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49장: 교리와 성약 125~128편


“제49장: 교리와 성약 125~128편”,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2017)

“제49장”,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

제49장

교리와 성약 125~128편

소개 및 연대

1839년 여름 동안에, 미주리주의 자기 집에서 쫓겨난 많은 성도들은 교회가 일리노이주 커머스와 아이오와 준주에 구입한 땅에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고 있었다. 1841년 3월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125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에서 주님은 아이오와 준주에 있는 성도의 집합에 관한 당신의 뜻을 밝히셨다.

브리검 영은 1832년 4월에 침례를 받은 이후부터 어퍼 캐나다, 미국 북동부,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했다. 그가 여러 지역에서 다년간에 걸쳐 선교 사업을 하는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은 큰 희생을 해야만 했다. 1841년 7월 1일에, 브리검 영은 거의 2년 만에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1841년 7월 9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브리검 영을 위한 계시를 받았으며, 이는 교리와 성약 126편에 기록되었다. 이 계시에서 주님께서는 브리검에게 “지난날 같이”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일을 더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26:1)

1842년 9월 1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회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들이 죽은 조상들을 위해 집행한 침례 기록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이 편지는 교리와 성약 127편에 기록되어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머리말에 기록된 9월 6일이 아니라) 1842년 9월 7일에 선지자는 교회 회원들에게 또 다른 편지를 썼고, 이 편지에서 그가 죽은 자를 위한 침례의 올바른 집행과 기록에 관해 가르침을 더 주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또한 이 의식의 교리적 중요성도 설명했다. 이 편지는 교리와 성약 128편에 기록되어 있다.

1840년 8월 15일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일리노이주 나부에서 행해진 시모 브룬슨의 장례식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1841년 3월 6~16일교리와 성약 125편을 받았다.

1841년 7월 1일브리검 영이 영국에서의 선교사 봉사를 마치고 나부에 도착했다.

1841년 7월 9일교리와 성약 126편을 받았다.

1841년 11월 8일일리노이주 나부의 미완공된 성전의 지하실에서 죽은 자의 침례를 위한 임시 침례반을 헌납하였다.

1842년 8월불법 체포와 미주리주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일리노이주 나부 안팎의 여러 곳에 몸을 숨겼다.

1842년 9월 1일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하였고, 이는 교리와 성약 127편에 기록되었다.

1842년 9월 7일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또 다른 편지를 구술하였고, 이는 교리와 성약 128편에 기록되었다.

교리와 성약 125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8년 10월에 릴번 더블유 보그스 주지사가 모든 몰몬들을 미주리주에서 내보내라는 행정 명령을 내린 뒤에, 수천 명의 교회 회원들이 아이오와 준주와 일리노이주로 피신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리노이주 커머스(후에 나부로 불림)에서 약 283만 제곱미터의 땅을 매입하고 아이오와 준주 리군에서 거의 7284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땅을 매입하기로 했다. 마침내 교회의 여러 지부가 아이오와 준주의 제이라헤믈라와 내슈빌, 그리고 기존 몬트로즈군 근처의 다른 소규모 정착지에 세워졌다. 1839년 10월 5일에 열린 교회 총회에서 아이오와 스테이크가 창설되었다. 1841년 3월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125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아이오와 준주에서 교회 회원들이 모일 주요 집합지로 제이라헤믈라와 내슈빌을 지정하셨다. 1841년 8월에 아이오와 스테이크의 이름이 제이라헤믈라 스테이크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회원들이 나부 성전을 짓고 일리노이주 나부에서 다른 건설 사업을 완수하는 일에 힘을 보태야 했기에, 제이라헤믈라 스테이크는 수많은 교회 회원들이 아이오와 준주에서 나부로 이주한 이후 1842년 1월에 해체되었다. (See “Historical context and overview of Doctrine and Covenants 125,” in Dennis L. Largey and Larry E. Dahl, eds., Doctrine and Covenants Reference Companion [2012], 840.)

지도 10: 일리노이주 나부, 1839~1846년

교리와 성약 125편

주님께서 아이오와 준주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지정된 장소로 집합하라고 명하시다

교리와 성약 125편. 성도들의 집합

교리와 성약에 기록된 여러 계시들은 교회 회원들에게 주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 지정하신 장소로 집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교리와 성약 37:3; 57:1~2; 101:20~21; 115:6~8 참조) 이 교회 회원들은 함께 모임으로써 영적인 힘을 얻고, 복음 지침을 받고, 또한 서로 교제하고 교회 지도자들과 친교를 맺는 유익을 누렸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1841년 3월에 받은 계시에서, 주님께서는 아이오와 준주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 그들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여러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교리와 성약 125:2) 그분은 또한 이 성도들이 아이오와 준주의 제이라헤믈라 또는 내슈빌에, “나부 시” 또는 주님께서 정하신 모든 스테이크에 집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25:3~4 참조) 오늘날에 교회 회원들은 특정한 한 장소에 집합하라는 명을 받지 않는다. 그 대신에, 각 회원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있는 해당 스테이크나 선교부 경계 내의 와드나 지부에 속한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발맞추어, 우리가 굳건하게 제대로 발전하고, 또한 미래에 세워질 스테이크들이 성공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갖추며, 현존하는 스테이크들은 영적인 성취 면에서 스테이크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스테이크들은 오늘날 시온의 집합 장소가 되어야 하고, 영적인 성소가 되어야 하며, 가능하다면 여러 면에서 충분히 자급자족해야 합니다.

