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44장: 교리와 성약 111~114편


“제44장: 교리와 성약 111~114편”,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2017)

“제44장”,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

제44장

교리와 성약 111~114편

소개 및 연대

1836년 여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부채를 청산할 방안을 찾기 위해 메사추세츠주 살렘으로 갔다. 1836년 8월 6일, 형제들이 살렘에 머무는 동안 주님께서 선지자에게 교리와 성약 111편에 기록된 계시를 주셨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선지자에게 “시온의 유익을 위하여 많은 보화를 [살렘]에 가지고 있”다고(교리와 성약 111:2) 말씀하셨고, 교회의 부채와 시온의 미래에 관한 염려에 답하셨다.

1837년에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토머스 비 마쉬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있는 정원회 일원들 사이에 일어난 불화와 모반을 걱정했다. 또한 그는 선교 사업과 관련하여 알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그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조언을 구했고, 1837년 7월 23일에 주님께서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계시를 주셨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토머스 비 마쉬에게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과 토머스의 회장 부름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다.

1838년 3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정착한 후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사야의 특정 구절에 관한 질문에 대한 응답을 계시로 받아 구술하였다. 교리와 성약 113편에 기록된 이 질문과 답은 후기의 회복과 시온의 구속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명확히 해 준다.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이주한 직후인 1838년 4월 11일,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114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에게 향후의 선교 사업을 준비하도록 명하시고, 모반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충실하지 않으면 “감독 직분” 혹은 부름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교리와 성약 114:2)

1836년 8월 5일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반자들이 매사추세츠주 살렘에 도착했다.

1836년 8월 6일교리와 성약 111편을 받았다.

1837년 봄과 여름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여러 교회 지도자들과 회원들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1837년 여름사도인 토머스 비 마쉬와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 윌리엄 스미스가 십이사도 정원회 내부의 반목과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미주리주 파웨스트를 떠나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갔다.

1837년 7월 23일교리와 성약 112편을 받았다.

1838년 1월 12일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이 폭도들을 피해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향했다.

1838년 3월교리와 성약 113편을 받았다.

1838년 4월 11일교리와 성약 114편을 받았다.

1838년 10월 25일교리와 성약 114편의 계시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받은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 장로가 6개월 후 크룩트강 전투에서 총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교리와 성약  111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6년 7월 25일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난 선지자 조셉 스미스, 하이럼 스미스, 시드니 리그돈, 올리버 카우드리가 뉴욕시와 보스턴을 거쳐 1836년 8월 5일에 매사추세츠주 살렘에 도착했다. 그들은 9월 중순에 다시 커틀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지 3주 동안 살렘에 머물렀다. (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ed. Brent M. Rogers and others [2017], 271–72.) 이들 교회 지도자들이 왜 살렘에 갔는지 설명해 주는 당시의 기록은 없지만, 이후의 기록을 통해 이 여행의 목적을 추측할 수는 있다.

1836년 여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재정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지난 몇 해 동안 교회는 커틀랜드 성전을 짓고, 오하이오와 미주리에서 땅을 사들이고, 시온 진영에 자금을 지원하라는 주님의 명을 따르면서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또한, 교회는 강제로 추방된 미주리 성도들을 위해 땅을 매입할 자금이 필요했다. 1834년에 주님은 선지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모든 부채를 갚”으라고 지시하셨다.(교리와 성약 104:78) 그러나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시드니 길버트의 상점이나 윌리엄 더블유 펠프스의 인쇄소처럼 수익을 내는 사업을 잃었으므로 부채를 청산할 방법이 없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일행이 메사추세츠주 살렘을 다녀가고 53년이 흐른 후, 과거 교회 회원이었던 에베네저 로빈슨이 그 방문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1836년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온 버지스 형제라는 교회 회원이 “매사추세츠주 살렘의 어느 집 지하실에 상당한 금액의 돈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 집은 한 과부의 소유였는데, 이제는 그 집에 관해서나 그 집의 위치에 관해 아는 사람이 본인 말고는 생존해 있지 않다고 했다.”(in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4)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버지스 형제의 주장을 듣고 교회의 부채를 일부라도 갚기 위해 그 숨겨진 돈을 찾으러 매사추세츠 살렘으로 가는 결정을 했을 수 있다. 로빈슨의 기록에 따르면, 버지스 형제는 살렘에서 이 형제들을 만났으나 도시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 돈이 숨겨진 집을 찾지 못했고, 곧 살렘을 떠났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4) 선지자 조셉 스미스, 시드니 리그돈, 올리버 카우드리, 하이럼 스미스는 살렘에서 집을 한 채 빌려 지내며 몇 주 동안 복음을 전파하고, 지역 사적지를 방문하고, 부채 상환에 도움이 될 보물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836년 8월 6일에 형제들이 살렘이 머무는 동안 주님께서 선지자에게 교리와 성약 111편에 기록된 계시를 주셨다. 이 계시는 선지자의 생전에는 교리와 성약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1876년판부터는 추가되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7)

지도 3: 미국 북동부

교리와 성약 111편

주님께서 살렘 여행에 관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을 위로하시고 교회의 부채 문제와 시온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주시다

교리와 성약 111:1. “나[는] … 너희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 , 불쾌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일행이 매사추세츠주 살렘으로 간 목적의 하나는 교회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어느 집에 돈이 숨겨져 있다는 버지스 형제의 주장을 부채로부터 “[그들의] 구제를 위한 방편을 [그들]에게 보내[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았을 수 있다.(교리와 성약 104:80)

주님은 당신의 종들이 살렘으로 간 동기를 이해하시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 주 너희 하나님은 너희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살렘으로] 이 여행을 온 것을 불쾌히 여기지 아니하노라.”(교리와 성약 111:1) 어리석음이란 실수나 판단의 오류를 말한다. 이들이 버지스 형제의 주장을 믿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교회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어리석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리와 성약 111편에 기록된 계시에서 주님은 그들에게 계속해서 도움과 인도를 주시겠다고 자비롭게 약속하셨다.

