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교육원
제47장: 교리와 성약 121:11~46


“제47장: 교리와 성약 121:11~46”,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2017)

“제47장”, 교리와 성약 학생 교재

제47장

교리와 성약 121:11~46

소개 및 연대

1838년 10월 31일, 미주리주 민병대가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다른 교회 지도자를 미주리주 파웨스트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다. 이들은 후에 미주리주 클레이군의 리버티 감옥에 갇혔으며, 그곳에서 4개월간 구금되며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리버티 감옥에 있는 동안 선지자는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다. 첫 번째 편지는 1839년 3월 20일에, 두 번째 편지는 그로부터 약 이틀 후에 구술되었으며, 선지자는 이 편지에서 악인들이 겪게 될 심판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용감히 견딘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설명했다.(교리와 성약 121:29)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또한 신권의 권세와 권능에 관한 원리를 가르쳤다. 이 편지들의 일부 내용은 교리와 성약 121편 11~46절에 기록되어 있다.

1838년 8~10월교회 회원들과 다른 미주리주 주민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무력 충돌로 번졌다.

1838년 10월 27일릴번 더블유 보그스 주지사가 모든 후기 성도들을 미주리주에서 근절 혹은 추방하는 명령을 승인했다.

1838년 10월 30일반몰몬 자경단이 미주리주 파웨스트에서 동쪽으로 약 2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혼즈밀 정착지의 교회 회원들을 공격하여 17명의 남성과 소년이 죽고 1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1838년 10월 31일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미주리주 파웨스트에서 미주리주 민병대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1838년 12월 1일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주 클레이군에 있는 리버티 감옥에 갇혔다.

1839년 3월 20~22일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리버티 감옥에서 편지를 구술했다. 이 편지의 일부 내용은 교리와 성약 121~123편에 기록되어 있다.

1839년 4월 6일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이 리버티 감옥에서 미주리주 갤러틴으로 호송되어 법정 심리에 출석했다. 1839년 4월 16일, 조셉과 그 동료들이 감금 상태에서 도망가도록 내버려 둔 바 되었고 일리노이주에 있는 성도들과 합류했다.

교리와 성약 121:11~46: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

1838년 10월에 릴번 더블유 보그스 주지사가 모든 후기 성도를 미주리주에서 추방하도록 명령하자, 8천 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교회 회원들이 강제로 자신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1839년 1월에서 3월에 걸쳐 많은 이들이 미시시피강을 건너 동쪽의 일리노이주 퀸시로 이동했다. 퀸시의 주민들은 교회 회원들을 따뜻하게 환영했으며, “[그들에게] 음식, 쉴 곳, 직업을 제공”했다.(in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6: February 1838–August 1839, ed. Mark Ashurst-McGee and others [2017], 275) 교회 지도자들은 즉시 성도들이 정착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아이잭 갤런드라는 이름의 토지 투기업자가 아이오와주 및 일리노이주 커머스에 있는 교회에 넓은 토지를 팔겠다고 제안했고,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 리버티 감옥에 있던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서신을 보내 이 땅을 매입할 것인지에 대해 상의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6: February 1838–August 1839, 376–77; see also 377, note 650) 1839년 3월 20일, 그리고 대략 1839년 3월 22일 무렵에 선지자는 토지 구매 가능성에 대한 그의 생각과 지시를 담은 긴 답장을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6: February 1838–August 1839, 389–90) 이 편지들에는 주님께서 선지자에게 그의 수감생활 동안 주셨던 계시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두 편지의 일부는 교리와 성약 121편 11~46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본 교재의 이전 장에서 “교리와 성약 121~123편: 역사적 배경 추가 자료”를 참조한다.