시온의 스테이크와 지방부는 주님께서 그분의 성도들이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로서 마지막 날에 집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룩한 곳을 상징합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에즈라 태프트 벤슨[2014], 292~293쪽)

아이오와주 몬트로즈, 디모인 요새 표지판

아이오와주 몬트로즈의 디모인 요새가 있던 곳. 몇몇 후기 성도들은 1839년에 미주리주에서 피신한 후 버려진 미 육군 막사에서 살았다.

교리와 성약 126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Brigham Young, America’s Moses, by Kenneth A. Corbett

브리검 영, 미국의 모세, 케네스 에이 코빗. 브리검 영(1801~1877)의 초상화.

브리검 영은 1832년 4월 5일에 침례를 받은 순간부터 선교 사업에 대한 큰 열정을 보여 주었다. 그는 후에 그 당시 자신의 느낌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뢰와 같은 소리로 만방에 복음을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르고 싶었습니다. … 외국에 나가 후기에 주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크게 외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브리검 영[1997], viii)

교회 회원이 된 후 처음 5년간, 브리검 영은 어퍼 캐나다와 뉴욕 그리고 동부의 다른 주들에서 선교사로 봉사했다. 그는 또한 시온 진영에 참가하여 1834년 여름에 오하이오주에서 미주리주까지 행군했다. 1835년 2월 14일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성임되었고, 이후 영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는 중이었던 1840년 4월 14일에 정원회 회장이 되었다. 영 회장은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마친 후 1841년 7월 1일에 아내와 자녀들과 재회했다. 당시 그들은 일리노이주 나부에 살고 있었다. (See Leonard J. Arrington, Brigham Young: American Moses [1985], 413–14.) 1841년 7월 9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브리검 영의 집을 방문하여 그를 만났으며 교리와 성약 126편에 기록된 계시를 구술했다.

교리와 성약 126편

주님께서 브리검 영에게 선교 사업을 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는 일을 더는 요구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다

교리와 성약 126편. “네 헌물이 내가 받아들일 만함이니라”

브리검 영이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집을 비운 동안 부인인 메리 앤과 자녀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1839년 여름, 그와 십이사도 정원회의 다른 일원들이 대영 제국에서 선교 사업을 할 준비를 하던 중에 그 지역에 유행성 말라리아가 발생하여, 브리검과 그의 가족 대부분은 병에 걸렸다.(Lisa Olsen Tait and Chad M. Orton, “네 가족을 특별히 돌볼지어다”, 계시를 받은 배경, history.lds.org 참조) 하지만, 그는 병에 걸렸다고 해서 선교사로 봉사하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상했다. “잉글랜드로 가든지 가다가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각오가 섰습니다. 난 생명과 구원의 복음 안에서 내게 요구되는 것을 행하든가 아니면 그러다가 죽든지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브리검 영[1997], 5쪽)

매리 앤 엔젤 영

매리 앤 엔젤은 1834년 2월 18일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브리검 영과 결혼했다.

브리검 영은 부인인 매리 앤이 네 번째 자녀를 출산한 지 정확히 10일 후였던, 1839년 9월 14일에 아이오와 준주 몬트로즈에서 대영 제국으로 떠났다. 당시 매리 앤은 또한 여전히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있었다. 결혼한 이후로 매리 앤이 선교 사업을 하는 영 회장과 헤어져 있었던 것은 그때가 (시온 진영 원정을 포함하여) 여덟 번째였다. 게다가, 전년도에 미주리주에서 거의 전 재산을 잃고 쫓겨났기 때문에 브리검이 선교 사업을 떠나면서 메리 앤에게 생활비로 남겨 줄 수 있는 돈은 고작 2달러 72센트뿐이었다. 그의 가족에는 브리검이 교회에 가입한 지 약 다섯 달 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첫 번째 부인인 미리암과의 결혼에서 낳은 두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 가족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 믿었으며, 그들은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들이 선교 사업을 하러 떠나 있는 동안 그 가족들의 필요 사항이 충족될 것이라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약속에 의지했다. (See Arrington, Brigham Young, 74–75, 413, 420; “Historical context and overview of Doctrine and Covenants 126,” in Largey and Dahl, Doctrine and Covenants Reference Companion, 841.) 브리검 영과 그의 친구이자 동료 사도인 히버 시 킴볼은 선교 사업을 떠나면서, 심하게 아파서 누워 있던 마차 뒤편에서 일어나 “이스라엘 만세, 만세”라고 크게 외치며 병에 시달리는 가족들의 사기를 북돋았다.(in Orson F. Whitney, The Life of Heber C. Kimball, 3rd ed. [1967], 266) 매리 앤은 남편이 떠나 있는 동안에 아이오와 준주의 몬트로즈에서 일리노이주 나부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문과 창에 담요를 둘러쳐야 하는” 통나무 집을 지었다. 영 회장은 1841년 7월 1일에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나부에서 자신의 가족을 위한 벽돌집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1843년 5월에야 비로소 그의 가족은 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Tait and Orton, “네 가족을 특별히 돌볼지어다”, history.lds.org)

충실하게 순종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한 결과로, 브리검은 주님으로부터 그가 잘 해냈으며 그의 헌물이 주님께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을 받았다.(교리와 성약 126:1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허락과 승인을 얻어 출판된 강의 모음집인 Lectures on Faith[신앙강좌]에 따르면, “이성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갖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실제로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 행로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아는 지식”이다.(Lectures on Faith [1985], 38)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렇게 덧붙였다.