주님께서 이 교회 지도자들의 실수를 인정하신 것은 실수를 하는 것과 죄를 범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말해 준다. 십이사도 정원회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며, 또한 실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실수는 필멸의 삶의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모든 오류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은 모든 성장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구주께서는 잘못된 투자로 손실을 볼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골몰하여 자신의 달란트를 숨기고 그것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종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종은 주인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25:24~30 참조)

우리의 실수를 기꺼이 바로잡고자 한다면, … 죄 없는 실수는 성장과 발전의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Sins and Mistakes,” Ensign, October 1996, 67)

선지자와 그의 일행이 실수를 하긴 했으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여행을 성과 있는 노력으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셨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진지하게 주님께 순종하려 노력할 때, 주님은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많은 선을 이루도록 도와주신다.

교리와 성약 111:2~4. “너희를 위하여 … 많은 보화를 이 도시에 가지고 있고”

주님께서는 그가 “[매사추세츠주 살렘에] 많은 보화를” 가지고 계시며 “시온의 유익을 위하여 … [그가] 집합시킬 많은 백성을 [살렘에] 가지고 있느니라”라고 설명하셨다.(교리와 성약 111:2)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 동반자들은 살렘에 머무는 동안에 있었던 선교 사업의 성공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방문은 이 약속이 주어지고 5년 뒤에 결실을 맺었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1841년 7월에 개최된 교회의 대회에서 제일회장단의 하이럼 스미스와 윌리엄 로는 에라스터스 스노우 장로와 벤자민 윈체스터 장로에게 살렘에 관한 지시를 남겼다. 그 지시에는 [현재 교리와 성약 111편에 기록된 계시]의 사본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계시가 성취될 ‘주님의 시간이 도래했고’ 살렘의 백성이 주님의 왕국으로 모아들여질 것이라는 제일회장단의 믿음이 표현되어 있다.”(Elizabeth Kuehn, “보화가 하나만이 아니라 더 많이”, 계시를 받은 배경, history.lds.org; see also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5)

스노우 장로와 윈체스터 장로는 1841년 9월 3일에 매사추세츠주 살렘에 도착했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으나 처음에는 성과가 없었다. 일주일 후에 윈체스터 장로는 필라델피아로 갔고 스노우 장로는 살렘에 남았다. 스노우 장로는 여러 달 동안 복음을 전파한 후, 1841년 11월에 살렘에서 최초의 개종자들에게 침례를 주었다. 1842년 3월 5일에 그는 살렘에 53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지부를 조직했다. 1843년 2월까지 살렘 지부는 두 배 이상 커져서 회원이 110명이 되었다. 이 개종자들의 일부는 살렘에 남아 그 지역에서 교회가 성장하도록 도왔으나, 이들 중 많은 수는 결국 일리노이주 나부로 이주했고, 이후에 성도들과 함께 솔트레이크 밸리로 갔다.갔다.가 (Kuehn, “보화가 하나만이 아니라 더 많이” , history.lds.org 참조; see also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5.)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반자들에게 “시온의 유익을 위하여 [그가] 집합시킬 많은 백성을 [살렘에] 가지고 있느니라”라고 약속하신 것에 더하여(교리와 성약 111:2), 주님께서는 “내가 이 도시를 너희 손에 줄 터인즉 너희는 이 도시를 다스릴 권능을 가지게 될 것이라.”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111:4) 그런 후 주님께서는 “그들은 너희의 은밀한 부분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시며 히브리인들의 경구를 인용하셨는데(교리와 성약 111:4; 또한 이사야 3:17 참조), 이는 교회 회원들이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거나 멸시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또한 “금과 은에 관련된 이 도시의 부는 [그들의] 것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살렘에서 발견한 현세적인 부가 시온에 도움이 될 것임을 알려 주셨다.(교리와 성약 111:4)

교리와 성약 111:5. “너희 부채에 대하여는 염려하지 말라”

1834년 4월 23일에 주님께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모든 부채를 갚”으라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부지런하고 겸손하며 신앙의 기도를 행사하는 만큼, 보라, 내가 너희의 구제를 위한 방편을 너희에게 보내기까지 너희가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의 마음을 내가 부드럽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104:78, 80) 2년 후에 교회는 커틀랜드에 성전 부지를 매입하여 성전을 짓고, 오하이오와 미주리에서 땅을 사들이며, 시온 진영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지게 되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부채 상환 문제에 대한 근심이 날로 커져 갔다. 1836년 8월 6일에 매사추세츠주 살렘에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받은 계시에서 주님은 다시 한번 교회 지도자들을 위로하셨다. “너희 부채에 대하여는 염려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그것을 갚을 힘을 줄 것임이니라.”(교리와 성약 111:5) 주님은 당신의 시간표에 따라 그 약속을 성취하셨으며, 교회는 점차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로렌조 스노우[2011], 159~160쪽 참조)

교리와 성약 111:7~8.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바 너희가 주로 머물러야 할 곳은 … 나의 영[으로써] … 너희에게 신호하여 주리라”

주님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반자들에게 “[매사추세츠주 살렘]과 그 주변 지역에 머물라”라고 지시하셨다.(교리와 성약 111:7) 주님은 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당신의] 영의 평강과 권능”으로 “머물러야 할 곳”을 알 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111:8) 우리도 영의 속삭임을 통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매사추세츠주 살렘의 유니온 거리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1836년 8월에 매사추세츠주 살렘의 유니온 거리에 머무르는 동안 계시를 받았다.