교리와 성약 121:11~25

주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예비된 형벌을 설명하시다

교리와 성약 121:11~25. “네게 범법을 지우는 자들은”

교회의 재정 기구인 커틀랜드 세이프티 소사이어티는 지역 시민들의 반대와 국가 경제 위기의 영향 및 조셉 스미스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현명하지 못한 재정적 결정으로 말미암아 1837년 여름 말에 폐쇄되었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많은 교회 회원들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분노했으며, 그들의 재정 문제를 그의 탓으로 돌리고, 그를 “타락한 선지자”라고 비난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ed. Brent M. Rogers and others [2017], 365) 이 반대자 중 일부는 선지자와 교회를 계속 반대하고 조셉 스미스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까지 한 후 결국 파문되었다. 조셉 스미스와 시드니 리그돈은 그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는 주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 1838년에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를 떠났다. 그들은 1838년 3월에 가족을 데리고 미주리주 파웨스트로 갔다. (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5: October 1835–January 1838, 441–42, 537.) 그곳에 도착한 그들은 커틀랜드의 반대자 중 일부도 파웨스트로 이동했으며, 이곳의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일부가 선지자를 반대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see The Joseph Smith Papers, Documents, Volume 6: February 1838–August 1839, 4, 8–9) 한때 회원이었던 이 배도자들은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감옥에 갇히게 하고 성도들이 미주리주에서 추방되는 단초가 되는 사건들에 일조했다.

리버티 감옥에 있는 동안 조셉 스미스가 영감으로 받은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신앙을 잃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종을 파괴하려 한 자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선포하셨다.(교리와 성약 121:16)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배신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구약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셨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편 41:9; 또한 요한복음 13:18 참조)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는 문구는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대항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싸우거나 그것에서 등을 돌리기로 한 사람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13장 18절에서 이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원수들에게 넘긴 유다의 배반을 지칭했다. 교리와 성약 121편에 기록되었듯이 주님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서 등을 돌리고 그의 멸망을 꾀한 배도자들을 지칭할 때 같은 문구를 사용하셨다.(교리와 성약 121:16 참조)

가룟 유다에게 빵 조각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묘사

구약전서에는 유다와 같은 이들에 대한 예언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편 41:9; 또한 요한복음 13:18; 교리와 성약 121:16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1805~1844)는 이렇게 설명했다.

“충실한 자들은 배도자들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유다는 꾸짖음을 받은 후에 사탄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바로 주님을 그분 원수들의 손에 넘겼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복음에 순종하면 좀 더 뛰어난 예지를 받게 되지만, 죄를 지을 경우 배도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정죄받게 되며 결국은 불에 타게 됩니다. 그들 안에 있던 빛이 일단 그들을 떠나면, 이전에 빛이 났던 만큼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모든 힘을 진리에 대항하는 데 사용한다면, 유다처럼 자신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풀었던 자들까지도 멸망시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2007], 320~321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1924~2015) 회장은 오하이오주와 미주리주의 배도자들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에 관해 교회 회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 내에서 ‘나의 이름을 안다고 공언하였으나, 나를 알지 못하였고, 나의 집 가운데서 나를 모독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12:26] …

교회 안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나 혹은 훨씬 심하게 익명으로, 와드나 스테이크 또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난하며, 이사야가 말한 바와 같이 그들에게 ‘송사로 [그들]에게 죄를 씌우’기를 꾀합니다.[이사야 29:21]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에게 발꿈치를 들며, 그들이 …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나 보기에 합당한 일과 내가 그들에게 명한 일을 행한 때에 그들이 죄를 범하였다 외치는 모든 자에게 저주가 있도다. 주가 이르노라. …

그러나 범법하였다 외치는 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죄의 종이요, 불순종의 자녀들인 까닭에 그리 행하느니라. …

… 그들이 나의 어린 자들을 실족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나의 집의 의식에서 단절되리라.

그들의 바구니는 가득 차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집과 그들의 창고는 파멸될 것이요, 그들 자신은 그들에게 아첨하던 자들에게 멸시받으리라.