“분명하게도 우리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의 삶을 완전히 최종적으로 승인하시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삶의 기본적인 행로는 승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기본적인 확신을 얻으면, 우리는 신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올바른 방향이 설정되면, 우리는 속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인생 행로’에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포함된 (또한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임무가 있습니다. 이런 임무들은 보통 잘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가 매우 쉬우며 또한 아주 익숙한 것들입니다. 그런 임무에는 성찬을 취함, 모임과 성전에 참석함, 기도, 금식, 경전 공부를 함, 그리스도와 같은 봉사를 베풂, 가족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행함, 선교 사업과 재활동화에 참여함, 계보 사업을 함, 십일조와 헌물을 바침, 현세적으로 준비함 등이 있습니다. …

우리가 이런 측정 가능한 임무들을 올바로 수행할 때, 측정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매우 실제적이며, 아주 가치 있는 일련의 결과들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임무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적이며 우리를 영적으로 강화하는 경험을 거의 항상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런 임무를 수행할 때 우리는 성신의 동반하심을 점점 더 크게 누릴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The Christ-Centered Life,” Ensign, Aug. 1981, 13)

교리와 성약 126:3. “나의 말을 널리 보내며”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리와 성약 126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기 전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들은 보통 교회의 외곽 지역과 선교 임지에서 지역 관리역원의 역할을 수행했다. 브리검 영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다른 일원들이 대영 제국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주님께서는 그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이었던 영 회장에게 더는 그가 가족을 떠나 선교사로 봉사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하셨다.(교리와 성약 126:1 참조) 또한 주님께서는 그에게 교회 본부 가까이에 남아 “나의 말을 널리 보내”라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26:3) 그것은 그가 선교 사업을 감독하게 되리라는 의미였다. 이후에 영 회장은 1842년, 1843년, 1844년에 걸쳐 세 번의 짧은 선교 사업을 더 하기는 했지만, 대개의 경우 일리노이주 나부에 그의 가족과 함께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마지막 3년의 생애 동안 그와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서 배움을 얻는 축복을 누렸다.

교리와 성약 126:3. “네 가족을 특별히 돌볼지어다”

영국에서 귀환한 후에, 브리검 영은 “[그의] 가족을 특별히 돌[보라]”는 주님의 명을 따랐다.(교리와 성약 126:3) 그는 매일 시간을 내어 자녀를 가르치고 함께 기도했으며, 자녀들은 그런 그를 온화하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로 기억했다. 교리와 성약 126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을 때 브리검은 40세였다. 다음 일화는 그가 가족에게 다년간에 걸쳐 보인 헌신을 보여 준다.

“그는 23살에 [첫 번째 아내인] 미리암 앤젤린 워크스와 결혼했다. 이 젊은 부부 사이에 두 딸이 태어났다. 브리검은 의자, 식탁, 찬장을 수리하는 일과 창문, 계단, 벽난로 선반 등을 설치해 주는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했다. …

미리암이 결핵에 걸리자 브리검은 자기 일은 물론이고 아내의 몫이던 집안일도 맡아 했다. 미리암이 병이 악화하면서 자리에 눕게 됨에 따라 브리검은 규칙적으로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짓고, 딸들에게 손수 옷을 입히며, 집안 청소를 도맡아 했다. ‘그는 아내를 벽난로 곁 흔들의자에 데려다 놓고 저녁에 다시 올 때까지 아내를 그곳에 있게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족들을 잠자리에 들게 하고 자신은 집안일을 하고는 했다.[Susa Young Gates and Leah D. Widtsoe, The Life Story of Brigham Young (1930), 5] 그는 어린 시절의 이런저런 경험과 일찍 결혼해 자녀들을 돌보는 일을 통해 가족의 협조와 가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후일 그는 성도들에게 이러한 사항에 대해 권고를 해 주었고, ‘가사에 관한 한 지역 사회의 상당수 여성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다며 장난기 섞인 어조로 자랑을 했다.[Deseret News Weekly, Aug. 12, 1857, 4]”(가르침: 브리검 영, 2쪽)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브리검 영의 집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브리검 영의 집

가족에 대한 책임 수행과 학교 공부, 일, 교회 부름 간에 균형을 맞추는 것을 배우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제일회장단은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1999년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일회장단은 자녀들이 교회에 가까이 머물 수 있도록 해 줄 복음 원리 안에서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에서 부모들이 최선을 다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가정은 의로운 생활의 기초가 되며,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완수하는 일에서 가정을 대신하거나 그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족 기도, 가정의 밤, 복음 공부와 교육, 건전한 가족 활동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두도록 부모와 자녀들에게 권고드립니다. 다른 요구 사항이나 활동이 아무리 합당하고 적절하다고 해도, 이러한 것들이 부모와 가족만이 적절하게 행할 수 있는, 거룩하게 부여된 임무를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제일회장단 서한, 1999년 2월 11일; 또한 교회 지침서 제2권: 교회 관리[2010], 1.4.1 참조)