십이사도 정원회 엘 톰 페리(1922~2015) 장로는 이 원리를 잘 보여 주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총관리 역원으로 부름받기 전에 여러 해 동안 일했던 소매업 회사가 더 큰 회사에 합병된 일을 들려주었다.

“몇 개월도 안 되어 저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 기업주는 제가 어떤 신탁을 위반하기를 원했는데 이는 제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긴 토의 후, 그들은 여전히 강요했으며 저는 계속해서 거절했습니다. 그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는 저는 회사를 떠나는 데 동의했습니다. 저에게 그 시기는 매우 절박한 때였습니다. 아내의 병이 깊어 많은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으며, 딸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아들은 선교 사업 중이었습니다. 저는 경비를 충당할 정도의 사업 자문 업무를 보면서 이듬해를 보냈습니다.

약 1년 동안을 고생한 끝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으며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에 관해 논의해 보자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주 좋은 계약 조건을 협상했으며, 그 기회가 주어진 것을 아주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의논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신중하게 의논한 후, 저는 가족들에게 이 일이 올바른 일임을 확신시켰습니다. 그 제의를 수락하기 위해 회사로 전화를 하는 중에,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강하고 힘 있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음성은 ‘그 제의를 거절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의를 거절했지만 무척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왜 그것을 거절하라는 얘기를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2층에 있는 침실로 가서 침대에 앉아 경전을 펼쳤습니다. 그때, 교리와 성약 111편이 펴졌습니다. 이 편은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매사추세츠주에서 받은 유일한 편이었습니다. 다음 구절들이 그 장에서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너희 부채에 대하여는 염려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그것을 갚을 힘을 줄 것임이니라. …

이 곳과 이 주변 지역에 머물라.’(교리와 성약 111:5, 7)

큰 평온이 제 영혼에 찾아들었습니다. 며칠 후에 저는 보스턴에서 좋은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몇 개월 후에 저는 제일회장단 제1보좌였던 헤롤드 비 리 회장님을 주연사로 모시고 대회를 개최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대회는 영광스럽고 성공적이었으며, 우리는 리 회장님의 말씀을 흡족히 취했습니다. 그해 7월에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이 작고하시고 리 회장님이 선지자가 되셨습니다. 3개월 후 저는 솔트레이크로 오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제 직업을 떠나 교회 총관리 역원이 되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종종 만일 제가 보스턴 지역을 떠나지 말라고 권고했던 성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선을 행하도록 인도하는 영”, 성도의 벗, 1997년 7월호, 69~70쪽)

교리와 성약 111:9~10. “그리고 이 도시의 더 옛적의 주민과 설립자에 관하여 부지런히 조사하라”

“이 도시의 더 옛적의 주민과 설립자에 관하여 부지런히 조사하라”라는 주님의 명에 순종하여(교리와 성약 111:9),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반자들은 매사추세츠주 살렘에 머무는 동안 살렘과 그 주변 지역을 여행하며 박물관과 사적지와 도서관들을 방문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78, note 248) 그들은 1600년대 초반에 그 도시를 세운 청교도들과 미국 독립 전쟁 및 미합중국의 설립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see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age 749, josephsmithpapers.org)

일부 형제들은 살렘에서 있었던 마녀 재판에 관해 연구하기도 했다.(see Oliver Cowdery, “Prospectus,” Latter Day Saints’ Messenger and Advocate, Oct. 1836, 388–91) 또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반자들은 찰스타운 어설린 수도원 유적지도 방문했는데, 이곳은 종교적 편협성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는 폭도들이 파괴한 곳이었다. 이 경험에 관해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사람은 언제쯤 사람과의 전쟁을 멈추고 양심에 따라 자신의 신을 예배할 신성한 권리를 강탈하는 짓을 멈출 것인가? 거룩하신 아버지여, 그 날이 속히 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in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age 749, josephsmithpapers.org)

교리와 성약 111:11. “너희가 받을 수 있는 대로 속히 내가 너희 유익을 위하여 만사를 명하리라”

주님께서는 당신의 지혜와 자비, 미리 아시는 능력으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 일행에게 그들의 “어리석음”(교리와 성약 111:1)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주셨고, 매사추세츠주 살렘의 사람들이 장차 축복을 받도록 기초를 놓으며 현재의 경험을 통해 유익을 얻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계속하여 충실하다면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만사를” “명”하거나 도모하실 수 있으시다. 축복과 성장의 기회가 늘 우리가 예측하는 방법으로 오지는 않으나,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대로 속히” 주님의 시간에 따라 받게 될 것이다.(교리와 성약 111:11)