그들은 신권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요, 그들의 뒤를 이을 후손도 대대로 가지지 못하리라.’[교리와 성약 121:16~17, 19~21]

최선을 다해 복음대로 생활하며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무서운 형벌이 적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과거에는 냉담하거나 적대적인 행위의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하여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버린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형벌이 가해지지 않습니다.[교리와 성약 58:43 참조]”(“십이사도들”, 리아호나, 2005년 9월호, 29쪽)

교리와 성약 121:19~21. “그들은 신권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요, 그들의 뒤를 이을 후손도 대대로 가지지 못하리라”

회개하지 않는 미주리주의 배도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더는 따르지 않기로 했고, 그 결과 그들은 신권의 의식과 축복에 참여하는 특권을 잃었다.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겠다는 그들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뒤를 이을 [대대로의] 후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후손이 복음의 축복과 “신권에 대[한] 권리”를 누릴 기회를 제한했다.(교리와 성약 121:21) 스펜서 더블유 킴볼(1895~1985) 회장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회 회원들 가운데 반항이란 흔히 역원이나 지도자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나타난다. 베드로는 그러한 자들은 ‘영광 있는 자를 비방하며’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한다고 말했다.(베드로후서 2:10, 12) 그들은 프로그램에 대해 불평하고, 교회 지도자를 무시하고, 대개는 자신들이 판사가 된 것처럼 행세한다. 얼마 후에는 흔히 빠지기 쉬운 방법으로 교회 모임에 불참하고 십일조도 내지 못하고 기타 교회의 다른 임무도 지키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배도의 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거의 항상 비판이라는 씨앗의 열매이다. …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에게 간증을 전하지 못하며 가족의 신앙을 파괴하게 되어 그들이 그렇지만 않았다면 모든 것에 충실할 후손들에게 주어질 ‘신권에 대[한] 권리’를 실제로 거부하게 된다.[교리와 성약 121:21]”(용서가 낳는 기적[1969], 46~47쪽)

사람의 선택이 그들의 다음 세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각 개인은 조상의 선택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교리와 성약 121:26~33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께서 영을 통해 영원한 진리를 계시하실 것이라고 가르치다

교리와 성약 121:26~33. “하나님께서는 지식을 너희에게 주시리니”

리버티 감옥에서 4개월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분명 그곳에서 풀려나기를 고대했지만, 그 시기는 또한 그가 가르침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1838년 12월 1일부터 1839년 4월까지 리치먼드 감옥에서 시작되어 리버티 감옥까지 계속된 역경의 기간은 우리에게 계속되는 계시와 개인적인 위안의 과정을 목격할 특별한 기회를 줍니다. …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리버티 감옥에 있는 동안 모든 경륜의 시대의 모든 선지자가 받은 계시를 통틀어 가장 숭고한 계시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계시들은 교리와 성약 121편122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계시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이 부르신 후기의 선지자를 가르치신 신성한 개인 지도 내용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모든 성스러운 말씀 중에서도 가장 애정 어린 개인적인 가르침일 것입니다.”(“A Choice Seer” [Brigham Young University fireside, Mar. 30, 1986], 5, speeches.byu.edu)

리버티 감옥에서의 겨울, 알 라운즈

리버티 감옥에서의 겨울, 알 라운즈.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교회 지도자들은 1838년에서 1839년 사이의 겨울에 리버티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고통을 겪었다.