교리와 성약 127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1840년 8월 15일에 일리노이주 나부에서 열린 시모 브룬슨의 장례식에서 설교를 전하면서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침례에 대한 교리를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게 가르쳤다. 브룬슨은 나부 고등 평의회의 일원이었으며 선지자의 경호원이었다. 그 이후에 곧 교회 회원들은 미시시피강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집행하기 시작했다. (Matthew McBride,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서한”, 계시를 받은 배경, history.lds.org; Susan Easton Black, “A Voice of Gladness,” Ensign, Feb. 2004, 35.) 4개월 후에, 선지자는 대영 제국에서 봉사하던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교리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성도들에게는 돌아가신 친척들을 위해 침례를 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 기꺼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을 받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영옥에 있는 동안 영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을 사람들입니다.”(Letter to Quorum of the Twelve, 15 December 1840, page 6, josephsmithpapers.org)

일리노이주 나부시의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나부 하우스 부두

증기선 선착장인 나부 하우스 부두의 사진. 몇몇 성도들이 이 근처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베풀었다.

주님께서는 나부 성전의 침례반이 완공되기 전에, 성도들이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집행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허락하시면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이는 이 의식이 나의 집에 속한 것이요, 너희가 나를 위하여 내게 집 한 채를 지을 수 없는 가난한 날 외에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음이니라. …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하여 집 한 채를 지을 충분한 시간을 너희에게 허락하노니, 이 기간 동안에는 너희의 침례를 내가 받아들이리라.”(교리와 성약 124:30~31) 1841년 11월 말 즈음에 성전의 벽과 위층 공사가 계속되는 동안, 나부 성전 지하에 커다란 목조 침례반이 준비되었으며, 그 침례반은 “임시로 세운 판자 건물로 … 둘러싸여 있었다.”(see Glen M. Leonard, Nauvoo: A Place of Peace, a People of Promise [2002], 250–51)

1842년 5월에 교회 회원들에 대한 근절령을 내렸던 미주리주 전 주지사 릴번 더블유 보그스가 암살 시도로 부상을 입었다. 미주리주 당국은 폭행 계획을 방조했다는 죄목으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고소했고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의 모든 관리들은 당시 일리노이주 나부에 살고 있던 선지자를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기 위해 미주리주로 송환하려 했다. 미주리주로 다시 돌아간다면 목숨을 잃을 공산이 큼을 알았기에, 선지자는 체포를 피하고자 1842년 8월 초반부터 1842년 12월까지 내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피신하였다. 1843년 1월에 선지자를 체포하고 미주리주로 송환하려는 법적 절차는 불법이라는 공식 판결이 내려졌다. (See “Letter to John M. Bernhisel, 7 September 1842,” pages 2–3, josephsmithpapers.org; “Historical context and overview of Doctrine and Covenants 127,” in Largey and Dahl, Doctrine and Covenants Reference Companion, 842.)

1842년 9월 1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자신의 집에서뿐만 아니라 붉은 벽돌 상점 위층에 있는 방에서도 업무를 보고 있었다.(그곳에서는 보통 교회 업무를 수행했음) 그날 중 어느 때에 선지자는 교회 회원들에게 그가 다시 한번 더 피신하려 함을 알리고,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침례 의식에 관하여 지침을 주는 편지를 썼다. 이틀 후에 그는 다시 한번 더 숨어야만 했다. 1842년 9월 4일에 그 편지가 나부 성전 근처 숲에서 열린 야외 모임에 모여 있던 교회 회원들에게 낭독되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교리와 성약 127편에 기록되어 있다. (See “Journal, December 1841–December 1842,” pages 184189–90, josephsmithpapers.org; “Historical context and overview of Doctrine and Covenants 127,” 842.)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조셉 스미스 농가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조셉 스미스 농가. 선지자와 그의 가족은 1839년부터 1843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교리와 성약 127편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환난을 자랑으로 여기”며 교회 회원들에게 죽은 자에 대한 침례 기록을 작성하라고 권고하다