교리와 성약  112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6년 10월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시를 개발하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또 교회 부채를 덜기 위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 지도자들은 커틀랜드와 그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커틀랜드에 은행을 열 준비를 했다. 은행의 이름은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은행이 될 것이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85)

오하이오주로부터 은행 허가, 또는 은행 거래를 위한 권한을 받는 데 실패한 후,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 지도자들은 1837년 1월 2일에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합자회사로 재조직했다. 이것은 교회 회원들이 회사 주식을 매입하여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공동소유자가 됨으로써 회사 운영 자금 마련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July 1835–June 1838, 286–39) 선지자는 1837년 1월호 후기 성도 메신저 앤 애드보케이트(Latter Day Saints’ Messenger and Advocate) 신문에 기고하여 교회 회원들에게 이 새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도록 요청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325)

하지만 그들은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를 열자마자 즉시 반대에 부닥쳤다. 지역 신문들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수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으며 독자들에게 그것을 받아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커틀랜드와 그 주변의 개인들은 또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사업을 중단했고 고객들이 이 회사의 수표를 가져가도 현금으로 교환해 주지 않을 거라는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적극적으로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in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287–88) 또한 은행 설립 허가서 없이 은행과 같은 영업을 한다는 이유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임원들을 상대로 여러 건의 소송이 벌어졌다. 게다가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주주들이 충분한 재원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July 1835–June 1838, 291–39) 이 모든 어려움에 더하여, 후에 1837년 공황으로 알려진 국가적 경제 위기가 1837년 봄에 시작되었고, 그 여파로 미국 전역에서 수백 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363)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수표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 은행이 1837년에 개점했으나 국가적 경제 위기와 교회에 대한 반대로 은행은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가족은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에 상당한 투자를 했기에 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이었다. 그러나 세이프티 소사이어티가 일련의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조셉과 그의 일가는 조셉의 조언에 따라 자신들의 주식을 환매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의 주식을 올리버 그랜저와 제러드 카터에게 넘겨서 모든 부채를 온전히 상환하도록 했다. (See Mark Lyman Staker, Hearken, O Ye People: The Historical Setting for Joseph Smith’s Ohio Revelations [2009], 528.) 그해 7월까지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운영을 다른 이들에게 이양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418)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1837년 여름이 끝날 무렵 문을 닫았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366)

이 기간에 교회는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후에 교회의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단 제2보좌로 봉사한 엘리자 알 스노우는 커틀랜드의 많은 교회 회원이 교만해졌고 주님의 영을 잃은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커틀랜드에서 성도들 사이에 크나큰 어려움이 지속되었다. 투기 심리가 [부유해지고픈 열망이] 일부 사도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정원회도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Biography and Family Record of Lorenzo Snow [1884], 20) 1837년 내내 경제적 고난과 교회에 대한 반대가 꾸준히 증가했다. 몇몇 교회 지도자들과 회원들은 공공연히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비난했고,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의 문제를 그의 탓으로 돌렸으며, 심지어 그를 타락한 선지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커틀랜드에 있는 십이사도 중에서 오직 두 사람, 브리검 영과 히버 시 킴볼만이 이 기간 동안 변함없이 선지자를 지지했다. (See Ronald K. Esplin, “‘Exalt Not Yourselves’: The Revelations and Thomas B. Marsh, an Object Lesson for Our Day,” in Sperry Symposium Classics: The Doctrine and Covenants, ed. Craig K. Manscill [2004], 281.)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이며 당시 미주리주에 살고 있었던 토머스 비 마쉬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교회 회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 들었고 동료 사도 중 일부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반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상황을 깊이 우려했다. 또한 그는 동료 사도인 팔리 피 프랫이 정원회 회장과 의논하지 않고 외국으로 선교 사업을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상했다. 토머스 비 마쉬는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선교 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See Esplin, “Exalt Not Yourselves,” 281–82.)

1837년 5월 10일에 마쉬 회장과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 장로는 팔리 피 프랫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과 만나기 전까지는 선교 사업을 떠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 편지에 마쉬 회장은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 각 사람을 호명하며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1837년 7월 24일에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 모임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론하고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떠날 계획을 논의하자고 적었다. 영국으로 선교 사업을 떠나는 문제는 정원회가 지난 2월까지 의논했던 사안이었다.(See “Letterbook 2,” pages 62–63, josephsmithpapers.org.) 마쉬 회장과 패튼 장로, 윌리엄 스미스 장로는 7월 24일로 예정된 십이사도 정원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1837년 여름, 미주리주 파웨스트를 떠나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갔다. 그러나 그들이 커틀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하도록 히버 시 킴볼 장로를 불렀고, 올슨 하이드 장로 또한 선교 사업을 떠나고자 하는 열망을 피력했다. 두 장로는 1837년 6월 13일, 커틀랜드에서 영국을 향해 선교 사업을 떠났다. 마쉬 회장이 1837년 7월 8일 커틀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는 킴볼 장로와 하이드 장로가 그의 승인 없이 선교 사업을 떠난 것을 알고는 마음이 상했다.(See Esplin, “Exalt Not Yourselves,” 281–83; see also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410–11.)