선지자가 1839년에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한 고귀한 진리는 그가 리버티 감옥에서 겪은 경험으로 이전보다도 더 주님께 가까워졌음을 증명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중 대다수는 리버티에 있던 시설을 ‘감옥’ 혹은 ‘교도소’로 부릅니다. 물론 그게 맞습니다. 그러나 칠십인 제일정원회의 브리검 에이치 로버츠(1857~1933) 장로는 교회사를 기록하면서 그 시설을 성전, 혹은 더 정확히는 ‘감옥 성전’이라고 칭했습니다.[see Comprehensive History of the Church, 1:521 chapter heading; see also 526] … 분명히 이 감옥 성전에는 우리의 현대 성전이 보여 주는 순수함과 아름다움, 안락함과 청결함은 없었습니다. 그곳 간수와 죄수들의 언행은 전혀 성전과 걸맞지 않았습니다. 사실, 리버티의 사람을 억압하는 잔혹함과 불의는 우리의 성전과 그곳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에 깃든 해방하는 자비로운 영과 정반대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리버티 감옥이 ‘성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명칭은 하나님의 사랑과 가르침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를테면 언제 어디에서 그러한 사랑과 가르침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 등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정확하게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상황에 있든지, 여러분은 주님과 더불어 성스럽고,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 심오한 가르침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경험을 겪는 중, 즉 지금껏 겪은 것 중 가장 힘든 역경과 반대에 부딪힌 최악의 상황에서, 가장 참기 힘든 부당함을 견뎌 내는 중에 주님과 더불어 성스럽고,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 심오한 가르침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Lessons from Liberty Jail,” Ensign, Sept. 2009, 28)

교회가 조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님께서는 충실한 교회 회원들에게 그들이 만일 구한다면 “계시 위에 계시를, 지식 위에 지식을 받을 것이요, …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 영생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게 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교리와 성약 42:61; 또한 교리와 성약 1:28 참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진리와 빛을 받나니, 드디어는 [그들은] 진리로 영화롭게 되며, 모든 것을 알게 [된다.]”(교리와 성약 93:28) 교리와 성약 121편 26~32절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계시로 성도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가르쳤다. “때가 찬 경륜의 시대는 모든 과거 경륜의 시대에서 밝혀진 것들을 빛 가운데 드러낼 것이며, 과거에 밝혀지지 않았던 것들 또한 밝혀낼 것입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510쪽) 또한, 다른 때에 그는 이 경륜의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대의 선지자들과 현자들이 보고 싶어했으나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시고 그분의 교회에 질서를 세우시기 시작한 날, 창세 이전부터 숨겨져 온 것들을 나타내 보이기 시작한 날, 여호와께서 그분의 때가 되면, 그분의 종들이 지구로 하여금 그분이 영광 중에, 즉 해의 영광 중에 돌아오시고, 시온 산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어린양의 제사와 왕들의 왕국을 준비하도록 그 모든 것들을 알려 주시겠다고 약속한 날.”(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510쪽)

이러한 지식은 회복과 함께 쏟아 부어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주가 … 그 모든 일을 드러내[시고]”(교리와 성약 101:32) “아무 것도 감추어지지 않을”(교리와 성약 121:28) 복천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는 복천년 동안 우리에게 계시될 지식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복음의 충만함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구원의 충만함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에게는 해의 왕국의 가장 높은 하늘에서 승영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것, 즉 모든 진리와 교리와 원리, 모든 의례와 권능과 의식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

모든 것은 복천년 때 드러날 것이다. 몰몬경의 인봉된 부분이 나올 것이고, 놋쇠판이 번역될 것이며, 아담,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셀 수 없이 많은 선지자의 기록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지상에서 베푸신 성역에 관해 우리가 지금 아는 것보다 천 배는 더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하신 분과 함께 걷고 이야기했던 이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왕국의 위대한 비밀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창조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을 배울 것이다. … 지구의 어디에도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와 같이 되려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Millennial Messiah: The Second Coming of the Son of Man [1982], 675–77)

교리와 성약 121:28. “한 하나님이 계시든지 많은 신들이 있든지, 그들이 나타나리라”