교리와 성약 127:1~3. “모든 성도는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1842년 5월 6일에 미주리주 전 주지사인 릴번 더블유 보그스의 암살 시도가 있은 후,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몇몇 적들은 선지자가 공격 계획을 도왔다는 거짓 주장을 했다. 정식으로 법적 혐의가 제기되었으며, 1842년 8월 초에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 관리들은 선지자를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기 위해 그를 미주리주로 송환하려 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그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면서,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 “그들이 아무 까닭없이 나를 추적[한다]”라고 설명했다.(교리와 성약 127:1) 1842년 9월 7일에 한 교회 회원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주리주 당국은 이 [일리노이주]의 주요 관리들 몇 명과 함께 … 박해와 잔학 행위로 자신들의 명예를 다시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 즉 이 땅의 율법과 미국의 헌법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체포 과정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불법으로 영장을 발부했으며, 그 사실은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하루하루 저 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도 구하기 위해 이 박해를 피해 숨어야 할 수밖에 없음을 아실 것입니다.”(“Letter to John M. Bernhisel, 7 September 1842,” pages 2–3, josephsmithpapers.org)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중에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부름 받아 지나가야 할 위험에 관하여는 … 그러한 위험은 내게 사소한 일로 밖에 여겨지지 아니 하느니라. … 또 바울과 같이 환난을 자랑으로 여기나니, 이는 이날까지 나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에서 나를 건져 주셨으며, 이후로도 또 나를 건지시리라. 이는, 보라, 또 바라보라, 나는 나의 모든 원수를 이길 것임이라.”(교리와 성약 127:2) 선지자는 “모든 성도는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시요”라고 선언했다.(교리와 성약 127:3) 이 말은 교회 회원들이 위대하신 여호와께서 고대에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위대한 기적을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시대에도 계속 그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리라는 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로버트 디 헤일즈 장로는 왜 하나님께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역경을 경험하게 하셨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세상에서의 어려움에는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애를 통해 그는 질병, 사고, 궁핍, 오해, 거짓 고소 및 심한 박해 등과 같은 그를 낙담케 하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주님은 그러한 장애물로부터 그분의 선지자를 보호하고, 무한한 자원을 제공해 주며, 그를 모함하는 자들의 입을 막지 않으셨습니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각자 좀 더 구주처럼 되기 위해 어떤 경험들을 겪어야 합니다. 필멸이라는 학교에서 종종 고통과 시련이 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련하고 축복하며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신앙은 시련을 통해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줌”, 리아호나, 2003년 5월호, 17쪽)

교리와 성약 127:4. “나의 성전의 일[을] … 계속하고 그치지 말라”

나부 성전 앞에 있는 조셉 스미스, 게리 이 스미스.

나부 성전 앞에 있는 조셉 스미스, 게리 이 스미스. 원래의 나부 성전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사망한 후 완공되었다. 성전은 대부분의 성도가 서부로 떠난 후인 1846년 5월에 헌납되었다.

1841년 1월 19일에 받은 계시에서, 교회 회원들은 일리노이주 나부에 성전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교리와 성약 124:27, 34, 40~44 참조) 1841년 4월 6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나부 성전의 네 모퉁이에 초석을 놓는 일을 감리했다.(see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C-1, pages 1184–86, josephsmithpapers.org) 교회 회원들에게 보낸 1842년 9월 1일 자 편지에서, 선지자는 성도들에게 근면하게 생활하고 성전 건축을 마무리하라고 촉구했다.(교리와 성약 127:4 참조) 오늘날 하워드 더블유 헌터(1907~1995) 회장은 교회 회원들에게 성전 예배에 참여하라며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이 의욕적으로 성전에 참여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우리가 놀라워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모든 성인 회원이 유효한 성전 추천서를 받기에 합당하게 되어, 비록 여러분이 성전과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추천서를 즉시 사용하거나 또는 자주 사용할 수 없다 하더라도, 추천서를 소지하고 있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일들을 통해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성전에 참여하고, 또 성전을 사랑하는 백성이 됩시다. 우리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주 그러나 분별 있게 성전으로 서둘러 가야 합니다. 돌아가신 친족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성전 예배를 통해 개인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서, 즉 거룩하고 성결한 성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신성함과 안전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모두 성전에 가야 합니다. 성전에 참여함에 따라 우리는 더욱더 충만하고 심오하게 인생의 목적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전 예배와 성전 성약, 그리고 성전 결혼을 함으로써 성전을 우리의 궁극적인 지상 목표로 삼고, 필멸의 생에서 최고의 경험을 하는 곳으로 만듭시다. …

… 선지자들이 말한 것처럼 성전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성전은 계시를 받는 곳이며 평화로운 곳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집입니다. 성전은 주님께 거룩한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거룩하고 중요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성전 참여를 권고 받는 사람들”, 성도의 벗, 1995년 5월호, 6~7쪽)

교리와 성약 127:5. “너희의 죽은 자를 위한 침례”

