킴볼 회장이 기도를 드렸을 당시에 참석자들 가운데 있었던 단합의 느낌을 묘사했다.

“킴볼 회장님은 우리 모두가 깨끗하게 되고 죄에서 자유로워져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로 간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유롭고 충만하게 주님과 의논하셨으며, 영의 권능으로 능히 말씀하셨고, 그분이 말씀하신 내용은 높은 곳에서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완전하게 단합하고, 모든 심장이 하나가 되어 뛰며, 동일한 영이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약동하는 것은 드물고도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계시가 주어졌습니다.”(“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in Priesthood, 126, 128)

공식선언—2.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 오래 전부터 약속된 그 날이 바야흐로 이르렀음을 계시로써 확인해 주셨습니다”

브리검 영 회장 때로부터 교회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중에 언젠가는 신권과 성전의 모든 축복이 한때 이것들이 보류되었던 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오래 전부터 약속된 그날”은 1978년 6월 1일에 주님께서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과 제일회장단에 있는 그의 보좌들 및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들에게 주신 계시를 통해, “교회의 모든 합당한 남성 회원은 인종이나 피부색에 관계없이 신권에 성임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셨을 때 도래했다.(공식선언—2)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은 후에 이렇게 간증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모든 합당한 남녀가 복음의 충만한 축복의 상속자와 참여자가 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주님께서 명확히 알려 주신 영광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구주의 특별한 증인으로서 성전의 위층 방을 혼자서 며칠 동안 여러 차례 드나들며 제가 그분과 하나님 아버지를 얼마나 가깝게 느꼈는지 여러분이 아셨으면 합니다. 주님은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제게 무척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유 킴볼[2006], 239쪽)

나중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몇몇 회원들은 신권과 성전 제한을 끝내는 계시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받았던 영적인 증거에 관해 설명했다. 1978년 당시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봉사했던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은 이렇게 간증했다.

“방 안에 신성하고 거룩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사도들이 힘을 합하는 가운데, 함께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통로가 열려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했고 성신의 권능이 그곳의 선지자에게 임하여 그가 간구한 내용은 옳고 그 시기가 도래했으며, 혈통에 관계없이 모든 곳에 있는 합당한 남성에게 신권의 놀라운 축복이 전해져야 한다는 확신이 임했습니다.

성신의 권능으로, 그 원형 기도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고요하면서도 숭고한 일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있었던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사도행전 2:2~3) 그러나 성신이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오순절의 영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육신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의 음성이 우리의 생각과 영혼에 분명하게 속삭였습니다.

이노스는 자신의 놀라운 경험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내가 이같이 영으로 진력하고 있을 때, 보라, 주의 음성이 다시 나의 생각 속에 임하여 이르시되.’ 영의 음성이 이노스에게 임했던 것처럼 우리, 혹은 최소한 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노스서 1:10)

그 일은 1978년 6월 1일에 일어났습니다. 이 날은 참으로 기념할 만한 날입니다. 우리는 차분하고 경건하며 기쁨에 찬 상태로 그 모임을 떠났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이후로 결코 완전히 같은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도 결코 완전히 그와 같은 상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으며, 그 결정이 하늘로부터 왔음을 알았습니다. 답은 명확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이해에는 완벽한 일치가 있었습니다.”(“Priesthood Restoration,” 70)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그 계시가 1978년 6월 1일에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한 사람 각자에게 주어졌다고 단언했다.

“그때 끊임없는 간구와 깊은 신앙이 있었기에, 또한 때가 되고 시간이 이르렀기에, 주님은 그분의 섭리로, 그때 그곳에 있었던 그 누구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이한 방법으로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에게 성신을 부으셨습니다. 계시는 교회 회장에게 주어졌으며, 또한 그곳에 있던 각 사람에게도 주어졌습니다. … 그 결과, 킴볼 회장님과 우리 각자는 신권 및 주님의 집의 축복을 포함하여 복음과 그 축복 및 책임이 모든 국가와 문화, 그리고 모든 인종에게 널리 전파되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타인과 관계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나 당시 받은 메시지나 말씀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 계시는 교회 회장에게 주어졌으며 교회 행정과 조화를 이루어 그에 의해 발표되었습니다. 발표는 제일회장단의 서명이 있은 지 8일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교회 및 세상에 계시를 발표할 수 있는 사람, 곧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변자로 지지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제가 말씀드린 조직의 모든 구성원에게도 계시가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전에서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 계시는 교회의 방향 전체를 절차적, 행정적으로 뒤바꾸고,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영향을 미치며, 우리와 세상 간의 관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매우 중요한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났다고 증언할 독립적인 증인들을 원하셨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 일을 행하셨다고 저는 판단합니다.”(“All Are Alike unto God,” 4, speeches.byu.edu; “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in Priesthood, 133–34)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비 헤이트(1906~2004) 장로는 1978년 6월 1일에 주어진 계시에 관해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다.