“한 하나님이 계시든지 많은 신들이 있든지”라는 문구는(교리와 성약 121:28) “주[님께서] … 모든 일을 드러내”실 때(교리와 성약 101:32) 더 분명하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별개의 존재라는 지식을 직접 경험으로 얻었다.(조셉 스미스—역사 1:17; 또한 교리와 성약 76:19~23; 137:1~3 참조) 그는 후에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항상 하나님이 별개의 인격체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는 별개의 다른 인격체이시며, 성신 또한 별개의 인격체로서 이분은 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분은 각기 다른 인격체로서 세 분의 하나님이 되십니다.”(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조셉 스미스, 41~42쪽) 주님께서는 또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처럼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계시하셨다.(교리와 성약 132:19~20 참조) 하지만 하늘의 존재들의 본성과 질서에 대한 우리의 이해력은 “아무 것도 감추어지지 않을 때가 오”기까지는 계속 제한될 것이다.(교리와 성약 121:28)

교리와 성약 121:34~46

조셉 스미스가 “신권의 권리는 하늘의 권능과 불가분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가르치다

교리와 성약 121:34~35.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도다”

1837년 말에서 1838년까지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교회의 회원과 지도자였던 많은 친구들이 교회로부터 배도하는 것을 목격했다. 리버티 감옥에 있는 동안 교회 회원들에게 쓴 영감 어린 가르침에서, 선지자는 “부름을 받는”자들과 “택함을 받는”자들을 구분했다.(교리와 성약 121:34) 이 글에서 “부름을 받는” 것은 특별히 신권의 권세를 받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신권 소유자가 “택함을 받”으려면, 다른 이들이 신권의 축복을 받도록 “하늘의 권능”을 끌어오기에[교리와 성약 121:36] 합당해야만 한다. 또한, “부름을 받는”것과 “택함을 받는”다는 개념은 신권 소유자뿐 아니라 모든 교회 회원에게도 더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교회가 1830년에 조직되기 전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만일 너희에게 하나님을 섬기려는 소망이 있을진대, 너희는 그 일에 부르심을 받느니라.”(교리와 성약 4:3) 브루스 알 맥콩키 장로는 “부름을 받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름을 받는 것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과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도로서 헤아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원한 성약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의 시온에 참여하는 것이다. …

이 전반적인 체계 안에는 신뢰와 책임의 직분을 맡는 개인적인 부름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부름들은 주님의 명을 받아, 특정한 장소에서, 일정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라는 단순한 과제에 불과하다. 부름의 본질은 복음의 대의를 위해 일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사도들과 선지자 혹은 이스라엘의 위대하고 강한 자를 위해 따로 마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국의 모든 회원을 위한 것이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973], 3:326)

경전에서 “택함을 받는”다는 문구는 “특별한 책임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자들”을 지칭한다.(경전 안내서, “택()하신, 택하신 자()”, scriptures.lds.org) 교리와 성약 121편에서 사용되었듯이, “택함을 받는”다는 것은 또한 자신의 부름이나 자신이 받은 특별한 책임을 충실히 완수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신권의 권능과 여러 축복을 받는 자들을 지칭하기도 한다.(교리와 성약 121:36, 45~46 참조)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택함을 받는” 것의 의미에 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전했다.

“사전에서 택하신이라는 말은 선별되고, 우선적으로 취하여지거나 뽑힌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선택된 혹은 택하신 사람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second ed. [1989], ‘Chosen’). …

선택되거나 선택 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독점적인 상태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선택의 여부는 여러분과 제가 궁극적으로 결정합니다. 교리와 성약에 있는 다음 구절에서 선택된이라는 말의 사용에 유의하십시오.

‘보라.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도다. 어찌하여 그들이 택함을 받지 못하느냐?