교리와 성약 127편 5절128편 14절에 기록되었듯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성도들이 대리 침례를 받아 주는 사람들을 “너희의 죽은 자”라고 불렀다. 이는 그들의 돌아가신 선조들을 의미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쿠엔틴 엘 쿡 장로는 우리가 가족 역사와 성전 봉사에 참여할 때, 우리의 주된 책임은 우리 자신의 조상들을 찾고 그들을 위해 구원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주님은 계시로 주신 첫 지시에서 ‘너희의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언급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27:5; 강조체 추가] 우리에게 주어진 교리적인 의무는 우리 조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천국에 있는 해의 왕국이라는 조직이 가족에 토대를 두기 때문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필딩 스미스(2013), 68쪽 참조] 제일회장단은 회원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 독신 성인들에게 가족 역사 사업과 자신의 가계에 속한 조상, 또는 자신이 속한 와드나 스테이크 회원들의 조상을 위한 의식에 중점을 두라고 권고하셨습니다.[2012년 10월 8일자 제일회장단 서한 참조] 우리는 우리의 뿌리와 가지 양쪽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왕국에 연결된다는 개념은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뿌리와 가지”, 리아호나, 2014년 5월호, 45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조상들을 위한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축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상에 대해 연구하고 찾아서 [여러분의] 돌아가신 친족들을 위해 주님의 집에서 대리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교리와 성약 124:28~36 참조) 또한 가족 역사를 조사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이 권고에 신앙으로 응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조상에게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약속이 여러분의 마음에 뿌리내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혈통을 선언하는 축복사의 축복을 통해 여러분은 그 조상들에게 연결되고, 그 혈통은 여러분에게 더 큰 의미를 띠게 될 것입니다. 선조를 더 사랑하고 그분들께 더 깊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구주에 대한 간증과 개종이 더욱 깊어지고 확고해질 것입니다. 또한 대적이 미치는 강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이 성스러운 사업에 참여하고 이 사업을 사랑한다면 청소년 시기뿐 아니라 평생토록 보호될 것입니다.”(“자녀들의 마음은 돌이[켜질 것입니다]”, 리아호나, 2011년 11월호, 26~27쪽)

교리와 성약 127:5~7, 9. “모든 기록을 정리하[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리와 성약 127편에 기록된 편지를 쓰기 전날인 1842년 8월 31일에, 그는 성전 서편에 있는 숲에서 열린 야외 모임에서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 회원들을 만났다. 그 모임에서 엘리자 알 스노우가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선지자는 “[자신이 피신해 있는 동안]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몇 가지 것들이 분명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매들에게 “죽은 자를 위해 침례를 받는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 기록자를 참석시켜서 그 의식을 증거하는 목격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라고 간단히 설명했다.(in The First Fifty Years of Relief Society: Key Documents in Latter-day Saint Women’s History, ed. Jill Mulvay Derr and others [2016], 94–95) 주님께서는 교리와 성약에 기록된 계시들을 통해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교리와 성약 21:1; 47:1, 3~4; 69:8 참조) 그런 기록들에는 일지 및 회의록, 기타 역사 문서 등이 있다. 1842년 9월 1일 자 편지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기록 보존이 성전 의식 사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가르쳤다. 성전 사업과 관련된 기록은 “정리하여 나의 거룩한 성전의 기록 보관소에 넣어 두어 대대로 기억되게 [해야 했다.]”(교리와 성약 127:9)

처음에, 즉 추가 지시를 받기 전에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침례]를 집행했을 때,” 교회 회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 기록을 항상 정확하게 작성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때로는 대리인들이 성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침례를 받기도 했고, 종종 증인 없이 의식이 집행되기도 했다. (McBride,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서한”, history.lds.org 참조)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존재는 자신의 유한한 피조물에게 율법을 줄 때 그 율법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능력에 맞게 주는데, 죽은 자를 위한 침례 교리가 처음 주어졌을 때 이 교회는 초기 단계[에 있었기에,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

… [죽은 자를 위한 침례가] 처음 계시되었을 때 그것의 모든 순서가 알려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 후에 그것이 알려져서 기록, 서기, 한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그분의 백성에게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주시는 방식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주님은 그들의 지혜를 키워 주셨으며, 조금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이들은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Speech,” Times and Seasons, July 1, 1845, 954; 또한 McBride,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서한”, history.lds.org 참조)

교리와 성약 127:8. “내가 신권에 관한 많은 일을 바야흐로 … 회복하려 하고 있음이니라”

주님은 일리노이주 나부에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이 집이 나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되게 하여 내가 그 안에서 나의 백성에게 나의 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할지어다.”(교리와 성약 124:40)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와 성도들은 가능한 한 빨리 주님의 집을 건축하는 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선지자는 공사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리며, 성도들에게는 성전의 충만한 축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1842년 5월 4일에, 성전이 완공되지 않았는데도, 조셉 스미스는 몇몇 충실한 형제들을 위해 엔다우먼트를 집행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413쪽) 그는 후에 성도들에게 영원한 결혼의 교리를 가르치고 인봉 의식을 소개했다.(교리와 성약 131:1~4; 132:19~25 참조)

나부 성전의 일몰 광경

일리노이주 나부 성전은 2002년 6월에 원래의 나부 성전이 있던 장소에서 헌납되었다.

교리와 성약 128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42년 9월 3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가족과 함께 집에 있었을 때, 그는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의 보안관들이 그를 체포하여 미주리주로 송환하려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지자는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와 마침내 그날 저녁에 에드워드 헌터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See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D-1, page 1 [addenda], josephsmithpapers.org.) 다음 날, 선지자가 1842년 9월 1일에 쓴 편지가 나부 성전 근처 숲에서 야외 모임을 하려고 모여 있던 교회 회원들에게 낭독되었다.(본 장에서 “교리와 성약127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참조) 9월 7일에 헌터 형제의 집에 피신해 있던 선지자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긴 서한을 구술했으며 그것을 그 주 안식일에 낭독하도록 지시했다.”(“Journal, December 1841–December 1842,” page 192, josephsmithpapers.org) 그 편지의 내용은 교리와 성약 128편에 기록되어 있다.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에드워드 헌터의 집

일리노이주 나부에 있는 에드워드 헌터의 집. 1842년 9월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체포되어 미주리주로 송환되지 않으려고 이곳에 머물렀다. 선지자는 이곳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에 관한 두 통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들은 오늘날 교리와 성약 127편128편에 기록되어 있다.