비록 이 선교사 부름과 관련해서 마음이 상했지만, 마쉬 회장은 커틀랜드에 있는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이 다시 화합하도록 부지런히 노력했다. 그가 도착하고 첫 몇 주 동안은 부분적으로 그 노력이 성공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고민에 쌓여 있었다. 그의 정원회 회원들이 반항하였고 선교 사업이 그를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에 관해 염려하고, 또 주님께서 아직도 십이사도를 받아들이시는지 알고 싶었던 그는 7월 23일에 … 자신이 염려하는 것들을 의논하기 위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갔다.”(Esplin, “Exalt Not Yourselves,” 283)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다.

지도 7: 오하이오주 커틀랜드, 1830~1838

교리와 성약 112편

주님께서 토머스 비 마쉬에게 십이사도 정원회와 회장인 그의 역할에 관해 가르치시다

교리와 성약 112:1~2. “나 주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일 몇 가지가 네 마음속에 … 있었느니라”

주님께서 토머스 비 마쉬에게 십이사도 정원회의 동료들을 돕기 위해 기도하고 일하라고 하셨지만, 또한 “나 주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일 몇 가지가 네 마음속에 너와 함께 있었느니라”라고도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12:2) 우리는 주께서 왜 “기뻐하지 아니하”셨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토머스 비 마쉬가 여전히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자신과 의논하지 않고 킴볼 장로와 하이드 장로를 영국으로 보낸 일로 노여워하고 있었던 점이 그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

교리와 성약 112:3~10. 주님께서 토머스 비 마쉬에게 그가 계속해서 겸손하다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다

토머스 비 마쉬 회장이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자신이 이 경륜의 시대에 외국으로 나간 최초의 선교사가 되지 못한 것이나 그가 그 일을 지휘하지 못한 것에 마음이 상했을지 모르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마음을 담대히 하라”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가 “땅 끝까지 [주님의] 말을 보”내고 “많은 나라 가운데” 말씀을 전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교리와 성약 112:4, 7) 마쉬 회장이 장차 받을 기회는 주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그렇듯이 그의 충실함에 달릴 것이었다. 그는 충실하게 남지 않았으며, 따라서 약속된 이러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토머스 비 마쉬가 배도하고 교회를 떠나고 일 년 후인 1839년,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들은 영국으로 또 다시 선교 사업을 떠났다.

토머스 비 마쉬가 장차 받을 기회에 관한 말씀과 주님께서는 그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더 주셨다. 주님은 그에게 “아침마다 논쟁하여 날마다 네 경고의 음성을 나아가게 할지어다”라고 권고하셨는데(교리와 성약 112:5), 이는 선교사로서 그가 “논쟁”해야 한다는, 즉 그가 메시지를 선포할 때 담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님은 또한 마쉬 회장에게 미주리주에 계속 살면서 교회 자료를 출판하는 일을 계속하라고 권고하셨다.(교리와 성약 112:6 참조) 이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없으나, 토머스 비 마쉬는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자신이 정원회 내부의 화합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사를 해야 할지 궁금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또한 토머스 비 마쉬에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기도에 응답을 받으려면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12:10 참조) 고든 비 힝클리(1910~2008) 회장은 이 권고를 들어서 우리도 주님의 인도를 받을 자격을 갖추려면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의 삶에는 교만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자만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이기심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해야 할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성취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지시가 필요합니다. 영원한 동반자를 선택할 때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겸손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손을 잡고 너를 인도할 것이요, 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네게 주리라.’(교리와 성약 112:10) …

이 말씀에는 얼마나 위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까. 우리에게 자만과 거만과 교만이 없고, 겸손하고 순종심이 강하다면, 주님께서는 그의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며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보다 큰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와 비교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저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이란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꺼이 배우고자 합니다. 그들은 삶을 인도해 주는 조용하고 작은 음성의 속삭임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혜보다 주님의 지혜를 따릅니다.”(“청소년들을 위한 선지자의 권고와 기도”, 리아호나, 2001년 4월호, 40쪽)

교리와 성약 112:11~14.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으로서 토머스 비 마쉬의 역할

토머스 비 마쉬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구했을 때, 그는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들에 관해 걱정하고 있었고 정원회 회장으로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고자 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그들을 편벽되게 사랑하지 말고 그들에 대한 너의 사랑이 네 자신에 대한 것과 같게 하고 … 그리고 십이사도에 속한 네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교리와 성약 112:11~12)라고 권고하셨다. 주님은 또한 그에게 “내 이름을 위하여 날카롭게 그들을 훈계하고, 그들로 자기들의 모든 죄에 대하여 훈계 받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12:12) 주님은 마쉬 회장에게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아니하고 그 목을 뻣뻣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들은 돌이키게 될 것이요 나는 그들을 낫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112:13)

교리와 성약 112편 11~13절에 기록된, 주님께서 토머스 비 마쉬에게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인 그의 역할에 관해 주신 권고는 사람들을 이끌고 가르치고 돌보는 부름을 받은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사람들을 이끌거나 돌보는 부름을 받은 사람은 (1) 자신이 이끌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2)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3) 죄와 그 결과에 대해 권고하고, 조언하고, 경고하며, (4) 각 사람이 선택의지를 가지고 있고 주님을 따를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교리와 성약 112:15. “너희 스스로를 높이지 말라. 나의 종 조셉을 거스려 거역하지 말라”