이는 그들의 마음이 이 세상 일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사람의 명예를 갈망하여 그들이 이 한 가지 교훈을 배우지 아니함이니’(교리와 성약 121:34~35; 강조체 추가)

저는 이 구절들[교리와 성약 121:34~35]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 무척 직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좋아하시는 사람들의 명단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의 이름이 추가되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선택된 사람들’을 한정된 소수에 국한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로 헤아림을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염원과 순종입니다.”(“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사”, 리아호나, 2005년 5월호, 100~101쪽)

교리와 성약 121:36. “신권의 권리”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신권의 권리”의 올바른 이해와 사용은(교리와 성약 121:36) 사람이 “택함을 받는” 것으로부터 오는 약속된 축복을 얻는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교리와 성약 121:34, 40)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권 권세는 성임을 통해 주어지며, 신권의 권능은 성약을 지키는 충실하고 순종적인 삶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 힘은 신권을 의롭게 행사하고 사용할 때 더욱 커집니다.”(“신권 권능”, 리아호나, 2010년 5월호, 9쪽)

신권 축복을 받는 청녀

신권 권세를 행사하는 것은 “의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교리와 성약 121:36)

제일회장단의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신권 소유자가 신권의 권능을 행사하려면 왜 의로워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전능하신 아버지께서는 부족하고 불완전한 필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신권 권세를 맡기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분의 이름으로 행할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 의식을 집행하며,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우리 가족과 이웃을 축복하고 봉사할 권한을 받은 것입니다. …

신권 또는 신권 내의 어떠한 책임도 돈으로 살 수 없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지위나 부나 세력으로도 그 권능을 사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다그치거나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율법에 따라 움직이는 영적 권능입니다. 신권은 우리 모두의 위대하신 하늘 아버지로부터 온 권세입니다. 그 권능은 독선이 아니라 의의 원칙을 통해서만 통제되고 다루어집니다.[교리와 성약 121:36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모든 참된 신권 권세와 권능의 근원이십니다.[히브리서 5:4~10; 교리와 성약 107:3 참조] 이 일은 그분의 사업이며, 우리는 그 일을 돕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겸손하고 사랑이 가득하며 신앙, 소망 그리고 자애를 지니며, 자기에게 돌보도록 맡겨진 일이 어떠한 일이든지 모든 일에 절제하는 자가 아니면, 아무도 이 일을 도울 수 없[습니다.]’[교리와 성약 12:8]”(“신권에서 오는 기쁨”,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58~59쪽)

모든 충실한 교회 회원은 신권 권능에서 오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때로 우리는 신권 권능을 너무 교회의 남성들에게만 연관시켜 생각합니다. 신권은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로 모든 사람, 즉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들의 구원과 축복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남성은 커튼을 열어 따뜻한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태양이나 빛, 그 온기까지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권의 축복은 그 은사를 집행하도록 위임된 사람보다 한없이 더 위대한 것입니다.

이생과 내세를 위한 신권의 축복과 권능, 약속을 받는 일은 필멸의 삶에서 주어진 위대한 기회이자 책임입니다. 우리가 합당하다면, 신권 의식은 지상에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한 앞으로 올 세상의 위대한 약속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킬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식으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느니라.’(교리와 성약 84:20)

침례를 받고, 성신을 받고, 정기적으로 성찬을 취하는 모든 합당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축복이 있습니다. 성전을 통해 우리는 더 큰 빛과 힘을 받고 부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며 영생을 약속받습니다.[교리와 성약 138:37, 51 참조]”(“신권 권능”, 리아호나, 2013년 11월호, 92쪽)

교리와 성약 121:37~40. “조금이라도 불의하게”

교리와 성약 121편 37~40절에는 신권을 부적절하고 합당하지 않게 사용하는 예가 열거되어 있다. 어떤 신권 소유자라도 자신의 권세를 남용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영을 잃고 신권의 권세와 권능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권 권세를 받기는 했으나 신권 권능(power)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저는 두렵습니다. 권능이 없는 이유는, 마치 전력이 차단된 것처럼 게으름과 부정직, 교만과 부도덕, 또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 등의 죄 때문에 권능의 흐름이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권능에 접할 능력을 개발하고자 노력을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는 신권 소유자가 너무 많아 두렵습니다. 생각이나 감정, 또는 행동이 순결하지 않거나 아내나 자녀를 함부로 대함으로써 신권의 권능을 차단해 버리는 모든 사람이 저는 걱정됩니다.