교리와 성약 128:1~18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구원 의식의 기록 보존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다

교리와 성약 128:1~5. “창세 이전부터 … 예비하신 의식”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중 수십억에 달하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없이, 필수적인 침례 의식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니파이후서 2:6~7; 앨마서 9:27 참조) 죽은 자의 구속에 대한 교리의 회복은 필멸의 기간 동안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 없이 죽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방법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음을 보여 준다.(교리와 성약 128:22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1842년 9월 7일 자 편지에서,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은 “창세 이전부터 … 예비”되었다고 설명했다.(교리와 성약 128:5)

교리와 성약 128:6~10. “너희가 기록하는 것이 모두 하늘에서도 기록되게 하려 함이니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성스러운 의식 사업의 기록을 포함하여 우리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 “땅 위에서 작성되”며, 이와 유사한 기록이 “하늘에서 작성”된다고 가르쳤다.(교리와 성약 128:7) 이 기록들은 언젠가 죽은 자들이 심판받을 때 펴질 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교리와 성약 128:6~7 참조; 또한 요한계시록 20:12; 제3니파이 27:24~26 참조) 선지자는 의식을 집행하고 기록하는 데 사용된 신권의 권능을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라고 선언하시며 약속하신 인봉 권능에 비유했다.(교리와 성약 128:10; 또한 마태복음 16:18~19 참조) 선지자는 또한 매다라는 말을 기록하다는 말과 연결하여 성경 구절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기록하면 하늘에서도 기록될 것이요,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기록하지 아니하면 하늘에서도 기록되지 아니할 것이니라.”(교리와 성약 128:8) 이런 신권의 매는 권능 또는 인봉 권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지상에서 행한 의식들은 하늘에서도 매는 권능을 갖게 된다.

교리와 성약 128:11. 주님의 선지자는 신권 열쇠를 통해 지식과 영적 권능을 얻는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그에게 부여된 “열쇠”와 “성신권의 권능”이 “산 자를 위한 것이든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든지, 사람의 자녀들의 구원에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자격을 갖게 했다고 설명했다.(교리와 성약 128:11)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계승한 후기의 선지자들에게 같은 신권 열쇠가 맡겨졌으므로, 그들은 죽은 자의 구원에 대한 더 큰 이해력을 구할 수 있다.

교리와 성약 128:12~14. “무덤의 상징”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물에 의한 침례 의식 [즉] … 물 속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아옴은 그들의 무덤에서 나아오는 죽은 자의 부활의 형상이니라.”(교리와 성약 128:12) 그는 또한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받는] 침례반은 무덤의 상징으로 제정되었”으므로 나부 성전의 지하층에 위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것을 “산 자들이 흔히 모이는 곳 아래에 두[어야 하며], 이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나타내기 위함이요, 모든 것이 그와 닮은 것이 있게” 함이라고 설명했다.(교리와 성약 128:13)

나부 성전 침례반의 구상 스케치

나부 성전을 건축할 때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침례반을 지하실에 두도록 지시하고, 깎아 만든 열두 마리의 황소 등에 얹힌 상태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주님께서는 침례반을 성전의 기초, 즉 지표면 아래에 두셨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데, 이것은 죽은 자들이 무덤에 있는 것과, 우리가 그들을 대신해 침례를 받을 때 우리가 죽은 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침례는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사실상 실제로 침례는 죄의 삶, 즉 영적인 죽음에서 영적인 생명이 있는 삶으로의 부활을 나타낸다. (교리와 성약 29:41~45 참조) 그러므로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이 의식들이 수행될 때, 이 교리가 산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하나님의 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여겨진다.”(Church History and Modern Revelation, 2:332)

교리와 성약 128:15~18. “전체적이고도 철저하고 완전한 연합”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구약의 선지자인 말라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은 “아버지[들과] 자녀[들] 간에 일종의 굳게 매는 연결”을 구축하며(교리와 성약 128:18),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려고 마련되었다고 가르쳤다.(교리와 성약 128:17; 또한 말라기 4:6 참조) 또한 선지자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사용하여, 돌아가신 우리 조상들의 “구원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고도 불가결”하다고 가르쳤으며,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죽은 자]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함과 같이 우리의 죽은 자가 아니면 우리도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교리와 성약 128:15; 또한 히브리서 11:40 참조)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가족의 조직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각 세대가 고리들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모든 후손을 다스리는 천사장 미가엘, 즉 가장인 아담이 이루는 대가족이 될 것입니다.”(Doctrines of Salvation, comp. Bruce R. McConkie [1955], 2:175)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과정은 죽은 자를 위한 침례 의식으로 시작되지만, 돌아가신 우리 조상들이 다른 구원 의식들을 대리로 받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구원 의식들은 반드시 성전에서 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식들은 확인, 성신의 은사를 받음, 남성의 경우 멜기세덱 신권에 성임됨, 성전 엔다우먼트, 가족 인봉 등이다. 교회 회원들은 유타주로 이주한 후에야 비로소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한 엔다우먼트와 인봉 의식을 집행하기 시작했다.(see Richard O. Cowan, “The Unfolding Restoration of Temple Work,” Ensign, Dec. 2001, 39) 쿠엔틴 엘 쿡 장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족을 결합시키는 교리는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해 계시되었습니다. 대리 의식은 영원한 가족을 함께 묶고,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일의 중심에 있습니다.”(“뿌리와 가지”, 45쪽)