1837년의 격동기 동안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있던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 일부는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자기가 남보다 더 낫고 더 총명하다고 믿었으며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반항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교리와 성약 112:15 참조) 한 예로, 1837년에 많은 교회 회원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 몇 사람과 일부 교회 회원들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회의 사업을 처리하는 것에 관해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브리검 영 회장은 일부 사람들이 선지자는 현세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회상했다.(see Discourses of Brigham Young, sel. John A. Widtsoe [1954], 461)

영 회장은 당시에 자신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지지하기 위해 일어섰던 경험을 기록했다. “십이사도 가운데 몇 사람과 몰몬경의 증인, 그리고 교회의 다른 역원들이 성전 다락방에서 평의회를 한 일이 있었다. 그들이 논의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선지자 조셉을 폐하고 데이비드 휘트머를 교회 회장으로 임명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존 스미스와 히버 시 킴볼 형제와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며 이들은 그런 움직임에 반대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분명하고 강력한 태도로, 그들에게 조셉은 선지자이며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마음대로 조셉을 매도하고 중상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를 폐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다만 그들 자신의 권세를 스스로 파괴하고 선지자와 하나님께 자신을 묶어 놓은 줄을 끊고 지옥으로 떨어질 뿐이라고 했다.”(in Manuscript History of Brigham Young, 1801–1844, ed. Elden Jay Watson [1968], 15–16; 또한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브리검 영 [1997], 79쪽 참조)

1837년 5월 29일에, “사도들인 루크 존슨, 라이먼 존슨과 올슨 프랫은 [조셉 스미스]를 포함한 교회 회장단의 일원들을 정식 고소했는데, 프랫과 라이먼이 주장한 혐의는 거짓말과 갈취 및 무례함이었다.”(in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365) 6월에는 팔리 피 프랫과 존 에프 보이튼 등 또 다른 사도들이 선지자에게 맞섰다.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주님의 꾸짖음은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들과 교회 회원 전체에게 조셉 스미스가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지자이며 그가 이 경륜의 시대에 열쇠들을 가지고 있고 주께서 오실 때까지도 그러하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교리와 성약 112:15 참조)

교리와 성약 112:23~26. “나의 집 위에서 그 일이 시작될 것이요”

교리와 성약 112편 23절은 땅의 주민들 사이에 일어날 배도를 묘사하는 이사야의 오랜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이사야 60:2 참조) 교리와 성약 112편 24~26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순서를 제시한다. 십이사도 정원회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정결케 하고 체질하는 심판이 먼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고 그다음에는 세상으로 뻗어 나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베드로전서 4:17; 교리와 성약 112:25 참조)” (“기뻐하라”, 성도의 벗, 1983년 1월호, 68쪽)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계시에서 주님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사악함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교리와 성약 112:25~26 참조)

교리와 성약 112:30~33.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는 “때가 찬 경륜의 시대”의 열쇠들을 지닌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았을 때, 교회는 아직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교회를 관리하는 일에서 일부 문제가 아직 정의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의 관계 및 그들이 지닌 신권 열쇠들을 설명하셨다. 제일회장단은 교회의 가장 높은 관리 정원회이며, 따라서 그 일원은 십이사도 정원회에게 “조언자요 … 지도자”이다.(교리와 성약 112:30)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선언했다. “저는 마지막 왕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멜기세덱 신권의 인봉 권능하에 창세 이래로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모든 것의 충만한 경륜의 시대가 있습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2007], 511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1924~2015)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이 신권 열쇠들이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회복된 이후로 “그곳에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권세선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주어진 신권 열쇠들은 항상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을 통해 이어져 왔습니다.”(“십이사도”,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4쪽)

십이사도 정원회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지닌 신권 열쇠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 왕국의 열쇠, 곧 지상의 왕국을 다스리는 제일회장단의 영원한 권리와 권능인, 하늘에서 처음으로 계시된 그 열쇠는 사도로 성임되고 십이사도 평의회의 일원으로 성별된 각 사람에게 계시의 영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쇠는 제일회장단의 권리이므로 지상에서 한 시대에 한 사람만이 완전하게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선임 사도요, 감리 사도요, 감리 대제사요, 감리 장로입니다. 그만이 다른 모든 이에게 지시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비록 모든 십이사도에게 열쇠가 부여되지만, 자신이 선임 사도가 되어 지상에서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될 때까지, 그들은 열쇠를 제한적으로만 사용합니다.”(“왕국의 열쇠”, 성도의 벗, 1983년 7월호, 33~34쪽)

교리와 성약 112:34. “내가 올 때까지 충실하라”

한동안 토머스 비 마쉬는 교리와 성약 112편에 기록된 계시에서 받은 권고를 따랐다. 그는 교회를 강화하고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지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1837년 7월에는 선지자와 다른 몇 명과 함께 캐나다로 선교 사업을 떠났다. 그러나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돌아온 후 그는 “많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배도의 영에 굴복했다.”(Kay Darowski, “토머스 마쉬의 신앙과 타락”, 계시를 받은 배경, history.lds.org) 그는 미주리의 순종적이지 않고 공격적인 교회 회원들과 그 이웃들 사이의 분쟁을 우려했다. 이에 더하여 1838년 9월에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분쟁에 연루되었다. 교회 회원인 엘리자베스와 루신다 해리스는 치즈를 만들 우유를 충분히 확보하고자 정기적으로 우유를 교환하기로 약속했는데, 마쉬 자매가 우유에서 유지방이 많이 포함된 부분을 내놓지 않고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한 차례 이상 교회 지도자들 앞에 제시되었고 결국엔 제일회장단에게까지 올라갔다. 매번 교회 지도자들은 마쉬 자매의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토머스 비 마쉬는 그러한 결정에 동의하지 않고 분노했다.(Darowski, “토머스 마쉬의 신앙과 타락”, history.lds.org 참조; see also George A. Smith, “Discourse,” Deseret News, Apr. 16, 1856, 44.)