애석하게도 자신의 선택의지를 사탄에 굴복시켜 ‘구주의 권능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일보다는 내 욕망을 채우는 일이 더 중요해.’라는 의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두렵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는 우리 중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깨어 일어나 신권의 권능이 진정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자신이 그제껏 하나님의 권능을 온전히 행사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타인을 다스릴 권력이나 직장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깊이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교리와 성약 121:36 참조]”(“신권 권능의 값”, 리아호나, 2016년 5월호, 67~68쪽)

교리와 성약 121:38. “가시채를 뒷발질”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가시채’는 가축을 앞으로 몰기 위해 가축을 찌를 때 사용하는 날카로운 창이나 막대기를 말한다. 고집이 센 가축들은 앞으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뒷발로 차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다. 그러한 반항은 주인이 더 고통스러운 자극을 가하도록 자초하여 가축에게 괴로움만 더하게 된다.”(신약전서 학생 교재[교회 교육 기구 교재, 2014], 295쪽) 교리와 성약 121편 38절에서 “가시채를 뒷발질하며”라는 문구는 주님 혹은 그분이 임명하신 종들의 지시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리와 성약 121:41~45. 신권의 의로운 사용

신권 소유자들은 “의의 원칙”을 따름으로써 올바르게 신권을 사용해야 한다.(교리와 성약 121:36) 그들은 신권을 의롭게 행사하기 위해 교리와 성약 121편 41~45절에 열거된 성품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역의 모범에 잘 드러나 있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은 이렇게 가르쳤다. “신권 소유자들은 신권 권세를 올바르게 행사할 때 주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다면 하셨을 바로 그 일을 하게 됩니다.”(“신권 권능”, 7쪽)

청년 성인들과 함께한 러셀 엠 넬슨 회장

신권 권능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사람은 “설득으로, 오래 참음으로, 온화함과 온유함으로, 그리고 거짓 없는 사랑으로” 그렇게 행한다.(교리와 성약 121:41)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은 신권을 소유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형제 여러분, 우리 각자는 인류에게 부여된 가장 귀중한 은사 중 하나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권을 존중하고 언제나 합당하게 생활할 때, 신권의 축복들이 우리를 통해 흘러 나올 것입니다. 저는 교리와 성약 121편 45절에 나오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합당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 줍니다. ‘모든 사람을 향하여 그리고 신앙의 권속에 대하여 사랑이 네 가슴에 가득하게 하고 쉬지 말고 덕으로 네 생각을 장식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면전에서 네 확신이 점점 강하여지리니, 신권의 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네 영혼을 적시리라.’

하나님의 신권을 지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종사하며 그분의 부름에 응하고 그분의 심부름을 합니다. 그분에게서 배웁시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릅시다. 그분의 교훈에 따라 생활합시다. 그렇게 하면,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봉사에 부름을 주시든 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신권—성스러운 은사”, 리아호나, 2015년 5월호, 90쪽)

교리와 성약 121:45. “신권의 교리는 네 영혼을 적시리라”