교리와 성약 128:19~25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회복된 복음을 크게 기뻐하며, 죽은 자를 위한 침례를 집행함으로써 어떻게 교회 회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다

교리와 성약 128:19~23. 만유의 회복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128편에 기록된 편지를 썼을 당시에 불법적인 추격을 당하며 숨어 지내고 있었지만, 편지를 끝맺으며 복음의 회복이 가져다주는 축복에 대한 놀라운 요약을 덧붙였다. 비록 우리가 “악마 … 를 간파한 … 미가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며(교리와 성약 128:20), 라파엘 천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지만(교리와 성약 128:21 참조), 선지자의 말씀은 특히 죽은 자의 구속에 대한 영광스러운 교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나부 숲의 벤치와 설교단

많은 성도들은 일리노이주 나부의 몇몇 나무숲 그늘에 모여 야외 모임을 가졌다.

교리와 성약 128:22. “옥에 갇힌 자들이 놓여날 것임이니라”

경전에서는 종종 구원 의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영의 세계의 일부를 감옥 또는 어둠의 장소로 나타낸다.(이사야 24:22; 베드로전서 3:19; 앨마서 40:13~14; 교리와 성약 38:5; 138:18, 22, 30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침례 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죽은 자들을] 그 옥에서 구속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으니] … 이는 옥에 갇힌 자들이 놓여날 것임이니라.”라고 발표했다.(교리와 성약 128:22) 쿠엔틴 엘 쿡 장로는 교회 회원들에게 우리가 성전에서 수행하는 의식들이 어떻게 우리 조상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숙고해 보도록 권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휘장 저편에서 영옥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구원의 의식을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란 “억류 또는 속박된 상태”로 정의됩니다.[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11th ed. (2003), ‘prison’] …

한 신앙심이 깊은 자매님은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겪은 특별한 영적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확인실에 있는 동안, 대리 확인 의식문이 낭독된 후에 ‘그리고 옥에 갇힌 자는 놓여날 것임이니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순간 그 자매님은 침례 및 확인 의식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 대해 큰 긴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귀가하자마자 자신이 들은 성구를 찾다가, 교리와 성약 128편에서 조셉 스미스가 선언한 다음 내용을 발견했습니다.[교리와 성약 128:22; 또한 교리와 성약 138:42]”(“뿌리와 가지”, 46쪽 참조) 또한 이와 유사한 표현은 이사야 61장 1절에서 이사야가 전한 메시야의 예언에도 나온다.

교리와 성약 128:24. “의로운 가운데 헌물”

복음이 회복된 목적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가 쓴 말씀에 부연하여, “[주님이] 임하시는 날을 [능히 당할 사람은]” 그분께 “[그들의] 죽은 자의 기록”을 “의로운 가운데 헌물”로 바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돌아가신 조상들을 대신하여 구원 의식을 행하였음을 보이는 기록을 의미한다.(교리와 성약 128:24; 또한 말라기 3:2~3 참조) 교리와 성약 128편 24절을 인용한 후, 칠십인 정원회의 앨런 에프 패커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이 ‘책’은 교회의 패밀리 트리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이름과 의식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제가 그 데이터베이스의 기록을 확인하고 추가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이 그 책 안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

가족 역사는 단지 계보나 특정 규칙이나 이름, 날짜, 장소 등의 정보에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에 집중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가족 역사는 우리가 자신의 역사를 창조해 가는 현재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후손을 통해 앞으로의 역사를 만들어 갈 우리의 미래도 포함합니다. …

성찬을 취하고, 모임에 참석하며, 경전을 읽고, 개인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족 역사 및 성전 사업은 개인적인 예배의 정기적인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들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이 예언적인 권유에 응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모든 회원이 이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 이제 가족 역사 사업을 하기가 훨씬 더 쉬워졌으며, 이 일이 제한받는 것은 오직 이것을 얼마나 많은 회원들이 우선순위에 두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이 사업을 하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과 희생이 요구되지만, 수년 전에 비해 비교적 쉽게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을 돕기 위해 교회는 기록을 수집하고 도구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가정이나 와드 건물 및 성전에서 이 사업의 많은 부분을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애물이 제거되었습니다.여러분이 가족 역사를 과거에 어떻게 생각했든지 간에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업을 하는 것을 개인이 주저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결심과 약간의 수고뿐입니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지속적으로 약간의 시간을 내면, 이 사업에서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디고, 배우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여러분을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서 성전으로 가지고 간 이름들은 그 ‘책’에 기록될 것입니다.[교리와 성약 128:24]”(“책”, 리아호나, 2014년 11월호, 100~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