우유 크림에 관련된 문제가 토머스 비 마쉬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아니지만, 이 사건은 그가 느끼고 있던 좌절감을 악화시켰으며 그는 점점 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적이 되었다. 1838년 10월에 그는 미주리의 교회 회원들이 이웃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려 계획하고 있다는 진술서에 서명했고, 이는 15,000명의 교회 회원들을 미주리주 밖으로 쫓아낸 근절령의 한 원인이 되었다.(Darowski, “토머스 마쉬의 신앙과 타락”, history.lds.org 참조; see also George A. Smith, “Discourse,” 44) 후에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선지자를 시기하기 시작했고 … 모든 옳은 것들을 간과하기 시작했으며, 나의 모든 시간을 나쁜 것을 찾는 데 썼다. 그리고 악마가 나를 이끌기 시작하자 육에 속한 마음, 즉 노여움과 질투와 분노가 쉽게 일어났다.”(“Remarks,” Deseret News, Sept. 16, 1857, 220) 토머스 비 마쉬는 근 20년간 교회를 떠나 있었다. 결국 그는 1857년 9월에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성도들과 화해했다.

교리와 성약  113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7년 7월 즈음에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의 교회 회원들 사이의 반목이 사그라들었다. 1837년 9월 말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몇 사람과 함께 교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미주리로 갔다. 1837년 12월에 커틀랜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또다시 일부 교회 회원들이 선지자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음을 알았다. 1838년 1월까지 “커틀랜드의 분열은 더욱 심해졌고 … 반대하는 자들, 파문된 교회 회원들과 다른 이들은 [조셉 스미스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1838년 1월 12일, 선지자는 제일회장단과 그들의 모든 “충실한 친구들”에게 가능한 한 신속히 커틀랜드를 떠나 미주리로 가라고 지시하는 계시를 받았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그날 밤 커틀랜드를 떠났다. 그들의 가족들은 후에 오하이오주 노튼에서 그들과 합류했고, 1월 16일경에 미주리를 향해 떠났다. (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441–42.)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선지자 이사야, 해리 앤더슨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선지자 이사야, 해리 앤더슨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에 관한 질문에 대해 영감으로 받은 답을 제공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가족은 1838년 3월 14일에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도착했다.(see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age 784, josephsmithpapers.org) 미주리에 도착하자마자 선지자는 이사야의 여러 구절에 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주님의 답이 포함된 기록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역사 기록에는 누가 어떤 이유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거의 나와 있지 않지만, 1838년에 미주리에 살던 교회 회원인 일라이어스 히그비가 이사야 52장 1~2절에 관한 질문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교리와 성약 113:7 참조) (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6: April 1838–September 1839, ed. Matthew C. Godfrey and others [2017], 50-51.) 이러한 질문이 나온 상황은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고, 질문과 그에 대한 주님의 답변만 교리와 성약 113편에 기록되어 있다.

교리와 성약 113편

주님께서 이사야의 글에 관한 질문에 답해 주시다

교리와 성약 113:1~6. “이새의 줄기”와 “가지”와 “이새의 뿌리”

1823년 9월 21일, 천사 모로나이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나타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키실 일이 있”다고 말했다.(조셉 스미스—역사 1:33) 천사는 또한 그에게 금판과 우림과 둠밈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어서 구약전서에 기록된 예언들을 인용하기 시작했다.(조셉 스미스—역사 1:34~41) 그런 예언들을 이야기하던 모로나이는 이사야 11장을 인용하며 “이것은 바야흐로 성취되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조셉 스미스—역사 1:40 참조) 거의 15년 후인 1838년 3월,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사야 11장에 관한 질문을 다루었고, 그가 영감으로 받은 답은 이 예언의 일부 요소를 설명한다.

교리와 성약113편 1~2절에는 “이새의 줄기”가 예수 그리스도임이 밝혀져 있다. 이사야 11장 1절에 나온 줄기(stem)라는 단어는 베어졌거나 아직 땅에 심어져 있는 나무의 몸통, 즉 둥치를 일컫는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교리와 성약113편 3~6절이사야 11장 1절에서 “말한 바 … 가지”가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는 한 종”이며, 이사야 11장 10절에 나온 “이새의 뿌리”는 “요셉의 후손인 동시에 이새의 후손이니 … 신권과 왕국의 열쇠가 정당하게 그에게 속하여 있”음을 알려 준다.