칠십인 정원회의 크레이그 에이 카든 장로가 전한 다음 말씀은 우리가 교리와 성약 121편 45절에 기록된 진리를 적용하는 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주님은 신권 소유자들의 불의는 하늘의 권능이나 영향력을 그치게 하는 반면 의로움은 그것들을 강화해 준다고 가르치시면서 우리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영혼을 심히 크게 만드’는 특성을 ‘설득 … 오래 참음 … 온화함 … 온유함 … 거짓 없는 사랑 … 친절함, 그리고 순수한 지식’으로 규정하셨습니다.[교리와 성약 121:41~42]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이러한 교훈적인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향하여 그리고 신앙의 권속에 대하여 사랑이 네 가슴에 가득하게 하고 쉬지 말고 덕으로 네 생각을 장식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면전에서 네 확신이 점점 강하여지리니, 신권의 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네 영혼을 적시리라.’[교리와 성약 121:45]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지도록 권유하신 후에 그리고 신앙의 권속에 대하여’라는 구절을 추가하신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사람’이라는 구절에 ‘신앙의 권속’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구절이 추가되어 더 구체적으로 ‘바로 여러분 자신의 신앙의 권속’이란 뜻으로 이해될 때 나타나는 함축된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내에는 자기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형제, 자매와 부모보다도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더 큰 사랑을 보여 주는 분들이 다소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과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다툼을 야기시키면서 대외적으로는 거짓된 친절을 보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이어서 끊임없이 덕으로 장식되는, 즉 아름답고 신중한 생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죄를 혐오합니다.[앨마서 13:12 참조] 그것은 우리의 대화가 간교함 없는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가 되게 합니다.[마태복음 5:37]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필연적인 불완전함에 개의치 않고 그들의 장점과 잠재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구절은 증류하는 과정에 빗대어 아름답게 교훈을 줌으로써 끝맺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리들이 적용되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습도가 높은 방에 놓여진, 겉보기에 똑같은 모양을 한 두 개의 물잔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확실치 않은 준비 과정 때문에 야기된 온도 차이로 두 개의 잔 중의 하나는 물잔 표면에서 물이 응축하기 시작하고, 반면 다른 잔은 물기 없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한 물 잔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때, 다른 물 잔에는 습기가 강제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오도록]’ 합니다.[교리와 성약 121:46]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향한, 특히 우리의 가족을 향한 사랑인, 영혼을 심히 크게 만드는 특성과 덕으로 장식된 생각은 신권의 교리가 우리의 영혼을 증류시킬 수 있게 우리의 영적인 온도를 조정합니다.

그러므로 신권은 영의 영향에 의해 성임과 의식, 그리고 개인적인 성품의 순화를 통해 개개인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과 같이 되고 그분의 면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즉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영화로운 일을 제공해 줍니다.[모세서 1:39참조]”(“그분께 더 가까이 다가감”,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95~96쪽)

교리와 성약 121:46. “성신은 변하지 않는 네 동반자가 될 것이요, 네 홀은 의와 진리의 불변하는 홀이 되리라”

교리와 성약 121편 41~45절에 나열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구하고 행사하는 신권 소유자들은 신권의 축복을 통해 권능을 받을 것이다. 이 신성한 권능은 “의와 진리의 불변하는 홀”로 묘사되어 있다.(교리와 성약 121:46) 홀이란 왕과 같은 통치자가 가진 지상의 권세를 보여 주는 막대 또는 지팡이이다. 교리와 성약 121편 46절에서 홀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원칙”을 사용하여 “신권의 권리”를 행사하는 자들에게 부여하신 신권의 권세와 권능을 뜻하는 비유이다.(교리와 성약 121:36) 이러한 의로운 신권 소유자들은 “성신[을] 변하지 않는 [그들의] 동반자”로 삼을 것이며, 그들의 “다스림은 영원한 다스림이 되어 강제당하지 아니하고 영원무궁토록 [그들에]게로 흘러”올 것이다.(교리와 성약 121:46) 그러므로 “불의한 지배력”을 통하여 행사되는 악한 자의 권능은(교리와 성약 121:39) “사랑이 … 가슴에 가득”하며, “쉬지 [않]고 덕으로 [자신의] 생각을 장식”한(교리와 성약 121:4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용감히 견딘 자 모두”에게(교리와 성약 121:29)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신성한 권능과 대비된다. 이 사람들은 강압이나 강제보다는(교리와 성약 121:37 참조) 사랑과 의로움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이끌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며, 결과적으로 의로움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들을 따르고 싶어 하게 된다.