“저는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이 신권에 관한 그 계시를 받으셨을 때 성전에 있었습니다. 저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후임 회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을 때 그 방 안에 부어졌던 영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우리 중 아무도 그 일 이후에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그곳을 떠나 자신의 직무로 돌아갔습니다. 하늘의 영이 강력하게 부어졌던 경험 때문에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표가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후, 저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스테이크 대회에 참석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가 시카고에 내렸을 때, 저는 신문 판매대에 있던 시카고 트리뷴 한 부를 발견했습니다. 신문 헤드라인에는 “몰몬교, 흑인에게 신권을 주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부제목에는 “킴볼 회장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신문 한 부를 샀습니다. 저는 부제목의 주장하다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제게는 그 단어가 마치 붉은 네온사인으로 쓰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행기 승강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시카고에서 붐비는 공항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계시의 증인이었다.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하늘의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 계시의 일부였습니다. 그 신문의 편집장은 “…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다”라고 썼을 때 그 계시가 참되다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인쇄자, 인쇄기에 잉크를 넣은 사람, 그리고 그 신문을 배달한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이 정말로 하나님에게서 온 계시라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 일의 증인이기 때문에 아는 그 사실을 그들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This Work Is True,” Ensign, May 1996, 23)

공식선언—2. 신권 성임을 교회의 모든 합당한 성인 남성에게 확대하고 성전 축복을 모든 합당한 교회 회원에게 확대하는 일의 중요성

신권 제한의 폐지에 관해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에게 주어진 계시는 교회와 회원들 및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이 계시는] 우리의 선교 사업과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의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계시는 우리의 계보 연구와 우리의 모든 성전 의식들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계시는 현재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은 대리 의식을 통해 구원과 승영의 상속자가 될 수 있으며, 그러한 대리 의식을 받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영의 세계에서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계시입니다.”(“All Are Alike unto God,” 4, speeches.byu.edu; “The New Revelation on Priesthood,” in Priesthood, 134–35)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신권 성임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침례를 줄 수 있고, 신권 축복을 줄 수 있으며, 가정 복음 교사와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이 계시는 가족으로서 영원히 인봉되는 기회를 비롯한 성전 의식의 축복을 모든 흑인 교회 회원들에게 확대했다.

성임받는 흑인 남성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충실하고 합당한 남자가 거룩한 신권 … 을 받[을] … 수 있는 오래 전부터 약속된 그 날이 바야흐로 이르렀[습니다]”.(공식선언—2)

엘베시오 마르틴스는 자신과 아내 후다가 이 계시가 발표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회상했다. “저는 제 감정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침실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가 꿈꾸기만 하던 일을 일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며 흐느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온 것입니다. 우리가 필멸의 삶을 사는 동안 말입니다.”(The Autobiography of Elder Helvecio Martins, 69–70) 마르틴스 가족은 브라질 상파울루 성전에서 인봉받았다. 그들의 아들 마쿠스는 신권 제한이 폐지된 뒤 선교 사업을 한 첫 번째 아프리카계 교회 회원들 중 하나였다. 마르틴스 장로는 이렇게 기억한다. “마쿠스와 제가 아론 신권을 받은 지 일주일 뒤에, 우리는 멜기세덱 신권에 성임되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니테로이 스테이크의 주아운 에두아르도 케미니 회장님이 저를 장로로 성임하였고, 그 후 저는 원을 지은 형제들과 함께 제 아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그에게 멜기세덱 신권을 부여하였습니다. 저는 기쁨과 행복과 만족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저와 마쿠스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The Autobiography of Elder Helvecio Martins, 70–71) 엘베시오 마르틴스는 브라질의 지역 신권 지도자가 되었고 마침내 칠십인 제2 정원회 일원으로 부름받았다.

가나에서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은 “힘든 하루를 마친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에, 라디오로 BBC 채널을 맞추라는 강한 느낌을 받고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주님께서 가나와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시어 신권을 받을 때가 이르렀다는 사실에 저는 펄쩍 뛰며 울기 시작했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정말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몇 달 뒤에 마침내 선교사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가나 케이프코스트에 있는 존슨의 예배당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다란 모로나이 천사가 구체 위에 서서 나팔을 불고 있는 동상’을 보았다. 그곳에는 또한 성경과 몰몬경, 조셉 스미스, 태버내클 합창단 및 다른 후기 성도의 모습들을 담은 그림들이 있었다.’

존슨의 회중 중 많은 수가 침례를 요청했고, 첫째 날에 34명이 의식을 위해 접견을 받았다. 선교사들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새 회원들에게 침례를 주었으며, 그날 밤에는 여러 명이 당일에 침례를 받기를 소망하며 멀리 있는 마을에서 존슨의 집까지 걸어왔다.

며칠 만에 케이프코스트 지부가 조직되었고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은 지부 회장이 되었다.”(“A People Prepared,” history.lds.org)

아프리카 가나에서 침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선 구도자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침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

존슨 형제의 회중 가운데 약 600명이 침례 받았다.(see Johnson, “We Felt the Spirit of the Pioneers,” in “All Are Alike unto God,” 22) 14년을 충실히 기다린 결과 조셉 윌리엄 빌리 존슨은 마침내 주님의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존슨 [형제]는 케이프코스트 지부의 첫 번째 지부 회장으로 봉사한 뒤 지방부 회장, 전임 선교사, 그리고 가나 케이프코스트 스테이크의 축복사로 봉사하였다.”(“A People Prepared,” history.lds.org)

신권 제한을 폐지한 계시의 결과로 오늘날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으며, 그 이후로 아프리카 대륙에는 성전이 세워졌고 수많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자신과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복음 의식을 받았다. 오늘날 전 세계의 아프리카계 교회 회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의 동료 성도들과 의미 있는 통합과 화합을 경험하고 있다.(갈라디아서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