나무 그루터기 그림

교리와 성약 113:1~6의 비유에 관한 삽화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이사야 11장 10절교리와 성약113편 3~6절에서 언급된 “가지”와 “이새의 뿌리”를 이렇게 해석했다. “여기에서 언급된 선지자가 조셉 스미스라는 것과 그에게 신권이 주어지고, 왕국의 열쇠가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는 우리 경륜의 시대에 주님의 백성을 모을 기를 높이 올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에 잘못이 있습니까?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한 종이요, 부분적으로 에브라임의 후손 또는 요셉 집의 후손인 동시에 이새의 후손이니, 그에게 많은 권능이 놓여 있[지 않습니까?]’(교리와 성약 113:4~6)” (The Millennial Messiah: The Second Coming of the Son of Man [1982], 339–40)

교리와 성약 113:7~10. “시온이여, 네 힘을 입을지어다”

교리와 성약 113편 7~10절에는 일라이어스 히그비가 이사야 52장에 관해 한 질문과 그 답이 나온다. 교리와 성약 113편 8절에는 “시온이여, 네 힘을 입을지어다 한 명령”이(교리와 성약 113:7, 이사야 52:1 참조)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부르실 자들 … [즉] 시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스라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하여 신권의 권능을 지닐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나온다. 교리와 성약 113편 10절에는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라는 명령이(교리와 성약 113:9, 이사야 52:2 참조) 이스라엘의 “흩어진 남은 자들”에게 “주께로 돌아[와서]” 복음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호소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목의 줄”이라는 문구는 “시온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가리키며(교리와 성약 113:10),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집합하여 그분께 돌아올 때 풀어질 것이다.

교리와 성약 114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은 십이사도 정원회가 1835년에 최초로 조직되었을 때 그 정원회의 일원이었다. 그는 신체적 강인함과 헌신적인 선교사 봉사, 병자를 치유하는 능력, 그리고 동료 교회 회원들을 보호하는 용기로 알려졌다.(see Lycurgus A. Wilson, Life of David W. Patten: The First Apostolic Martyr [1900], 15–29) 1838년 봄,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은 토머스 비 마쉬 및 브리검 영과 함께 미주리의 교회를 이끌고 강화하라는 지명을 받았는데, 당시는 몇 명의 잘 알려진 교회 지도자들이 배도한 상황이었다.(see Wilson, Life of David W. Patten, 52–53) 1838년 4월 11일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과 관련된 계시를 받았다. 교리와 성약 114편에 기록된 이 계시에는 패튼 장로가 이듬해 봄에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일들을 정리하라는 지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약 6개월 후,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은 한 무리의 몰몬 민병대를 이끌고서 미주리 주민들에게 인질로 잡힌 세 명의 교회 회원들을 구출하러 갔다. 이 폭도들은 인질들을 살해하고 지역에 있는 나머지 몰몬들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이어진 전투에서 패튼 장로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몇 시간 뒤 사망했다.(see Wilson, Life of David W. Patten, 64–69)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의 전기 작가에 따르면, 윌포드 우드럽 회장은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언젠가 패튼 장로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그가 주님께 자신이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 주시라고 간구했노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지자는 깊이 감동하면서도 몹시 슬퍼하며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님과 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이 무엇이든 주님께 간구하면, 보통 그것을 받게 된단 말입니다!’”(in Wilson, Life of David W. Patten, 53)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의 장례식에서 선지자는 이렇게 간증했다. “여기에 자신이 하리라고 말해 왔던 그대로 행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in Manuscript History of the Church, vol. B-1, page 10 [addenda]) 후에 주님께서는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의 충실함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나의 종 데이비드 패튼 … 데이비드 패튼을 내가 나에게로 데려왔느니라. 보라, 그의 신권을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취하지 못하느니라.”(교리와 성약 124:19, 130)

지도 8: 미국 미주리, 일리노이, 아이오와 지역

교리와 성약 114편

주께서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에게 선교 사업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부인하는” 교회 회원들에게 경고하시다

교리와 성약 114:1. “내년 봄에 … 사명을 나를 위하여 수행할 수 있게”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이었던 데이비드 더블유 패튼은 교리와 성약 114편에 기록된 주님의 권고에 순종하여 이듬해 봄에 선교 사업을 할 준비로 자신의 사업을 정리했다.(교리와 성약 114:1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이 계시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서 찾아온 그의 죽음은 패튼 장로에게 “할 수 있는 대로 속히 그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라고 권고하신 주님의 지혜를 보여 준다.(교리와 성약 114:1) 주님께 순종하겠다는 패튼 장로의 결정은 후에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그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신앙을 지켰으며 그의 삶이 정리되었다는 확신을 품은 채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크룩트강 근처의 격전지

크룩트강 전투는 1838년 10월 25일에 미주리주 레이군의 이 지점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졌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권고와 영감을 따를 만큼 그분을 신뢰한다면, 무엇이든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에 대해 우리가 준비하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 칠십인 정원회의 로렌 시 던(1930~2001) 장로는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전하는 권고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행사하라고 격려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미래를 보시고 당신의 선지자들이 앞으로 올 사건들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키도록 하십니다.(아브라함서 2:8 참조) 오늘날 우리의 선지자는 …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The Case of the Chevrolet,” New Era, Apr. 1983, 4)

교리와 성약 114:2. “다른 사람들이 그들 대신에 심어져 그들의 감독 직분을 받게 할 것임이니라”

교리와 성약 114편에 기록된 계시가 주어졌을 때,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부 일원과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교회에서 배도했다. 주님은 충실하지 않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로 교체될 것이며 이들이 “그들의 감독 직분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교리와 성약 114:2) 감독 직분(bishopric)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의 직책 또는 교회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부름을 받은 이들에게 성스럽게 부여된 권세와 책임을 가리킨다. 교리와 성약 114편에 기록된 계시를 받고 3개월 후, 네 명의 형제들이 “떨어져 나간 자들의 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았다.(교리와 성약 1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